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의 법문/1. 실천적 불교사상

[법륜스님의 '실천적 불교사상'] 제25강 불음주계

상원통사 2014. 8. 10. 20:30

다섯 번째 계율 : 술을 먹지 말라(不飮酒, 불음주)

 

술을 먹지 말라’, 이건 지난번에 말씀 드렸지요.

부처님은 술 그것 한 잔 먹었나 안 먹었나, 이런 것 갖고 이야기 하실 분이 아닙니다.

술이란 정신을 흐리게 하는 것과 중독성 문화를 상징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문화는 전부 중독을 들이는 문화입니다.

중독이 되면 창조성이 결여되고 주인의식이 사라지게 됩니다.

깨달음이라는 것은 바로 주인의식을 심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이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 그랬습니다.

하늘 위 하늘 아래, 이 우주에서 자기가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깨달음의 길입니다.

 

우주의 주인이 되고, 신의 굴레도 발로 그냥 차버리고, 왕의 굴레도 차버리라 했는데,

담배에 중독이 되어 기를 못 펴고 거기 짓눌려가지고 살아서야 되겠습니까?

담배를 계속 피우실려거든 생각을 똑바로 하십시오.

이까짓 것!하고 탁 튕겨버리든지, 안 그러면 담배를 그냥 피우세요.

죽는다이래도 피우세요.

암 걸렸다 하면, '담배를 그 많이 피웠는데 암 안 걸리겠어?', '일찍 걸려야 될 일인 데 이제 걸렸나?'

4년 남았다고 하면, '이정도 피웠으면 1년밖에 못 살 텐데 아직도 4년이나 남았네!'

그렇게 생각할 자신이 있으면 피우는 건 죄가 안 되고 업도 안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후회를 합니다.

내가 담배를 피워 그 연기로 인해서 가족이 병 걸렸다, 내가 병 걸렸다, 눈물을 흘리고 후회합니다.

 

도둑질도 하고 싶으면 하십시오.

TV에 나와서도 고개 숙이지 말고 뻔뻔하게 드러내세요,

'도둑질하면 나같이 되니, 여러분들은 앞으로 이러지 마십시오'

감옥에 가서도, '남이 평생 벌어 놓은 걸 훔쳤는데, 십 년도 안 살고 나가면 말이 되겠나',

이렇게 편안하게 받아들인다면 도둑질해도 괜찮습니다.

 

불교는 윤리 도덕을 가르치는 게 아닙니다.

그것을 왜 하지마라고 하느냐면,

지금 하면서도 괴롭고, 나중에 괴로움의 씨앗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하려거든 그 과보를 받을 줄 알아야 합니다.

 

부처님은 쫀쫀하게 알콜 도수나 따지거나, 한 잔 먹으면 되고 두 잔 먹으면 안된다는 이런 얘기 하실 분이 아닙니다.

천하를 두고 논하시는 분이 무슨 그런 얘기 하시겠습니까?

바로 이런 중독성 물질, 중독성 문화는 깨달음의 길에 엄청난 장애가 됩니다.

우리가 자기 정신을 잃어버리고 자아 상실이 되니까, 제 정신을 못 차리니까 못하게 하는 겁니다.

 

담배 피우거나 술 먹는 사람들을 한 번 관찰해 보십시오.

글 쓰는 사람을 보면, 글이 잘 안 써질 때 빼뭅니다.

말하다가 안 되면 빼물고, 뭐가 안 나오면 빼물고, 화가 나면 빼뭅니다.

그건 가슴이 답답하다는 것이고, 답답한 것을 물질로 해소하려고 그러는 겁니다.

그런 것하고 관계없이 그냥 밥 먹고 나서 심심해서 껌 한 개 씹듯이,

그냥 심심해서 한 대 피우고 싶으면 피워도 됩니다, 습관성이 안 된다면...

 

아무도 없는 데서 혼자 담배 피우는 것은 타인에게는 별 문제 없지만,

좁은 방에서 피우는 것은 나에게도 타인에게도 해가 됩니다.

자기 기호에 맞다고 타인을 고려 안하는 이 자체가 이기심입니다.

그런 이기심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깨달음의 길에 들겠습니까?

담배나 술이 문제가 되는 게 아니라, 그 담배·술에 임하는 자세가 해탈의 길과는 먼 것입니다.

 

어떻게 끊습니까?이렇게 묻지 마시고, 그냥 안 피우면 됩니다.

각오를 하면 안 되고, 그냥 가볍게 생각해야 됩니다.

인생은 각오할 만한 가치가 없습니다.

수행하는 사람은 각오를 해야하는 줄 아는 데, 각오한 사람은 오래 못갑니다.

 

금기로 받아들이지 마십시오, 금기로 받아들이면 괴롭고 오래가지 못합니다.

가볍게 받아들이십시오.

오늘 안 피우고도 오늘 하루 잘 산다면, 내일 하루 또 잘 살 수 있습니다.

'평생 수행한다' 이런 생각 하지 마십시오.

오늘 하루 지나면 오늘이 잘 지났듯이, 내일 하루도 잘 지나면 됩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모여서 평생이 되는 겁니다. 

부부도 살면서 이 분하고 오늘 하루만 잘 산다이렇게 생각하시면 평생 잘 살 수 있습니다.

평생을 생각하기 때문에 오늘 하루를 잘 못 사는 겁니다.

오늘 하루면 봐줄 수가 있는 데, 평생 살 걸 미리 생각하니까 봐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개차(開遮): 계를 지키는 것은 자연스러움이다

계율을 지키는 데는 개차법이라는 게 있습니다.

사람이 서면 가랑이가 오므라지고, 앉으면 자연스럽게 벌어집니다.

그것을 열 개자 닫을 차자를 써서 개차(開遮)법이라고 합니다.

계를 지키는 것은 이처럼 자연스러움이다 이겁니다.

 

계율을 지킴으로써 지켜지는 것이 있고 파함으로써 지켜지는 것이 있다 

사람이 물에 빠져 살려달라고 아우성인데, 구하려면 작대기나 줄이 필요합니다.

내겐 아무 것도 없기에 옆집 가서 빌리려하는데 마침 주인이 없습니다.

작대기를 그냥 가져오면, ‘주지 않는 남의 물건을 갖지 말라했으니 불투도계를 어기는 게 됩니다.

내가 사람을 빠트렸으면 계율을 어긴 것이지만, 혼자 빠졌으니 모른 체 해도 계율을 어기는 것은 아닙니다.

건져주면 복은 되겠지만 안 건져줬다 해서 죄가 될 것은 없습니다.

 

이런 경우에 계율에 어긋난다고 작대기를 안 가져오는 사람을 우리는 '소승'이라 합니다.

이럴 때는 계율을 어기더라도 작대기를 가져와서 사람을 건져야 합니다.

그러나 주인 입장에서는 작대기가 없어진 것만 본다면 화가 날 것입니다.

먼데서 오다가 봤으면 도둑놈 잡아라하고 쫒아 오겠지요.

그것은 명백하게 도둑이기에, 승려자격을 박탈당하고 그걸로 인해서 감옥 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보살(菩薩, Bodhisattva, 보디사트바)은 그걸 즐겁게 받아들입니다.

사람 살리려고 한 일인데 내가 왜 죄가 있느냐?’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내가 감옥에 가서 일 년 살고 사람 목숨 하나 살릴 수 있다면 기꺼이 하겠습니다라고 합니다.

사람을 하나 살리는데, 도둑 누명을 쓰거나, 일 년간 감옥가는 정도는 이미 감수하고 하는 일입니다. 

대승보살은 이럴 때 '계율을 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렇게 말합니다.

대승보살은 과보를 두려워하지 않는 겁니다.

 

지장보살은 자진하여 지옥에 갔습니다.

지옥에 가면 몸이 괴로울 줄을 알지만, 알면서도 지옥의 불구덩이에 뛰어 듭니다.

거기에 있는 고통스러운 사람을 건져 내기위해, 누가 보내는 게 아니라 스스로 간 것입니다.

자기가 선택해서 갔으니까 그 사람한테는 그게 괴로움이 아닙니다.

 

화엄경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보살에게 있어서의 정토란 이미 완성되어 있는 세계가 아니라, 완성을 향해서 보살이 활동하는 국토다.’

보살에게는 이 사바세계가 다 정토입니다.

여러분들도 이렇게 마음을 내시면 이곳이 정토가 되고 여러분들이 보살이 되는 겁니다.

 

계율의 의미를 이해하시겠습니까?

계율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기에 지키는 게 옳습니다.

그러나 계율을 지키는 것만을 능사로 삼으면 어느덧 계율을 깨트려 버리고,

계율을 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이미 계율을 파해버립니다.

계율은 능히 지키되 계율을 파하는 것마저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중생을 더 이롭게 할 일이 있을 때엔 희생도 해야 합니다.

쥐를 죽여야 할 필요가 있다면 죽이되, 살생의 과보는 받을 각오로 해야 합니다.

가축을 잡아 그 살코기를 먹었거든, 두 배 세 배로 더 좋은 일을 할 생각을 해야지,

이미 먹은 음식을 손가락 넣어 토한다고 계율을 지키는 게 아닙니다.

비행기를 탔을 때 기내식으로 고기가 나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일반 식당에서는 안 먹으면 재사용이 되지만, 거기서 안 먹으면 쓰레기통으로 갑니다.

이런 경우에는 겉으로만 보고 계율을 논해서는 안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걸 핑계 삼아서 맛에 집착해서 먹어서도 안됩니다.

 

십여년 전, 대구 법당에서 법회를 마치고 신도님들과 한 상에 둘러앉아 밥을 먹으며 나눈 이야기입니다.

보살 : 우리 스님 같은 분이 대구에 와서 법문을 해주시면 얼마나 좋을까!

법륜 : 대구스님들은 어떤데요?

보살 : 대구스님들은 청정하지 못해요.

법륜 : 어떤 게 청정하지 못합니까?

보살 : 대구스님들은 고기도 먹고 그럽니다.

(마침 밥상을 보니 멸치 한 접시가 있어, 젓가락으로 콱 집어 한 입에 넣고는)

법륜 : 멸치 한 젓가락 입에 들어가기 전하고 후하고 어떻게 달라졌는데요?

 

하라고 하는 공부는 안하고 이렇게 쓸데 없는 생각이나 하니까 불교가 제대로 안됩니다.

그런 각도에서 법륜스님을 칭찬한다면 그건 아무런 도움이 안되는 겁니다.

누구를 숭배하려고 하지 말고, 법의 이치를 알아서 자기가 해탈하려고 하십시오.

왜 누구를 자꾸 숭배하고 우러러 받들려고 그럽니까?

고기 많이 먹는 사람이 자기보고 먹지 말라고 그러면 사람이 고기 안먹고 어떻게 살아?’ 이러면서,

고기 안먹는 사람을 보면 신격화 시키고 우러러 받듭니다.

이중적인 태도, 이게 중생이 모순입니다.

 

여러분들은 다 결혼해 살면서 어떤 스님이 결혼해 있다면 막 욕합니다.

자기도 결혼해 사는 주제에,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지 말고 자기와 똑같이 봐야합니다.

저는 저와 타인을 똑같이 보려합니다, 그러면서도 스스로에게는 더욱더 경계하고 있습니다.

왜냐? 신도님들이 저에게 절을 하는 것은 제 수행력 때문이 아니고 이 머리모양과 옷모양 때문입니다.

머리모양 때문에 옷 모양 때문에 공짜로 얻어먹은 게 많이 있으니, 그 값을 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먹고 싶은 술이나 고기가 있다 하더라도 좀 참아야 합니다.

그런 거 다 하고 싶으면 머리 기르고 하면 되지, 왜 하필 머리 깎고 중옷 입고 합니까?

 

여러분들도 다 평등하게 생각해야 됩니다.

내가 고기 먹으면 스님도 먹을 수 있고, 내가 술 먹으면 스님도 먹을 수 있고, 내가 연애하면 스님도 할 수 있는 거다,

그래도 내가 해탈할 수 있다면 저 스님도 해탈할 수 있을 거다.

그렇지만 '나는 신도니까 스님을 보면 존경을 하고 법을 들을 마음을 내야 되겠다',

이렇게 자기에게 겸손하게 생각을 하면, 승속이 평등 속에서 질서가 잡혀나갈 겁니다.

 

근데 자기가 해야 할 일은 안하고, 남만 쳐다보면서 왜 그렇게 안하느냐고 합니다.

이렇게 법문을 듣고 '자기를 버려라' 하면,

그래, 내가 나를 너무 고집해서 우리 남편하고 불화가 있는 것이구나”, 이렇게 생각해야 되는 데,

저런 법문을 우리 남편이 들으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 남편 고집이 세긴하지만, 저 법문을 들으면 그 고집이 꺾어질거야

그런 생각을 하고 돌아가서 남편에게 절에 가자고 합니다.

이렇게 포교하면 그건 불법이 아닙니다.

 

불법은 남에게 적용하면 안됩니다.

불법은 모든 고뇌가 나에게 있다’, '일체가 유심소조(一切 有心所造)이기에 '나에게 있다'는 걸 가르치는 겁니다.

이건 정말 잘못이 나한테 있구나’, 이렇게 생각하면 불법이지만,

부처님이 모든 게 다 자기한테 있다고 그랬어, 그러니 네가 너를 좀 똑바로 봐’, 이렇게 말하면 이미 불법이 아닙니다.

그래서 불법에서는, “가르치려고 하지 마라고 합니다.

태권도라든지 목탁치는 법이라든지 이런 지식은 가르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다르마(진리)는 가르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근데 여러분들은 자꾸 남을 가르치려고 합니다.

 

법요사 자격증을 따고서, 뭘 가르치려고 한다면 잘못된 것입니다.

법사라는 것은 다르마(진리)를 전하는 것입니다.

'다르마를 전한다'는 것은 '자기가 체험한 것을 실천하면 다른 사람이 따라 가는 것'입니다.

부부가 갈등을 일으켜 어쨌으면 좋겠나 물으면

우리 부부도 서로 죽일 놈 살릴 놈 하다가, 부처님 법문 듣고 이래이래 해보니까 해결이 되었습니다.’

이게 제일 좋은 법문입니다.

 

스님이 여기서 부부간의 갈등같은 이야기를 하는데 자기 생각하고 안 맞으면,

지가 결혼을 해봤나’, ‘남자니까 그런 소리하지’, ‘중이니까 그런 소리하지’, 이렇게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근데 그런 경험을 한 사람이 자기 삶에 대한 경험으로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이 다 솔깃해서 듣습니다.

이렇게 포교를 한다면 저보다 여러분들이 더 잘할 수가 있습니다.

법사가 그런 방향으로 나가야 되는 겁니다.

내가 뭐 모르는 데 내가 어떻게 법문을 합니까?’, ‘내가 어떻게 가르칩니까?’ 이러는 데,

가르치겠다는 건방진 생각을 하니까 그런 소리를 하는 겁니다.

 

사람은 가르칠 수가 없습니다. 각자 자기가 알아서 깨우쳐 가는 겁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여러 가지 정보를 제공하고 여러 가지 기회를 제공해서,

그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많은 경우를 열어주는 겁니다.

그 가운데에서 사람이 스스로 자각하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오계 한 번 더 읽겠습니다.

 

오계(五戒)

 

첫째, 산목숨을 죽이지 말라함은 생명을 존중하라는 뜻이기에,

함부로 살생하지 않고 생명을 귀중히 여기겠으며,

폭력 살인 고문 사형을 반대하며 인권을 존중하겠으며,

전쟁과 핵무기를 방지하며 평화를 옹호하겠으며

각종 공해를 추방하여 자연을 보호하겠습니다.

 

둘째, 도둑질을 하지말라함은 성실하게 살라는 뜻이기에,

함부로 남의 물건을 훔치지 않고 타인의 재물을 귀중히 여기겠으며,

근검절약함으로 해서 재화를 소중히 여기겠으며,

매춘이나 마약판매 도박 등 부정한 직업을 갖지 않고 정당한 노동에 의해 생활하겠으며,

남녀 인권 직업 학벌 등에 따라 행동을 차별하지 않고 평등한 분별을 실행하겠습니다.

 

셋째, 사음하지 말라함은 청정하게 살아가라는 뜻이기에,

부부간에 신의를 지킴으로써 가정을 화목하게 하겠으며,

미인대회 상품선전 등으로 인간을 상품화하지 않겠으며,

인간을 성적쾌락의 도구로, 노동의 도구로, 전쟁의 도구로 사용하지 않고 인격으로 대하겠으며,

여성의 지위를 향상시킴으로써 남녀평등을 실현하겠습니다.

 

넷째, 거짓말을 하지말라함은 진실을 말하라는 뜻이기에,

함부로 거짓말과 욕설을 하지 않고 진실하고 자비롭게 말하겠으며,

약속한 것은 꼭 지킴으로써 신뢰를 돈독히 하겠으며,

직업적 양심을 지킴으로써 공익우선의 사회를 건설하겠으며,

정보의 독점과 왜곡을 반대하며 공정한 보도를 위해 언론의 자유를 옹호하겠습니다.

 

다섯째, 술을 먹지 말라함은 맑은 소견을 가지라는 뜻이기에,

술에 취하지 아니하며 바르고 안정된 소견을 가지겠으며,

스포츠의 직업화를 ??하고 스스로 심신을 단련하겠으며,

마약 등 중독성 물질에 취하지 않아 내 인생을 나 밖의 그 어떤 것에도 내맡기지 않겠으며,

향락적이고 소비적인 문화를 추방하고 주체적이고 창조적인 문화를 꽃피우겠습니다.

 

 

이 강의는 '정토회 > 정토TV > 법문 보기 > 실천적 불교사상'에서  동영상으로 볼수 있습니다.

 

 

*** 짧은 생각 ***

 

그냥 가볍게 생각하고 술을 탁 끊어야 되는 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