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의 법문/1. 실천적 불교사상

[법륜스님의 '실천적 불교사상'] 제11강 삼귀의 - 두 번째

상원통사 2014. 5. 21. 23:13

(~~ 제10강에서 계속)

 

대승불교(북방불교, 마하야나, Mahāyāna)

그런데 대승불교에서는 폭을 조금 넓혀서 규정짓습니다.

대승불교에서는 ‘모든 깨달은 이는 다 부처다’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부처님도 석가모니 부처님만 계시는 게 아니고, 이 세상에는 많은 부처님이 계실 수가 있습니다.

이 우주에는 지구에만 사람이 사는 것이 아니고, 다른 데도 엄청나게 많은 생명들이 살고 있고,

우리 인간보다도 훨씬 더 고도한 문화를 갖고 있는 그런 세계도 이 우주에는 무한히 많다,

그 세계 세계마다 다 부처님이 계신다고 대승 불교인들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서방정토 극락세계에는 아미타 부처님이 계시고, 동방정유리세계에는 약사유리광여래불이 계시고,

또 다른 곳에는 또 다른 부처님이 많이 계시는 데, 이 분들도 다 부처님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이 세상에 출현하시기 이만 겁 전에 가섭부처님(Kasyapa-Buddha)이 출현하셨고,

그 전에는 구나함모니(Kanakamuni) 부처님이 출현하셨고, 또 그 전에는 구류손(Krakucchanda) 부처님이 출현하셨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미래에도 수없이 많은 부처님이 출현하실 겁니다.

시간적으로 이미 출현했거나 출현할 모든 부처님, 공간적으로 무한한 세계에 계신 모든 부처님도 다 부처님입니다.

대승불교에서는 이 모든 부처님을 다 불(佛)이다 이렇게 규정을 합니다.

 

그러니까 대승불교에서는 석가모니 부처님 한 분이 아니라 여러 부처님을 공경하고,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만이 아니라 모든 부처님들의 가르침이 다 다르마(진리)이고,

석가모니 부처님의 제자만 상가(스님)가 아니고 모든 부처님들의 제자도 다 상가입니다.

 

이렇게 대승불교와 테라밧다 사이에 개념규정이 조금 다릅니다.

소승불교에서는 조금 범위가 좁은 대신 근본을 중요시하니까

다른 나라에 불교가 전수되어 나가도 어떤 형식이나 문화같은 걸 잘 바꾸지를 않고 그대로 고수하는 반면에,

대승불교에서는 형식이라든지 문화같은 것을 중요하게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에,

한국에 가면 한국 것 받아들이고 일본에 가면 일본 것 받아들이고 중국에 가면 중국 것 받아들입니다.

대승불교에서는 근본은 지키지만 이런 것들은 포용성 있게 대합니다.

 

불교가 전래가 될 때 인도와 문화가 비슷하거나 떨어지는 쪽은 테라밧다가 전수가 되는 데,

인도하고 문화가 대등하거나 더 높을 때는 인도문화를 고수하면 그쪽에서 잘 안 받아들여집니다.

문화에 대해서 조금 개방적인 대승불교를 중국에서 쉽게 받아들인 이유에는 그런 것도 있는 겁니다.

대승불교에서는 부처님은 인도에만 계시는 것이 아니라 중국에도 있을 수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또 한국에도 부처님이 출현할 수도 있고 옛날에 출현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근데 테라밧다 불교적 입장에서는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불교가 다른 문화권으로 전파되는 데는 대승불교가 더 용이했다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불교의 세 가지 근본 귀의처가 되는 삼보에는 세 가지가 있다해서 삼종삼보(三種三寶)라 합니다.

즉, 동체삼보, 별상삼보, 주지삼보가 그것입니다.

 

동체삼보(同體三寶) : 불·법·승 삼보가 하나로 돌아간다

불법승 삼보가 따로따로 있는 게 아니고 결국 근본은 하나다 이런 것입니다.

부처가 따로 있는 게 아니고, 여러분들도 내 마음 깨달으면 부처다,

다르마(법)라고 하는 것이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고, 내 마음이 고요하면 그게 바로 법이다,

승이라고 하는 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내 마음이 청정하면 승이다, 이게 동체삼보입니다.

 

불보(佛寶) : 내 마음 깨달으면 곧 부처다

법보(法寶) : 내 마음이 고요하면 법이다.

승보(僧寶) : 내 마음이 청정하면 승이다.

내 마음 깨달으면 부처요, 내 마음 고요하면 법이요, 내 마음 청정하면 승이다.

그러니까 다 일체는 이 한 마음에 있다, 이런 입장의 삼보를 ‘동체삼보’다 이렇게 말합니다.

 

별상삼보(別相三寶) : 불·법·승이 서로 모양을 달리한다.

별상삼보에서는 법신․보신․화신을 불보(佛寶)라 합니다. 

법신이란 진리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이고,

여러분들이 기도할 때 여러분과 뭔가 교감을 하는 것, 여러분들이 느낄 수 있는 부처님을 보신이라 합니다.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고, 말을 하고, 구체적인 형상으로 나타난 것을 화신이라 합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화신에 속합니다.

 

별상삼보에서의 불보(佛寶) : 법신, 보신, 화신

법신(法身) : 진리 그 자체 (달),    진리를 있는 그대로 드러낸 우주 그 자체

보신(寶身) : 교감하는 진리(달빛), 중생을 위해 서원을 세우고 거듭 수행한 결과 깨달음을 성취한 부처

화신(化身) : 달이 각각에 비친 것.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변화하여 나타나는 부처

 

하늘에 달이 있다면 달 그 자체는 법신에 속하고,

우리가 달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달빛을 보고 느끼는 것인 데, 이 달빛은 보신에 속하고,

그릇에 물을 떠놓으면 그릇마다 다 달이 하나씩 떠있는 데 이것을 화신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말로 말하면 금덩어리 자체가 법신이라면,

그 금의 빛깔이 보신이 되고,

금을 가지고 팔찌 반지 목걸이 이렇게 만들어 놓은 것을 화신이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법신은 청정하다 해서 ‘청정법신’이라 말하고,

보신은 두루원만하게 내 마음을 비우면 어디에서나 다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원만보신’이라 말하고,

화신은 그 모양이 이 세상에 인연을 따라 천백억(무한하다는 뜻) 가지로 나타난다 해서 ‘천백억화신’이다 이렇게 말합니다.

거기에 또 법신은 비로자나불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보신은 노사나불이라고 붙이고, 화신은 석가모니라고 붙였습니다.

그래서 청정법신 비로자나불, 원만보신 노사나불, 천백억화신 석가모니불 이렇게 부릅니다.

비로자나불(vairocana) : 모든 부처님의 진신(眞身:육신이 아닌 진리의 모습)인 법신불(法身佛)

노사나불 : 부처님의 진신(眞身)을 나타내는 칭호. 비로자나의 다른 이름

석가모니불(Sakyamuni) : 고타마 싯다르타(Gotama Sidhārtha)의 성불 후 이름. '석가족에서 나온 성자'라는 뜻.

 

별상삼보에서의 법보(法寶) : 부처님의 가르침(敎), 그 이치(理), 부처님의 갖가지 행(行)과 증득한 모든 것(果)

부처님의 가르침, 그 가르침의 미묘한 이치, 그분의 원만한 갖가지 행, 그분이 증득하신 깨달음, 이것을 ‘교리행과’라 합니다.

별상삼보에서의 법보는 부처님의 교리행과(敎理行果)를 말합니다.

 

별상삼보에서의 승보(僧寶) : 깨달음을 얻은 자(=聲聞 四向四果)

‘법신 보신 화신을 불보라고 하고, 교리행과를 법보라고 하고, 성문 사향사과 팔배현성을 승보라고 한다‘

이렇게 별상삼보는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성문 사향사과 팔배현성이라는 것은 도대체 무얼 말하는 거냐?

 

여러분들 평소에 화를 벌컥벌컥 잘 내죠, 그런데 왜 화가 납니까?

‘저 새끼, 저거 하는 거 봐라, 저런데 어떻게 화를 안내노?’ 보통 이렇게 됩니다.

다 다른 사람이 잘못했기 때문에 화가 납니다. 죽을 때까지 이 화를 못 끊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공부를 하게 되면, 이게 나로부터 일어난다 하는 것을 조금씩 자각하게 됩니다.

그 공부하는 과정은, 하나씩 하나씩 분석하고, 따지고 따지고 또 따져가는 겁니다.

컵이 땅바닥에 떨어져 깨졌는데 어떻게 화를 안내느냐? 처음에는 이렇습니다.

그러나 똑같이 컵이 떨어져도 경우에 따라서 화가 날 때가 있고 안 날 때가 있습니다.

컵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바로 내가 옳다는 데서 화는 연유되는 것이구나, 그러면 과연 나는 옳은가?

이렇게 해서 쭉 분석해 들어가다 보면 ‘아, 화날 일이 없구나.’ 이걸 깨닫습니다.

 

이걸 깨달으면 그렇게 화를 잘 내던 사람도 화가 팍 줄어듭니다, 사람이 변하는 겁니다.

그렇게 무거운 짐을 지고 있던 사람이 그냥 얼굴이 훤해져 싱글싱글하고 다닙니다.

옆에 있는 사람이 보면 ‘저게 쥐약 먹었나?’ 이렇게 생각이 들 정도로 변합니다.

그러나 이게 계속되는 게 아니라 한 달이나 두 달 지나면 자기도 모르게 본래로 슬쩍 돌아갑니다.

그 깨달음의 맛을 봤을 때는 다시는 그 어리석은 악몽으로 빨려 들어가지 않을 거다 이렇게 생각했는데,

하루 이틀 지나고 살다 보면 안개에 옷 젖는 줄 모르듯이 자기에 사로잡혀서 예전과 똑같이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도로 어리석은 길로 옛날과 다름없이 가버리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만,

이 깊은 맛을 한 번 본 사람은 화를 내더라도 그 전하고는 차원이 완전히 다릅니다.

옛날에는 한 번 사로잡히면 10년씩 갔던 사람이 1년씩 갔던 사람이 한 달씩 갔던 사람이,

이게 길어야 하루, 안 그러면 한 시간, 안 그러면 금방 ‘아차, 또 내가 미쳤구나’ 이러면서 원래대로 돌아갑니다.

 

그러면 적어도 어느 정도에 이르러야 이 사람이 깨달음의 길에 들어섰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느냐?

수없이 어리석음의 길을 반복하더라도 금방 돌아오는 수준이 되면,

이 사람은 일단 중생의 늪으로부터 빠져 나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빠지더라도, 앞으로 빠질지라도, 이 사람은 허우적대지는 않습니다.

자기가 알아서 빠져 나오거나, 옆에서 약간만 건드려주면 금방 빠져나오게 됩니다.

 

우리 신도님 중에 이런 분이 계셨어요.

인생에 굉장히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았는데, '깨달음의 장'에 오셔서 공부를 하면서 나름대로 깨쳤습니다.

그래서 얼굴이 훤히 펴지고 훨훨 날아갈 정도로 마음도 편해졌습니다.

딸이 정신이상이 있어서 늘 그게 괴로움의 근본이었는데, 그걸 그냥 탁 놔 버리니 편안해 졌어요.

그러니까 딸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지만, 이 보살은 아주 편안하게 잘 지냈단 말입니다.

근데 한 일 년 조금 더 지났나, 이 딸이 자기 보는 앞에서 자살을 해버렸습니다.

방문이 잠겨있기에 이상하여, 강제로 방문을 여는 순간 딸이 아파트 창문을 넘어가는 겁니다.

쫒아가서 팔을 하나 잡기는 했지만, 힘이 부족해 끝내 잡고 있던 손을 놔버렸고, 딸은 20층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딸은 떨어져 그 자리에서 죽었고, 어머니도 거의 죽은 사람과 다름없이 병원에 실려 갔습니다.

병원 침대에 누워 링거를 꽂았는데 수액이 몸 안에 안 들어가지 않습니다.

이틀인가 삼일 후에 연락을 받고 제가 가서 봤더니 그런 상태로 누워있는 겁니다.

그래 거사님께 조금 나가있으라 하고 나하고 단 둘이 남았습니다.

흔들어 깨웠더니 겨우 눈을 뜨기에, 내가 손을 잡고 뭐라고 한마디 했습니다.

우리 둘이만 통하는 얘기를 했더니, 마치 잠자다 꿈을 깨듯이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정신이 드니까 제일 먼저 나타난 현상이, 안 떨어지던 수액이 똑똑똑똑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어떤 경험을 서로 공유를 하면 긴 말로 설명 안 해도 됩니다.

뭔가 그 정신을 차릴 수 있는, 서로 공감되어 있는 언어를 쓰면 정신이 번쩍 들어 돌아옵니다.

 

거사님이 방문을 딱 열고 들어와 보니 죽은 사람이 살아났습니다.

‘스님, 무슨 수를 썼습니까?’ 라고 묻지만, 무슨 수를 쓴 게 아닙니다.

정신이라는 게 이만큼 중요한 겁니다.

안경을 쓰고 벽을 보더라도, 안경을 한 번 벗은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박박 우기다가도,

옆에서 누가 ‘너 안경 끼어서 그러잖아’ 이러면 ‘아 참 그렇지, 깜박 잊어 버렸네.’ 이럽니다.

보통사람보고 그랬다가는 ‘이게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이래서 더 시비가 되겠지요.

 

그 보살님께 뭐라고 한 줄 아십니까?

“보살님, 보살님 딸 죽었다매? 야아, 해탈했네!” 웃으면서 내가 이랬습니다.

그랬더니 악몽을 꾸던 사람이 꿈에서 깨듯이 정신이 번쩍 든 겁니다.

만약 딴 사람한테 그랬다가는 정말 큰일 났을 겁니다.

그 얘기를 옆에 거사님이 있는 데서 했으면 아마 맞아 죽었을 겁니다.

그러니까 그게 다른 사람한테는 안 통하지만 우리끼리만 통하는 얘기입니다.

 

이렇게 옆에서 약간만 건드려주면 금방 빠져나오게 될 때 깨달음의 길에 들어서고 있다 말할 수 있습니다.

 

 

 

(제12강에 계속합니다~~)

 

이 강의는 '정토회 > 정토TV > 법문 보기 > 실천적 불교사상'에서  동영상으로 볼수 있습니다.

 

 

*** 짧은 생각 ***

 

삼종삼보을 표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삼보  동체삼보 별상삼보 주지삼보 

 불보 :

깨달은 이

 내 마음

 깨달으면 부처

 법신 : 하늘의 달

 보신 : 달빛

 화신 : 물에 비친 달

 불상, 탱화

 법보 :

깨달은 이의 가르침

 내 마음

 고요하면 법

 교 : 부처님의 가르침

 리 : 부처님의 이치

 행 : 부처님의 행

 과 : 얻어지는 과보

 경·율·론 삼장

 승보 :

깨달음의 길로

나아가는 사람

 내 마음

 청정하면 승

 수다원 : 예류(預流)

 사다함 : 일래(一來)

 아나함 : 불환(不還)

 아라한 : 응공(應供)

 출가오중 :

   비구, 비구니, 사미,

   사미니, 식차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