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4강에서 계속)
대승불교는 일부 승려들의 참여로 새로운 사상으로 무장을 한다.
대승이 점점 세력을 키워나가니까 소승교단의 일부 승려들이 대승교도들에게 참여하게 됩니다.
여기 뒤의 탱화도 보면 열 명의 보살 중에 지장보살은 스님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대승불교인들은 그냥 순수한 신앙심만 갖고 있었는데, 이들 승려들이 대승불교에 이론을 제공하기 시작합니다.
‘대승불교가 승려(소승)들의 집단보다도 부처님 가르침의 원형에 더 가깝다’,
이런 갖가지 새로운 이론들을 정립하고 제기하면서 기성교단(소승)과 논쟁이 붙게 됩니다.
논쟁이 붙는다는 것은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성장을 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하여 대승불교가 시작된 지 일이백 년 후에야, 비로소 이론적인 대승사상이 정립됩니다.
아무리 좋은 새로운 불교를 주장한다고 해도 우리 사회에 갑자기 퍼져나갈 수는 없습니다.
더구나 요즘처럼 사회가 이 모양으로 있으면 기복적인 불교가 더 위력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입시제도가 사라지고, 부정부패가 사라지고, 돈만 최고로 아는 경제개발 논리가 없어진다면,
기복적인 불교는 점점 발붙일 데가 없어지겠지요.
반대로 환경문제가 중요한 과제가 되고,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 사회의 주이슈가 된다면,
사람들의 의식수준이 바뀌어 나간 만큼 종교에 대한 대중의 요구도 달라집니다.
대중은 그 요구에 맞게 준비되어 있는 쪽으로 움직이므로, 저쪽 종교가 융성했다가 이쪽 종교가 융성했다 하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100여 년 전에 여러 가지 불교의 개혁운동이 있었습니다.
불교 안에서의 개혁운동도 있었고, 아예 불교하고 떨어져서 새로 시작한 것도 있었습니다.
불교 안에서의 개혁운동은 그래도 괜찮았지만, 떨어져 나간 원불교 같은 것은 굉장히 불리했습니다.
그러나 미래의 변화될 사회를 염두에 두고 많은 준비를 했기에,
지금은 하나의 독립된 교단으로 성장하여 불교 내의 한 종파보다도 오히려 크게 되었습니다.
어떤 새로운 부파가 하나 일어났을 때 그것이 단기간에 확산되는 게 아니라,
긴 세월을 흘러가면서 사회적인 변화와 겹치면서 바뀌어 나가는 것입니다.
신라 말기에 교종은 지배층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는데, 나라가 망하니 같이 망할 수밖에 없었지요.
그런데 선불교라는 것은 산속에서 자기 수행을 하면서 정치와는 멀리하고 있었는데,
이런 수도원들이 지방호족들의 지지를 받게 되니 후삼국시대에는 선불교가 오히려 융성하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그 자신의 노력도 있어야 되지만, 주위 환경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즉 씨앗도 있어야 되지만 따뜻한 봄날과 좋은 거름도 있어야 성장을 하는 것입니다.
부파불교는 부파가 나눠지게 되니 각 교파 사이에 더 많은 연구를 하게 되고,
아쇼카 왕 이후에는 다른 종교(힌두교)도 흥기하니까 거기에도 대응해야 했습니다.
당시 유명한 사회적인 이론 중에 유론, 승론과 같이 굉장히 논리적인 철학이 있었는데 거기에도 대응해야 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논리적인 게 아니었습니다.
부처님은 대중들이 아프다고 오면 교리를 가르친 게 아니라, 그냥 바로 그를 해탈시켰습니다.
그러나 그런 이론에 대응하려니 부처님 가르침의 요지를 뽑아 논리를 만들어야 했고,
그렇게 이론에 대응하다보니 불교 교리가 만들어졌습니다.
이렇게 해서 나온 게 제행무상, 제법무아, 열반적정, 십이연기, 오온 십이처, 십팔계설 등 입니다.
이론으로 덤비는 사람에게 이론으로 대응하다보니 아비달마(논장)가 많이 나오게 되었고,
이렇게 정립된 불교이론이 다른 이론보다 더 정교하기에 그들과의 논쟁에서 이길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논장은 자기 부파의 주장을 하기 위해 만든 측면도 있었지만,
부처님 가르침의 원형만으로는 변화된 시대에 대응하기 어려웠기에,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측면도 있었던 것입니다.
상좌부(테라밧다) : 원형을 유지하려고 하는 장로들 중심
대중부 ; 시대상황에 맞게 변형을 하자는 사람들
프린트물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정리를 해보겠습니다.
부파불교 시대에는 많은 논장들이 출현했기에 아비달마 불교시대라고도 합니다.
근본 분장은 상좌부와 대중부로 나뉘었습니다.
상좌부는 계율부터 시작하여 모든 가르침을 원형 그대로 유지하려고 하는 보수파라 할 수 있고,
대중부는 시대상황에 맞게 일부를 변형을 해나가야 되지 않느냐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해서 일어났습니다.
불멸 후 200~400년 사이 20여개의 부파가 있었다.
원칙을 고수하는 상좌부보다 변화를 원하는 대중부가 더 세력이 컸지만, 분열도 대중부 쪽에서 먼저 일어났습니다.
불멸 후 200년부터 400년까지, 200년간에 걸쳐 여러 부파로 나뉘었는데,
대중부는 불멸 후 200년부터 300년 사이에 여덟 개의 부파가 갈라져 나와,
근본 대중부를 포함하여 총 아홉 개의 부파로 나뉘었는데, 나뉜 부파 중에는 제다삼부가 가장 컸습니다.
상좌부는 대중부가 떨어져 나간 이후 100여 년 동안은 분열을 안 하다가, 불멸후 300년경에 분열이 시작되어,
열 개의 부파가 분열해 나갔는데, 유부(설일체유부), 정양부 등의 세력이 컸습니다.
상좌부 : 실유설(實有設), 법에는 근본 알갱이가 있다.
대중부 : 연기설(緣起設), 다 인연을 따라 형성된 것이다.
‘법에는 어떤 진짜 근본의 알갱이가 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그대로 진리다’,
‘시대와 역사가 달라져도 그대로 보존하는 거다’ 라는 것이 상좌부의 주장입니다.
‘부처님의 법에는 진리가 있다’, 이런 얘기가 점점 나아가서 ‘실체가 있다’ 로 바뀐 것입니다.
반면에 ‘부처님의 법은 하나의 방편설이고 뗏목과 같으니, 인연이 바뀌면 부처님의 말씀도 바뀔 수가 있다’,
즉, ‘시대와 인연에 따라서 바뀔 수가 있다’ 고 주장을 한 쪽이 대중부입니다.
‘바뀌어 가는 게 부처님의 법에 맞는 거다’, 이것을 연기설이라 합니다.
상좌부에서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그대로 진리로 인정하고, 그것을 분류하고 분석하는 작업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 사고방식으로 보니까 이 세상에 대해서도 분석하고 분류하는 이런 관점에서 봤습니다.
경전도 아함경에 다섯 가지 경이 모여 있는 것처럼, 이 세상도 몇 가지 원소들의 모임으로 봤습니다.
나라고 하는 것은 다섯 가지의 모임 오온이고, 12연기는 열두 가지의 연관고리,
다섯 가지 하나하나는 근본이고, 열두 개 그 하나하나가 변하지 않는 근본이라고 본 것입니다.
이래서 이걸 실유라고 하는데, 존재 ‘그 변하지 않는 아가 있다’ 이런 얘기가 된 것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절대적으로 옳다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다 보니까 결국 이런 결론에 도달한 것입니다.
대중부는 ‘세상의 모든 것은 다 인연을 따라 이루어지는 거다’, ‘부처님의 가르침도 인연을 따라 설해진 것이다’,
‘인연이 바뀌면 부처님의 가르침도 방편설이니까 바뀌는 것이다, 그러니 문자나 언어에 절대화 시킬 필요가 없다’,
이 말은 ‘시대와 상황이 다르면 새로운 말씀이 나올 수도 있고, 계율이 새로 바뀔 수도 있다’, 이렇게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상좌부에서는 ‘무명·행·식·명색·육입·촉·수·애·취·유·생·노사’ 이것이 십이연기이며,
우리들에게는 근본 무지라는 게 있어서 그 무지에 의해서 어리석은 행동이 일어나고,
그 행동에 의해서 업이 지어져 우리들의 식이 종자가 되고, 이렇게 나가는데 비해서,
대중부에서는 ‘근본 무지라는 것은 본래 없는 거다, 번뇌라는 것은 인연을 따라 생긴 것이지 씨는 본래 없다’ 고 주장합니다.
대중부는 ‘직관을 통해서 인연화합이 이루어진 것이지 근본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면,
상좌부는 법에 대한 객관적인 분석을 중심으로 했기 때문에 법의 실체가 있다는 쪽으로 이론이 정립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승불교는 실천중심이다. 사상적으로는 대중부의 영향을 받음
대중부와 상좌부의 입장에서 보면 서로 간에 차이가 있어 둘이 나뉜 것이지만,
대승의 입장에서 보면 이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견해차이이지 큰 틀에서는 같은 것이기에,
상좌부와 대중부를 뭉뚱그려 소승이라 했습니다.
대승불교라는 것은 이론 중심이 아니라 실천 중심이기에 갈래가 다르기는 하지만,
사상적으로 본다면 대승불교는 대중부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았습니다.
논장(論藏)의 출현으로 경율론 삼장(三藏)이 성립됨
또 부파불교 시대에는 논장이 출현하여, 오늘날 말하는 경·율·론 삼장이 성립했습니다.
경장(수트라, sūtra)은 부처님의 말씀으로 처음에는 아홉 등급으로 나눴습니다.
부처님의 긴 말씀인 이런 경과, 싯구로 된 것, 전생에 대한 이야기, 인연에 대한 이야기, 인과응보에 대한 이야기,
이렇게 내용상으로 분류해 아홉 등급으로 나눈 것을 구분교라고 부릅니다.
나중에는 세 분류를 더해서 열두 개로 나눴는데 이것을 십이분교라 합니다.
십이분교라면 부처님의 모든 말씀이란 이런 뜻이 됩니다.
4아함(북전, 한문) : 장아함, 중아함, 잡아함, 증일하함
경장은 구분교, 십이분교로 나눈 경우도 있고, 4아함, 5니카야 이렇게도 나눕니다.
부처님의 초기 말씀이 북방으로 전래되어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한문으로 번역되었는데, 이것이 아함경입니다.
아함경은 긴 것을 장아함, 중간을 중아함, 여러 가지 섞여있는 게 잡아함, 증일아함 이렇게 네 개의 아함으로 나눠졌습니다
현재 한문본은 장아함이 22권, 중아함이 60권, 잡아함이 50권, 증일아함이 50권으로 구성되어있습니다.
5니카야(남전, 팔리어) : 장부, 중부, 상응부, 증지부, 소부
팔리어 원형 그대로 남쪽의 스리랑카나 버마 등으로 전파된 것을 5니카야라 합니다.
장부, 중부, 상응부, 증지부 거기에 소부라는 게 하나 더 있습니다.
4아함과 5니카야를 비교해 본다면,
장부는 장아함, 중부는 중아함, 잡아함은 상응부, 증일아함은 증지부와 같고, 5니카야에는 소부가 더 있습니다.
남쪽으로 전해진 남전은 팔리어본이 영어로, 영어가 일본어로, 일본어가 우리말로 번역이 되었는데,
이것은 최근에 번역된 것이기에 현대문체에 가까운 반면,
한문으로 된 북전은 옛날 문어체로 된 것을 그대로 번역해서 표현이 일상적이지 못하기에, 새로운 번역작업이 필요합니다.
율장은 부파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사분율은 60권으로 법장부에서 쓰는 법장부 계율이고,
오분율은 화지부에 나온 것이고, 십송율은 유부에서 쓰던 것입니다.
이외에 두 개가 더 있어 율은 오부로 되어있습니다.
논장은 아비달마라고 하는데, ‘법에 대하여’ 이런 뜻입니다.
논장은 각 부파마다 아주 많이 있었는데, 그중 유명한 것이 대비바사론과 구사론입니다.
대비바사론은 유부의 논장인데 불멸 후 약 400년경에, 구사론은 불멸 후 약 800년경에 쓰여졌습니다.
그러니까 대승불교가 승기할 때 소승불교의 사상이 정리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제6강에 계속합니다~~)
이 강의는 '정토회 > 정토TV > 법문 보기 > 불교의 역사'에서 동영상으로 볼수 있습니다.
*** 짧은 생각 ***
이것만 공부해도 한 평생 다 지나겠습니다.
'법륜스님의 법문 > 2. 불교의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법륜스님의 '불교의 역사'] 제7강 소승불교의 수행법 - 첫 번째 (0) | 2014.09.22 |
---|---|
[법륜스님의 '불교의 역사'] 제6강 소승불교 - 세 번째 (0) | 2014.09.17 |
[법륜스님의 '불교의 역사'] 제4강 소승불교 - 첫 번째 (0) | 2014.09.14 |
[법륜스님의 '불교의 역사'] 제3강 경전의 결집 - 세 번째 (0) | 2014.08.25 |
[법륜스님의 '불교의 역사'] 제2강 경전의 결집 - 두 번째 (0) | 2014.08.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