오늘은 3박 4일 제주도 성지순례의 마지막 날,
오전 중 차를 반납하고 공항으로 가야하니 조금 일찍 숙소를 나서서,
'제주시 삼도 1동'에 위치한 관덕정을 찾았습니다.
관덕정
"1886년 한불조약을 계기로 조선 땅에서는 공식적인 박해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지방에서는 부패한 관리와 완고한 유생들과 천주교인들과의 충돌이 결국에는 박해라는 양상으로 바뀌었는데,
그중 하나가 1901년 발생한 제주도 신축교안(辛丑敎案)이다.
지방 관리와 기득권을 주장하는 토호 세력 등의 결탁으로 유도된 이 사건은
중앙 정부의 새로운 조세 정책에 불만을 가진 백성들의 민란(이재수의 난)으로 출발했으나,
사건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민란군은 공격 대상을 천주교로 돌렸다."
<앞에 보이는 건물이 관덕정입니다.>
"관덕정(觀德亭)은 본래 조선 세종 때 병사들의 훈련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군사들의 연무장에 세운 정자였는데,
제주 신축교안 때 많은 신자들이 이곳 관덕정에서 민란군에게 처형되었다."
<관덕정 : 세종 30년(1448)에 창건된 제주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당시 교안의 과정에서 피살된 자들은 대부분 교민들이었다.
교회측에서는 대체로 500~700명 정도가 피살된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당시 제주에 파견된 평리원 안종덕(安鍾悳) 검사가 공식적으로 집계한 숫자는 교민 309명, 평민 8명이었다.
이 숫자는 샌즈(W.F.Sands)가 상경하여 고종 황제에게 보고하였던 쌍방 간 3백 명이란 숫자와도 일치한다.
그런데 제주교안이 진정된 1902년 제주에 남아 있던 교민 강인봉(姜寅奉)이 남긴 서한에 따르면,
교민들 중에 피살된 자가 350~360명이라 하였다.
-박찬식(시메온, 김기량성당)님의 강의안에서 -
<신축교안 당시 관덕정 앞에 버려진 천주교인들의 시신>
<아무렇게나 시신들이 버려졌던 곳이 바로 이곳이겠지요>
"제주교구는 2003년 11월 7일 '1901년 제주항쟁기념사업회'와 함께 화해 선언문을 발표하였다.
곧, 교회는 과거 전통 사회와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선교 활동을 펼쳤던 점들을 인정하고,
제주도 민중들도 봉기 과정에서 무고한 천주교인들이 희생되었다는 점을 인식하게 됨으로써,
과거사에 대한 일방적 시각을 버리고 화해와 화합의 새로운 길을 열었다."
선덕대(宣德臺)
<베풀 宣, 큰 德, 돈대 臺, 관덕정 뒤에 있습니다.
너른 마음으로 용서하고 베풀고 화해하고 화합하고....>
제주목관아(濟州牧官衙)
"조선시대 제주지방 통치의 중심이었던 제주목관아는 지금의 관덕정을 포함하는 주변 일대에 분포해 있었으며,
이미 탐라국 시대부터 성주청(星主聽) 등 주요 관아시설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고 있다.
관아시설은 1434년(세종 16) 화재로 건물이 없어진 뒤, ~~ 조선시대 내내 증개축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제주목 관아는 일제강점기 때 집중적으로 훼철(毁撤)되어 관덕정을 빼고는 그 흔적을 볼 수가 없었다.
~~ 1991년부터 1998년까지 4차례 발굴조사를 마친 결과, ~~ 건물터와 유구(遺構)가 확인되고 유물도 출토되었다.
~~ 1999년 9월에 시작하여 2002년 12월에 복원을 완료하였다."
<관덕정 바로 옆이 제주목관아,
여기까지 왔다가 그냥 갈 수 없어 들어가 보려하는데,
오늘은 입장료가 공짜(매월 마지막 수요일), 기쁨은 두 배!>
<중대문(中大門) : 외대문과 내대문의 중간에 있었던 대문>
우련당(友蓮堂)
"우련당은 1526년(중종21)에 이수동(李壽童) 목사가 성 안에 우물이 없으면
적이 침입하여 포위하거나 화재가 발생했을 때 구급하기 어렵다 하여,
못을 파고 물을 가두어 연꽃을 심은 뒤 그 곳에 세웠던 정자이며, 연회장소로 사용되던 곳이다."
<사진에는 안나왔는데, 오른편 앞쪽에 연못이 있습니다.>
홍화각(弘化閣)
"절제사(節制使, 목사가 겸한 군사직)가 집무하던 곳.
~~ 홍화각은 탐라고각(耽羅高閣)이라 불리었을 정도로 관아건물 중에서는 가장 웅장하였다.
~~ 1940년에 일제(日帝)에 의해 강제로 훼철(毁撤)되었으며 ~~"
귤림당(橘林堂)
"목사가 한가한 시간에 거문고를 타고 바둑을 두거나 시를 지으며 술을 마시던 장소"
연희각(延曦閣)
"목사(牧使)가 집무하던 곳으로, 상아(上衙)의 동헌(東軒), 목사의 정아(正衙) 등으로 불리웠다."
망경루(望京樓)
"임금님이 있는 서울을 바라보며 그 은덕을 기리는 신지(信地)이며 중요한 제주목관아의 하나."
<망경루는 2층에 올라가 볼 수도 있습니다.>
<공신정(供辰亭) 주춧돌>
<영주협당(瀛洲協堂) : 군관(軍官)들이 근무하던 관청>
<나무 열매가 하도 예뻐서 물어봤더니 '먼나무'라고 생전 처음 들어보는 이름입니다.>
<제주목관아를 나와 300m 떨어진 '제주 주교좌 중앙성당'에 성지순례 도장 받으러 왔는데 ~~>
<성당이 엄청 커서 어안렌즈가 아니면 다 잡히질 않습니다. 2000년 제주시 건축상도 받았답니다>
<건물은 10여년 밖에 안되었지만, 역사는 100년이 넘었습니다>
<그냥 쭉 한 번 둘러보세요>
이렇게 하여 제주도내에 있는 성지 7곳을 모두 다 돌아보았는데,
사탄띠의 시각에서 보면 조금 아쉬운 면이 있습니다.
김기량 순교현양비와 새미 은총의 동산은 그 의미를 이해하겠지만,
관덕정, 황사평, 정난주 마리아 묘, 황경한 묘, 그리고 용수성지는,
너무 무리하지 않았나....
* 무리(無理) : 도리나 이치에 맞지 않거나 정도에서 지나치게 벗어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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