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는 대승불교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자 제자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 편집해서 그 가르침에 의지해 수행을 해 나갔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고 200여년이 지나면서 지역도 넓어지게 되니,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해석과 계율의 현실적 적용에 조금씩 이견이 생겨나게 됩니다.
즉, 부처님의 가르침을 하나도 빠트리지 말고 원형 그대로 고수하자는 분들이 계셨고,
시대가 다르고 지역이 다르니까 현실에 맞게 적용을 하자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그대로 지켜나가자는 주장은 주로 장로들을 중심으로 했기에 상좌부(thera-vāda)라고 하고,
현실에 있어서 어느 정도 자율을 구가를 하려고 했던 분들을 대중부(mahā-sāṃghika)라고 합니다.
이런 견해 차이들은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의견이 달라져 결국은 독립된 교단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대중부는 물론 상좌부도 여러 부파를 형성하게 됨
이렇게 독립된 교단으로 발전을 할 즈음에 아쇼카 왕이 인도 천하를 통일하게 되고,
아쇼카 왕의 후원에 힘입어 불교는 지역적으로 훨씬 더 넓어지고, 불자가 늘어나고 승려수가 늘어나게 됩니다.
이렇게 덩치가 커지자 관리가 어려워지고, 견해차이가 점점 커져감에 따라,
교단은 먼저 대중부부터 많은 분파가 형성되어 갈라지게 되고(전체 9부파),
불멸 후 300년이 넘어가면서는 상좌부도 많은 부파가 형성되어 갈라지게 되는 데(전체 11부파),
상좌부 계열에서는 설일치유부라는 유부가 가장 세력도 크고 주의주장도 분명했습니다.
아쇼카 왕이 죽은 후 통일 마우리아 왕조는 망하고, 인도는 다시 여러 나라로 나눠지게 되는데,
종교적으로는 전통의 브라만교가 인도의 토착 신앙, 주술적인 신앙과 결합하게 되면서,
민중에 뿌리를 내리며 힌두이즘(힌두교)으로 다시 발돋움을 하기 시작합니다.
반면에 불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외우고 해석하고 분석하고 계율을 지키고 연구하는 등,
출가한 후 스님들은 부처님 가르침을 학문적으로 공부하는데 거의 일생을 쏟아 붓게 됩니다.
그러다보니 대중들과 함께 고통을 나누고 그들을 쓰다듬기 보다는,
사람들로부터 숭앙받고 국가나 부자들로부터 경제적인 후원을 받아서,
숲이나 들에 거주하기 보다 승원(절)을 짓고 거기서 공동생활을 하게 되고,
그러다보니 계율도 엄격하게 적용이 되고, 대중의 삶과는 점점 더 유리되었습니다.
불교를 전문적으로 공부하는 수행자들과 후원하는 신자들로 확실히 구분됨
대중의 삶과 유리된 불교는 관념화 되고, 이론화 되고, 형식화 됨
이렇게 불교 교단은 불교를 전문적으로 공부하는 수행자들과,
그들을 지지하고 후원해주는 신자들로 확실히 구분이 되었고,
다른 철학과 논쟁을 하고 많은 연구를 하면서 사상적·철학적으로는 정교한 이론정립이 이루어진 반면,
대중들의 생활과는 유리되고 관념화·이론화·형식화되어,
브라만교의 쇠퇴기에 나타났던 것과 같은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이것은 어떤 면에서 순수성을 유지한 측면이 있다고도 볼 수 있겠지만,
살아서 행동하는 가르침이기보다는 정형화되어 권위를 갖는 그런 가르침으로 변한 것입니다.
반면에 브라만교는 대중들이 갖고있던 주술적·토착적·민속적인 신앙과 결합을 하게 되니,
형이상학적이고 철학적인 요소는 많이 없어진 반면 일반 서민 대중들에게 뿌리를 내리면서,
힌두교로 발전하게 되었고, 일부에서는 힌두교를 국교로 하는 그런 왕국들도 생겨나게 됩니다.
불교가 많은 부파로 나뉘면서 자연히 자기 부파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그런 논문들이 나오게 되고,
그 부파에 소속된 스님들은 부처님의 말씀보다 자기 부파에서 해석한 경전을 더 중시하게 되고,
그 입장에 서서 경전을 보고 그 입장에서 계율을 지키게 되니까,
똑같은 것을 두고도 다른 부파와는 견해와 행동방식이 달리 나오게 됩니다.
이러니 거기 소속된 스님들에게는 문제가 없을지 몰라도,
대중들이 볼 때는, ‘왜 같은 불교가 같은 문제를 두고 서로 다른 주장을 하게 되는가’,
‘그럼 진짜 부처님의 가르침은 무엇일까’, 이런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가 없겠지요.
즉 불교와 다른 종교 사이에 견해차이가 있다면 ‘불교는 옳고 저건 틀렸다’ 이러면 되지만,
같은 불교 안에서 견해차이가 날 때는 자연히 ‘부처님이 가르치신 진짜 뜻은 뭘까’ 이런 문제의식을 갖게 되겠지요.
이렇게 여러 부파를 동시에 볼 수 있는 신도입장에서는 그런 혼란과 의문을 가질 수 있지만,
그 부파에 소속되어 있는 스님들이 볼 때는 자기 부파만 맞고 다른 부파는 틀렸으니, 혼란도 없고 제기할 의문도 없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서양사람들이 불교에서 겪는 혼란과도 비슷합니다.
지금까지 불교는 각 나라로 전파되면서 그 나라의 문화와 결합하여 모습이 조금씩 달라졌는데,
오늘날 미국에는 모든 나라의 불교들이 다 들어가 있습니다.
L.A만 해도 버마, 태국, 스리랑카, 캄보디아, 베트남, 중국, 한국, 일본, 티벳 불교들이 모두 다 들어와 있습니다.
거기다가, 한국 불교만 하더라도 조계종 계열, 천태종 계열, 태고종 계열이 다 들어와 있고,
밀교, 진각종, 원불교도 있고, 손금 봐주는 등 이상한 것과 결합한 보살집도 있으니,
미국에 들어와 있는 각 나라의 불교를 다 합하면 헤아릴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런 모든 나라의 불교가 각각 절모양도 다르고, 불상 모양도 다르고, 초파일·성도절·출가일·열반일도 다르고,
스님들의 옷 모양도 다르고 지켜야 할 계율도 다 다릅니다.
이렇게 수많은 불교들을 동시에 접하고 있는 미국인들은 엄청나게 혼란스러울 뿐 아니라,
‘그러면 붓다가 가르친 진짜는 무엇일까’ 라는 의문도 제기하게 될 것입니다.
어느 집단 안에 살면 아무렇지도 않지만, 한 발 떨어져서 보는 사람은 문제의식을 갖게 됩니다.
화두라는 것은 문제의식인데, 깨달음의 길에 도달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이 문제의식입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어디서 어떻게 새로운 불교가 일어날 것인가’ 라는 관점에서 보면,
각 나라의 모든 불교가 다 들어와 있는 서양이 그 곳이 될 수가 있습니다.
각 불교가 서로 다르니 혼란스러워, 서양인들에게 받아들여지기 어렵다고 볼 수도 있지만,
모든 불교를 종합적으로 보고 문제제기를 하면서, 새로운 불교가 일어날 수 있다고 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부처님 당시와도 비슷한데, 그 때에도 여러 가지 주의·주장과 형식들이 있었습니다.
부처님도 어릴 때는 브라마니즘의 정통교리를 배웠고, 출가해서는 신흥사상의 여러 교파에서 공부 하셨는데,
서로 주의·주장이 다른 것을 보고 문제제기를 하셨고, 나중에는 스스로 이 모순의 해답을 찾으셨습니다.
이 때에도 신도들은 혼란스러웠지만, 반면에 각 부파의 주의·주장들을 떨어져서 볼 수 있었기에,
그 주의·주장들의 모순에 대해 문제제기를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창조성이 없는 사람은 불평·불만·불신으로 문제제기를 하다가, 결국은 투쟁하거나 지쳐서 외면하게 되지만,
창조성이 있는 사람은 진정한 탐구적 입장에서 의문으로 문제를 제기하여 새로운 법칙을 발견하게 됩니다.
신도들의 입장에서 볼 때는, 지금까지 알고 있던 부처님과 지금의 스님들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부처님은 나무 밑에서 자고, 다 떨어진 옷 입고, 탁발을 하면서도 늘 중생들의 고통과 가까이 하시고,
경전을 해석해주는 것이 아니라 대중들의 문제를 중심으로 해서 갖가지 설법을 펴셨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스님들은 승원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자기 공부하는데 모든 시간을 보내고,
뭔가 발표를 해도 대중을 위해서 하는 게 아니라 자기들끼리 그걸 갖고 옳으니 그르니 논쟁을 하고,
일반적인 대중의 생활, 즉 아기가 죽고 가뭄이 드는 문제들은 승려가 관여할 일이 아닌 세속적인 것으로 치부하고,
진리란 뭐냐, 세상은 실체가 있는 거냐 없는 거냐, 이런 주제로 토론과 논쟁을 하는 게 승려들의 격에 맞다고 생각하고,
또 왕이나 상류 지식인들은 이런 걸 보고 그들을 존경하고 숭앙하였던 것입니다.
부처님은 대중에게 교화하는 분으로 다가왔는데 비해서,
스님들은 우리에게 이익을 주는 게 아니라 우리가 후원한 재물로 자기공부하는 사람들이었고,
또 우리들에게 교화를 하더라도 부처님의 경전이나 논장 같은 것을 해설해주었으니,
지적으로는 충족이 될지 몰라도 내가 갖고 있는 구체적인 삶의 문제하고는 관계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되자 그들은 점차 스님들에게보다는 부처님 사리를 모셔놓은 탑에 가서 공양을 올리고,
탑을 돌면서 부처님을 생각하고 그리워하며 여기서 더 위안을 받게 됩니다.
여러분들도 뭔가 문제가 있어서 답답할 때 남편하고 얘기하는 것보다,
조상 무덤가에 가서 울고 하소연하는 게 더 속이 시원할 때가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러면서 자연히 탑을 경배하고, 탑에 공양을 올리는 이런 신앙운동이 일어나게 됩니다.
근데 불교란 본래가 신앙운동이 아니라 수행입니다.
마음을 바르게 잡고 진리는 어떤 것인가 하고 탐구하는 수행이지, 뭘 믿고 따르고 비는 신앙은 아닌데,
대승불교의 초기에는 불교 안에서 일종의 신앙운동이 일어난 것입니다.
부처님은 눈앞에 안보이고, 자기들은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지 잘 모르고 답답하니까,
탑에 가서 불을 켜고, 탑에 가서 꽃을 올리고, 청수물을 올리고, 향을 켜고, 공양물을 갖다놓고 기도합니다.
이것은 그들의 민간신앙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그 대상이 나무나 바위에서 불탑으로 바뀐 것입니다.
불상숭배 : 불멸 후 400~500년 경
불탑신앙 : 불상이나 탑을 중심으로 신앙운동이 일어남
이렇게 탑을 숭상하고 숭배하다가, 그 대상이 부처님 발바닥 무늬로, 보리수로, 결국은 불상으로 바뀌게 됩니다.
부처님은 자신을 개인적으로 숭배하는 것을 금했기 때문에, 원래 불교에서는 불상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불상은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고 400~500년 정도 지나서야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불상이나 탑을 중심으로 일어난 신앙운동을 불탑신앙이라 합니다.
이 신앙운동이 일어나면서 신자들끼리 새로운 가치관이 형성되는데,
도와주는 것이 중요한 덕목으로 자리잡고, 참고 인내하는 것이 또 다른 덕목으로 자리잡습니다.
기성교단의 형식적인 계율 비판 : 더욱 근본적인 계율 정립
또 기성교단의 형식적인 계율을 비판하며 더욱 근원적인 계율도 정립되기 시작합니다.
예를 들면 불살생계율이란 살아있는 생물은 죽이면 안되지만 이미 죽어있는 고기는 먹어도 되는데,
이들은 죽이려고 하는 마음만 내도 그건 계율을 어긴 것이 되고,
사음을 안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삿된 마음만 일으켜도 이미 계율을 어긴 것이 됩니다.
계율의 형식주의를 부정하다보니 오히려 더 근본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주장하게 된 것입니다.
즉, 소승계율은 '행동을 하느냐 안하느냐' 이것이 중심이 되지만,
대승계율은 ‘마음만 일으켜도 계율을 어겼다’, 즉 '형식보다는 마음'을 더 중요시 하게 됩니다.
이렇게 공동체가 점점 커져가면서, 자연히 다른 사람보다 더 헌신적이고 그 일에만 전념하는 사람도 생기게 됩니다.
머리 깎고 스님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자기 개인 일보다는 공동체의 일을 더 우선시하기에,
아픔을 호소하는 이들의 상담을 해주고 어려운 이들을 도와주는 사람도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그는 스님은 아니지만 진짜 자비심을 갖고 모든 사람을 따뜻하게 감싸주곤 하니,
그 공동체 안에서는 그 사람을 높이 받들게 되고, 부처님 전생의 보살과 연관을 시켜,
비록 중생의 몸이지만 마음이 크게 넓은 깨달은 사람, 보살(보디사트바)이 출현하게 됩니다.
(제10-2강에 계속합니다~~)
이 강의는 '정토회 > 정토TV > 법문 보기 > 불교의 역사'에서 동영상으로 볼수 있습니다.
*** 짧은 생각 ***
'앞으로 어디서 어떻게 새로운 불교가 일어날 것인가?'
'서양이 그 곳이 될 수가 있다!'
의미심장한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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