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의 법문/1. 실천적 불교사상

[법륜스님의 '실천적 불교사상'] 제12강 삼귀의 - 세 번째

상원통사 2014. 5. 27. 19:54

(~~ 제11강에서 계속)

 

해탈을 위하여 정진하는 출가 수행자에는 네 가지 단계가 있습니다.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 이렇게 네 단계가 있습니다.

 

수다원(sota-āpanna) : 성인의 길에 첫 발을 내디딘 자. 예류(預流)

우리가 어떤 자각의 경지를 맛보게 되면, 그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는 데 그렇게 많은 시간이 안 걸립니다.

그래도 사람이라는 게 또 헷가닥하고 정신차리고, 또 헷가닥하고 정신차리고 이럽니다.

헷가닥 했어도 약간만 건드리면 자각할 수준까지 왔다면,

이 사람은 적어도 성인의 류(流)에, 성인의 무리에 한 발 들여놓은 사람이라 정의합니다.

이것을 인도말로 수다원이라하고, 한문으로는 예류라 합니다.

‘성인의 무리에 나도 예비자로 처음 참석을 했다’ 이런 뜻입니다.

 

사다함(sakad-āgāmin) : 한 번만 더 잘못을 일으키는 자. 일래(一來)

수다원의 경지에서 조금 더 자기정진을 해 나가면 다음 단계에 이릅니다.

한 번 화를 벌컥 냈는데, 내자마자 ‘아차, 내가 미쳤구나’, 이렇게 자각을 합니다.

수다원은 이렇게 화내고 자각하는 것이 열 번 스무 번 반복될 수도 있는 단계이지만,

자기가 자각한 이후에 한 번 더 화를 내지만,

그 다음부터는 다른 사람이 아무리 그래도 이제부터는 끌려가질 않는 경지가 됩니다. .

이것을 사다함이라 하고, 한문으로는 일래라 합니다.

한 번 더 온다, 죽어서 딴 세계에 갔다가 이 세상에 한 번 더 온다,

한 번 더 윤회한다는 말은, 한 생각 어리석은 생각을 낸다는 것과 같은 얘기입니다.

한 번 어리석은 생각을 내는 게 한 번 생사를 도는 겁니다.

어리석은 생각이 일어나지 않으면 생사가 없는 데, 이 어리석은 생각 때문에 생사를 윤회하는 것이고,

그러니까 한 번 더 어리석은 행동을 하게 되는 겁니다.

그 다음에는 어리석음이 끝나는 데, 이것을 사다함, 일래라 합니다.

 

아나함(anāgāmin) : 다시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는 자. 불환(不還)

거기서 조금 더 나가면 어떠냐,

다른 사람이 뭐라고 그러면 화를 한 번 벌컥 내다가 ‘아차!’ 하고 자각을 하면 이걸로 끝입니다.

다시는 이런 일은 없는 단계가 아나함입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해서 한자어로 불환이라 합니다.

 

아라한(arhan) : 영원히 깨달은 자, 적멸, 살적, 응공, 무위

거기서 더 수행을 해서 어리석음이 싹 사라져버리면, 뭐라고 하든지 간에 아예 괴로움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문제가 발생하는 즉시 문제를 소멸시키는 도의 행위를 실천하기 때문에,

화가 일어나려고 하다가 그 자리에서 사라져버리거나, 아예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바깥으로는 전혀 드러나지 않습니다.

참아서 안 드러나는 게 아니라 안 일어나는 경우, 이것을 아라한이라 합니다.

적멸(寂滅) : 다 사라져버리고 고요하다

살적(殺敵) : 괴로움의 적을 완전히 죽여버린다

응공(應供) : 응당히 공양 받을 만하다  

그는 아무런 번뇌가 없기 때문에 어떤 것을 받아먹든지 쓰든 지 어떤 행을 하든지 마음에 집착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마치 허공에 새가 날아가고 흔적이 없듯이, 지팡이로 허공을 휘저어도 아무런 흔적이 남지 않듯이

그의 행위에는 아무런 마음의 흔적이 남지 않는다, 즉 무위(無爲)의 행이 된다, 그래서 일체의 업이 지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그는 설령 누가 주는 걸 받아먹었다고 하더라도 빚이 안됩니다.

그는 응당히 중생으로부터 공양받을 자격이 있다, 높아서 자격이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래서 아라한을 응공이라고 보통 많이 번역을 합니다.

 

승보(寶) : 성문(聲聞) 사향사과(四向四果) 팔배현성(八輩賢聖)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스스로의 해탈을 위하여 정진하는 출가 수행자를 성문이라 하고,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음을 얻은 사람을 성문승이라 합니다.

성문승은 네 개의 단계(예류, 일래, 불환, 응공)가 있는 데, 이것을 성문사과라 합니다.

성문사과는 또 둘로 나누는 데, ‘그러한 경지로 나아가는 사람(向)’, ‘그러한 경지에 이른 사람(果)’으로 나눕니다.

즉 예류향·예류과, 일래향·일래과, 불환향·불환과, 응공향·응공과, 이렇게 나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사향사과라 하고 전체가 여덟 종류이기에 팔배라 합니다.

이렇게 여덟 종류의 현인과 성인, 즉 팔배현성만을 승보라고 합니다.

별상삼보에서는 머리 깎고 스님이 되었다고 다 승보가 되는 것이 아니고, 이 부류만 승보라고 합니다.

 

별상삼보를 다시 한 번 정리하면,

법신 보신 화신이 불보요, 교리행과가 법보요, 성문 사향사과 팔배현성을 승보라 합니다.

 

주지삼보(住持三寶)

부처님이 아니 계신 세상은 부처님의 육성을 들을 수 없는 데,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 스승이 없는 이런 시대에 태어난 중생은 뭘 의지해서 공부를 할 것인가?

석가모니 부처님은 계시지 않지만, ‘늘 그분과 같이 있는 것처럼 공부를 하겠다’, 이렇게 마음을 먹습니다.

우선 그분의 모양을 본떠가지고 돌이나 흙이나 쇠붙이로 조각을 만들어 방에 모셔놓거나,

또는 종이에 그분의 모습을 그려서 모셔놓고, 계시는 것과 똑 같은 마음가짐으로 생활을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부처님 계시는 방에 가서 ‘부처님, 안녕히 주무셨어요?’ 하고 문안을 드리는 것이 아침 예불입니다.

밥 먹을 때가 되면 부처님과 같이 탁발해 와서 부처님과 같이 둘러 앉아 밥을 먹습니다.

그러니까 밥을 부처님 앞에 놓고 ‘드십시오!’ 하고 절하고 내려가지고 둘러앉아서 먹습니다.

저녁에 자기 전에도 ‘부처님, 안녕히 주무십시오.’ 하고 가서 인사합니다.

그러니까 옆방에 부처님이 계시는 것과 똑 같은 마음가짐으로 생활을 합니다.

이렇게 한다면 사실은 부처님 계시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이때는 비록 나무나 돌이나 흙이나 철로 부처님의 모양을 만들었더라도 그 수행자에게는 부처님과 똑같은 역할을 합니다.

비록 그림으로 그려놓았다고 하더라도 그 수행자에게는 부처님과 똑 같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주지삼보에서의 불보(佛寶) : 부처님의 형상을 본 딴 불상과 탱화

주지삼보에서는 불상과 탱화(그림)를 불보라고 합니다.

여러분들이 그런 마음가짐으로 불상과 탱화에 대하면 부처님을 모시고 있는 것이지만,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의 부처님은 그냥 조각이고 하나의 작품이지 불보가 아닙니다,

 

주지삼보에서의 법보(法寶) : 경·율·논 삼장

부처님이 살아계시면 그분의 가르침이 있고, 가르침의 이치가 있고, 그분의 행이 있고, 증득함이 있지만

부처님이 계시지 않으니까 그런 게 없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가르침을 종이에 글로 써놓은 것은 내가 만날 수 있습니다.

그분의 진리에 대한 가르침이 경(經)이고,

그분의 행에 대한 가르침이 율(律)이고,

그분의 가르침의 이치를 후대의 선지식(善知識)들이 써놓은 글을 논(論)이라 합니다.

그래서 경·율·논 삼장을 법보라고 합니다.

해인사에 있는 팔만대장경은 나무 판대기에 글씨를 새겨놓은 것이지만,

거기에 부처님의 경·율·논 삼장이 담겨있기 때문에 법보가 됩니다.

* 선지식 : 불도(佛道)를 깨치고 덕(德)이 높아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불도에 들어가게 하는 이, 곧 고승(高僧)

 

주지삼보에서의 승보(僧寶) : 출가오중

깨달았는지 안 깨달았는지는 모르지만 부처님의 모습을 따라서 그대로

머리도 깎고, 맨발로 다니고, 노란 가사를 입고, 행동도 그렇게 하고,

그렇게 그 전통에 따라서 계를 받고 그 계를 지키는 스님들을 승보라고 합니다.

 

그럼 스님들은 어떤 종류가 있느냐,

20세 이상의 출가한 남자스님을 비구(bhikkhu)라 부르고,

20세 이상의 출가한 여자스님을 비구니(bhikkhunī)라 부릅니다.

20세 미만의 아직 성년이 못된 출가한 남자스님을 사미(sāmaṇera)라고 부르고,

20세 미만의 아직 성년이 못된 출가한 여자스님을 사미니(sāmaṇerī)라고 부릅니다.

그러니까 비구, 비구니, 사미, 사미니 이렇게 있습니다.

 

출가오중(出家五衆) : 비구, 비구니, 사미, 사미니, 식차마나

그런데 여자의 경우엔 한 종류가 더 있습니다.

남자는 결혼해 살다가도 부처님 말씀 듣고 잠이 깨 부처님 따라 가서 계를 받으면 비구가 됩니다.

남자는 그걸로 끝이지만, 여자는 뱃속에 아이를 가진 상태에서 출가할 수도 있습니다.

깨달음을 얻은 이후에 아이를 가졌을 때에는 계를 파한 게 되지만,

깨달음을 얻기 이전에 일어난 일은 계를 파한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아이를 낳게 되면 일단 계를 반납하고 돌아가, 일정기간 동안 아기를 키워놓고 나서 들어와야 됩니다.

그래서 여자일 경우에는 출가하고 2년을 기다려야 되는 데,

그 기간 동안의 여자스님을 식차마나(sikkhamānā)라 부릅니다.

이것은 분류를 따로 한다는 것이지, 차별을 하거나 안 된다거나 이런 개념이 아닙니다.

그래서 승려라고 할 때는 남자 스님이 2종류고, 여자스님은 3종류, 이 다섯 종류를 출가오중이라 합니다.

이 출가오중만 승보라 합니다.

 

머리 기른 사람들은 승보에 안 들어갑니다.

이 사람들이 생각할 때는 깨달음을 얻으면, 법문을 듣고 잠을 깨면 당연하게 머리 자르고 모든 것 버리고 가는 건데,

안가고 있다는 것은 뭔가 아직 집착이 남았다는 것이기에 이것은 깨달은 자라고 할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못 깨닫고 승려된 사람이 많지만 부처님 당시에는 일정하게 깨달음을 얻고나서 승려가 됩니다.

 

불상․탱화가 불보요, 경·율·논 삼장이 법보요, 출가 오중이 승보다 하는

이런 삼보 개념을 주지삼보(住指三寶)라 합니다.

여기서 주는 머무를 자를 쓰는데, '이 세상에 부처님 법이 오래도록 머무르게 하는 삼보다' 해서 그렇습니다.

이 주지삼보는 우리가 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대상이 있습니다.

 

삼종삼보(三種三寶) : 동체삼보, 별상삼보, 주지삼보

다시 정리하면 삼보에는 동체삼보, 별상삼보, 주지삼보가 있다.

동체삼보에서는 내 마음이 깨달으면 부처요, 내 마음 고요하면 법이요, 내 마음 청정하면 스님이다,

별상삼보에서는 법신·보신·화신이 불보요, 교리행과가 법보요, 성문 현성들이 바로 승보다,

주지삼보에서는 불상·탱화는 불보요, 경·율·논 삼장은 법보요, 출가오중은 승보다.

 

 

 

(제13강에 계속합니다~~)

 

이 강의는 '정토회 > 정토TV > 법문 보기 > 실천적 불교사상'에서  동영상으로 볼수 있습니다.

 

 

*** 짧은 생각 ***

 

삼종삼보의 구분은 대승에서의 구분인지 소승에서의 구분인지 명확하지 않습니다.

다른 자료도 찾아보았지만, 확실한 것이 없더군요.

불교대학에 가면 물어봐야 할 것 중의 하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