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의 법문/1. 실천적 불교사상

[법륜스님의 '실천적 불교사상'] 제17강 오계 - 첫 번째

상원통사 2014. 6. 17. 20:32

불해(不害), 같이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사람의 생각은 어디로나 갈 수 있다.

 그러나 어디로 가든 자기보다 더 소중한 것은 찾아볼 수 없다.

 그와 같이 다른 사람에게도 자기는 더없이 소중하다.

 그러기에 자기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해쳐서는 안 된다."

 

사람의 생각은 어디로나 갈 수가 있다.

즉 사람의 생각은 서로 다르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생각할 수가 있다.

어떻게 생각하든, 어떤 가치관을 갖고 있든, 자기보다 더 소중한 것은 찾아볼 수가 없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 또한 다 자신이 더 없이 소중하다.

그러기에 자기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해쳐서는 안 된다.

뒤집어 말하면 다른 사람을 해치는 사람은 자신의 소중함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오늘부터는 불교의 가치관, 불교에서 말하는 도덕, 윤리에 대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우리가 어리석은 상태에서 이 세상을 보면,

세상에는 옳고 그르고, 맞고 틀리고, 선이고 악이고, 아름답고 추하며, 깨끗하고 더러움이 있다고 보고,

또 삶 속에서 그렇다고 판단해 가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근데 정신을 차리고 찬찬히 깨달은 상태에서 보면 그 본질이 텅 비어있어서,

그것은 옳은 것도 그른 것도 아니고, 선도 악도 아니고, 아름다운 것도 추한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불교인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옳은 것도 그른 것도 없으니 아무렇게나 행동해야 할까요,

아니면 아무 행동도 안하고 손발 묶어놓고 가만히 있어야 될까요?

이 세상은 항상 옳은 지 그른 지, 맞는 지 틀렸는 지, 끊임없이 판단하고 살아야 되는 데,

그거 전부 다 공하다, 그러면 어떻게 하라는 거냐하는 의심이 듭니다.

그래서 앞으로 3일 동안 이 문제에 대해서 주로 다루려고 합니다.

 

의 실상은 하다

법의 실상은 공하다, 여기는 지난번에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 세상은 옳은 것도 있고 그른 것도 있고, 맞는 것도 있고 틀린 것도 있는 것 같지만,

정신을 차리고 가만히 하나하나 분석하고 따지고, 이 경우 저 경우 이 사람 저 사람의 경우 다 고려해보면,

어떤 것을 선이다 어떤 것을 악이다 하기가 어렵습니다.

시간적으로는 전 인류 역사를, 공간적으로는 전 지구에 사는 온갖 집단·종교들을 생각해보면,

우리에게 귀한 게 다른 지역에서는 천한 것이 되고,

우리에게 지금 옳은 것이 같은 지역 안에서도 옛날에는 그른 것이었습니다.

 

신라시대에는 순종을 만들기 위해서 같은 혈통끼리 결혼을 했습니다.

가장 순종끼리 혼인한 게 성골이고, 어머니 쪽에 약간 잡종 피가 섞이면 진골, 이렇게 되었습니다.

·진골에 못 들어가는 잡종들은 왕위에 오를 수가 없으니 따질 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오면 성만 같아도 결혼하면 짐승취급을 받았고,

피가 달라야 오히려 순수하고 도덕적이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우린 지금 형님이 어머니 모시다가 돌아가시면 동생이 모십니다.

안모시면 불효막심한 놈이 됩니다.

그러나 형님이 돌아가시고 형수가 혼자 사는데, 동생이 형수를 데려와서 부인으로 삼았다면 짐승같은 놈이 됩니다.

근데 우리나라도 고려시대에 보면 형사취수 제도, 형이 죽으면 동생이 취하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지금도 아프가니스탄 같은 나라에는 이런 제도가 있습니다.

형이 죽으면 형수를, 동생이 죽으면 제수씨를 부인으로 맞아 들여야 조카들이 다 자기 아이들이 됩니다.

거기서는 우리가 형님이 부모님을 모시다가 돌아가시게 되면 동생이 부모님을 모시는 것 만큼이나 당연한 일입니다.

안 그러면 형제를 외면하고 형에 대한 의리가 없는 나쁜 놈이 됩니다.

 

이런 게 어디 한 두 가지겠습니까?

불교에서 선인 것이 기독교에서 악이 될 수도 있고, 기독교에서 선인 것이 이슬람에서 악일 수도 있습니다.

소는 신성한 것이기 때문에, 힌두교인들은 절대 소고기를 먹지 않습니다.

그 신성한 것을 먹는다는 것은 부모의 육신을 먹는 것보다도 더 나쁜 놈입니다.

그러나 인도에서도 천국에 갈 자격이 아예 없는 천한 것들은, 포기한 인생들이니까 소고기를 먹습니다.

 

회교도들은 돼지고기하고 닭고기는 부정한 것이라서 절대 안 먹습니다.

그걸 먹게 되면 육신이 더러워지고 영혼까지도 더러워져서 절대 천국의 문을 통과할 수가 없기에,

돼지고기를 입에 갖다 대면 정말 죽기로 거절합니다.

회교도에겐 그런 고기를 먹는 사람은 인간도 아닙니다.

 

회교도들이 소고기를 먹고 힌두교도들이 돼지고기 먹는 것을, 서로 본다면,

상대방은 인간이 아니므로 그것들은 죽여 버려도 됩니다. 살려 놓을만한 가치가 별로 없습니다.

기독교인들은 하느님을 안 믿는 사람은 그건 살아있으나 혼이 없는 사람이므로,

혼이 없는 사람은 짐승과 같으니 그런 것들은 죽여 버려도 아무런 죄가 안됩니다.

그래서 다 전쟁을 일으키고 그렇게 극렬하게 싸우는 겁니다.

 

유교에서는 조상을 숭배합니다.

조상이 있어서 내가 있는데, 조상을 모시지 않는 것은 짐승보다 못한 것들이기에 죽여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천주교가 들어와서 제사도 안지내고, 부모 묘에 가서 절도 안합니다.

그들은 인간으로서 값어치가 없는 사람들이니 죽여 버린 겁니다.

지금이니까 여러분들이 아이고, 그래도 사람을 어찌 죽이나이럴지 몰라도,

그 당시에 태어났다면 여러분들 다 저런 인간은 죽여야 돼라 생각하고, 그런 재판을 했었을 사람입니다.

 

사상이 다르다고, ‘이 세상은 이래야 된다하는 그 사상이 다르다고 죽였잖아요?

빨갱이라는 게 뭡니까?

이 세상은 평등하게 나눠먹어야 된다', 또는 '네 것 내 것 없다이런 주장을 하면 빨갱입니다.

빨갱이들은 죽여 버려야 됩니다.

그런 건 아무리 고문을 해도 인권탄압에도 안 들어가고, 양심수 명단에도 안 들어갑니다.

우리가 인권운동을 해왔어도 빨갱이는 양심수 명단에 안 들어갔습니다, 아시겠어요?

 

우리가 빨갱이는 죽여야 된다 해가지고 얼마나 많이 죽였습니까?

조선시대 때 조상 제사 안 지내는 것 보고 저런 천인공노할 인간은 죽여야 된다하는 거나,

여러분들이 빨갱이 죽여 버려야 된다하는 거나 다 마찬가지입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다 사람 죽이는데 알게 모르게 동참했습니다.

그 공부 잘하고 똑똑하고 잘난 판사들이 다 사형판결 내린 겁니다.

도둑질하고 강도짓 하는 거는 죄가 몇 년밖에 안되지만, 빨갱이는 죄가 엄청납니다.

너는 간첩, 빨갱이이렇게 규정하면, 고문을 하든지 죽이든지 아무도 인권운동도 못합니다.

했다가는 같이 가니까...

 

여러분들은 회교도·힌두교 싸우고, 기독교·회교 싸우고, 종족이 다르다고 막 죽이는 걸 보고,

, 참 무식한 놈들이다하지만, 외국인들은 우리나라 사람을 볼 때 정말 무식하다 합니다.

사상이 다르다고 스물 몇 살에 감옥에 집어넣어, 칠십 살 되도록 사십 여년씩 감옥살이 시키는 것은,

그들은 도저히 상상도 못하는 일입니다.

근데 우린 이것을 보통으로 생각합니다.

빨갱이, 간첩, 당연히 죽여야 해. 살려놓은 것만도 감지덕지해야지.’

 

이렇게 다 자기 나름대로 가치관이 있습니다.

크게는 종교나 민족이나 또는 지역에 따라서, 작게는 부부간에도 견해가 다릅니다.

선이니 악이니 하지만 조금만 찬찬히 살펴보면 다 그게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 다른 것은 오히려 해독이 적지만, 사람과 사람의 생각이 같을 때는 해독이 큽니다.

여러분들이 안경을 다 비슷하게 끼면 안경 끼었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합니다.

다수면 진리가 되고, 잘못했어도 잘못한 줄도 모르고 범죄의식도 느끼지 못합니다.

 

정신을 차리고 가만히 하나하나 들여다보고,

다른 사람 입장에도 서서 이렇게도 보고 저렇게도 보고, 전체적으로도 보고 길게도 보면,

옳다 할 것도 없고 그르다 할 것도 없고, 다만 서로 다르다, 차이가 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높다 할 것도 낮다 할 것도 없이 서로 다를 뿐이고, 귀하다 할 것도 천하다 할 것도 없이 서로 다를 뿐입니다.

서로 다른 것을 두고 사람들이 어떤 이유를 붙여가지고 하나는 높다하고 하나는 낮다하고,

귀하다 천하다, 아름답다 추하다, 깨끗하다 더럽다, 옳다 그르다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마치 정말 옳고 그른 게 있고, 아름답고 추한 것이 있는 것처럼 세뇌되어 있습니다.

 

한 생각이 일어나니 만법이 일어나고

 한 생각이 사라지니 만법이 사라지네

옳고 그른 것도 없고 아름답고 추한 것도 없습니다,

그것은 다 사람에 따라, 그 사람의 생각 즉 관념이 다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더 말하면 존재에 있는 게 아니라 우리들의 마음에 있는 것입니다.

 

이걸 원효대사께서는 해골바가지 물을 먹고 깨달으셨습니다.

깜깜한 밤에 목이 말랐는데 이리저리 더듬으니 바가지가 하나 있어서, 그걸로 물을 떠먹었더니 꿀맛이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물을 또 떠먹으려고 바가지를 들고 보니 해골이어서, 그걸 보고는 구역질을 했습니다.

어제 저녁의 물은 청정한 물이고 오늘 아침의 물은 더러운 물이 아니라, 똑같은 물이었습니다.

똑같은 물인 데 왜 어제 저녁에는 그렇게 달콤하더니 오늘 아침에는 구역질이 날까?

어제는 박바가지에 담겼고 오늘은 해골바가지에 담겼으면 깨끗하다 더럽다 하겠지만, 똑같은 해골바가지였습니다.

그래 여기서 ‘아, 모든 게 다 내 마음에 있구나라는 게 너무나 분명해졌습니다.

일체는 다 마음이 짓는 바다라고 화엄경 공부를 하면서 늘 읽었지만,

그 때는 그냥 그렇게 옳거니 생각했지 오늘처럼 이렇게 현실 속에서 체험한 적은 없었습니다.

그래 일어나 어깨를 들썩여 춤을 추면서, ‘일체가 다 마음 가운데 있는 것이구나, 마음이 짓는 바구나.’

일체가 다 마음이 짓는 바라면 진리를 구하러 중국에 갈 필요가 없습니다, 놀러 간다면 몰라도...

그래서 원효는 돌아온 겁니다.

 

 

 

(제18강에 계속합니다~~)

 

이 강의는 '정토회 > 정토TV > 법문 보기 > 실천적 불교사상'에서  동영상으로 볼수 있습니다.

 

 

*** 짧은 생각 ***

 

이만큼 잘살고 풍요로우면 조금씩 양보하고 받아들일 때도 되었건만, 정 반대로 갈수록 심해집니다.

정말 그래서 그런 것이 아니고, 나 자신만을 위해 나와 조금만 생각이 다르면 모두 다 빨간 딱지 씌웁니다.

그 빨간 딱지는 아직도 효험이 많으니 때만 되면 써먹고, 갈수록 과격해집니다.

좌익이 빨갱이가 되고, 빨갱이가 좌빨이 되고, 좌빨이 종북 좌빨이 되고,

앞으론 뭐가 또 나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