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의 법문/1. 실천적 불교사상

[법륜스님의 '실천적 불교사상'] 제18강 오계 - 두 번째

상원통사 2014. 6. 22. 20:52

(~~ 제17강에서 계속)

 

존재 그 자체는 어떠한 실체도 없다 : 제법무아(소승), (대승)

존재 그 자체는 어떠한 실체도 없다,

이걸 소승불교에서는 제법무아(=제법개공)라 하고, 대승불교에서는 공이라 합니다.

 

불법은 인연을 따라 이루어진다

지난번에 서울가는 길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서울가는 길은 어디로 갑니까? 이때 서울가는 길은 정해져 있지가 않습니다.(무유정법)

그러나 인천사람이 물으면 동이다 하고 정해지고,

수원사람이 물으면 북이다, 춘천사람이 물으면 서라고 정해집니다.

아주 분명합니다. 이렇게 인연을 따라 이루어집니다.

 

불수자성 수연성, 스스로의 성품을 지키지 아니하고 인연을 따라 이루어진다.

죄무자성 종심기, 죄라고 하는 것은 스스로의 성품이 없지마는 어리석은 마음을 따라서 생겨난다.

이렇게 인연을 따라서 일어나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요만한 밥그릇으로 한 그릇 먹으면 적당한 양이라 합시다.

열 명이 있는 데 밥이 열 그릇 들어오면 한 사람이 한 그릇씩 먹으면 됩니다.

열 명이 있는 데 다섯 그릇만 들어왔을 때는 반 그릇씩만 먹습니다.

열 명이 있는 데 열다섯 그릇 들어왔을 때는 한 그릇 반이 아니라 한 그릇씩 먹습니다.

 

식량이 충분할 때는 한 그릇씩 먹었을 지라도, 식량이 반 밖에 없을 때는 반 그릇씩 먹어야 됩니다.

아무리 많이 들어와도 한 그릇이 적정량일 때는 한 그릇 먹어야 됩니다.

더 많이 먹으면 배탈이 나고, 뚱뚱해 지든지, 위가 늘어나든 지, 뭔가 부작용이 생깁니다.

 

열 명에게 열 그릇의 밥이 나왔을 때, 한 그릇씩 먹는 게 그 현실 속에서의 입니다.

열 명이 다섯 그릇 나왔을 때는 반 그릇씩 먹는 게 이지 한 그릇씩 먹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이처럼 본래부터 옳고 그른 것이 있는 게 아니라, 그 인연을 따라서 옳고 그른 게 있습니다.

반 그릇씩 먹는 게 옳다 하더라도 그 조건에서 반 그릇이 옳은 것이지,

수행자는 적정량이 한 그릇이지만, 딱 참고 반 그릇씩 먹어야 그게 진정한 수행자다이러면 안됩니다.

밥 반 그릇에 집착을 하거나, 그걸 형상화해도 안됩니다.

그것은 그 인연에서 반 그릇인 것입니다.

 

시비가 본래 없는 가운데 시비가 분명해져야 한다’, 이렇게 말합니다.

이해는 되세요?

이제부터는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옳다 그르다, 맞다 틀렸다 하던 것, 지금까지 했던 것 다 버리십시오.

그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것으로 그냥 길들여지고 그냥 생긴 겁니다.

안경과 똑같은 것이니 안경을 다 벗기 바랍니다.

벗고 , 벽이 하얗구나이렇게 알아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는 마음에 드는 색깔 좋은 선글라스, 각자 알아서 끼십시오.

어떤 사람은 붉은 것, 어떤 사람은 푸른 것, 어떤 사람은 누런 것, 다 나름대로 끼고 보면 됩니다.

 

이렇게 끼었을 때는 붉으니 푸르니 누르니 하고 싸우지 않습니다.

누가 , 붉다이러면, ‘쟤는 붉은 안경을 끼었구나’,

누가 푸르다 하면, ‘쟤는 푸른 색깔의 선글라스를 좋아하는 거구나

이게 타인에 대한 이해입니다.

 

틀렸다 맞다가 아니고, 그냥 그에 대한 이해입니다.

저 사람은 저렇게 보구나’, ‘저 사람은 지금 저런 입장에 처해있구나’, 이럴  때엔 다툼이 안 일어납니다.

여러 가지 꽃들이 모여 하나의 화단을 이루듯이

각자의 다양한 가치관이나 문화, 종교 이런 것들이 나름대로 다 조화를 이룹니다.

같은 빛깔 같은 모양의 꽃만 있는 게 아니라, 종류도 빛깔도 크기도 다른 꽃들이 모여서 화단을 이룹니다.

 

오늘 우리들의 병폐는 바로 자신의 빛깔, 자신의 문화적 가치관만 옳다하고 그것 아닌 것은 틀렸다는 겁니다.

우리 인류는 다양한 인종이 다양한 경험들을 해 왔습니다.

그러니까 다른 가치관, 다른 문화를 볼 때 아이구, 병신같은 것들이게 아니라,

, 이 사람들은 이런 가치관을 갖고 있구나’, 이렇게 이해해야 합니다.

무당, 샤마니즘,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니라, ‘이 사람들은 이런 문화를 가지고 살아왔구나이렇게 이해를 해야 합니다.

 

제가 인도에 있을 때, 어느 천민촌 민가에 기거하면서 학교를 짓고 있었는데,

하루는 집에 오니까 방바닥과 벽에 뭔가 파란 것을 칠해놓은 것 같아, 자세히 보니 소똥을 발라놨습니다.

왜 그랬나 물어보니 내가 신이기에, 신을 모신다고 그렇게 했다는 겁니다.

이것이 나에게 할 수 있는 그들의 가장 큰 경의·존경·고마움에 대한 표시라 생각하면 눈물나도록 고맙지만,

무식한 새끼들, 어디 방바닥에다가 소똥을 칠해’, 이렇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불법을 알면, 세계 여행을 하며 온갖 다른 것들을 접해도 다 이해가 될 수 있습니다.

 

빈비사라(Bimbis ra)왕이 하루는 위제희 부인하고 궁궐 누각에서 봄날의 따뜻함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당시 인도에서 최고의 왕이라 없는 게 없었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신이 갖고 있는 수많은 것들 중에 뭐가 제일 귀한 것일까?'

재물일까 군대일까 마누라일까 보석일까 자식일까, 선뜻 말할 수 없어 부인에게 물었습니다.

부인도 잘 모르겠다 하여 같이 생각해 봅시다라고 말한 며칠 후, 부인에게 다시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합니다.

대왕마마, 용서하십시오. 제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것은 제 자신인 것 같습니다

그 당시에는 누구든지 대왕마마가 제일 소중합니다.라 하지 않으면 곧 죽음이었지만, 왕비는 용기를 내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왕이 , 당신도 그렇게 생각했소? 나도 그렇게 생각했소라 답하고,

부처님께 가서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무엇이 제일 소중한 지 다시 물었습니다.

그 대답이 경전에 나오는 이 구절입니다.

네가 제일 소중하다, 자신이 가장 소중하다,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다,

그러니 다른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라’,

 

사람의 생각은 어디로나 갈 수 있다,

우리들의 가치관이나 생각 등은 이리 될 수도 있고 저리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디로 가든 자기보다 더 소중한 것은 찾아볼 수 없다.

이것은 다른 사람에게도 나와 다름없이 소중하다.

그러기에 자기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해쳐서는 안 된다,

 

이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게 자기 자신 즉 생명이다.

모든 인종과 나라 자라온 환경 이런 것을 넘어서 가장 소중한 것은 생명이다.

그러니 생명을 해쳐서는 안된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좀 딴지를 걸려고 해도 가만히 들어보면 다른 할 말이 별로 없습니다.

얼른 보면 좀 엉뚱해 보이는데 자세히 보면 전혀 빈틈이 없습니다.

남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라’, 이러면 이의를 달만 하죠,

자기가 제일 소중하다’, ‘그럼 다른 사람은요?’ 이렇게 될 수가 있는 데,

자신이 가장 소중하다는 것은 그대로 인정하면서도,

그건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저 사람한테 물어보면 저 사람도 그렇다.

그러니 다른 사람을 해쳐서는 안된다 이거요

 

생명을 가진 모든 것에 대한 존중 : 생명존중사상

이것은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에 적용이 됩니다.

아주 좁게 해석하면 자살해서는 안 되고,

넓게 해석하면, 땅을 함부로 파서도, 돌도 함부로 깨서는 안 되고, 미물도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됩니다.

불교의 가치관 또는 불교의 도덕성 기준의 첫 번째가 생명입니다.

그러니 불교적 가치관에서 보면 사형제도는 폐지돼야 됩니다.

 

불교의 가치관(도덕성) : 오계(五戒)

불교의 가치관, 불교에서 말하는 도덕성, 이런 것들을 불교적인 용어로 라고 말합니다.

 

첫째, 살아있는 생명을 함부로 해쳐서는 아니 된다.(= 산 목숨을 죽이지 말라)

둘째, 주지 않는 남의 물건을 가져서는 아니 된다.(= 도둑질을 하지 말라)

셋째, 삿된 음행을 해서는 아니 된다.(= 사음하지 말라)

넷째, 거짓말을 해서는 아니 된다.(= 거짓말을 하지 말라)

다섯째, 삿된 소견을 가져서는 아니 된다.(= 술을 먹지 말라)

 

우리에게는 문화로서의 불교이기에 특별한 가치관도 없습니다.

절에 가는 걸 밥 얻어먹는 재미로, 복 비는 재미로 다니니까, 복 더 준다 그러면 교회다니는 것도 서슴치 않고,

목사가 장례식 때 와주고, 자기 아플 때 문병 와주면 그냥 그리 가버리지만, 요즘 서양 불교신자들은 조금 다릅니다.

 

제가 십 몇 년 전에 만났던 미국출신 비구니스님인데 우리나라의 수덕사에 와서 공부를 하다가 성폭행을 당해 아이가 생겼습니다.

출가한 비구니 스님이 성폭행을 당해 아이를 가졌으니, 우리 같으면 당연히 지워버립니다.

그런데 이 비구니 스님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내가 인연법이 좋아서 스님이 되었으니 이러한 인연도 받아들여야 된다',

그래서 가서 낳아서 어느 정도 키워놓고 돌아오겠다는 겁니다.

생명이 소중해서, 비구니 옷도 벗어놓고 이 아이를 키우겠다’,

이것은 그냥 속인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보살이 되는 것입니다. 보살이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내 아이이기 때문이 아니라 한 생명에 대한 지극한 사랑으로,

자기의 모든 명예마저도 헌신짝처럼 버리고 한 생명을 아끼는 마음으로 돌아간 겁니다.

이런 사람이 한두 명만 있어도, 나중에는 엄청나게 전파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아무리 많아도 오합지졸이라서 새끼치기는 커녕 자기도 유지를 못합니다.

 

제가 미국에서 만난 한 남잔데, 이분은 불교신자입니다.

이분이 뉴욕타임지를 보다가 중고 자동차 광고를 보고 괜찮다 싶어가지고 전화를 했습니다.

근데 이 사람은 뉴욕에 있고 그 차를 내놓은 사람은 시카고에 사는 겁니다.

그 차에 대한 흥정이 끝났지만, 직접 눈으로 보고 골라도 속는 세상인데,

차는 보지도 안하고 돈을 먼저 지불하고 차를 Delivery 시켜야 합니다.

그래 결정을 못해 답답하던 차에 이 사람이 갑자기 생각이 났습니다.

당신 종교가 뭐요?’ 라 물으니, 전화 속의 상대방이 대답합니다.  ‘I'm Buddhist'

, 됐어, 그럼 보내!’

왜 그랬을까? 불교도는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

그들은 오계를 받아야 불교신자 되는 겁니다.

 

우리는 불자다하는 얘기를 들어도, , 불자는 거짓말 안하니까 믿어도 된다이렇게 안 됩니다,

마누라도 못 믿는 세상에 이렇게 절대로 안 됩니다.

 

인도에는 자이나 교도들이 있는 데, 이 자이나 교도들은 오계를 철저히 지킵니다.

불살생계율을 지켜야 하는데 농사지으면 지킬 수가 없으니까, 직업마저도 장사를 택했습니다.

이들은 장사를 하면서도 절대로 거짓말을 안 합니다.

그것도 몇십 년 신용을 지키는 게 아니고, 이천오백 년 동안 신용을 지켜왔으니 모두가 인정합니다.

인도의 십이억이 넘는 인구 중에 자이나 교도가 삼백만도 안되는 데, 인도의 재벌 중에 대부분이 자이나교도들입니다.

그 사람들은 아예 장사를 안했으면 안했지 계율을 어기고 하는 것은 절대 안합니다.

그러니 신용이 생겨서 도리어 좋아졌습니다.

* 자이나교(Jainism) : 불교와 거의 같은 시대에 브라만교에 반대하여 바르다나마가 창시한 종교.

                       : 불살생, 진실어(眞實語), 부도(不盜), 불음(不淫), 무소유의 오계(五戒)의 철저한 이행을 주장.

 

우리는 삶에서 원칙을 지키며 사는가?

근데 우리는 지금 어떤 가르침을 받으면, 그것을 자기 삶속에서 원칙으로 지키고 못살잖아요,

법당에 와서 듣는 얘기는 듣는 얘기고, 그것은 법당에서 그냥 하는 소리고,

그 다음에 내 살 길은 내 살 길대로 또 살고...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게 좋다가 아니라, ‘그런 사람이 없는 게 아니다는 겁니다.

 

옛날 부처님 당시에 제자들이나 불자들은 다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렇게 하면 확산력이 없을 것 같은 데, 그것은 세월이 흘러가면서 점점 더 확산되었습니다.

요즘같이 사람 못 믿는데 그런 사람이 있다면, 여러분들도 그런 사람을 비서로 채용하고 싶겠지요.

그렇게 한 세대 두 세대만 지나면, 이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사회의 지도층으로 올라가고 지도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요즘 정치권에서는 수혈한다고 난리입니다.

하도 더러워져 있으니까 신진세대들을 받아들여 인물을 교체하고자 합니다.

이렇게 청정한 사람들이 여러분들 자손세대까지 적어도 몇십 년만 원칙을 지키고 산다면,

그들이 우리 사회에 도덕의 기준이 되겠지요,

근데 그러다가 손해나면 어떡하나하고 생각하는 게 문제입니다.

그게 자기를 이롭게 하는데도 손해날 거라고 생각합니다.

나 혼자 그런다고 뭐가 될까이럽니다.

하지만 생각해보세요, 부처님은 혼자 시작했는데도 그 큰일을 하셨습니다.

 

 

(제19강에 계속합니다~~)

 

이 강의는 '정토회 > 정토TV > 법문 보기 > 실천적 불교사상'에서  동영상으로 볼수 있습니다.

 

 

*** 짧은 생각 ***

 

그냥 살생하지 말라는 계율이 있는게 아니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것은 자기 자신 즉 자신의 목숨이다.

이것은 다른 사람에게도 나와 다름없이 소중하다.

그러기에 자기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해쳐서는 안 된다,

비록 그것이 미물일 지라도...

새삼 부처님의 위대함이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