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성지순례

27-5. 나바위 성지

상원통사 2014. 11. 12. 22:27

이번에는 '전북 익산시 망성면 화산리'에 있는 나바위 성지로 향합니다.

 

나바위 성지

"나바위 성지는 김대건 신부가 중국에서 사제가 되어 조국에 입국하며 첫발을 디딘 축복의 땅으로,

 나바위 성당은 김대건 신부 일행이 한국 땅을 밟은 것은 기념하기 위하여 세워졌다.

 1845년 10월 12일 밤 김대건 신부는 페레올 주교, 다블뤼 신부 등과 함께 이곳 황산포 나바위 화산 언저리에 도착했다.

 김신부로서는 그해 1월 육로로 한 번 입국한 데 이어 두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밟은 고국 땅이었다."

 

<나바위 성당에 들어서면 맨 처음 만나는 것이 피에타상,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해서인지 더욱더 희게 보입니다.>

 

 

<이제 성당으로 올라가는 데 ~~>

 

 

나바위 성당

"나바위 성당은 ~~ 베르모렐(장약슬 요셉) 신부가 1906년에 신축공사를 시작해 1907년에 완공하였다.

 설계는 명동성당을 설계한 프와넬 신부가, 목수일은 중국인들이, 건축양식은 한옥의 전통양식을 취했다.

 1916~1917년에 흙벽은 양식벽돌로, ~~ 고딕식 종탑을 세웠으며 외부 마루는 회랑으로 바꿨다."

 

 

<옆에서 본 성당 모습인데, 지붕은 옛날 그대로 기와가 얹혀있습니다.

  왜놈들이 없었다면 우리 한옥도 이런 과정을 거쳐 멋지게 발전했을 것인데....>

 

 

<성당 내부

  "전통 관습에 따라 남녀석을 구분하기 위한 칸막이 기둥 그대로 남아있다.">

 

 

 

<저 뒷편 건물은 사제관이고 ~~>

 

 

<이 건물은 성물과 토산품을 판매하는 순례자의 집입니다.>

 

 

<성당 오른편으로 돌아가면 ~~>

 

 

<김대건 신부 성상 있고 ~~>

 

 

<평화의 모후상 옆으로 ~~>

 

 

<십자가의 길 있습니다.>

 

 

 

 

 

소세(Saucet) 신부 묘(1877 ~ 1921.10.21)

"나바위 본당 2대 주임 소세 신부의 무덤이다.

 소세 신부는 부임한 지 2년 만에 무릎종양이 악화되어 강경병원에서 수술했으나 숨졌다.

 그의 주검은 나바위 성당을 바라보며 묻히기를 원하던 소세 신부의 유언에 따라 이곳에 묻혔다."

 

 

 

  성 김대건 신부 순교 기념탑

<나바위란 광장같은 너럭바위를 말한다고 합니다.

  사진으로는 잘 안보이지만 정말 커다란 너럭바위 위에 이 기념탑과 망금정이 세워졌습니다.>

 

 

망금정(望錦亭)

"대구교구장 드망즈(Demange) 주교는 1912년부터 매년 6월에 화산 정상인 이곳에서 금강을 굽어보며 피정을 하였다.

 당시 전라도 교회는 대구교구 소속이었다.

 1915년 베르모렐 신부는 주교의 피정을 돕기 위해 정자를 짓고, 드망즈 주교가 이 정자을 망금정이라 이름하였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지만 높이가 낮아 고개를 약간 굽혀야 들어갈 수 있습니다.>

 

 

<산을 내려와 피정의 집을 지나 또다른 십자가의 길 따라가다 보면 ~~>

 

 

 

 

성 김대건 신부 일행 착륙지점

"1845년 8월 31일 김대건 신부는 중국 상해에서 페레올(Ferreol) 고 주교, 다블뤼(Daveluy) 안 신부

 그리고 11명의 한국인 신자들과 함께 포교지인 한양을 향하여 라파엘호를 타고 항해하였다.

 그러나 폭풍우와 풍랑을 만나 돛대와 키가 파손되어 표류하다가 제주도 용수리에 닿았다.

 그곳에서 배를 정비하여 다시 북상하였으나 반파상태인 배로는 항해가 불가능하자 ~~

 '황산포 나바위 화산 언저리'에 닻을 내렸다."

 

<김대건 신부 일행이 첫 발을 디딘 곳이 나옵니다.

 그들은 금강줄기를 타고 올라오다가 인적이 드문 곳에 배를 대고,

 사람들의 눈길을 피해 이곳으로 왔을 것입니다.>

 

 

 

누군들 목숨이 아깝지 않은 사람이 있으랴마는,

들어오면 뻔히 죽을 줄 알면서도 들어와, 기꺼이 목숨을 바치시는 분들...

종교란, 신심이란 그렇게 무서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