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의 법문/1. 실천적 불교사상

[법륜스님의 '실천적 불교사상'] 제21강 불투도계 - 두 번째

상원통사 2014. 7. 6. 21:34

(~~ 제20강에서 계속)

 

합장을 하고 따라하세요.

 

물 한 방울 속에도 천지의 은혜가 깃들어 있고,

 밥 한 톨 속에도 만민의 노고가 깃들어 있고,

 한 올의 실타래 속에도 베 짜는 여인의 피땀이 서려 있다.

 이 물을 마시고, 이 음식을 먹고, 이 옷을 입고,

 부지런히 수행정진하여,

 괴로움이 없는 사람, 자유로운 사람이 되어

 일체 중생의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이게 수행자가 가져야 할 삶의 태도입니다.

이것을 간략하게 줄여 말하면,

밥을 먹을 때도 이 음식이 내 앞에 이르기까지 수고하신 많은 분들의 공덕을 생각하며 감사히 먹겠습니다’,

차를 한 잔 가져와도, 기사가 차를 태워줘도, ‘감사합니다이런 태도를 지녀야 합니다.

 

근데 감사할 줄 모릅니다.

부모는 온갖 것을 다 바쳐서 애를 키우지만, 아이는 부모한테 불만을 갖고 사는 것처럼,

오늘 우리는 철딱서니 없는 어린애처럼 그런 모습으로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부모를 떠나 세파에 시달려봐야 부모가 고마운 줄을 아는 것처럼,

인도나 아프리카에서 헐벗고 굶주리며 사는 모습을 보면, 한국에 태어난 게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것입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괴롭다 괴롭다 하는 것은 여러분들 개인 심정과 처지에서는 다 힘들겠지만,

조금만 눈을 뜨고 보면 그건 괴로워 할 일이 아니고, 철없는 아이가 주둥아리를 쭉 내고 인상을 쓰고 사는 형국입니다.

 

농부는 쌀이 한웅큼 쏟아지면 빗자루로 쓸어 담고, 돌 사이에 있는 것까지도 하나하나 줍습니다.

도시에 사는 아들은, ‘어머니 그만 두세요. 몇 푼 된다고 그걸 쓸고 있어요.’ 이럽니다.

농사를 지은 사람은 한 톨 한 톨에 자신의 피땀이 서려있기 때문에 그건 돈으로 환산이 될 수가 없습니다.

 

여기 지금 사십대 오십대 되는 거사님들은 부산이나 서울에서 대학 나왔으니까 이렇게 서울에 살겠지요.

그때엔 아마 하숙도 못하고 다 자취하며 살았겠지요.

어머니는 자취하는 아들 생각해서 서울 나들이 한 번 갈 때면,

고추장 된장 넣고 상추 뽑고 무 배추 뽑고 쌀도 한 말 이고 지고 겨우 버스타고 갑니다.

서울에서 유학하는 아들이나 딸이 그 보따리를 보면,

엄마 이거 뭐 하러 가져와요, 몇 푼 된다고 이걸 무거운데 가져와요.이럽니다.

부모는 자식을 생각해서 온갖 정성을 기울여 들고 오지만, 자식은 그 공덕을 모릅니다.

자기 나름대로는 고생했다고 하지만, 그렇게 자란 사람들이니 세상 물정을 제대로 알 리가 없습니다.

그런 남편이 어떻게 아내의 심정을 알 수 있으며, 그런 아내가 어떻게 남편의 심정을 알겠습니까.

그렇게 자기만 쳐다보고 지지고 볶고 살면서, 그 갈등 속에 애들이 자라니 어떻게 부모 말을 듣겠습니까,

세상이 요 모양 요 꼬라지 되는 게 너무 당연한 겁니다.

 

오늘날 세상이 부정하고 부패하고, 청소년 문제가 생기고, 가정에 불화가 생기고 하는 것은 다 우리가 만든 것입니다.

우리를 떠나서 이렇게 만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요만한 애보고 물어봅니다.

너 소원이 뭐니?’                     ‘, 공부 잘하는 거요.

공부 잘해서 뭐 하려고 그러니?’    ‘좋은 대학 가야지요.

그래, 좋은 대학가서 뭐 할래?’      ‘좋은 직장에 취직해야지요.

어떤 게 좋은 직장이니?’             ‘돈 많이 버는 게 좋은 직장이지요.

 

돈 많이 버는 게 좋은 직장입니까?

하루에 똥통 열 짐 지고 십만 원 주면 돈 많이 벌었다, 재수 좋다고 안합니다.

새벽부터 일어나 십층 건물에 모래나 자갈 나르고 십만 원 주면 오늘 재수 좋다고 합니까?

근데 길가다가 십만 원짜리 수표 하나 주우면, ‘, 재수 좋다이럽니다.

재수 좋다는 말은 곧 복 받았다는 말입니다.

뭐가 복입니까? 똑같이 십만 원을 벌어도 일 안하고 받아야 복입니다.

일 조금하고 받아야 복이지, 뼈 빠지게 일하고 받으면 복이 아닙니다.

 

우리가 바라는 복, 우리가 바라는 좋은 직장이 뭡니까?

일은 조금하고 돈은 많이 받고, 일은 쉽게 하고 돈은 많이 받고, 일하는 시간은 조금 하고 돈 많이 받는 겁니다.

나쁜 직장은, 더러운 일하고 힘든 일하고 위험한 일하고도 돈은 쥐꼬리만큼 받는 겁니다.

그런 거는 서울역 앞에 가서 신문지 깔고 잠잘지언정, 하기 싫다는 게 요즘 세태입니다.

 

일은 조금하고 돈은 많이 벌려면, 이 세상의 누군가는 일은 많이 하고 돈은 조금 가져간 사람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모두가 다 일은 조금하고 돈은 많이 가져갈 수는 없습니다.

일은 조금하고 돈은 많이 가져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게 솔직하게 말해서 도둑놈 아닙니까?

그럼 좋은 직장은 도둑놈들의 집합소입니다.

출세라는 것은 우두머리 도둑놈 되는 것입니다.

정월 초하루날 부모는 자식보고 복 많이 받아라’, ‘, 어머니도 올해 복 받으세요’, 이럽니다.

달리 말하면, ‘너 올해 큰 도둑놈 돼야 돼’, ‘어머니도 올해는 큰 도둑 되십시오’, ‘그래 나도 될께’,

사주팔자 관상이 좋다는 게, 다 도둑놈 관상이고 도둑놈 팔자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지금 도둑놈을 향해서, 더 큰 도둑놈을 향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큰 도둑놈이 뭡니까? 일은 적게 하고 수입은 많고, 자기는 봉사 안하고 남 부려먹는 겁니다.

 

대통령이라는 건 어떤 사람입니까? 제일 큰 도둑놈입니다.

전두환 노태우가 몇 천억씩 쥐는 건 당연한 겁니다.

여러분들은 욕하지만, 제가 볼 때는 욕먹을 이유가 없습니다. ? 그건 너무 당연하니까...

우리들의 이상을, 우리들의 복을 그들이 대변해주고 있으니, 우리들의 우상이지 않습니까?

욕하는 사람은 뭣 때문에 욕합니까? 자기는 못하니 배가 아파서...

 

그 여자, 남편 하나 잘 만났더라이건 뭘 말합니까?

학교 다닐 때엔 못생기고, 키도 작고, 공부도 못하니, 저게 시집이나 갈까 이렇게 생각했는데,

남편 키도 크고 얼굴도 멀쩡하게 잘생겼고, 학벌도 좋고 재산도 있으니, ‘사람팔자 알 수가 없더라이렇게 합니다.

근데 그 남편 친구들은 어떨까요?

, 그 애가 공부도 잘하고 인물도 잘생기고 집안도 좋고 다 좋은 데, 마누라 복 하나는 참 없어이렇게 됩니다.

 

길가다가 재물을 주우면 횡재이지만, 그 누군가는 재물을 잃어버려서 재앙입니다.

이렇게 동전의 양면처럼 딱딱 붙어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재수 좋은 날은 누군가에게는 재수가 없는 날이고,

내가 복 받는 날은 누군가는 재앙을 받는 날입니다.

 

노름판하고 똑 같습니다.

노름판이라는 건 누군가 돈을 따면 다른 사람은 돈을 잃습니다.

그런 노름판에서는 잃는 사람이 따는 사람보다 많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세상에서는 재앙을 받는 사람이 많은 겁니다.

 

도둑질 하지 말라이 말은 이런 삶의 길을 가지 말라는 겁니다.

이런 삶의 길은 우리 인생에 갖가지 불행을 자초하게 됩니다.

그러면 이거 해결하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 거꾸로 하면 됩니다, 거꾸로...

 

일은 조금하고 돈 많이 벌겠다이게 세상에 갖가지 혼란을 초래하고 나에게 갖가지 고통을 가져옵니다.

이거 해결하려면 일은 많이 하고, 돈은 조금 받겠다고 생각을 바꾸면 됩니다.

어떻게 하면 일을 더 많이 할까, 어려운 걸 내가 할까, 위험한 걸 내가 할까, 더 많은 시간 일할까...

 

그런데 어떻게 하면 일을 안 할까, 돈만 많이 벌까 이런 생각을 하고 살면서,

서로 정상적인 경쟁하는 것도 싫어서, 총장에게 뒷돈을 주고 뒷문으로 들어가려고 합니다.

또 좀 아는 사람한테 좀 높은 사람한테 싹싹 잘 빌어가지고 눈치봐서 들어가려고 합니다.

뒷돈 주고 들어가는 게 부패, 싹싹 빌어가지고 들어가는 게 부정, 그렇습니다.

 

그러니 뭐든지 우리가 바라는 거는 다 해줄 수 있다는 사람도 있어야 되겠지요,

요렇게 요렇게 잘하면, 뒷돈 좀 대주면 해준다, 그게 신입니다.

그러니 다 신한테 빌어서 해결하려 합니다.

권력자에게는 1억 갖다 줘야 해결이 되는 데, 저기다가는 뒷돈 만원만 집어넣어도 해결이 될 거라고 믿습니다.

부처님한테는 뒷호주머니에 조금만 넣어도 해결이 될거라는 사람은 욕심이 더 많은 사람입니다.

부정부패를 저지르는 사람보다도 절이나 교회 가서 비는 사람은, 부정부패의 심리를 더 많이 갖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일리가 있습니까?

아닌가 봐, 기분 나쁘겠지요.

그럼 뭐 땜에 빕니까? 비는 게 뭡니까?

공부 못하는 아들이지마는 어떻게 좀 집어넣어 달라,

우리 남편 능력은 없지만 좀 승진 시켜 달라,

우리 아들 군대 안 가게 좀 빼 달라,

그거 말고 여기 와서 할 얘기가 뭐 있습니까?

 

이런 줄서는 데도 더 끗발 있는 쪽에 서야 합니다.

이인자가 누구냐, 삼인자가 누구냐, 잘 보고 줄을 서야 합니다.

부처님하고 누가 더 줄을 잘 대는 지, 하느님하고 누가 더 줄을 잘 대는 지 이런 걸 따집니다.

그러니까 브로커는 내가 이인자다해야 됩니다, 안 그러면 손님이 안옵니다.

그래서 다 내가 신의 아들이다이런 말이 나오는 겁니다.

그러면 또 그 밑에 내가 아들의 아들이다’, 요게 성직자라는 사람입니다.

남해 보리암이 영험있는 도량이다는 것은, 그쪽에 가서 뒷돈 대면 아주 빨리 간다는 겁니다.

갓바위가 영험있다’, 거기 가서 돈 대면 확실하다, 그러나 두 건은 안 봐주고 한 건만 확실히 봐준다고 그럽니다.

 

중간에서 사기치는 브로커들 보면 다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대통령 아들이다하든지, ‘육촌 동생 된다라고 하는 지,

폼 잡고 다니려면 차도 좋은 것 타고 다녀야 되고, 사무실도 그럴듯해야 되고,

인물도 멀쩡해야 되고, 목소리도 뭔가 좀 틀려야 되고...

 

이 또 다른 사기꾼들은 자기 직업을 성직자라 합니다,

성직자란 중간에 안 떼어 먹는다는 말입니다.

옷도 좀 다르게 하든지, 목에 허연 거 하든지, 회색을 입든 지, 머리를 깎든 지,

뭔가 좀 이상한 걸 해야 누가 봐도 아들 같다든지, 손자쯤 되겠다든지,

우리하고는 좀 다르다는 생각이 들어야 속을 것 아닙니까?

똑 같으면 누가 속겠습니까, 지가 직접 줄 서면 되지 대행자가 왜 필요합니까?

 

이런 걸 보고 종교가 타락했다, 정부가 타락했다, 교육이 타락했다, 정치인이 타락했다, 기업가가 타락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여러분들은 마치 자기하고 상관없는 것같이 이야기 하는 데, 그 사람들이 왜 타락합니까?

여러분들의 요구를 들어주려고 하다보니까 그렇단 말입니다.

여러분들이 헛된 욕심이 있으니까 사기꾼이 있는 겁니다.

 

지 꼬라지도 모르고 검사 부인되거나 판사 부인 되겠다 하니까,

사법연수원에 다닌다는 멀쩡한 남자가 나타나고, 그래 몸도 주고 돈도 주고 이런 일이 생깁니다.

왜 곗돈 떼어먹는 사기꾼이 생깁니까, 그들은 은행보다 이자를 많이 준다고 합니다.

여러분들이 같은 돈에 이자를 많이 받고 싶으니 그런데 갖다 주잖아요.

내가 누구 돈 사기쳐 먹으려면 이자를 많이 주면 됩니다, 그건 너무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 중간 브로커끼리 경쟁을 할 때는, 싸울 때는 겁이 납니다.

몽둥이 들고 싸우는 것은 너무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판은 절대로 안 깹니다,

정치인도 판 안 깨고, 종교인도 싸우지만 판은 안 깨고, 깡패도 절대로 판은 안 깹니다,

왜 그럴까? 완전히 판을 깨버리면 설자리가 없어지거든요.

자기들 이해가 부딪히면 싸우지만, 그게 손님들이 눈치 챌 정도가 되면 금방 딱 멈춥니다.

저렇게 물고 차고 싸우니까 저 사람들은 서로 원수 되겠다하지만 절대로 아닙니다,

다 저녁에는 돌아가서 한 잔씩 먹고 악수하고 그럽니다.

깡패도 싸우고 나서 악수하고, 정치인들도 철천지 원수같이 싸워도 이튿날 보면 당을 이쪽으로 옮기고 저쪽으로 옮깁니다.

 

세상이 이렇게 움직이는 원인은, 우리들의 이러한 헛된 생각이 바깥으로 드러나 모여서,

둘이 열이 백 명이 모여서 허상화 된 게 이 세상의 구조입니다.

거기서 그런 종교가 생기고, 여기서 이런 정치가 생기고, 저기에 저런 제도가 생깁니다.

그런데 여러분들 누구한테 손가락질합니까?

그러니 세상이 이런 거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사시든지,

조금 개선이 되어야 되겠다 생각하면 나부터 삶의 길을 조금 바꿔야 됩니다.

안 그러고는 절대로 다른 해결책은 안 나옵니다.

 

많이 일하고 적게 소비하라

도둑질 하지 말라하는 것은 이러한 인생의 길이 우리들을 행복하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행복해 질 수 있을까요?

일은 많이 하고 돈은 적게 받으려 하고, 생산은 많이 하고 소비는 적게 하려고 하면,

저절로 교통정리가 되고, 서로가 고마운 줄을 알게 됩니다.

 

일은 많이 하고 그 댓가를 받지 않는 것을 봉사, 자원봉사라 합니다.

자원봉사하는 사람을 불교에서는 보디사트바(Bodhisattva, , 보살)라 합니다.

우리는 내 고통도 해결을 못해, ‘부처님, 이것 좀 해결해주세요, 스님 이거 어이합니까이러는 데,

관세음보살이나 보디사트바는 자기 일은 놔놓고 어디 아프니, 무슨 일인데?’ 하면서 늘 찾아다닙니다.

내 일 좀 해결해주세요하면서 갖다 바치는 중생은 죽을 때까지 괴로워 죽는다 그러고,

무슨 일인데?’ 이러면서 매일 찾아다니며 해결해주는 해결사는 괴롭단 소리 한 번도 안합니다.

해결해주세요하는 것은 죽을 때까지 종노릇 하는 사람이고, 해결해주는 사람은 주인입니다.

뭐 해 주세요이게 어린애고, ‘왜 그러니이게 어른입니다.

중생이라는 것은 어린애이고 붓다라는 것은 어른입니다.

 

그 다음에,

나는 필요없다고 하는 데 자꾸 돈을 줍니다.

나를 있게 해주신 분이기에 고마워서 식사대접을 했더니 가면서 돈을 주고 갑니다.

하도 머리 아프다고 해서 약을 줬는데 돈을 주고 갑니다.

그냥 두세요해도, ‘무슨 말씀을요’, 이러면서 돈을 주고 갑니다.

그렇게 싫다는데도 자꾸 주어서 모이는 데, 그 돈들을 바다에 빠트려야 될까요?

아닙니다, 여기저기 필요한 사람이 많으니, 그 필요한 사람에게 주면 됩니다.

이것을 보시라 합니다.

 

보시하고 봉사하라,

즉 재화를 가지려고 하는 게 아니라 필요한 사람에게 주려 하고,

노동을 안 하려는 게 아니라 자발적으로 하려고 하는 겁니다.

타인의 괴로움을 덜어주려고 봉사하는 사람이 사회에서 필요하고,

어려운 사람에게 재화를 조금이라도 나눠주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을 훌륭한 사람, 좋은 사람, 우리 사회에 꼭 있어야 할 사람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여러분도 다 그런 사람이 좋다고 하면서도 자기는 그렇게 되기가 싫어합니다.

또 그런 일은 조금 해놓고 많이 했다고 합니다.

못된 일은 많이 해놓고 조금밖에 안 했네요이럽니다.

우리는 지금 이렇게 뒤집어 살고 있습니다, 거꾸로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이것을 전도몽상이다 이렇게 말합니다.

 

 

(제22강에 계속합니다~~)

 

이 강의는 '정토회 > 정토TV > 법문 보기 > 실천적 불교사상'에서  동영상으로 볼수 있습니다.

 

 

*** 짧은 생각 ***

 

우선 나부터 바뀌어야 됩니다.

3%씩만 바뀌면 세상이 달라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