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의 법문/2. 불교의 역사

[법륜스님의 '불교의 역사'] 제11강 대승불교 - 세 번째

상원통사 2014. 10. 7. 20:31

(~~ 제10-2강에서 계속)

 

쿠산왕조의 카니슈카왕 때 제4결집이 이루어짐
지금까지는 대승불교의 흥기에 대해 살펴보았고,

이제부터는 대승불교가 어떻게 발전되었는지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불멸후 200년경, 인도 대륙을 통일한 마우리아 왕국의 수도인 파탈리푸트라에서,
아쇼카 왕의 후원 하에서 일천 장로들이 모여 제3결집을 했는데 이때 논장이 결집되었습니다.
이후 마우리아 왕국의 멸망과 함께 인도는 분열되었다가, 쿠샨왕조가 인도 북부 대부분을 통일하게 되고,
아쇼카왕에 비견될 만큼 불교의 발전에 큰 공헌을 했던 카니슈카 왕 때 제4결집이 이뤄집니다.


협존자를 중심으로 설일체유부의 대비바사론 200권의 논장을 결집
제4결집이란 협존자(脇尊者, Pārśva, 파르슈바)를 중심으로 삼장에 능한 500 아라한이 모여,
소승불교권에서 세력이 제일 컸던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의 사상과 발전상을 상세히 서술한,
아비달마 대비바사론(Abhidharma mahāvibhāsā śāstra) 200권을 결집한 것을 말합니다.


대승불교의 시원인 마명존자(馬鳴尊者, Aśvaghoṣa, 아슈바고사)도 이 시대의 스님입니다.
마명존자는 유명한 문학가이며 승려로서 불소행찬(佛所行讚, Buddhacarita)를 쓰셨는데,
부처님의 전생부터 시작하여 그 일생과 가르침을 매우 아름답게 서술한 대서사시입니다.


제4결집은 산스크리트어(梵語)로 결집되었는데, 불교사상이 권위를 가지고 이론화되고 바뀌었음을 의미한다
지금까지의 모든 불교 경전과 논장들은 다 팔리어로 결집되었는데, 제4결집 때에는 산스크리트어(범어)로 되었습니다.
브라만의 경전이 다 범어로 쓰인 것처럼, 범어가 신성시 되는 그런 시대였기에,
지금까지는 팔리어로 결집이 되었지만, 이때 이루어진 논장들은 범어로 되었습니다.
* 팔리어 : 본래 서부 인도의 평민계층에서 쓰던 속어(俗語)
           부처님은 상류계층의 언어인 범어가 아니라 평민계층의 언어인 팔리어로 설법하였음

 

이것은 그만큼 불교사상이 권위를 갖고 이론화되었기에, 구어체가 문어체·논문체로 바뀌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범어와 팔리어의 차이는, 마치 한글로 쓰면 별 볼일 없는 것 같고 한문으로 쓰면 그럴싸한 것과 같을 것입니다.
그러나 남방에서는 아직도 팔리어 경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팔리어 경전이 산스크리트어(범어)로 바뀌었고, 범어 경전이 중국에 들어와서 한문으로 바뀌었는데,
우리는 한문이 원본이라 여기고 글자 한 자라도 바꾸면 큰일 나는 줄 알고 살았습니다.

대승불교가 흥기되고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야 대승경전이 출현되었는데,
이 새로운 경전은 부처님 당시에 형성되었지만 유포가 안 되다가 이때 처음으로 된 것인지,
대승불교인들이 자신들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서 만든 것인지, 지금도 논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테라밧다에서 볼 때는 ‘100% 후세에 만들어진 것이다’ 이렇게 되는 것이고
대승불교에서는 ‘부처님 당시부터 있었는데 이때 세상에 알려졌다’ 고 주장을 합니다.
즉 대승경전은 당시에는 못 알아들으니까 용왕님께 맡겨놓았다가,
용수보살이 용왕한테 가서 그걸 찾아가지고 와서 세상에 유포를 했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대승경전은 종류가 굉장히 많은데, 한꺼번에 다 나온 게 아니라 5~6백년에 걸쳐 나오게 됩니다.


대승불교 초기경전 : 반야부 계통의 경전
대승불교의 초기경전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은 반야(prajna, 프라즈나)부 계통의 경전입니다.
반야부 계통의 경전은 대품반야, 소품반야, 금강반야, 마하반야 등 여러 가지 반야가 있습니다.
출현시기는 그 경전에 쓰여진 글자나 문체, 사건 전개방식 같은 것을 보면 알 수가 있는 것으로,
반야부 계통의 경전은 BC 1세기부터 AD 1세기 전후에 세상에 알려졌다고 추정을 하는데,
이 시기는 부파불교의 부파가 최고조로 형성이 될 그런 때였습니다.


BC 1세기부터 AD 1세기 사이에 반야부 계통의 경전이 알려지고,
AD 1~3세기에 화엄경, 법화경, 유마경, 정토삼부경이 알려지고,
AD 3~5세기 사이에 열반경, 승만경, 심밀경, 능가경이 알려졌다

그다음, AD 1~3세기에 화엄경, 법화경, 유마경, 정토삼부경, 이런 경전들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고,
AD 3~5세기 사이에 알려지게 된 경전이 열반경, 승만경, 심밀경, 능가경 등입니다.


AD 2세기에 대승불교의 자리를 잡게 만드신 분이 제14대 용수(龍樹, Nāgārjuna)존자입니다.
이분은 많은 글을 남기셨는데 그분의 글에 등장하는 경전은 용수존자보다 먼저 있었을 것이고,
용수존자의 글에는 없지만 세친(世親, Vasubandhu)이나 무착(無着, Asańga)의 논문에 등장하는 것은
용수존자와 세친/무착 사이에 그 경전이 세상에 유포되었다고 짐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용수존자의 글에 등장하는 경전들을 초기 대승경전이라고 하고,
그 때는 없었는데 세친이나 무착의 글에 등장하는 경전을 중기 대승경전이라고 하고,
세친이나 무착에 등장하지 않은 경전을 후기 대승경전이라고 분류를 합니다.


초기 대승경전 : 불교의 근본사상적 입장을 유지
중기 대승경전 : 관념적이고 철학적으로 됨
후기 대승경전 : 기복적이고 주술적인 것과 결합하게 됨
사상적으로 보면 초기 대승경전은 굉장히 불교사상적인 입장을 유지하고 있고,
중기 대승경전으로 가면 조금 관념화가 되고 철학적이 되고,
후기 대승경전으로 가면 상당부분 기복적인 것, 주술적인 것과 결합을 하게 됩니다.


대승경전의 특징
법문을 들은 대중 중에 보살이 있었다.
이러한 대승경전에는 특징이 있습니다
첫 번째, ‘어디에서 부처님이 법을 설하는데 이때 비구 몇 명과 보살 대중 몇 명이 있었다’ 이렇게 서두에 나옵니다.
원시경에는 스님들만 있었다고 나오는데, 여기는 법문을 들은 사람 중에 반드시 보살이 있는데,
이때 보살 대중은 한두 명이 아니고, 일만 이천 명이나 팔만 사천 명 같이 엄청나게 많은 수가 등장합니다.


부처님께서 삼매에 들어 계셨다가 보살들의 청에 의해 법을 설하신다
두 번째는 그런 대중이 있는 자리에 부처님께서는 바로 법을 설하지 않고 삼매에 들어 계셨다고 나옵니다.
그리고 법을 청하는 분들 중에는 성문승도 있지만 대부분 다 보살들이 법을 청합니다.
또 설법을 할 때도 부처님께서 설법하는 경우도 있지만 아예 보살이 대답을 하는데,
화엄경에서는 부처님은 한 마디도 하신 적이 없고, 전부 보살과 보살 사이에 문답이 이뤄집니다.


대승경전이 비불설(非佛說)이 아니라는 변명의 문구가 있다
세 번째는 ‘이게 비불설이 아니다’라는 변명의 문구가 경전 어딘가에 반드시 들어있고,
소승인들은 못 알아듣기 때문에 대승보살을 위해서 설한다고 소승을 차별하는 것 같은 문구도 들어있습니다.
법화경에 보면, 부처님이 보이시는 광명을 보살들은 해석을 하는데 비구 스님들은 잘 모르고 있다거나,
부처님의 ‘비구스님들은 깨달았다 하지만 아직도 덜 깨달은 상태다’ 라는 말씀에 비구스님들이 다 밖으로 나가버리고,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이제 껍데기는 나가고 알맹이만 남았다’면서 법문을 설하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배워서 알고 있는 부처님은 이렇게 차별할 리도 없고,
법을 안 믿는 사람이 있을 수는 있지만, ‘진짜 이게 부처님 말씀이다’라는 변명조 이야기도 있을 리가 없습니다.
이것은 그 당시의 어떤 역사적인(현실적인) 상황이 경전 속에 들어 있다고도 볼 수 있는데,
'불설아미타경'처럼 경전 제목에 ‘불설’이라는 단어를 넣은 것은, 그만큼 비불설 논쟁이 심했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소승경전에 대한 비판이 들어있다
네 번째, 반드시 소승경전에 대한 비판이 좀 들어있습니다.
그것은 수준 낮은 사람들을 위해서 설한 것이니, 너희들은 반드시 요의경(了義經)을 읽으라는 등,
소승경전에 대한 비판이 거기에 들어있습니다.


경전을 숭배하는 사항이 들어있다
다섯 번째, 경전을 숭배하는 사상이 들어있습니다.
‘이 경전을 읽고 외우고 독송하면 한량없는 공덕이 있다’고 하는데, 원시경전에는 그런 말씀이 없습니다.
부처님 생전에는 불상도 탑도 없었는데, 대승경전에는 불상얘기와 탑 얘기가 나옵니다.
금강경에만 하더라도 ‘우리가 이 금강경을 잘 받들어 모시고 읽고 수지독송하면,
부처님 탑묘에다가 공양을 올린 것과 그 공덕이 같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그런 것을 볼 때는 그 근원적인 내용은 부처님 당시에 있었던 것인지 모르겠지만, 
경전이 편집될 당시 대승의 신앙형태에 대한 논쟁이 있었기에, 그것을 합리화하기 위해 끼워넣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대승경전이 후대로 가면 진언이 들어 있다
여섯 번째, 원시경전에는 없는데 후대로 내려가면 주문(진언)이 들어있습니다.
초기 대승경전인 반야부 계통에는 진언이 거의 없지만, 반야심경에는 진언이 들어있습니다.
이것으로 볼 때 반야심경은 반야부계통 경전 중에도 나중에 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금강경에는 경전을 숭배하는 사상, 탑묘에 대한 이야기 등 대승경전이 갖고 있는 특징이 있지만, 
법문 듣는 사람 중에 ‘보살’이라는 단어는 나오지만 구체적인 이름은 안 나오고,
공사상을 가르치는 경전인데 ‘공’에 대한 단어가 한 번도 안 나옵니다.
이런 걸 볼 때 금강경은 반야부 계통의 경전 중에도 가장 초기의 경전이라고 말할 수 있고,
반야심경에는 관자재보살이 나오고 주문도 나오니 후대의 경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어떤 경에 다른 경에 대한 비판이 들어있다면, 그 비판된 경이 먼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듯이,
이런 것들을 잘 살펴보면 경이 이 세상에 알려졌거나 편집된 순서를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강의는 '정토회 > 정토TV > 법문 보기 > 불교의 역사'에서  동영상으로 볼수 있습니다.

 

 

*** 짧은 생각 ***

 

공부하는 순서를 금강경을 먼저하고 반야심경을 나중에 하는 것으로 바꾸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