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1월부터 시작했으니 노가다판(건설현장)에서 일한 지 올해로 32년째,
저 위 높으신 분부터 일당쟁이(일용잡부), 동네 건달들까지 층층이 여러사람도 보았고,
대기업 그룹사부터 알탕갈탕 자수성가한 발주처까지 고루고루도 접해보았지만,
제일 속 뒤집어 지는 때는 X도 모르는 것들이 헛소리 벅벅해대며 사람마저 무시할 때였는데,
이번에는 뭔가 좀 다른 발주처의 좋은 사람을 만났으니 행운 중의 행운입니다.
'자고로 현장에선 사람이 일하는 것이고, 일을 잘하려면 단합이 잘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봄부터 이 행사를 추진하려 했던 조금은 별난 발주처의 조금은 색다른 단합행사,
발주처, 설계사, CM & 감리, 시공사 직원들까지 모두 함께한 Membership Training 자리입니다.
<동학사 입구 주차장에서부터 오늘의 행사는 시작합니다.
가운데 이야기하고 계신 분이 오늘 행사를 주관하신 발주처의 감독관...>
<우린 목적지인 동학사를 향해 걸어가는 데, 왜 나이먹으면 다들 뒷짐 지고 걸을까???>
<난 漢字도 읽을 줄 압니다. "사학동 산룡계" ㅎㅎㅎㅎ...
웅장한 일주문을 보니 동학사의 규모가 얼마나 클지 상당히 기대됩니다.>
<아직까지는 포장된 편평하고 평범한 길,
그 길을 꼭 막고 가기는 하지만 조폭은 절대로 아니니 안심하시길...>
<관음암을 지나 ~~>
<길상암을 지나고 ~~>
<미타암을 지납니다.
암자의 규모들도 이정도로 크니 동학사는 과연 얼마나 클까??>
<돌당길을 지나니 ~~>
<동학사 대웅전이 나오는 데,
어라? 이상하다, 大동학사 대웅전이 오는 길의 암자의 것보다 더 작은 것 같네??>
동학사 삼층석탑(東鶴寺 三層石塔)
"이 탑은 청량사(남매탑이 있는 곳)에서 이곳으로 옮겨 놓은 것이다.
탑은 신라 성덕왕 22년(723)에 동학사와 함께 건립하였다고 전하나,
탑의 양식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원래 없어졌던 기단과 3층 탑신은 2008년 현재의 모습과 같이 복원하였다."
<"동학사엔 함박눈이 소록소록 내리고 있다.
새로 단장한 콘크리트 사찰은 솜이불을 덮은 채 잠들었는데 ~~"
국어 교과서에 나왔던 이상보님의 '갑사로 가는 길' 첫머리 입니다.
이 수필은 1972년 '현대수필'에 발표했으니 40여년이 지났는데,
그때만 해도 동학사는 콘크리트로 지어졌던 것 같습니다.>
<대웅전 앞에서 인증샷을 한 방 찍고나서, 난상토론(?)이 벌어졌습니다.
오늘 일정이 동학사까지인 줄은 알지만 너무 짧다, 남매탑까지 가자,
아니다, 처음부터 이곳까지만 오기로 했으니 그냥 내려가자.
어제 저녁부터 시작하여 새벽 3시 넘어서까지 3차, 4차 행군(?)을 계속하신 분들도 있었기에,
아쉽지만 그만 내려가서 해장 막걸리 한 잔 더 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그러나 애초부터 목적이 달랐던 나는 일정을 달리합니다.
"날은 시나브로 어두워지려 하고 땀도 가신지 오래여서, 다시 산허리를 타고 갑사로 내려가는 길에 ~~"
이상보님의 수필에 나온 순 우리말 시나브로라는 단어의 어감이 너무도 좋았기에,
님의 수필이 좋아졌고 님이 걸었던 길도 똑같이 걸어보고 싶었지만 마음뿐이었는데,
오랜 바램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와서 출발전에 미리 양해를 구했듯이,
난 다른 사람들과 헤어져 남매탑을 지나 갑사까지 걷기로 했습니다.>
<우선 동학사를 둘러보러 계속 올라갔지만, 보시는 바와 같이 길따라 길게 늘어선 이만큼이 전부입니다.
실망이랄 것 까지는 없지만, 동학사도 이정도이니 갑사는 암자보다 더 작을 것이라는 생각이 앞서는군요.>
숙모전(肅慕殿)
"숙모전은 세조에 의해 왕위를 빼앗긴 단종을 모신 전이요,
동·서무(東·西廡)에는 당시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발각되어 참형을 당한 사육신과 삼상(三相),
종실의 대군, 그외의 순절한 원혼을, 그리고 생육신 등 충의절사를 모신 곳이다.
세조2년(1456)에 김시습이 단을 모아 사육신을 초혼제사(招魂祭祀)하였더니,
1457년 세조가 이곳에 들렀다가 초혼단(招魂壇)을 보고 감동하여
억울하게 죽어간 명단(名單)을 8폭비단에 적어 유·불(儒·佛)이 공사(供祀)토록 하고 사패(賜牌)하였다."
<세조는 정권유지를 위해 어린 단종까지 죽인 매정한 냉혈인간인줄만 알았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비록 자신에게 반대한 정적이었기에 죽여 없애기는 했지만, 권력을 잡고난 후에는 베풀 줄도 알았습니다.
이런 아량 정도는 있어야 하는데, 고향땅에 내려가 오리농사 짓겠다는 사람까지 기어이 저승으로 보내고마는,
개보다 못한 이 시대의 아귀들은 꼭 읽어보고 뉘우치고 용서를 빌어야할 것입니다.>
* 육도(六道) : 중생이 각기 업에 따라 취하는 여섯 가지 생존양식.
'지옥, 아귀, 축생(짐승), 아수라, 인간, 하늘'의 순서
* 아귀(餓鬼) : 아무리 먹어도 배는 항상 고프고 아무리 재물을 모아도 항상 마음만은 가난하여,
언제나 주리고 인색함을 벗어나지 못하는 중생의 무리
<여기서부터는 남매탑으로 오르는 길인데,
마침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분이 있어 우리 둘은 남매탑으로 향합니다.>
<생각보다 가파른 돌길을 몇 번씩 쉬어가면서 오르고 또 올라 ~~>
<조금만 더가면 남매탑인데, 새벽 세 시 너머까지 술자리를 빛내신 분은 이미 기진맥진 ~~>
남매탑(男妹塔)
"통일신라시대의 한 스님이 토굴을 파고 수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호랑이 한 마리가 나타나 ~~ 큰 가시 하나가 목구멍에 걸려 있어 뽑아주었더니
며칠 뒤에 호랑이는 한 아리따운 처녀를 등에 업고와 놓고 갔습니다.
~~처녀는 상주사람으로 혼인을 치른 날 밤 호랑이에게 물려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고 스님에게 말하였습니다.
~~그 처녀의 부모는 이미 다른 곳으로 시집 보낼 수도 없고 인연이 그러하니 부부의 예를 갖추어 주기를 바랬습니다.
스님은 고심끝에 그 처녀와 남매의 의를 맺고 비구와 비구니로써 불도에 힘쓰다가 한날 한시에 열반에 들게 되자,
이 두 남매의 정을 기리기 위해 탑을 건립하여 두 스님의 사리를 모시게 되어 '남매탑'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남매탑의 전설을 내 나름대로 재구성해보면,
'상주에 사는 처녀가 원치 않은 결혼을 피해 도망가다가 산속 눈길에 쓰러졌는 데 스님이 구해주었고,
겨울이라 오도가도 못해 스님과 함께 지내던 중, 부처님의 법을 만나 비구니가 되기로 결심을 했다.
스님과 처녀는 이미 수행하는 비구와 비구니가 되었기에 서로에게 아무런 감정도 없지만,
속세사람들의 눈에는 남녀가 같이 산다는 게 믿어지지 않기에 겨우 의남매란 단어를 생각해 내었다.'
아, 내가 꾸몄어도 너무너무 현실적이다. ㅎㅎㅎㅎ>
<말도 안된다고요?
우리 조상들 중에는 더한 분들도 계셨습니다.
경기도 양평군 양평읍 오빈리에 가면 천주교 양근 성지가 있는 데, 거기엔 이렇게 적혀있습니다.
"조숙 베드로와 권 데레사 동정 부부는 한국교회의 성직자 영입운동에 적극 참여하다가 잡혀서 순교한 분들입니다.
이들은 결혼생활 15년 동안 오누이처럼 지내면서 동정을 지켰고 마침내 동정순교 부부의 자리를 차지하게 됩니다."
신앙의 힘은 정말 무서운 것입니다.>
<남매탑에서 계단을 내려가면 상원암이 있고 ~~>
<그곳에서 앞을 내다보니 가슴까지 시원합니다.>
<여기가 어디냐구요? 시장통이 아닙니다.
남매탑 옆에 휴식공간이 있는 데, 이곳에서 점심먹는 사람들입니다.
맨 앞에 있는 두 분은 초상권 보호를 위해 선글라스를 씌웠는데, 감쪽같지요?
우리도 여기서 김밥 한 줄씩으로 요기를 하고 ~~>
<또다시 돌길을 오릅니다.>
<하늘이 보이기에 다 올랐나 싶었는데 ~~>
<고개에 오르니 왼편으로 가면 삼불봉이 나온다는 안내판이 있습니다.
그래, 200m 밖에 안되니 들렀다가 내려가자!
동행하는 분을 꼬셔서 올라가는데~~>
<에구구, 우습게 봤는 데 그게 아닙니다.
삼불봉을 오르는 길은 산악훈련코스입니다.>
<그래도 다 올라와 내려다보니 얼마나 좋은 지...>
<저 앞에 관음봉이 보이고 두 사람이 서있는 것이 보이기에,
마음 같아선 저기까지 가고 싶지만 일정을 생각하여 그만 두기로 하고 ~~>
<이젠 하산하노라!>
<이렇게 전망도 좋고 계룡산의 정기를 받는 것이 좋을 것같다는 것에 동의는 하지만 ~~>
<이 높은 곳까지 올라와 무덤을 썼으니, 관을 지고 올라오는 것도 보통일이 아니었겠고,
성묘할 때마다 큰맘먹고 등산해야하는 후손들은 어찌하고 있는 지 자못 궁금합니다.
이런 무덤들이 여럿 있는 것을 보면, '영험한 산 = 계룡산'이 맞기는 맞는 모양입니다.>
<이곳은 금잔디 고개의 헬기장 ~~>
<이제부터는 계속 내려가기만 하면 되지만, 내려가는 길도 가파르기에 쉽지만은 않습니다.>
<여기는 신흥암, 규모는 동학사보다도 큰 것 같습니다.>
<자연이 바위에 그린 그림,
왼편은 영낙없는 새 아닙니까?>
갑사 8곡 용문폭(甲寺 八曲 龍門瀑)
<여름에 큰 비 오면 장관이겠지만 지금은 흔적만 남아있네요>
갑사(甲寺)
"갑사는 백제 구이신왕 원년(420)에 아도화상에 의해 창건되었느며, 위덕왕 3년(556)에 혜명대사에 의해 크게 확장되었다.
그 후 신라 헌안왕 3년(859) 의상대사가 중수하여 화엄종 10대 사찰의 하나로 번영하였다.
현재 대적전 주변의 정교한 초석, 승탑, 철당간 등에서 당시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그 후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 때 침입한 왜군들에 의하여 사찰이 소실되었다가
선조 37년(1604) 대웅전 중건을 시작으로 다시 재건되기 시작하였고
효종 5년(1654)에 증축이 크게 이루어져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제 갑사 경내에 들어섰는데, 작은 줄 알았는데 동학사에 비하니 엄청나게 크고 오래된 절입니다.
지금도 대웅전은 보수 중!>
<건물들도 많이 있습니다.
"경내에는 19동의 전각과 승당, 부속 전각들이 있으며 주변 산골짝 여러 곳에 산내 암자를 두고 있다."
이곳은 삼성각>
<범종각>
<갑사강당>
<조선 선조 17년(1584)에 만들어진 공주 갑사 동종(公州 甲寺 銅鐘)>
갑사 오리숲길
"갑사주차장에서 갑사까지의 길을 약2km라 하여 오리숲이라 부릅니다.
봄에는 황매화로, 여름에는 가슴 시원한 녹음으로, 가을에는 아름다운 단풍길로,
겨울에는 새하얀 설경으로 사계절 아름다운 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곳입니다."
<아침 아홉시에 숙소를 나섰는 데 벌써 3시가 넘었고 ~~>
<김밥 한 줄로 산을 하나 넘었으니 시나브로 쌓인 피곤이 오리숲길을 감상할 여유마저도 주지 않기에,
우린 갑사 경내를 빠져나와 늦은 점심을 하고 버스 정류장으로 발길을 향합니다.>
* 시나브로 : 모르는
원님 덕에 나팔분다고, 너그러운 발주처 덕분에 구경 한 번 잘했습니다.
발주처가 어디냐고요?
닭고기로 유명한 연 매출 6조원의 하림그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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