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성지순례

21-3. 순교자 신석복 묘 & 김해 진영성당

상원통사 2014. 6. 9. 17:58

명례성지에서의 이제민 신부님 강론이 정신적 양식이라면,

어제 밤 해운대 재래시장에서 산 왕만두와 왕찐빵은 육체적 양식입니다.

몸도 마음도 가득찼으니 점심을 먹지 않아도 거뜬, 우린 물만 한 모금씩 하고 순교자 신석복 묘로 향합니다.

이곳도 [한국 천주교 성지순례] 책자의 주소가 잘못되었습니다.

공원묘지의 주소는 찾을 수 없습니다.

이곳을 오시려면 공원묘지 입구에 있는 다른 집의 주소,

'경남 김해시 진영읍 여래리 238-2(새주소 : 진영읍 진영로 312-18)'로 찾기 바랍니다.

 

<이곳은 천주교 진영성당 공원묘지입니다.>

 

 

<입구에서부터 조금 올라가는 데, 오르는 길엔 십자가의 길이 있습니다.>

 

 

 

 

<아랫쪽은 일반 신도들의 묘지이고~~>

 

 

<맨 안쪽에 커다란 십자가가 있고~~>

 

 

순교자 신석복 묘

"신석복은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대구에서 내려온 포졸들에게 붙잡혔다.

 '병인 치명 사적'에 따르면 포졸들은 신석복이 신자인 것을 알고 동네로 잡으러 왔었다.

 그러나 그가 장사 나가고 없었기에 포졸들은 며칠을 기다린 뒤 돌아오는 신석복을 길에서 체포한 것이다.

 신석복은 대구로 압송되었고 혹독한 심문을 받으며 배교를 강요당했지만 끝까지 신앙을 지켰다.

 신석복은 1866년 2월 15일(음) 교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그의 나이는 39세 때였다.

 신석복의 유해는 그의 아들 이냐시오가 돈을 가지고 대구로 가서 모셔 왔다.

 그러나 명례에는 지방 유지들의 반대로 모시지 못하였고

 부득이 낙동강 건너 한림정(翰林亭) 뒷산의 노루목(김해군 한림면 장방리)에 안장하였다.

 그 후 진영 본당에서는 순교자의 묘속 야산에 있음을 안타깝게 여겨 본당 공원묘지로 이전하였다(1975년 12월 1일)"

 

<그 오른편에 순교자의 묘가 있습니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아파트가 보입니다.

  이곳 공원묘지가 먼저 생기고, 아파트가 나중에 들어섰겠죠?

  아파트가 먼저 생겼다면 민원때문에 공원묘지는 꿈도 못꿀텐데...>

 

 

<공원묘지를 나와 우린 진영성당으로 향합니다.

  여기도 우편함에 확인 도장이 있습니다.>

 

 

 

<성당 내부>

 

 

 

이제 우린 진례성당으로 이동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