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성지순례

22-2. 순교자 정찬문 묘

상원통사 2014. 6. 19. 22:46

찾고 보니 쉬웠지만, 찾으로 가는 동안은 막막했습니다.

정확한 주소가 없는 지라, 일단 네비게이션에 '사봉 삼거리'를 찍고 도착했으나,

근처엔 지나가는 사람도 없어 어디로 가야하는 지 물어볼 엄두도 못내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겨우 찾은 안내표지판을 보고서야 따라간 곳,

'정찬문 순교자 묘'는 '천주교 순교성지 사봉 공소' 안에 있습니다.

 

주소는 '경남 진주시 사봉면 무촌리 987-1'

새주소는 '경남 진주시 동부로 1751번길 46-6'

 

<언덕 위의 하얀 집, 사봉 공소>

 

 

<[한국 천주교 성지순례] 책자의 사진에 나온 그 예수님상>

 

 

<그리고 조금 때가 낀 옷을 입고 계신 성모님>

 

 

<문이 잠겨 들어가보지는 못했지만 내부도 예쁠 것 같습니다.>

 

 

<멀리서 봐도 예쁘고~~>

 

 

 

<꽃 사이로 보이는 동네도 예쁩니다.>

 

 

<성당 뒷편에는 간짓대 끝에서 예수님이 팔벌리고 스카이 콩콩을 타고 계시고~~>

 

 

<둘러선 장승들은 잘한다고 박수를 치고 있는 데~~>

 

 

<그 한 켠에는 '술꾼 예수'가 아무 말없이 서 있습니다.>

 

 

순교자 정찬문 묘

"순교자 정찬문 안토니오는 진주시 사봉면 출신으로 신자였던 아내의 권면으로 입교 영세하였다.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순교자는 포졸에게 잡혀 진주 감옥에 갇힌다.

 여러 번 심한 문초와 고문을 받았지만 배교하지 않았다.

 특히 그가 옥에 갇혀 있는 동안 아기를 등에 업고 주먹밥을 나르던 부인 윤씨의 격려는

 그가 굴하지 않고 순교의 월계관을 쓰기까지 커다란 공헌을 했다.

 결국 이듬해인 1867년 1월 25일(음력 1866년 12월 20일), 순교자는 매를 많이 맞은 끝에 진주옥에서 참수 치명한다.

 그의 나이 45세 때였다.

 죽은 뒤 그의 일가들이 순교자의 시신을 모셔 왔는데 머리를 가져오지 못한 채 하체(下體)만 장사지냈다고 한다.

 어찌하여 머리를 가져오지 못하였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는데

 순교자의 무덤에 머리가 없다는 사실이 신자들의 입을 통해 전해지면서 무두묘(無頭墓)라 불리게 되었다."

 

<성당 반대편 편평한 곳에 있는 순교자의 묘>

 

 

 

 

<순교자의 묘 뒷편에 '십자가의 길 제11처'가 있기에 웬일인가 했더니, 이렇게 연결되는 것이었습니다.

  공소 올라가는 길 입구 오른편에서부터 십자가의 길이 시작되는 데~~>

 

 

<공소 외곽 전체를 한 바퀴 빙 도는 것으로 보입니다.

  "십자가의 길, 제1처 예수 사형선고를 받으시다">

 

 

<순교자의 묘 뒷편의 언덕 쪽에 "십자가의 길, 제11처 예수 십자가에 못박히시다", 그리고~~>

 

 

 

<로봇 태권 V 예수님이 계시고~~>

 

 

<그 뒤에는 또 간짓대 끝에서 하늘을 쳐다보는 성모님이 계십니다.>

 

 

<성모님이 계시는 제일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보이는 동네는 여전히 한가롭습니다.>

 

 

<그렇게 빙 돌아서 공소 올라가는 입구 좌측에 있는 주차장에 오면~~>

 

 

<"십자가의 길, 제14처 예수 무덤에 묻히시다"가 있습니다.>

 

 

아무도 없는 동네를 지나, 아무도 없는 공소에, 아무 소리 없이 왔다가,

우편함에서 홀로 기다리던 확인도장은 순례 책자에 입맞춤하고,

아무도 없는 묘소를 참배하고, 조용히 마을을 빠져나가,

이번 성지순례의 마지막 목적지 '순교자 구한선 묘'로 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