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의 법문/2. 불교의 역사

[법륜스님의 '불교의 역사'] 제8강 소승불교의 수행법 - 두 번째

상원통사 2014. 9. 23. 21:38

이렇게 해서 지혜가 조금 생기면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기 위해 삼인(三忍)을 하는데,
이것은 무탐(無貪)을 근본으로 삼는 것으로 신심원리, 희족소욕, 주사성종이 그것입니다.


신심원리(身心遠離) : 몸과 마음을 세속적인 것들로부터 떠나야 한다.
지금까지 자신에게 괴로움을 가져다 준 세속적인 습관들이 일어날 수 있는 조건들로부터 몸과 마음이 멀리 떨어져야 됩니다.
그러니 우선 하루 한 갑 피우는 담배는 반 갑으로 줄이거나, 반 갑 피웠다면 다섯 개비만 피우고,
한 달이면 다섯 번씩 모임에 나가는 것도 아예 안가는 게 아니라 두 번으로 줄이고,
한 달에 두 벌씩 사던 옷은 한 벌만 사고, 다섯 번 하던 외식도 두 번만 합니다.
즉 업장이 생기고 괴로움이 생기는 쪽으로 가는 세속적인 삶에서, 조금씩 발을 빼는 것을 신심원리라 합니다,
십만 원 쓰던 용돈을 오만 원으로 줄이고, 모임에 나가는 횟수도 반으로 줄이면,

보시할 돈도 생기고 봉사할 시간도 생깁니다.
여러분들은 하고싶은 것 다 하고 하려니까, 보시할 돈도 봉사할 시간도 수행할 여가도 없다 합니다.
하지 마라는 게 아니고 조금씩 줄이면 시간적인 경제적인 심적인 여유가 생기게 됩니다.


희족소욕(喜足小欲) : 있는 것은 만족할 줄 알고, 없는 것은 욕심을 줄인다.
두 번째는 희족소욕,

있는 것에 대해서는 만족할 줄 알고(喜足), 없는 것에 대해서는 욕심을 줄이라(小欲)는 겁니다.
여러분들 보면 있는 것에 대해서는 불평불만하고, 없는 것에 대해서는 욕심을 내며 괴로워하는데,
욕심을 좀 적게 내고, 있는 것은 만족할 줄 알고, 욕망을 조금 줄이면 편안해 질 것입니다.
이거 돈 드는 일 아닙니다.
이것은 연기법 몰라도 되고 교회 다녀도 상관없습니다, 누구나 이 정도는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사성종(住四聖種) : 옷과 음식과 잠자리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도 닦는 것을 즐거이 하라.
이걸 기초로 해서, 우리의 신심이 네 가지 성종(聖種, 능히 성스러움을 냄)에 항상 머무를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첫째는 먹는 것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는 것입니다(飮食喜足, 이미 얻은 음식에 기뻐함)
맛이란 혓바닥에 있는 것이지 목구멍을 넘어가면 다 똑 같습니다.
그러니 밥 한 끼 먹으러 맛집 찾아 몇 십리씩 차를 몰고 가지 말고,
해외여행 갈 때도 바리바리 먹을 것 싸가지고 가지 말고,
그냥 있는 대로 간단히 한 끼 먹는다면, 즉 먹는 것에 대한 집착을 놓으면 인생살이가 편해집니다.


두 번째, 입는 것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는 것입니다(衣服喜足, 이미 얻은 의복에 만족함)
자기 취향에 맞게 옷 고르는 데 시간 낭비하고, 그것을 사는데 돈이 들고,
또 그 돈 벌기위해 노력을 해야 하고, 날마다 골라입고 골라 신는데 시간낭비하고 신경 써야 합니다.
스님처럼 살면 옷 사는 데 돈 안 쓰고 시간도 안 버리고, 아침마다 옷 갈아입는데 신경 쓸 일이 전혀 없습니다.
그걸 반으로만 줄여도 그만큼 자기 인생을 버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나의 인생의 목표는 이렇게 먹고 입고 사는 것'이라고 한다면, 뭐 할 말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행복하게 사는 방법의 하나일 뿐, 핵심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놔야 됩니다.
우리는 먹고 입고 자는 것 해결하는데 인생 전체를 거의 다 소비합니다.
부처님은 나무 밑에서 자고, 시체 싸서 버린 옷 주워 입고, 남의 집 다니며 얻어먹고 사셨는데,
우리는 따뜻하게 잠들 집이 있고, 죽을 때까지 입어도 다 못 입을 옷이 옷장에 잔뜩 있고,
차려 먹을 음식도 냉장고에 가득 있으니 부처님보다 훨씬 더 잘사는 것 아닙니까?


입는 것에 대한 생각을 놔버리면 남이 아무리 비싼 옷, 좋은 옷 입고 자랑해도 하나도 안 부럽습니다.
이 생각을 못 버리니 가진 사람들을 보면 부럽고 그것 때문에 위축되고 기를 못 펴는 것입니다.


세 번째, 와구(臥具), 잠자리에 대한 집착을 놔야 됩니다(臥具喜足, 이미 얻은 와구에 만족함)
좋은 집을 지어 방음벽까지 설치하고, 물침대에 비단 잠옷 입고 비단 이불 밑에 들어가도,

불면증에 걸려 잠이 안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버스간이나 기차간이나 아무데서나 잘자는 사람도 있듯이, 잠은 잠자리와 별로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니 잠자리에 대한 집착을 놔야 됩니다.


좋은 침대 아니어도 잘 자고, 아무거나 안 가리고 먹고, 가진 옷 깨끗하게 빨아 입으면서,
자는 것, 먹는 것, 입는 것에 대한 집착을 놓으면 그 순간부터 인생이 행복해 집니다.
좋은 것 다 갖춰야만 행복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죽을 때까지 해도 해결이 안 됩니다.
‘저는 몇 년 만하면 다 해결이 되는데’ 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그거 안 된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부처님도 왕궁에 계실 때 이런 걸 다 해보았지만, 이게 아니다는 걸 아셨으니까 다 놔버렸습니다.
부처님은 29살까지 왕궁에서 좋은 것들만 찾아 엉뚱한 짓하셨고,

출가한 후 6년간은 고행한다고 또 엉뚱한 짓 하셨다는 것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는데,
그러면서도 우리는 부처님이 버렸던 왕궁에서의 그 엉뚱한 길을 죽어라고 따라가려하고,
또 수행한다 하면서 부처님이 버렸던 6년 고행 길을 따라가는 시늉을 내면서,
먹는 것 안 먹는 것 그런 걸 가지고 공부가 됐네 안됐네 논쟁이나 하고 있습니다.


네번 째, 먹고 입고 자는 것에 대한 집착을 놔버리고, 남는 시간에는 수행을 합니다(樂斷修, 번뇌를 끊고 도 닦음을 즐김)
이 때 수행은 마치 애들이 만화 보거나 게임하듯이 해야 합니다.
애들은 버스타고 가면서도, 화장실에 가서도, 수업시간에도 만화를 보거나 게임을 합니다.
여러분들이 도를 공부하는 게 재미있다면, 설거지하면서도 염불을 하고, 버스타고 다니면서도 경전을 읽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즐거운 마음으로 해야 되는 데, 여러분들은 스님이 보면 하는 척하고 안보면 안하려고 그럽니다.

이렇게 옷과 음식과 와구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도 닦는 것을 즐거이 하는 것을 주사성종(住四聖種)이라 합니다.


이 정도가 되면 여러분들은 ‘수행이 많이 되지 않았습니까?’ 라고 할지 모르지만,
이것은 마음공부를 하기 위한 기초이지 공부가 아닙니다.
이렇게 세상을 살면 다른 사람보다 더 여유 있고, 남에게 도움도 주고, 자유롭고 행복하게 되는 것으로,
범부중생이 이제 현인의 입구에 들어서는 단계입니다.
여기까지는 부처님의 법이니 도니 하는 말 한마디도 안나왔고,
신을 믿어라 마라는 말도, 무슨 종교를 믿으라는 말도, 무슨 직업을 가지라는 말도, 결혼 하라 마라는 말도 없습니다.
이렇게 하면 누구든지 괴로움이 줄어들고 즐거움이 늘어나고 불안이 사라지고 여유가 늘어나게 되기에,
이정도가 되면 사람다운 사람, 슬기로운 사람, 세상의 삶의 이치를 어느 정도 아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방편도(方便道) : 현인이 성인이 되기 위해 수행하는 방법
현인의 지위를 굳히고 나서, 성인이 되기 위해서는 공부를 해야 하는데,
이제부터 수행이라고 이름을 조금 붙이지만, 아직은 본격적인 수행이라기보다는 방편도라 합니다.
‘중생의 근기따라 방편이 설해졌다’ 해서 방편도라 합니다.
앞에서 말한 삼혜와 삼인은 범부중생이 현인이 되는 길이고, 현인이 수행하는 법을 방편도라 합니다.


오정심관(五停心觀) : 다섯 가지 마음을 관하는 법을 닦아야 한다.
방편도의 첫째는 오정심관, 다섯 가지의 마음을 관하는 법을 닦아야 합니다.
삼혜와 삼인을 통하여 먹고 입고 자는 것은 놓았고 도 닦는 데에 재미를 느끼지만,
자기 마음은 아직도 정화가 안되었기에 이제부터는 출가를 하여 마음공부를 시작하는 겁니다.


부정관(不淨觀) : 몸이 깨끗하지 못하다는 것을 관하는 것
첫 번째, 마음에 욕심이 많고 끊이지 않은 사람은 몸이 깨끗하지 못하다는 것을 관하는 부정관을 해야 됩니다.
욕심이라는 것은 몸뚱이에 집착을 해서 생기는 겁니다.
맛있는 것 먹고 좋은 옷 입고 좋은 집에 살고 높은 지위에 올라가는 이런 욕심들은 전부 몸에 대한 집착인데,
몸뚱이란 하나의 고깃덩어리이고 죽으면 썩어 문드러질, 깨끗하지 못한 것에 불과합니다.
몸은 깨끗하지 못하다는 것을 관하기 위해 남방불교에서는 시체를 알콜처리 해서 놔놓고 옆에 앉아서 지켜봅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여자라도 숨 끊어지면 그냥 하나의 고깃덩어리에 불과한 것인데,
'숨 끊어지면 저리 되는데 여기에 내가 집착을 하고 있었구나' 이렇게 부정관을 하는겁니다.


이 부정관을 하는 수행자라면 병원 영안실에 근무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거기에서 시신을 닦아주고 옷도 갈아입히는 염을 해보면, 몸이란 한갓 고깃덩어리임을 알게되고,
무서움도 사라지고 집착도 사라지고, 다른 사람에게 좋은 일이 되고 공부에도 도움이 됩니다.


인도에서는 시체를 강가에 가져와서 태우는데, 관도 없이 그냥 갖다놓고 태웁니다.
우리도 거기 가서 염불도 해주고 영상도 많이 찍어왔는데,
불을 붙이면 활활 타다가 팔 하나가 나무토막처럼 툭 떨어지면 집어다가 다시 올려놓고,
골이 퍽 터지면서 허연 죽 같은 게 주르르 흘러내리는 것도 보이고,
몸에서 기름이 떨어지면 불꽃이 확 올라오는 것이, 삼겹살 구울 때 불꽃 올라오는 것하고 똑 같습니다.
염불을 하면서 그걸 가만히 보고 있으면, 몸에 대한 집착을 놓게 되고 욕심이 없어집니다.
이걸 부정관이라 합니다.


자비관(慈悲觀) : 괴로워하는 중생에 대한 연민의 마음을 내는 것
두 번째, 화가 잘나고 짜증이 잘나고 성질이 사납고 이런 사람은 자비관을 해야 됩니다.
고통스러운 사람을, 힘들고 괴로워하는 사람을 연민의 마음으로 내려다보는 비관(悲觀)과,
그런 사람에게 자기가 가진 사랑을 나눠주고 싶은 자관(慈觀)을 합해서 자비관이라 합니다.
이 자비관은 마음속에 있는 사랑을 부모가 자식에게 주듯이 해야 합니다.
자식이 막 울고 악을 쓸 때엔 귀찮다는 생각보다는 어디 아프지않나 하는 생각이 들 듯이,
남편이 술 취해 와서 화를 버럭버럭 내면 ‘무슨 일을 당해서 상처를 많이 입었구나’,
이렇게 그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내서 들여다 보는 것도 자비관이고,
똑바로 앉아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며 괴로워하는 중생에 대한 연민의 마음을 내는 것도 자비관입니다.
 

연기관(緣起觀) : 모든 것이 인연화합으로 이루어지고 변하는 것을 본다
세 번째, 어리석은 사람은 연기관을 해야됩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 눈에 거슬리는 짧은 그 순간에 집착하고, 공간적으로도 좁게 보니 화를 내게 되는데,
이 세상에 일어나는 그 어떤 일도 원인 없이 일어나는 것은 하나도 없으니,
인연이 뭉치고 화합해서 이루어지고 변하는 그런 인연의 제 관계를 살펴보면,
원인이 있어 결과가 나고, 이것이 있음으로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으니 이것이 있고,
모든 것이 다 인연화합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사라지는 것을 알게 되면 어리석은 생각도 없어집니다.


분별관(分別觀) : 자기라고 할 것이 없음을 보는 것
네 번째, ‘내가 누군데’ 하는 아만심이 강한 사람, ‘내 생각이 옳다’ 하는 아견이 강한 사람은 분별관을 해야됩니다.
자기를 가만히 분석하고 따지고 해보면 사실은 자기라고 할 것이 없습니다.


수식관(數息觀) : 숨이 들어가고 나가는 것을 가만히 관찰한다
다섯 번째, 번뇌가 많고 생각이 많은 사람, 잡념이 많은 사람은 수식관을 해야 됩니다.
수식관은 이렇게 앉아서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쉬고 몇 번 한 뒤에, 숨이 들어가고 나가는 것을 가만히 관찰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건강하기 위해 복식호흡을 하는 것이나 기 수련을 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수식관을 하는 하나의 방법은, 예를 들면 공기 분자 하나에 빨간 표시를 해놓고,
싹 들이키면 요놈이 코끝으로 들어와서 배에 내려왔다가, 후우~~하면 밖으로 나가는,
즉 자기 숨이 들어오고 자기 숨이 나가는 걸 지켜보는 겁니다.
코끝에 집중한다는 말은, 눈으로 코끝을 보라는 것이 아니라 숨이 코끝을 통해서 들어가고 나오는 것이니,
숨이 들어갈 때는 들어가는 줄 알고, 나올 때는 나오는 줄 알고,
길게 들어갈 때는 길게 들어가는 줄 알고, 짧게 들어갈 때는 짧게 들어가는 줄 알고 거기에 깨어있으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조금만 집중을 하다보면 생각이 딴 데로 흘러갑니다.
이때는 다시 끌고 와서, 숨이 들어가면 들어가는 데 깨어있고 나오면 나오는데 깨어있어야 합니다.
들어갔던 숨이 못나오면 죽고 나갔던 숨이 못 들어오면 죽는 것입니다.
‘하나, 둘’ 이렇게 세라는 게 아니라 숨이 들어가고 숨이 나오는 데 깨어있어야 합니다.


바닷가 언덕 위에 앉아 파도가 밀려왔다가 나가는 것을 내려다보듯이, 숨이 들어가고 나가는 걸 그렇게 지켜봅니다.
한참 지켜보고 있으면 지켜보는 나라는 것이 없어지며, 마치 고무봉투 같은 것만 쭈그려졌다가 펴지는 것 같고,
점점 더 집중이 되면 바깥의 소리도 안들리고 시간도 없어집니다.
그러다 생각이 딴 데로 흘러가더라도, ‘왜 자꾸 딴 데 가나’ 이런 생각을 하지말고 다시 거기를 주시합니다.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지면 ‘왜 나는 자꾸 넘어질까’ 이런 생각을 하기보다는 일어나서 다시 타야 하듯이,
다른 데로 정신이 가면 다시 관찰하고 또 관찰하고 이렇게 합니다.


자세를 바로하면서 처음에는 한두 번 크게 들이쉬었다 내쉬면서 숨을 관찰하는데,
평상시보다 약간 길게 쉬면 관찰이 용이해집니다,
숨을 쉬는데 신경을 써서 의지를 부여하면 집중력은 높아질지 몰라도 편안해지지는 않으므로,
애를 쓰지 말고, 몸이 알아서 하도록 가만히 내버려 두고,
바닷물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지켜보듯이 자기 속에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지켜보라는 것입니다.
이게 모든 관법의 기초이고 기본이며 핵심인 수식관입니다.


 

(제9강에 계속합니다~~)

 

이 강의는 '정토회 > 정토TV > 법문 보기 > 불교의 역사'에서  동영상으로 볼수 있습니다.

 

 

*** 짧은 생각 ***

 

목표를 정했습니다.

먹고 입고 자는 것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도 닦음을 즐거이 하자!

아니, 목표의 반이라도 성취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