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0-1강에서 계속)
보살의 수행법 : 보시(布施), 지계(持戒), 인욕(忍辱), 정진(精進), 선정(禪定), 지혜(智慧)
그럼 어떻게 하는 것이 보살(보디사트바)의 수행일까요?
진짜 대자대비심으로 사람들에게 베풀어야 하고(보시, 布施)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잘 참아야 하고(인욕, 忍辱)
다른 사람을 미워하거나 살생하거나 사음할 마음도 낸 적이 없고(지계,持戒)
뭐든지 정열을 기울여서 열심히 해야 되고(정진, 精進)
어디서든지 흔들림 없이 늘 마음을 고요하게 갖고 있고(선정, 禪定)
생활과 삶 속에서 문제의 본질을 꿰뚫고 사물을 파악하는 그런 지혜(智慧)가 있어야 됩니다.
이렇게 그들 나름대로의 수행법이 정립이 되었고, 그런 수행자를 대승보살이라 했습니다.
실천을 통해 이루어진 경험들이 이론화되어 새로운 사상이 나오게 됨
‘저들은 수행하고 우리는 후원한다’ 이런데서, ‘우리도 수행하는 사람’이 되는 보살이 출현하게 된 것입니다.
한량없는 덕성을 갖고 무한한 지혜와 자비로 중생을 교화하신 분이 부처님이고,
부처님은 아니지만 거기에 가까이 가신 보살님도 계셨다, 이렇게 부처와 보살에 관한 신앙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런데 비해서 소승의 스님들은 저렇게 해서는 죽을 때까지 해봐야 해탈 못한다,
그들이 도달했다고 하는 아라한은 부처의 경지가 아니고 수준이 낮은 경지다,
이런 방식으로 수행을 해야 부처가 되지 저런 방식으로 해서는 부처는 못된다,
깨달았다 해봐야 저것은 불완전한 깨달음에 불과하다',
이렇게 주장하며 실천을 통해서 이루어진 경험들이 점점 이론화 되면서 새로운 사상이 나오게 됩니다.
대승사상이 정립되고 교단이 형성된다.
이런 신앙공동체에서 보살행을 하고 덕을 베풀던 사람이라 하더라도,
불교공부를 더하고 수행을 하려면 교단(주로 대중부)에 출가하여 스님이 되어야 하는데,
막상 출가해 보니, 예전 신앙공동체의 사람들보다 출가한 스님들이 더 순수성이 없습니다.
그러니 거기에서 나와서 다시 신앙공동체 생활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기성교단(주로 대중부)의 승려들도 일부는 이 신앙공동체에 참여하게 됩니다.
이들은 기성교단을 저버렸으니 기성교단으로부터는 ‘저건 중도 아니다’ 라는 비판을 받겠지만,
많은 공부를 하고 와서 자기들을 위해 설법을 해주니, 이쪽 신앙공동체에서는 존경을 받겠지요.
이들은 불교를 전문으로 공부했으니 부처님의 참 가르침이 무엇인지 하나하나 따져보면서,
‘기성교단보다는 이 신앙공동체가 불교의 근본사상에 더 가깝다’,
이런 이론적인 근거를 제시하면서 대승사상이 정립되기 시작합니다.
보살(보디사트바)로서 상가를 구성한다
이론적인 뒷받침과 함께 이 사람들을 중심으로 교단(상가)이 형성되는데, 그 구성하는 원칙이 달라집니다.
소승교단은 머리를 깎고 계를 받은 스님만으로 상가를 구성하는데,
여기서는 스님이냐 아니냐를 중요시 하지 않고 누구든지 깨달은 자, 보살은 승단의 지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독립적인 신앙공동체가 하나의 독립적인 교파(종파)로 발전되었지만,
기존 교단(소승)에서는 아직 이것을 불교라고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상좌부와 대중부는 서로 옳으니 그르니 다투더라도 상대를 불교로 인정하고 스님으로 인정해 주었습니다.
개신교와 천주교가 다르지만 신부나 목사는 서로를 성직자로 인정해주고,
태고종 스님들이 결혼해서 살아도 조계종 스님들이 그들을 스님으로 인정해 주지만,
아무리 열심히 수행정진을 하더라도 여러분들은 인정해주지 않듯이, 그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자기들끼리의 신앙공동체를 벗어나, 점점 자기들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시작하는데,
‘부처님의 진짜 말씀은 이렇게 공부하라는 것이었다’, 이런 주장을 하고,
‘부처님이 설법하실 당시에도 이런 문제가 있었는데, 부처님이 이게 더 옳다고 말씀하셨다’, 이런 주장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기존 승단에서 볼 때는, 경전에 없는 완전히 새로운 걸 끄집어내어 주장을 하고 있으니,
‘이것은 비불설이다’, ‘부처님이 그렇게 설한 적이 없다’, ‘무슨 근거로 그런 얘기를 하느냐’, 이렇게 반박하지만,
‘그렇게 꼭 경전에 써놓은 그것만 법이 아니다. 그건 문자에 집착하는 것이다.
달을 보라면 달은 안보고 손가락만 보는 것이다.
그리고 부처님 말씀하신 게 다 기록에 남은 것도 아니다.
그땐 대중이 어리석어 이런 큰 가르침은 못 알아들으니, 부처님께서 대중의 근기에 맞게 설법을 하셨는데,
당신들은 그것만 가지고 있기에 지금 그렇게 주장하는 것이다,
부처님은 그때부터 이런 수행법에 대해서 하신 말씀이 있었다’, 대승교단에서는 이렇게 주장합니다.
그러나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지 이미 500년이 지났으니,
부처님이 그런 얘기 하셨다, 안하셨다 라는 진위여부는 논쟁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소승교단에 있던 스님들이 볼 때는 대승이 백 번 주장하더라도 그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대승 교단에 몸담고 있거나 새로 들어온 사람들은 이게 더 옳은 것 같으니까 이것을 믿고 따랐습니다.
이렇게 기존 승단의 한 부파가 변한 것이 아니라, 신도들을 중심으로 완전히 새로 일어난 대승불교는,
사상적으로는 대중부에 더 가까웠으며, 논쟁은 주로 옛날의 원리원칙을 고집하는 상좌부와 벌였습니다.
대승(大乘) : 많은 사람이 탈 수 있는 큰 수레
소승(小乘) : 한 명밖에 타지 못하는 작은 수레
이러면서 자기들은 대승이라 하고 기존 승단은 소승이라 했습니다.
지금까지 전통을 갖고 있는 기존 승단을 불교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으니 소승이라고 했지만,
느그는 그렇게 죽을 때까지 해봐야 너 하나도 구제하기가 어렵고, 잘돼야 너 하나밖에 구제를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대승, 큰 수레이기에 여러 고통받는 사람들을 다 싣고 저 니르바나의 경지로 갈 수 있는 데,
너는 너 하나 헤엄쳐도 겨우 갈동말동하는 수준이다,
우리는 수십 수백 명을 싣고 가는 대승(mahāyāna, 마하야나, 큰 수레)이고,
느그는 한 명밖에 못타는 소승(hīnayāna, 히나야나, 작은 수레)이다, 이렇게 주장을 했습니다.
반면에 기존 승단에서는 '우리는 근본(thera-vāda, 테라밧다)이고, 느그는 가짜다',
'그것은 부처님 말씀이 아니다(비불설)', '부처님 말씀 중에 그런 얘기는 없다' 이렇게 논쟁이 된 것입니다.
그럼 정황이 좀 이해가 됩니까?
이렇게 해서 대승의 입장에서 보면 소승과 대승이 생긴 것이고,
기존 승단, 테라밧다의 입장에서 볼 때는 사이비가 하나 생긴 것입니다.
대승불교가 역사에 전적으로 등장한 시기는 BC 1세기 ~ AD 1세기
상당한 교세를 가지고 사상적으로 무장 : AD 2~3세기 이후
대승이 일어나자 인도에서는 소승이 망하고 대승이 다 점령했다고 생각하시면 안됩니다.
대승이 일어나서 역사의 표면에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BC 1세기에서 AD 1세기 사이이고,
상당한 교세를 갖고 사상적으로 무장이 되고 한 것은 AD 2~3세기 넘어서입니다.
그 후 400여년이 지난 AD 6~7세기 경, 한 중국인이 인도를 여행했을 때의 기록을 보면,
6할이 소승불교, 2할 5부가 대승불교, 1할 5부가 소승과 대승이 섞여있는 절이었습니다.
대승불교가 흥기한 이후 6~7백년이 지난 뒤에까지도 세력분포가 이정도 밖에 안되었다는 것은,
인도에서의 불교는 부파불교, 근본불교가 주류였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어쨌든 대승불교도 문제 제기하는 집단을 벗어나 하나의 큰 교단으로 형성이 되었습니다,
나중에 말씀드리지만 이 두 가지 불교가 중국으로 동시에 들어왔고, 번역도 다 같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조금 더 포용력이 있고 현실적인 적응력이 있는 대승사상과 곧이곧대로 하는 소승사상 중에,
외국에 들어갔을 때 외국 사람이 받아들이기에는 대승불교가 더 쉽겠지요.
문화수준이 낮은 나라로 전파될 때는 선진문화가 건너간 것이니 원리원칙대로 지키는 것도 문제가 없겠지만,
더 높거나 비슷한 문화권으로 갈 때는, 뭔가 변화된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게 뿌리내리기가 더 쉽습니다.
그러니까 인도보다 문화수준이 낮은 스리랑카, 버마, 태국 등에는 원형대로 가는 게 더 쉬웠겠지만,
서역을 거쳐서 문화수준이 비슷한 중국으로 넘어올 때는 대승불교가 더 적응력이 뛰어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소승불교권에서는 왕이 스님에게 절을 하지 스님이 왕한테 절을 하는 법이 없지만,
대승불교권에서는 스님들이 왕한테 절을 하고 세속적 권위가 더 위에 있음을 인정했습니다.
즉, 중국에 들어온 소승불교는 천자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으니 국가적인 차원에서 거부당했겠지만,
대승불교는 그런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니까 천자의 후원을 받을 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대승불교가 흥기되었는데, 대승불교권에서의 승단은 보살들로 구성합니다.
보살은 스님만이 아니라 재가자도 될 수 있는데, 스님보다는 오히려 재가자 쪽이 더 중심이 되었습니다.
이 뒤의 탱화도 보면, 부처님의 십대 제자들은 뒤에 있고 부처님 주위에 전면으로 등장하신 분들은 보살들인데,
지장보살님 같이 머리 깎은 모습의 출가자도 있지만,
머리도 길고, 귀걸이·목걸이하고, 옷도 화려하게 입은 재가자 쪽에서 들어온 성인들이 많습니다.
보살의 길에는 승속이 따로 없고, 깨달으냐 못 깨달으냐 이게 중심이 되었습니다.
예불문에서도 보면, 부처님 당시의 제자인 성문승들보다 보살승단에 먼저 귀의합니다.
예불문의 순서는, 맨 먼저 석가모니 부처님께 귀의하고, 다음은 다른 모든 부처님께 귀의합니다(귀의불)
그 다음은 모든 법에 귀의합니다(귀의법),
그리고 상가(saṁgha, 僧伽, 승가, 교단)에 귀의하는데, 상가는 네 가지로 세분화 했습니다(귀의승)
먼저 대승상가(보살승단)에 귀의하고, 다음은 부처님 당시의 제자인 성문승에 귀의하고,
다음은 인도로부터 중국을 거쳐 한국에 이르는 역대 선지식, 마지막은 현재의 모든 스승들께 귀의합니다.
이렇게 예불문에서도 보살승단이 성문승들보다 우선이 됩니다.
(제11강에 계속합니다~~)
이 강의는 '정토회 > 정토TV > 법문 보기 > 불교의 역사'에서 동영상으로 볼수 있습니다.
*** 짧은 생각 ***
대승불교라는 사이비종교가 가짜로 경전까지 만들고 자기들이 진짜라고 떠들어대고 있었으니,
기존 스님들이 볼 때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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