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의 법문/1. 실천적 불교사상

[법륜스님의 '실천적 불교사상'] 제23강 불사음계

상원통사 2014. 7. 28. 22:59

오늘은 오계(불교의 가치관) 중 세 번째, ‘삿된 음행을 하지 말라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세 번째 계율 : 삿된 음행을 하지 말라(不邪淫, 불사음)

일체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그 실상은 공한 것이다. 즉, 텅 비어있다.

그래서 그 자리에는 옳은 것도 없고 그른 것도 없다, 선도 없고 악도 없다.

이렇게 가르치는 불교에서 남녀 연애문제를 갖고 잘했니 못했니, 죄를 지었니 안지었니 하겠습니까?

적어도 다섯 가지 큰 새로운 가치관을 제시하는 데 그게 될 수는 없겠지요.

그러니까 삿된 음행이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생각해봐야 됩니다.

이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역시 역사적인 상황부터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2600년 전, 부처님이 출현하신 당시 인도에서 여자는 사람으로서의 대우를 못 받았습니다.

여자는 남자에게 종속되어 있는 부속물, 이해하기 쉽게 지금의 애완용 동물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애완용 동물은 반드시 주인이 있어야 합니다.

주인이 없이 길거리 돌아다니면 아무나 주워가는 게 임자입니다.

그런 사회적 분위기에서 부처님은 여자에게 자기 이름을 갖도록 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비구니로 인정하신 것, 여자 수행자로 인정하신 것입니다.

 

당시 인도는 계급이 철저한 사회였습니다.

수행자는 브라만(승려)만 가능하다가, 그다음에 크사트리아(왕족)에게도 허용되었습니다.

부처님도 왕족이니까 수행자가 되는 데는 좀 자격이 부족한 사람이었지요.

천민은 수행자가 될 수 없었지만, 간혹 천민출신의 남자 수행자가 있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여자수행자라는 것은 있을 수도 없습니다.

아직도 카톨릭에서 여자는 신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가 갈겁니다.

 

부처님은 천민의 남성을 수행자로 받아 들였습니다.

이것은 계급의 부정이었습니다. 네 개의 계급에 대한 부정이었지요.

그것보다 더 어려운 게 뭐였을까요?

여자를 수행자로 받아들이는 것이었습니다.

이건 정말 일대 혁명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냐 하면, 부처님께서는 여자를 수행자로 받아들였지만,

몇 백 년이 지나니까 슬그머니 비구니 제도가 없어져 버린겁니다.

지금 남방불교에는 비구니가 없습니다.

 

흔히 여성해방 운운하지만 여성해방의 원조는 부처님이었습니다.

그리고 부처님의 어머니(마하프라자파티 왕비), 부처님의 아내(야소다라 공주)를 비롯한 500 여인들이 이걸 해냈습니다.

사실은 여인들이 출가하겠다 할 때 부처님은 두 번이나 거절하고 다른 도시(바이찰리)로 가버렸습니다.

그러자 집밖에도 못나가는 500 여인들이 스스로 머리채를 잘라버리고 맨발로 걸어서 바이찰리까지 따라온겁니다.

 

아난존자 : 부처님, 여자는 수행하면 깨달을 수가 없습니까?

부처님    : 깨달을 수가 있지.

아난존자 : 부처님이시여, 저기 500 여인들이 출가를 원해서 이곳까지 왔습니다.

부처님    : 그 여인을 출가 시켜라.

이렇게 해서 비구니가 생긴겁니다.

 

당시에 반대도 많았고, 또 출가한 후 그 말썽도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해탈이라는 것은 일체의 두려움을 놔버리는 것이니까,

여자들도 다 떨어진 옷 입고 온몸 드러내놓고 나무 밑에 앉아 있다가 성폭행을 당하고,

이게 내 몸이다 하는 생각을 놔버려야 해탈할 수 있으므로,

몸에 대한 집착이 없이 아무 냇가에서나 목욕하다가 또 당합니다.

이런 걸 볼 때, 여러분들은 공부해봐야 해탈하기가 좀 어렵습니다.

그건 여자의 몸이기 때문이 아니라 여러분은 자신의 몸에 집착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 사건들이 있었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여성 수행자들은 울타리를 쳐놓은 안에서만 목욕을 해라,

여성 수행자들은 독립적으로 모여살지 못하고 반드시 비구의 주위에 있어라,

이런 여덟 가지 조건을 붙여서 출가를 허락했습니다.

오늘의 시각에서 보면 여성 차별론에 해당되겠지만, 이것은 당시 사회적인 여러 문제에 대한 대응이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여자를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던 사회에서 출가를 허락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출가를 허락했다 하더라도 자기 주체성이 뚜렷하지 않다면 해탈하기 어렵습니다.

여러분 죄는 아니지만 여러분들이 갖고 있는 업이 그런 한은 해탈하기는 좀 어렵습니다.

우리가 보통 말하는 여자답다 하는 것은 아양떨고 귀엽고 종알대는 어린애 같은 성품을 말합니다.

어머니같은 성품이란 어른 성품입니다.

그런 어린애같은 성품이 딱 떨어져야 해탈합니다.

그러니 해탈할 생각 마세요.

 

주인이라는 것은 일체의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적어도 주인이 되려면 마지막으로 극복해야 될 가장 큰 수행의 난관이 그 몸에 대한 집착입니다.

앞으로 우리 여성 중에서도 장부다운 사람이 나오겠지요.

장부라는 것은 남자를 뜻하는 게 아닙니다. 장부라는 것은 주인이라는 뜻입니다.

 

사람을 도구화하지 말고 인격으로 대하라(인권존중)

삿된 음행을 하지 마라’, 이 말은 인간을 인간으로서 대하라는 말입니다.

사람을 인격으로 대하라, 어떤 수단으로 대하지 마라는 말입니다.

부처님 당시에 인간이 수단화되어 인격적으로 대우 못받은 대표적인 케이스가 여자였습니다.

그러니 그 당시 사회에서 이 계율은 거의 남성에 해당되는 계율이었습니다.

지금은 이게 남녀 공히 해당되기는 하지만, ‘아직도 여성을 위한 계율이다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보면 이 사회는 여자만 이렇게 도구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노동의 도구가 되는 경우도 많고, 전쟁의 도구가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독일제국 시대에는 남자는 전부 무기였습니다.

모든 독일여성들에게 아들 많이 낳으라고 했으니, 그때의 여인들은 병기공장이었지요.

일제시대 때 일본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을 자기 국민처럼 보지 않았습니다.

일하는 데 필요하면 가축을 데려다가 부려먹듯이, 우리를 세 가지로 끌고 가서 부려먹었습니다.

여성들은 끌고 가서 성적 노리개로 써먹고 폐기처분했습니다. 이게 정신대입니다.

젊은 청년들은 끌고 가서 병사로 써먹었습니다. 이게 학도병입니다.

나이든 장년들은 끌고 가서 탄광촌에서 노동의 도구로 써먹었습니다. 이게 징용입니다.

그러니까 성적 쾌락의 도구로, 전쟁의 도구로, 또 노동의 도구로....

이게 다 삿된 음행에 속합니다.

 

그러면 그 몸을 청정하게 한다는 것은 뭘 말할까요?

스스로 여러분들이 몸을 그렇게 팔아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여자가 돈 받고 몸을 팔아서는 안되는 것처럼,

여러분들이 돈 몇 푼 받고 노동의 도구로 팔아도 안되고, 돈 몇 푼 받고 군대에 몸을 팔아도 안됩니다.

그것이 스스로 청정성을 지키는 것이고 또 우리는 사람을 그런 용도로 사용해서는 안됩니다.

 

여러분들은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이루어져야 됩니다.

부부의 사랑이라는 것도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어야 됩니다.

그럴 때 바로 사음하지 않는다 하는 계율을 지키는 것입니다.

 

제 스스로가 사음하거나,

남에게 음행을 시키거나,

수단을 써서 음행을 하거나,

음행을 방관하거나 즐기지도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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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짧은 생각 ***

 

글자를 글자 그대로 해석하지 않고 거기에 숨은 뜻을 밝혀주시는 법륜스님은 정말 대단합니다.

성경도 좀 그렇게 적극적으로 해석해주는 신부님들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