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는 2008년 4월 18일, 옛 회사 직원들과 같이 갔었습니다.
그 때엔 하루 한두 번씩 나오셔서 방문객들과 악수도 하고, 이야기도 하고, 같이 사진도 찍으셨었는데,
우리가 방문한 날은 마침 휴가중이어서 뵙지는 못했었습니다.
두 번째는 2010년 6월 5일, 호주에 사는 막내가 귀국하더니 한 번 가보고 싶다고 해서 같이 갔었습니다.
그 때엔 이미 돌아가신 지 1년이 지났기에, 무덤에서만 뵐 수 있었습니다.
세 번째는 2014년 5월 4일, 천주교 성지순례차 부산/경남을 방문하면서 아내와 함께 들렀습니다.
특별한 이유는 없습니다, 그냥 가보고 싶었을 뿐입니다.
<돌아가신 지 5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오고 있습니다.
마련된 주차장도 꽤나 넓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여,
논 가운데 경운기 길에 주차해야 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두 번째 방문 때는 6월이라, 사람들이 모내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종북 좌빨들이냐구요? 아닙니다, 선량한 티가 죽죽 흐르는 자원봉사자들입니다.
온 몸이 빨갛게 물들었냐구요? 아닙니다, 길가다 마주치는 그렇게 생긴 사람들입니다.
단지 일부 몰지각한 놈들이, 이들을 이상한 종자로 선전하고 있을 뿐입니다.>
<지금도 그때처럼 노란색 천지이니,
쥐와 닭들이 노란 리본만 보고도 경기를 일으키는 것이 한편으론 이해가 갑니다.>
<마을 입구의 구멍가게인데, 맨 처음 방문했을 때는 이보다 더 허름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가게 안에 들어가면 테이블도 있고 의자도 있었습니다.
첫 번째 방문 땐 웃으면서,
그 분이 앉았던 바로 그 자리에 앉아,
그 분처럼 손가락에 담배를 끼고 사진도 찍었었지요>
<그러나 곧 사진 속의 추억으로만 남을 줄, 누가 어떻게 짐작이나 했겠어요...>
<봉하빵집인가, 줄 서야 살 수 있습니다.
그 분 덕에 동네 사람들 먹고 살 길도 생겼는 데...>
<살아계셨을 적엔, 생가 들어가는 길목에 이런 낙서판도 있었습니다.
건강하시라, 행복하시라, 그리고 감사하고, 사랑하고, 행복했었다고......>
<그 분이 태어나셨던 집으로 올라가는 길입니다.>
<지금은 많이 변했지만, 2008년도만 해도 스레트(slate) 지붕의 허름한 집이었습니다.
아아, 우리들 중 한 친구가 세상에 없는 슬픈 이야기는 안하렵니다.>
<2010년에는 이렇게 옛날식 초가지붕으로 바뀌어 있었고~~>
<지금도 방문객들은 사진찍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 여러가지 생각이 듭니다.
긴 세월이 지난다면, 님이 걸으신 길이 옳다는 데에는 동의합니다.
그러나, 우리 살아 생전으로만 국한한다면, 당신은 두 가지 잘못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후계자를 만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마음에 조금 덜 들어도 조금 부족해도, 꾸욱 참고 후계자를 키워 그에게 넘겼어야 했습니다.
그랬다면 당신이 이룩하셨던 것들이 살아 남아서 점점 더 발전했겠지만,
한 번 둘러보세요, 당신이 고민하고 만들고 대못질하여 남겨놓은 것들이 어디 한 조각이라도 남아있나....
세상 사람들은 당신처럼 착하고 순진하지 않습니다.
쥐와 닭들은 자기 눈 높이보다 높은 것은 인정하지 못하기에,
자기들 방식으로 뜯어고치고 자기들 기준에 맞게 돌려놓았습니다.
당신이 그러셨잖아요,
"우리는 두 번이나 정권을 잡고 노력했지만 그동안의 민주주의와 진보의 성취 또한
국민이 생각하고 있는 수준 그 이상을 넘어서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정권을 넘겨주어서는 안되었던 것입니다.
너무 급하게 달려온 이 나라 국민의 의식수준은 조금 낮은게 사실이기에,
당신과 같은 사람들이 조금만 더 앞에서 이끌어 주었어야 했던 것입니다.
박정희 다음엔 전두환이 있었고, 이명박 다음엔 박근혜가 있어 일관성(?)있게 정책이 펼쳐지지만,
노태우 다음의 김영삼과, 노무현 다음의 이명박은 전혀 다르게 바뀌지 않았습니까?
당신이 꿈꾸는 세상을 이룩하기 위해선 당신같은 후임이 있었어야 했습니다.
세월호 참사의 먼 책임은 어쩌면 후계자를 만들지 못한 당신에게도 있을 것입니다.>
또 하나, 정말로 너무 잘못한 일은 조중동 중 하나를 없애버리지 못한 것입니다.
2003년 3·1절 기념사에서 당신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참여정부는 더 이상 '권력기관'에 의존하지 않을 것입니다.
몇몇 '권력기관'은 그동안 정권을 위해 봉사해 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이제 이들 '권력기관'은 국민을 위한 기관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참여정부는 정직하고 성실하게 사는 사람들이 성공하는 나라를 만들어갈 것입니다.
이를 위해 원칙과 신뢰, 공정과 투명, 대화와 타협, 분권과 자율의 문화를 사회 곳곳에 뿌리내릴 것입니다."
세상이 이렇게 변할 줄 당신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지요? 크나 큰 패착이었습니다.
당신에겐 '평검사와의 대화'가 필요했던 것이 아니라, '권력기관의 이용'이 필요했었습니다.
많이도 말고, 딱 한 군데만 권력의 힘을 이용했어야만 했습니다.
무릇 친일파 민족 반역자들의 습성이란
강자에 약하고 약자에 강하고, 어느 환경에서라도 자기 살 길은 잘도 찾아내는 족속들입니다.
전임자들이 그랬듯이 권력의 막강한 힘으로,
가장 약한 놈 하나만 골라 집중공격을 하면, 나머지 둘은 금방 알아차립니다.
그때 슬쩍 당근 몇 개만 던져 주면, 서로 물고 뜯으며 힘약한 하나는 알아서 정리할 것이고,
살아남은 둘은 노비어천가를 불렀을 것입니다.
권력은 그런데 쓰라고 있는 것인 데, 당신은 있는 것도 놔버렸습니다.
그들도 당신과 똑같은 인간인 줄 알고 인간으로 대접 해주었기에,
결국은 그들은 승리하고, 말 안들으면 한 나라의 대통령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다는 자신감만 심어주어,
지금 이렇게 지구상 최악의 언론이 되어버렸고, 그 달콤한 맛에 취해 날뛰고 있지 않습니까?
쥐와 닭은 그런 머리가 없겠지만 참모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온갖 비난에도 불구하고 언론부터 장악하고, 그들과 공생하는 길을 걸으니,
요즈음 하는 꼬라지들 좀 보세요, 정말 가관입니다.
세상에, 지만원으로도 모자라 일베라는 것까지 등장하는 막장 드라마이니....
<이게 조중동이 씹고 또 씹던, 아방궁이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사저입니다.
2008년에는 한참 공사중이었는 데~~>
<이젠 경호원들 숙소까지도 다 완성되었습니다.
출입통제구역이라 사저 앞까지는 가보지도 못합니다. 그분이 살아계신다면 안그랬을 것 같은 데....>
<저 멀리 사자 바위가 보이고, 사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노무현 대통령의 묘역이 있습니다.>
국민참여 박석
"묘역에는 추모글이 새겨진 1만 5천여 개의 박석이 있다.
박석 기부에 참여한 1만 8천여 국민의 애틋한 마음이 담긴
국민참여 박석 그 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추모비로 비문을 대신하고 있다."
<억장이 무너지기에, 누군가는 딱 한 마디만 했습니다. "에구" >
<이곳에 오신 분들은 정성껏 헌화하고, 향을 피우고~~>
<님이 누워계신 곳에 가서, 한 번 더 그 분을 생각합니다.>
곡장(묘역 뒤편 벽) 및 비석받침 강판
"처음에는 검정색이지만 표면이 부식되면서 붉은 색으로 변하다가 최종적으로는 암적색으로 정착된다.
매일 변하는 모습이 다르고, 햇빛과 그늘에 따라 달리 보이며, 비 오는 날에는 짙은 수묵의 색채를 보인다.
그 변하는 과정이 세월과 함께 하여 기억을 담기에는 이만한 재료가 없다.
그 성질 때문에 이 재료의 벽체는 긴장을 불현듯 조성한다.
많은 기념 시설에 이 재료를 쓰는 까닭이다." - 묘역을 설계한 승효상 교수
<2014년엔 2010년보다 색상이 많이 안정되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이 혼돈의 시기가 빨리 끝나고 안정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 -노무현 대통령 어록 중에서 -
사람사는 세상을 꿈꾸다
"노무현 대통령은 퇴임 후 봉하마을을 사람사는 세상으로 만들 꿈을 갖고 이곳으로 귀향했다.
마을 주민들과 오리쌀을 비롯한 친환경농업을 시작했고 마을을 찾는 분들의 농촌체험을 위해 장군차도 심었다.
사람과 자연이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꾸며 화포천에 나가 몸소 쓰레기를 치웠다.
또한 대통령은 민주주의와 진보의 미래에 대해 사람들과 밤새워 토론하고 연구했다.
봉하마을의 산과 물, 흙과 돌 하나 하나에는 대통령의 사람사는 세상에 대한 꿈이 어려 있다."
<2010년 두 번째 방문 때엔 이렇게 오리들이 있었는 데,
올해도 초롱초롱한 아이들 눈망울과 봉하 오리들이 계속되겠지요...>
<하인리히의 법칙( 1 : 29 : 300 의 법칙 )이라는 게 있습니다.
중상자가 1명 나오면, 그 전에 같은 원인으로 발생한 경상자가 29명,
같은 원인으로 부상을 당할 뻔한 잠재적 부상자(아차사고)가 300명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큰 사고가 일어나기 전, 일정 기간 동안 여러 번의 경고성 징후와 전조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세월호 같은 사고가 몇 번 더 반복되다가,
이 나라 자체가 세월호처럼 되지나 않을까 하는 끔찍한 상상이 나를 슬프게 합니다.
그러나, 아직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걸 보면 한편으로 안심도 됩니다.
아직까지 우리를 버틸 수 있게 하는 것은 바로 이 48%의 힘일 것입니다.
3%만 바뀌어 51%가 되는 날, 우리는 사람사는 세상을 꿈꿀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사람사는 세상!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세상
노무현 대통령의 삶과 철학 그리고 그의 못다 이룬 꿈 입니다.
닉네임 상원통사는 여기서 따왔습니다.
상식과 원칙이 통하는 세상을 꿈꾸는 사람!
그러나 난 절대로 노빠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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