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의 법문/1. 실천적 불교사상

[법륜스님의 '실천적 불교사상'] 제19강 오계 - 세 번째

상원통사 2014. 6. 23. 23:17

(~~ 제18강에서 계속)

 

다음은 계()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우리는 계라고 하면 벌써 고리타분한 소리한다이렇게 느낍니다.

계율같은 게 복잡해서 불교가 오히려 안된다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계를 우리가 어떻게 접근해야 되는 지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오계 가운데서 맨 끝에 삿된 소견을 갖지 마라는 계가 있습니다.

이것이 나중에는 술 먹지 말라로 바뀌었습니다.

 

이라고 할 때 술은 뭘 상징할까요, 바로 중독성입니다.

뭔가에 중독이 되면 내가 주인이 아니라 종이 되는 겁니다.

내가 통제가 안 되고 거기에 얽혀 매어서 거기에 끌려 다니는 게 중독입니다.

술에 중독이 되면 술이 시킨 대로 합니다.

위에 구멍이 났는데도 술이 더 먹어하면 알았습니다.’ 하고 목숨 걸고 먹습니다.

마누라, 저거 때려버려하면, ‘알았습니다.’

길가는 여자를 보고 저거 껴안아버려하면, ‘알았습니다.’

술 먹으면 온갖 짓 다합니다. 왜 그럴까? 술이 시킨대로 하니까.

중독이 된다는 것은 그거 없으면 못살고 그거 시킨 대로 따라하고,

이 세상의 가치기준이 그것이 시킨 대로 하느냐 안하느냐가 되는 겁니다.

 

중독되는 것은 술만 있는 게 아니라, 담배, 아편, 히로뽕, 마리화나등 많이 있습니다.

술이란 중독되는 것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 중독되는 것에는 중독성 물질만 있는 게 아니고 중독성 문화도 있습니다.

술 먹을 때 누가 와서 가자고 하면 안갑니다.

노름에 중독된 사람이 노름할 때 마누라가 찾아오면 성질냅니다.

연속극에 푹 빠져 보고 있을 때, 누가 전화하거나 누가 뭐라 그러면 신경질 냅니다.

모두 다 거기에 중독이 돼있다는 겁니다.

 

중독성 물질이나 불건전한 문화를 즐기지 말고 항상 깨어 있어라.

술을 먹지 말라는 말은 중독성에서 벗어나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중독되는 것들이 엄청나게 많은 데 왜 술 한 가지만 이야기했을까?

술은 부처님 계시던 당시에도 큰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열 몇 살 만 되면 벌써 술 먹고 기생하고 놀고 즐기고 이랬습니다.

그 술이 지금도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됩니다.

미국에서 인디언과 에스키모인들은 알코올에 중독이 되어 멸종위기에 있습니다.

일을 안해도 돈을 공짜로 주니, 하는 일이라곤 술먹는 일 말고는 없습니다.

총 쏘아 죽여서만 민족을 말살시키는 게 아닙니다.

 

만약 부처님께서 요즘 한국에 왔으면 무슨 얘기 했을까?

아마 한국에 왔어도 술 얘기 했을 것 같습니다.

러시아에 갔으면 술 얘기가 틀림없을 거고, 미국에 갔으면 술하고 마약 얘기일 겁니다.

 

부처님 그 당시의 인도에서는 가장 심각한 게 술이었고, 그 다음이 춤추고 놀고 하는 가무였습니다.

그러니까 그 당시에 가장 큰 문제였던 술을 중독성의 상징으로 표현한 겁니다.

이 중독성에는 물질적인 것도 있고 정신적인 것도 있습니다,

정신적인 기준으로 해석하면 술 먹지 마라는 것은 불건전한 문화를 즐기지 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말라고 그랬을까요?

술은 반 모금 마실 수도 있고 열 병 스무 병 마실 수도 있는 데, 얼마나 먹어야 계율을 어긴 것이 될까요?

또 술은 1도짜리 송주부터 4050도짜리 독주도 있는데, 몇 도짜리부터 술이라 칭할 수 있을까요?

간단히 생각하면, 술을 먹으면 어겼고 안 먹으면 안 어긴 것이지만,

조금 더 깊게 생각하면 얼마나 마셔야 어긴 것이고 얼마나 독한 술을 먹어야 어긴 것인가,

이렇게 계율을 어겼다, 안 어겼다 결정내기가 어렵습니다.

어떤 게 어긴 거고 어떤 게 안어긴 걸까요? 엄밀히 구분하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술을 먹지 말라고 하신겁니다.

술을 먹되 취하지 말라그러면 어디쯤이 취한 거고 어디쯤이 안취한 겁니까?

그러니까 단정적 표현, ‘하지 말라하는 표현을 쓴 겁니다.

 

술을 먹지 말라 했으니까 술을 입에도 대면 안 되겠네요’, 이렇게 생각한다면 여러분들은 한쪽에 치우쳐있는 겁니다.

그럼 조금은 먹어도 되겠네요’, 이렇게 생각해도 한쪽에 치우쳐있는 겁니다.

술은 공하다는 것은 존재의 본질이고, 술이 공한 것이니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닙니다.

그러니 먹지마라 먹어라 할 것도 없습니다.

갈증날 때 시원한 맥주 한 잔 먹고서도 털끝만큼의 변화도 없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술을 안 먹은 사람이겠지요.

그러니 술은 문제가 아닙니다. 중독성, 취하는 게 문제입니다.

 

기분이 억수로 나쁘네, 한 잔 먹자’, 이래서 한 잔 먹은 것 하고,

친구 생일 파티에 가서 건배!해서 한 잔 했을 때하고, 어떤 게 더 중독성에 가까울까요?

 

사실 여러분들이 술 담배 하는 것이 뭐 그리 큰일이겠습니까?

하지만 건강에 나쁜 줄 알면서도 못 끊는, 그 정도 습관도 자기가 조절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모든 업장을 버리고 해탈하고 부처가 될 수 있겠습니까? 가망성이 전혀 없는 얘기입니다.

술 담배가 무슨 특별히 죄가 있어서 문제 삼는 게 아닙니다.

 

그럼 커피는 어떨까?

절에까지 와서 찬장을 다 뒤지면서 커피 찾는 사람도 있습니다.

미국 사는 교포 중에는 아침에 커피를 한 잔씩 안마시면 머리가 안돌아간다는 사람도 많습니다.

커피를 안 마시면 알콜중독에 걸린 사람같이 손이 떨리는 증상을 가진 사람도 많습니다.

이 사람들도 중독성이지요

그럼 차는 고상한 우리 문화니까 괜찮은 것일까? 아닙니다.

무엇이든지 습관성이 있고, 습관성이 통제가 안 될 정도로 되면 중독이 되는 겁니다.

그것이 완전히 자기 속에 자리 잡으면 업장이 되고, 그러면 우리는 업장에 끌려서 사는 겁니다.

이렇게 여러분들은 업에 끌려서 살아가는 데, 자기가 지금 업장에 끌려서 살아가는 줄도 모릅니다.

 

여러분들 지금 술하고 담배 이런 데만 중독된 줄 압니까?

이것은 중독 된 사람도 있고 안 된 사람도 있으니까 그래도 쉽게 알아듣습니다.

여기 우리 모두 다 중독된 게 있는 데 뭘까요? 바로 입니다.

얼마나 중독이 되었으면 돈이 우리 이 세상의 주인이다’, 이런 주의가 나왔겠습니까?

자본이 주인인 이념사상, 돈이 주인인 세상이 자본주의입니다.

다른 것은 중요한 가치가 아닙니다,

거기에 우리 모두가 중독되어 있습니다.

근데도 지금 중독된 줄 잘 모릅니다.

? 우리 모두 다 중독되어 있으니까....

 

나만 그런 게 아니고 다른 사람이 다 되어있으니 세상이 본래 이런 줄 압니다.

그런데 우리가 부처님을 생각해보면 부처님은 돈에 중독이 안 된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거나 사람 대하는 걸 볼 때, 돈이란 별로 기준이 안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린 모든 것의 기준이 거기에 있습니다.

잘사는 것 기준도 돈이고, 사랑의 기준도 돈이고, 좋은 부모의 기준도 돈입니다.

 

우리나라 대통령이 정치 잘 한다 못 한다, 이 기준도 돈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몇 십 년을 민주화 운동을 해놓고, 지금 하는 짓은 돈 문제만 해결하려고 저리 날뜁니다.

다른 사람은 다 좋게 생각할 줄 몰라도 제가 볼 때는 한물 간 사람입니다.

국민의 가치 기준을 경제만 회복되면 마치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된 것처럼 그렇게 몰고 간단 말입니다.

본인이 이제까지 닦아오고 쌓아왔던 민족·인권·평화문제들을 갖고도 얼마든지 우리 국민에게 큰 희망과 행복을 줄 수 있는 데,

돈에 중독된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려니까 자기도 같이 물든 겁니다.

 

우리가 돈에 얼마나 물들었는지 압니까?

술 한 잔 받아주면 투표 다 해주고, 돈봉투 좀 주면 대통령도 찍어줍니다.

돈만 벌어줄 수 있다면 전쟁 중이라도 여보, 월남 좀 갔다 오세요’, 죽어도 좋다 이겁니다.

근데 부모는 자식을 돈을 기준으로 두고 보지 않습니다.

자식이 돈 벌러 월남 간다 그러면 부모는 반대하지만, 마누라는 대찬성입니다.

 

하도 자식이 박대하니까 가진 재산 다 넘겨줘버리고, 아무 것도 없이 고생하고 있는 노인에게 누군가 조언해주었습니다.

신문지를 돈처럼 잘라 보따리에 싸서, 늘 베고 자고, 깨어나면 이불 밑에 넣어두고, 자식이 오면 숨기고 이렇게 하라고 했답니다.

그래 그때부터는 가만히 있다가도 자식이 들어오면 뒤에 숨기고, 잘 때도 베고 자고, 절대 안보여 주었더니,

며칠 지나니 자식들의 태도가 확 달라지고 대우가 아주 극진해졌답니다.

이런 얘기가 나오는 세상이니, 돈이 곧 주인이지요?

 

절에도 다 돈이 주인입니다.

큰 신도의 기준이 뭡니가? 돈 많이 내는 것이 곧 큰 신도입니다.

 

이것은 돈이 필요없다이 얘기하고는 다른 겁니다.

돈은 필요 없는거다’, ‘술이 필요 없다이런 얘기 하는 게 아닙니다.

이미 거기에 중독이 되어서 다른 모든 사물을 보는 눈이 이렇게 망가져 있는 상태라는 겁니다.

그런 것들에 우리 다 같이 중독이 되어있으면 안 보인다는 말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을 우리가 중독된 눈으로 보면, ‘아이구, 이러고 어떻게 살았나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정신을 조금만 차리고 가만히 들어보면 그분의 이야기가 옳은 것 같아요,

적어도 저는 그렇습니다.

 

계율에 대해서 자세한 건 다음에 더 계속하도록 하고,

불해 (不害) 한 번만 더 읽겠습니다.

 

"사람의 생각은 어디로나 갈 수 있다,

 그러나 어디로 가든 자기보다 더 소중한 것은 찾아볼 수 없다,

 그와 같이 다른 사람에게도 자기는 더없이 소중하다,

 그러기에 자기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해쳐서는 안된다."

 

 

이 강의는 '정토회 > 정토TV > 법문 보기 > 실천적 불교사상'에서  동영상으로 볼수 있습니다.

 

 

*** 짧은 생각 ***

 

재가(在家) 신도가 지켜야 할 다섯 가지 계율(五戒)

-. 불살생계(不殺生戒) : 살아 있는 것을 죽이지 말라.

-. 불투도계(不偸盜戒) : 훔치지 말라.

-. 불사음계(不邪婬戒) : 음란한 짓을 하지 말라.

-. 불망어계(不妄語戒) : 거짓말하지 말라.

-. 불음주계(不飮酒戒) : 술 마시지 말라.

 

난 다섯 번째 계율때문에 불교도 되기는 틀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