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적없는 수덕사에 밤은 깊은데
흐느끼는 여승의 외로운 그림자
속세에 두고 온 님 잊을 길 없어
법당에 촛불 켜고 홀로 울적에
아~ 아~ 수덕사의 쇠북이 운다
1966년 무명가수였던 송춘희을 일약 스타로 만들어 준 님의 출세곡이자 대표곡인 '수덕사의 여승'
'여승'이라는 단어가 있기에 비구니들의 절일 것이라 믿어 의심하지 않았고,
그렇다면 커봐야 용인의 화운사 정도겠지 하고 왔는 데, 스스로에게 완죤히 속았습니다.
이곳은 비구, 비구니 스님을 포함해 200여명의 대중들이 살고 있는 엄청나게 큰 절, 충남 예산에 있는 수덕사입니다.
"덕숭산 덕숭총림 수덕사"
<40번 국도에서 수덕사로 진입하는 입구에도 이런 문이 있었는데, 주차장과 상가를 지나니 또 있습니다.
먼저의 것은 '산문'이라 칭하고 이 문은 '선문'이라 칭합니다.
오른쪽 건물이 매표소인데, 입장료가 무려 3,000원*4명=12,000원
쥐콩만한 절이 왜 이리 비싼고?
경로우대증 받을 때까지 다시는 오지 않으리라! 하며 들어갔는 데...>
<여느 절들과는 달리 올라가는 길에 현대 조각품이 있는 것이 이채롭습니다.
작품명 : 사랑, 작가 : 임성자>
<작품명 : 오줌싸개, 작가 : 김정운>
수덕사 선(禪) 미술관
<조각품들이 그냥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일주문 못미처엔 불교계 최초의 전문 미술관인 선미술관이 있습니다.
원담 스님의 불교작품과 고암 이응노 화백의 작품들이 전시되는 곳인데
오늘은 '벗이 있어 좋다'는 주제로 서양화가 채수철님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작품들이 참 따뜻하고 푸근한데, 사진찍을 수 없어 올리지 못합니다.>
덕숭산 수덕사(德崇山 修德寺)
"수덕사는 백제 사찰 중 유일하게 현존하는 사찰이다.
~~ 1984년 11월 29일 수덕사는 선불교의 중흥조 경허·만공 선사의 근대 선풍(禪風)진작으로 덕숭총림으로 승격되었다.
~~ 덕숭총림에는 향천사, 개심사, 천장사, 매화무문관(이상 비구선원)을 비롯하여 보덕사, 법륜사(이상 비구니선원)에서
안거 때마다 약 200여명의 스님들이 수행정진하면서 선맥을 잇고 있다."
총림 : 선원, 강원, 율원 및 염불원을 갖추고 본분종사인 방장의 지도하에 대중이 여법하게 정진하는 종합수행도량을 말한다.
덕숭총림 : 대한불교 조계종의 5대총림(송광사, 통도사, 해인사, 수덕사, 백양사) 중의 하나.
<이곳이 진짜 일주문>
일주문
"기둥을 한 줄로 세워 만든 문으로 사찰 경내의 시작을 알리는 문.
한 줄의 기둥은 세속의 번뇌로 흐트러진 마음을 사찰에 들어서면서 하나로 모아 진리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을 상징"
<선 미술관 윗쪽에, 일주문을 지나 왼편에 위치한 초가집 한 채, 바로 '수덕여관'입니다.>
<다리에도 '수덕여관'이라 새겨진 것을 보니 확실하죠?>
수덕여관
세 여자(일엽스님, 나혜석, 박귀옥)와 세 남자(만공스님, 이응노 화백, 일당스님)의 이야기가 얽혀있는 곳,
1944년 이응노 화백이 사들여 1959년 프랑스로 건너갈 때까지 머물렀던 곳,
그가 떠난 후로는 부인 박귀옥여사가 여관과 식당의 운영을 계속했던 곳,
박귀옥여사가 2001년 작고 후 이응노화백의 장조카가 경매처분하려 했던 곳,
2006년 1월 수덕사가 고암의 조카로부터 매입하여 복원사업을 벌인 곳,
지금은 문화전시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지만, 마침 내부 수리중이어서 안을 들여다 볼 수 없는 곳.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이야기가 스며있는 수덕여관.
거기 주인공들을 잠시 살펴볼까요...>
김원주(일엽스님)
우리나라 구한말 신여성 3인방(윤심덕, 나혜석, 김원주) 중의 한 사람.
한국 최초의 신시 여류시인, 여성 운동가, 이화학당을 거쳐 일본으로 건너간 최초의 여자 유학생.
얼굴 한 번 못보고 결혼했는 데, 남편이 의족을 한 장애인임을 알고나서 일찌감치 결혼생활을 청산했고,
도쿄행 특급열차에서 국책은행 총재를 아버지로 둔 명문가 출신 오다 세이조를 만나,
결혼승낙을 받으려 했으나, 임신 후까지도 시댁에서는 '낙태'하라는 고함소리 뿐,
남편 친구집에서 아들을 낳은 후, '아들과 행복하게 사시오'라는 편지 한 통만 남기고 귀국해버렸고,
1928년 님의 나이 33살에 수덕사 견성암에서 수계를 받고 일엽스님으로 다시 태어났고,
'글 또한 망상의 근원이다'는 만공선사의 질타를 받아들여 붓마저 꺾었었고,
아버지 친구집에서 양자로 생활하던 14살 먹은 아들이 찾아와 어머니를 외치며 눈물을 쏟자,
"울음을 그쳐라. 나에게 다시는 '어머니'라고 불러서는 안된다. '스님'이라고 해야한다."고 모자의 인연조차도 끊어버린 사람.
나혜석
조선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수원여고 수석졸업 후 일본으로 건너간 여자 유학생. 3·1운동에 참가하여 6개월간의 옥고를 치룸
남편의 제의로 함께 세계여행을 떠나, 파리에 6개월을 머물며 야수파 화가 뒤셀에게 그림을 배웠고,
미국을 거쳐 1년 반만에 귀국하였으나, 파리에서 만난 최린과의 불륜관계로 결혼 11년만에 이혼당하고,
친구의 출가는 말렸지만 이제는 자신이 중이 되겠다고, 친구가 머물고 있는 수덕사에 찾아왔으나,
만공선사께서는 "임자는 중노릇을 할 사람이 아니야!"라고 일언지하에 거절하셨고,
그후 '수덕여관'에 5년동안이나 머무르며 '중 시켜 달라'고 1인 시위하였으나 끝내 거절당한 사람.
모정이 그리워 어머니(일엽스님)를 찾아왔으나, 정작 어머니부터는 냉대만 당하는 친구의 아들에게,
"엄마 젖을 못만져 봤으니 내 젖을 만져보라"고 젖가슴을 내주었던 사람.
파킨슨씨 병에 걸린 후에도 글을 쓰고 개인전을 열며 작품활동을 계속했었지만,
사회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하고 발붙일 곳 없이 여기저기 떠돌아 다니다가,
1948년 12월 10일 51세의 나이로 서울 시립 자혜병원 무연고자 병동에서 행려병자로 사망.
박귀옥
고암 이응노 화백의 첫 번째 부인으로 수덕여관의 여주인.
남편이 자신을 버리고 21세 연하의 연인과 함께 파리로 떠난 후에도 수덕여관을 계속 운영하며 기다리다가,
전남편 이응노 화백이 “동백림사건”으로 형무소에 수감되자 지극정성으로 옥바라지를 하였고,
출옥 후에도 병구완을 계속하였으나, 그는 다시 파리로 떠나고 홀로 남게 되었고,
이응노 화백이 파리에서 죽자, 유골이라도 돌려 받아 자신이 죽으면 함께 묻히고 싶어 했던 사람.
고암 이응노 화백
일본으로 유학하여 서양화와 일본화, 남종화를 수학하였고,
선배이자 스승인 나혜석을 만나려 '수덕여관'에 들르다가 나중에는 아예 기숙하게 되고,
1944년 나혜석이 이곳을 떠나자 수덕여관을 사들인 후 부인 박귀옥에게 운영을 맡겼고,
1958년 부인을 남겨두고 21세 연하의 연인 박인경과 함께 파리로 떠났었고,
1967년 '동백림사건'에 연루되어 2년 반의 수감생활을 함
1969년 출옥후엔 수덕여관에서 휴식을 취한 후 다시 파리로 돌아가 프랑스로 귀화
1989년 귀국전시를 앞두고 86세의 나이로 별세, 파리 시립 페르라세즈 묘지에 안장
김태신(오다 마사오, 일당스님)
일본 명문가 출신 오다 세이조와 이혼녀인 김원주(일엽스님) 사이에 태어나,
양아버지 아래에서 지내다 열 네살이 되어서야 어머니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모정이 그리워 어머니를 찾아 수덕사에 가지만, 한 번도 곁에서 자보지못하고 내쫓기어 간 곳이 수덕여관,
그곳에서 어머니의 친구인 나혜석을 만나 마치 모자처럼 정을 쌓았고, 그림도 배웠으며,
일본에서 화가로 활동하며 명성을 쌓았고, 김일성 종합대학에 지금도 걸려 있는 김일성주석의 초상화도 그렸으며,
일본인 사촌형이 건네준 독약이 든 술을 마시고, 1년 반의 병원생활에 여덟차례의 수술을 해야만 했었고,
'오다'가문에 '모든 재산을 포기한다'는 각서를 써주고서야 겨우 생명의 위협에서 풀려났으며,
67세에 뉴욕 원각사에서 관응스님으로부터 수계를 받아 일당스님으로 다시 태어난 늦깎이 스님.
<왼편 아래는 예전에 사용했던 우물. 지금은 메말라 낙엽만 가득...>
<이응노 선생의 암각화
화강암 바위에 온갖 사물과 현상의 성(盛)과 쇠퇴함을 추상화로 표현한 작품>
<시대와 개인의 아픔들이 얽히고 설킨 수덕여관을 뒤로하고, 우린 수덕사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금강문
"불법을 수호하는 두 명의 금강역사를 봉안"
사천왕문
"불법을 수호하는 외호신인 사천왕 봉안"
<사천왕문을 지나면 왼편에 칠층석탑이 있고,>
<그 위에는 코끼리 석탑,>
<오른편엔 포대화상이 있는 데,
동자승들이 젖꼭지를 만지고 배꼽을 만져도 웃고만 있는 미륵님. ㅎㅎ>
<문만 벌써 다섯을 지났으니 이제는 대웅전이 보일까?>
<아닙니다. 이곳은 황하정루(黃河精樓)
대웅전을 보호하고 사세를 안정시키는 전위누각으로, 부처님의 정신이 강물처럼 흐른다는 뜻>
<황하정루 밑을 지나면 끝인가 했더니~~>
<또 계단입니다. 게다가 가파른 옹벽까지...>
<파란 하늘을 뒤로한 소나무가 멋을 한껏 부리고, 우린 계단을 오르니~~>
<드디어 저 뒤에 대웅전이 보입니다.>
법고각(法鼓閣)
"소리로써 부처님의 진리를 전해 해탈성불을 염원하는 불전 사물인
법고(法鼓, 축생의 무리에게), 목어(木漁, 수중의 생명에게), 운판(雲版, 하늘을 나는 생명에게)을 봉안.
아침, 저녁 예불 때 법고, 목어, 운판, 범종의 순으로 침"
범종각(梵鐘閣)
"불전 사물인 범종은 일체 중생이 번뇌로부터 벗어나 지혜증장하고 깨달음을 얻도록 울림.
한 번 타종에 2분 30초 동안 울리며 30리 밖까지 들린다고 함"
<청련당>
<백련당>
수덕사 대웅전
"국보 제49호. 고려 충렬왕 34(1308)에 조성.
백제 양식의 고려시대 목조 건축물로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 중의 하나"
<여기까지 왔으니 인증샷 한 컷! 아가다님 부부 먼저 ~~>
<그리고 우리 내외.
왜 인상쓰냐고 묻지 마세요. 난 햇빛에 무척 약합니다. 사탄띠여서 그런가?? ㅋㅋ>
<관세음보살님께 정성껏 기도드리는 분도 계시고..>
<관음전에서 기도하시는 분도 계시고...>
관음보살과 관음바위(소원바위)
<이곳은 관세음보살이 현신(現身)하신 전설이 있는 곳.
통일신라 때 관음보살이 수덕각씨 변하여 나타나 이 절을 중창하고는
낙성식 날 버선 한 짝만 남기고 이 바위틈으로 들어가셨는 데,
그 뒤로 이곳에 기도하면 모든 소원이 성취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소원성취도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고, 이곳 소원바위에 동전이 붙어야 이뤄집니다.
그래서 나도 하나 붙이고 빌었습니다.
소원은? 항상 빌어도 절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
로또복권 1등 딱 한 번!!!>
<내려가는 길에 멋부려 한 컷 잡아봤는 데, 혹시 풍경소리가 들리지 않습니까?>
작은 암자쯤으로 생각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들렀는 데,
1박2일로 둘러봐도 부족할 것 같은 덕숭총림 수덕사.
그리고 한시대를 풍미한 인물들의 이야기가 얽힌 수덕여관.
오늘은 여기까지만 보고, 다음에 다시 와야할 것 같습니다.
입장료가 괜히 비싼게 아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