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의 법문/1. 실천적 불교사상

[법륜스님의 '실천적 불교사상'] 제20강 불투도계 - 첫 번째

상원통사 2014. 7. 3. 22:36

오늘은 두 번째 계율인 도둑질을 하지 말라, 불투도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불투도계(不偸盜戒) : 주지 않는 남의 물건을 갖지 말라

원래 계율에는 주지 않는 남의 물건을 갖지 말라’, 이렇게 되어있고,

한문본에서는 不偸盜(불투도), 도둑질을 하지 말라’,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이 계율을 보면서 혹자는 조금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불교에서는 이 세상의 만물이 누구의 것도 아니다, 즉 무소유인데,

도둑질하지 마라는 것은 네 것 내 것이 있다는 것이 아니냐,

네 것 내 것이 있으니까 도둑질을 한다든지 하지 말라든지 또는 보시를 하라든지 이런 말이 생긴 것 아니냐?

 

불교는 사유재산을 인정하는가?

역시 불교식 대답은 불교는 사유재산을 인정하는 것도 아니고 안하는 것도 아니다.’

왜 그런가? 존재의 본질은 누구의 것도 아니다, 소유라 하는 것은 하나의 허상, 관념이라고 보기때문 입니다.

그러니까 근본적으로 사유재산이 인정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누가 써야 되는가? 필요로 하는 사람이 써야 된다는 것이 원칙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재화는 누군가 노력(노동)을 해야 형성이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노력을 하지 않거나, 노력은 조금밖에 안하고 재화는 많이 쓰려고 합니다.

그러니 결국은 훔치는 행동이 나오게 됩니다.

도둑질을 하지 말라는 말의 큰 의미는, ‘네가 사용해야 할 필요가 있으면 그만한 노력을 스스로 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유재산을 인정하느냐 안하느냐 하는 문제보다 조금 더 넓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 이렇게 기초적으로 이야기 해놓고 제가 하나하나 살펴보겠습니다.

 

어린아이가 있습니다.

어린아이라는 것은 동양에서는 '어리석다'는 개념으로 쓰입니다.

'철들었다'는 말은 뭔가 '사실을 사실대로 파악하기 시작했다'는 말입니다.

 

철이 덜 든 어린아이는 엄마, 하면 밥이 나오고, ‘엄마, 하면 옷이, ‘장난감하면 장난감이, ‘신발하면 신발이 나옵니다.

어린아이는 자기가 원하면 늘 주어진다고 생각을 하기에, ‘엄마 밥하는 데 밥 빨리 안주면 막 울어버립니다.

밥을 줬는데도 맛없으면 먹다가 말고, 새옷 입혀줘도 금방 더럽히고, 장난감도 싫증나면 다른 것 내놓으라고 합니다.

어른이 보면 참 답답하지만, 그런 애를 야단치면, ‘철없는 애가 뭘 아노, 그러니까 애지’, 이럽니다.

 

이 나이에는 부모 고마운 줄은 모르고 늘 부모에게 불평이 많습니다.

그러다가 점점 나이가 들어, 결혼을 해서 애기를 낳고 살면 달라집니다.

어릴 때 엄마 밥하면 밥이 탁 나오는 줄 알았는데, 막상 밥을 준비하려니 시간과 정성이 필요합니다.

엄마 옷할 때 옷을 주려면 빨래하고 다려야 줄 수 있는데 아이는 그 사실을 모릅니다.

그럴 때엔 제 아이라도 답답하고 철딱서니 없다는 생각이 들고, 그 때 어머니 생각이 납니다.

어릴 때엔 엄마가 나한테 해준 게 뭐가 있어!’ 이렇게 큰소리를 쳤는데,

애를 키우면서 보니까, ‘엄마가 고생 참 많이 했겠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고마움이 생깁니다.

왜 고마운 마음이 일어났을까요? 그것은 사실을 사실대로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 전에는 몰랐기 때문에 감사하는 마음이 안 일어난 겁니다.

 

사람이 철이 들면 엄마의 노고를 알고 엄마의 은혜를 알지만, 아빠에 대해서는 조금 늦습니다.

왜 그럴까? ‘할 때 밥을 주는 것도, ‘할 때 옷을 주는 것도 엄마였지 아빠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니까 훨씬 더 나이가 들고 철이 들어야 아버지가 보입니다, 아버지는 엄마 뒤에 있습니다.

내 눈에 보이는 건 밥상이고, 한참 지나야 밥상 뒤의 엄마가 보이고, 조금 더 눈을 떠야 엄마 뒤의 아빠가 보입니다.

 

우리는 보통 여기까지 알고 죽습니다, 사람이 은혜를 안다 하면 겨우 부모의 은혜를 아는 정도입니다.

우린 내 앞에 있는 밥상, 밥상 뒤의 엄마, 엄마가 활동하는 부엌까지만 보고, 그 뒤쪽은 안봅니다.

그러나 밥상을 차리는 데는 쌀, 가스, 채소, 생선, 냄비 등등 많이 필요한 데 그것들은 엄마가 만든 게 아닙니다.

 

쌀은 쌀가게에서 나온 게 아니라 농부한테서 왔습니다.

농부는 논에 물을 대고 못자리를 하고 거름주고 김매고 농약치고, 가을에 추수해서 거둔 것입니다.

또 농부가 쓰는 쟁기는 대장간에서 왔고, 대장간에서 쓰는 석탄, , 쇠붙이는 또 다른데서 왔습니다.

그들이 뿌리는 비료는 비료공장에서 왔을 거고, 농약은 또 농약공장에서 왔을 겁니다.

이렇게 다 하나하나 추적하고 따라가 보면 모든 게 마치 그물처럼 연결되어 있습니다.

처음에 나 하나는 그물코 하나이지만, 옆으로 연결 되고 연결이 되어서 이 그물이 끝도 없이 계속됩니다.

결국은 이 지구상에 사는 모든 사람이 한 그물에 얽혀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렇게 알게 되면 밥 한 톨에 이 세상 만민의 노고가 담겨있는 게 보이고,

이 옷 실타래 하나에서는 베 짜는 여인의 피땀이 보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것에, 밥 먹고 안경 끼고 신발신고 옷 입고 마이크 쓰고 차를 타고 하는 그 모든 것에,

수많은 사람의 노력이 들어있지 않는 게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럴 때 그 수많은 사람의 노고에 감사하는 마음이 드는 겁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어린아이 같아서 고마운 줄 모르고 투정을 하고 미워하고 원망하지만,

눈을 뜨고 보는 사람은, 어른이 되어 부모께 고마워하듯이, 일체 중생에 대해서 늘 감사하는 마음이 듭니다.

이렇게 한 물건에도 수많은 사람의 노고가, 엄마와 아내의 정성이 들어있는 줄 알게 되면 그것이 소중한 줄도 알게 됩니다.

소중한 줄 알게 되면 감사하는 마음이 저절로 일어나고, 아껴 쓰는 마음도 저절로 일어납니다.

 

오늘날 교육은 말로만 아껴 써라, 소중하게 여겨라, 고맙게 생각해라이렇게 가르치니 아이들도 입에 발린 소리로만 합니다.

아이가 밥투정을 하면 밥이 어떻게 해서 생기는 지,

아이가 어떤 사람을 미워하면 그 사람이 뭘 하는지를 하나하나 보여줘야 됩니다.

그러면 감사합니다’, ‘참 소중하네요’, ‘, 아껴쎠야 되겠네이런 생각이 자기 속에서 저절로 일어납니다.

 

그래서 부처님이 물건은 참 소중하다, 아껴써야 한다, 고맙게 생각해라, 평생 은혜를 갚으려고 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은 도덕적인 훈계가 아니라, 사실을 깨우치고 하신 말씀입니다.

 

자기밖에 모르면 범부라 합니다, 어리석은 중생, 범부중생이라 합니다.

부모님 은혜는 아는 수준, 이웃의 은혜까지 아는 수준이면 현인이라 합니다.

얼굴을 알거나 모르거나, 이 나라 사람이거나 저 나라 사람이거나, 모든 사람의 은혜라는 것을 알게 되면 성인이라 합니다.

 

부모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은 부모님이 집에 오시면 절하고 음식도 깎듯이 대접합니다.

만 중생의 은혜인 줄 아는 사람은, 내 가게를 찾아오는 손님이 바로 내 안경, 내 옷, 내 차를 만들어준 사람인줄 알기에 정성껏 대접합니다.

돈을 주기 때문에 대접을 하는 게 아닙니다. 돈이 중심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들이 식당을 하고 약국을 하고, 그런 사람들이 의사가 되어야 하고,

그런 사람들이 집을 지으면 살 사람을 생각해서 정성껏 지을 것이고,

그런 사람들이 자동차를 만들면 탈 사람을 생각해서 정성껏 만들 것이고,

그런 사람들이 옷을 만들면 입을 사람을 생각해서 정성껏 만들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야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는 정말 좋은 제품이 나올 수 있습니다.

지금과 같은 정신상태, 허황한 상태로는 절대 일본이나 독일 사람을 앞서갈 수 없습니다.

기술이 인간의 삶의 자세와 연결되어있기 때문에 결코 될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나라 사람들이 갖고 있는 삶의 방향, 삶의 길은 일본사람보다 덜 성실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제품도 덜 매끄럽고 야무지지가 못합니다.

우린 돈에 미쳐서 얼렁뚱땅 하는 겁니다.

멀쩡한 사람보고 거짓말 해가지고 약을 주고, 멀쩡한 사람보고 수술을 시킵니다.

? 단지 돈 벌기 위해서...

 

우리는 모든 재화는 인간의 노동에 의해서 형성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물건의 값을 인간의 노동이 얼마만큼 투여 되었느냐로 정할 수 있다고  하면 노동 가치설이 맞다고 하겠지만,

이건 눈이 아직 덜 떠졌을 때 나오는 학설입니다.

 

벼가 자라기 위해서는 지렁이가 땅에 구멍을 뚫고, 그 구멍으로 공기가 들어가고,

그 공기를 따라 갖가지 박테리아가 들어가고, 그 박테리아들이 갖가지를 분해시키고,

그것들이 식물에 흡수가 되어서 곡식을 맺습니다.

또 하늘에서는 태양이 내리 쪼이고, 바람이 불어서 곡식이 자라는 것이지, 사람들만의 힘으로 자라는 게 아닙니다.

사실은 지구상에 있는 모든 미세한 생물까지도 내가 이렇게 생존하는 데 기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나는 큰 그물의 한 조각이고, 지구상에 있는 모든 생명이, 나아가서는 저 태양··공기마저도

다 나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그게 붓다이고 깨달음입니다.

성인하고는 다릅니다.

성인은 사람의 은혜만 고마워할 줄 아는 거고,

깨달음이라는 것은 만 중생을 생각하는 것이고, 모든 것에 고마워할 줄 아는 것입니다.

 

 

(제21강에 계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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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짧은 생각 ***

 

'도둑질을 하지 말라는 말의 큰 의미 :  '네가 사용해야 할 필요가 있으면 그만한 노력을 스스로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