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지도 않았는 데 이른 벚꽃이 우릴 반기기에 시장한 줄도 모르고 취해 걷다가,
잠실 석촌호수 옆 먹자골목인 '방이 맛골'에 들러 소머리 곰탕으로 든든히 배를 채우고,
올림픽로를 따라 걷다보니 길 한 가운데서 천하장사들이 힘자랑을 하고 있습니다.
<유도인가, 레슬링인가?>
<벚꽃을 배경으로 으라차차, 투포환!>
<몽촌토성역에 당도하니 이 봄을 자전거로 즐기는 사람들, 발로 즐기는 사람들이 우리보다 먼저 와 있고,
길 건너에는 커다란 구조물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제24회 서울 올림픽 대회를 기념하여
노태우 대통령께서 "인류에 평화를, 민족에 영광을" 갈망하며,
"세계 평화의 문"을 높이 24m, 폭 62m, 길이 37m로 1988년에 세웠는 데,
인류의 평화는 커녕 한반도 평화마저도 갉아먹는 암수 쥐새끼들이 판치고 있으니...>
<윗 사진은 사진작가 김윤경님이 추천한 그 장소에서 그 시간에 찍은 것이고,
아래 사진은 내 맘대로 찍은 것인 데, 내 것이 덜 위압적이어서 맘에 듭니다. ㅎㅎㅎ>
<아하, 순환열차도 있군요..>
엄지손가락
1988년 프랑스 세자르 작품
<오른손일까, 왼손일까?>
몽촌토성
"낮은 구릉으로 쌓은 백제 때의 산성으로 당시의 이름은 알 수 없다.
성안에 '곰말(꿈말)' 곧 '몽촌(夢村)'이라는 마을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이름을 얻었다.
하늘에서 보면 마름모 모양이며, 성벽 길이는 2,285m, 내부 면적은 216,000㎡(67,000평)이다.
동북쪽 바깥의 작은 능선에는 둘레 약 270m의 외성을 따로 쌓았다.
지금은 성벽이 허물어져 옛 모습을 많이 잃었지만, 아직도 바깥쪽 높이가 40m를 넘는 곳도 있다.
몽촌토성 안에는 각종 토기·기와류와 철제 무기류, 뼈갑옷, 중국에서 만든 동전무늬도기 및 청자조각 등이 출토되었는 데,
대부분 4~5세기에 백제사람들이 즐겨 쓰던 물건들이다.
몽촌토성을 하남위례성 유적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무식하게도 백제 하면 부여·공주만 떠올렸는 데 알고보니 그게 아닙니다.
백제의 700년 역사 중에 500여 년간 이 곳 한성(서울)을 수도로 삼았습니다.
강성했을 때엔 서울(한강)을 차지했었고, 찌그러졌을 땐 부여에 있었고...>
<그렇게 보니까 서울의 역사가 쭈욱 올라갑니다.
서울은 조선 태조 이성계가 개성에서 천도하기 이전,
백제가 첫 수도로 삼은 이래 현재까지 2쳔년 이상의 역사가 흐르는 고도(古都)입니다.>
<서울 땅만 기준으로 살펴보면,
AD 475년까지는 백제 땅, 551년까지는 고구려 땅, 553년까지는 다시 백제 땅,
그 뒤로는 신라 땅, 고려 땅, 조선 땅, 왜놈 땅, 그 다음엔 대한민국 땅땅땅!!!>
움집터
"~~ 백제초기의 집터로, 4채의 지상건물터와 12기의 움집터가 드러났다.
움집은 풍화암반을 30~100cm 가량 파내어 만든 것으로 일반 백성들이나 성을 수비하는 군사들이 거주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 지상건물 지붕에는 기와가 올려졌던 것으로 추정되며, 당시의 지배계층이나 공공기관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움집터 전시관 안에 있는 발굴터인데, 창문으로 들어온 햇빛 때문에 사진이 흐립니다.>
<대신, 그 때의 '움집 복원도' 추가요!>
<그 때의 성벽이 지금은 아이들 미끄럼틀이 되었고~~>
<목책을 재현해 놓은 성벽에는 남녀 파수꾼들이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고 있습니다.
천안함 폭침은 어림도 없다, 이 짜샤들아!!
요샌 또 무인 항공기로 야단법석을 떨고 있으니...(요건 밥티로 잉어 낚는 것처럼 보임)
예전에 서세원이 그랬습니다.
'복수 알 복수, 알알 복수!' → '복수는 복수를 낳고, 또 복수를 낳는다!'
'사기 알 사기, 알알 사기!' → 해석은 안하겠습니다. 에구구, 속 터져...>
<몽촌역사관 앞에서는 새싹들이 역사공부에 여념이 없고~~>
<건너편엔 돗자리 펴고 이 봄을 즐기고 있습니다.>
<이곳은 88올림픽 체육시설 부지로 확정된 후 1983년부터 1989년까지 모두 6차에 걸쳐 정밀조사를 실시하였는 데,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아직도 발굴 조사는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올림픽 덕택에 이만큼이라도 남지 않았나 싶습니다.>
<600년 된 은행나무
홀로 서있기에 이 은행나무가 사진가들이 좋아하는 '왕따나무'인 줄 알았는 데 아닙니다.
찾아보니 왕따나무는 자그마한 향나무랍니다.
혹시 왕따나무의 그림자라도 있나해서 찍어온 사진들을 샅샅이 훝어봤지만 흔적도 없습니다.>
<은행나무를 지나 성벽 위를 한참 걷다가, 내려와 곰말다리를 건넙니다.>
곰말다리
"이 다리는 원래 몽촌교로 불리워졌으며 몽촌(夢村)은 우리말로 '꿈마을'이다.
'곰말'은 꿈마을의 옛말로 1986년 3월 서울시 지명위원회가 교각 명칭 제정시
순수하고 아름다운 우리말을 복구하기 위하여 '곰말다리'라 부르기로 하였다."
<다리 생김새보다 이름이 훨씬 더 멋집니다.>
<조금 더 가다보면 벚꽃과 어우러진 팔각정이 올려다 보이는 데~~>
<아까 성벽위에서 보았던 그 팔각정입니다.>
<이제부터는 벚꽃 감상을 하시지요!>
<성벽 위를 걷는 사람들과 함께 잡았는 데, 내 눈에는 완죤히 작품입니다, 작품!>
<벚꽃 쳐다보느라 고개 빠집니다.>
<버드나무와도 멋지게 어울리네요.>
<우리도 벚꽃과 함께, 토끼와 함께!!>
<몽촌토성을 나와 아산병원 건너편의 약국거리를 지나,
풍납토성에 도착했는 데 조금 허허롭습니다.
성 안쪽의 아파트촌에 짓눌려 초라하게만 보이는 풍납토성,
성이라기 보다는 아파트 지을 때 파낸 흙을 쌓아놓은 '토사 야적장'같은 느낌입니다.>
풍납토성
"한강 변에 쌓은 평지성으로, 원래는 둘레가 3.5km 정도였으나 지금은 2km 가량만 남아 있다.
토성의 형태는 남북으로 길게 뻗은 타원형 또는 배 모양이다.
성벽은 고운 모래를 한 층씩 다져 쌓았으며, 성벽 바깥에는 해자도 있었다.
성벽의 아랫부분 폭은 43m이며, 높이는 약 9~11m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성 안에서는 성벽을 쌓기 전에 만든 세 겹의 환호와 집자리가 발견되었다."
<허물진 성벽은 그나마도 군데군데 끊어졌다 이어지고~~>
<아이들 미끄럼틀도 되었습니다.>
<옛 영광이 사라진 뒤,
천 번도 넘게 찾아오는 이 봄은 이름 모를 꽃이 반기고~~>
<새들은 또 무심히 봄이 왔음만을 세상에 알리고~~>
<~~ 할머니들은 이 봄을 바구니에 담습니다.>
<오메, 근디 인자부터는 성벽이 없어져 부렀네, 이!>
<동네 어르신네 말씀, 2010년까지 복원한다고 했는 데 시늉도 안한답니다.
우린 주택들 사이로 걷기를 한참~~>
<다시 성벽이 나타나긴 했는 데, 다른 곳과 달리 조금 번잡합니다.>
<이곳에는 풍납시장이 있어 사람사는 냄새가 납니다.>
<다시 또 성밖으로 길은 이어지는 데~~>
<오른쪽이 풍납근린공원이라 많이 가꾸어 놓았습니다.
성벽 밖에 높은 나무가 있다는 것이 상당히 어색하기는 하지만....>
<이렇게 우린 풍납토성이 끝나는 천호대로까지 왔습니다.>
<여기까지 해서 백제의 흔적을 찾는 오늘의 여행은 끝났습니다.
천호대로 변에 있는 안내판을 보니 우리가 걸었던 길이 '한성백제 왕도길'입니다.>
오늘도 구경 한 번 잘~~ 했다!!!
에구구, 다리 아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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