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걸으면서 느낀 것들 중 하나!
젊은 사람들에게는, 그리고 돈과 편리함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는 다른 느낌이겠지만,
뭔가를 보고 느끼려면 강북으로 가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그저 화려함만으로 감싼 강남보다는, 사람사는 냄새가 나고 역사가 숨쉬고 있는 강북이 내겐 더 정답습니다.
40여년 전부터 서울 시민을 꿈꾸었지만 아직도 입성하지 못하고 있는 나에게,
살고 싶은 곳을 고르라면 두말도 않고 강북, 그것도 개인주택을 고르겠습니다.
만약 로또복권이 당첨되면 평창동이나 성북동으로 ㅎㅎㅎ
<오늘은 성북동 골목길을 탐방하고자 나왔는데, 맨 처음 들른 곳이 최순우 옛집입니다.>
.
혜곡 최순우(崔淳雨 1816~1984)
"본명은 희순(熙淳)이고 호는 혜곡(兮谷)으로 개성에서 출생
한국의 도자기와 전통 목공예 그리고 회화사 분야에 많은 학문적 업적을 남김
국립 중앙박물관장을 역임하였고, 심미안의 소유자로 한국의 아름다움을 탐색하는데 평생을 바침"
<아마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란 책 제목은 들은 기억이 날 것입니다.
물론 나도 읽어보지 못했지만 이 책을 혜곡 선생님이 이 집에서 집필하셨답니다.>
<杜門卽是深山(두문즉시심산) : 문을 닫아 걸면 바로 이곳이 깊은 산중
서울 한 복판에 살면서도 마치 깊은 산속처럼 살고자 했던 님의 마음이 전해지는 듯 합니다. >
<뒷마당에 앉아 차 한 잔 마시며 시간을 보낼 수도 있고 ~~>
<자그만 석물을 보며 시간을 잊을 수도 있고 ~~>
<아직도 남아있는 장독대를 보며, 시간을 거슬러 추억에 잠길 수도 있고 ~~>
<뒷짐지고 몇 발자국 돌길 위를 걸으며, 한가로움에 더한 혼자만의 멋에 취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선잠단지(先蠶壇址)
"선잠단지는 누에를 처음 치기 시작했다는 잠신 서릉씨(蠶神 西陵氏)에게 제사지내며 누에농사의 풍년을 빌던 곳이다.
조선시대에 임금은 친경(親耕)이라 해서 손수 농사짓는 시범을 보이고,
왕비는 친잠(親蠶)이라 해서 누에 치는 모범을 보여줌으로써 의식(衣食)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선잠단은 조선 초기부터 운영되었으나, 이 단은 1473년(성종 4)에 마련한 것이다."
<최순우 옛집을 나와 들른 곳은 선잠단지.
예전의 왕은 친히 농사를 짓고, 왕비는 친히 누에를 쳤다는데....
지금의 나라님은 기둥 뒤에서 고개만 빼끔 내밀다가 사라지고, 자갈치 시장은 친히 구석구석 돌고....>
<난 뽕나무가 이렇게 큰 줄 몰랐습니다.
모두 다 70년이 넘은 나무들입니다.>
<그리고 조지훈이 30년간 살았었다는 집터를 찾으려고 몇 바퀴나 돌았건만 결국 실패하고
대신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동네 한바퀴를 하는 멋진(?) 분을 만났습니다.
인터넷에 누군가 올려놓은 것을 보니, 조지훈의 옛집은 연립주택으로 변하고 그 앞에 자그마한 기념비만 남아있는 데,
사진의 글씨가 희미하지만 주소가 '성북동 66번지 44호'인 것 같습니다.
분명 그 앞도 지나쳤는데 왜 내 눈엔 비석이 안보였나???>
<안쪽 까만 대문집은 성락원(城樂園)
고종의 아들 의왕(義王)이 살던 별궁의 정원인데, 자연과 인공이 독특하게 어우러진 좋은 곳이라 하는데,
지금은 사유지라 대문이 굳게 잠겨있어 들어가 볼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지난 겨울 이 동네에 왔을 때, 빨간 벽돌 건물이 주변과 어우러져 너무도 예쁘기에
다시오면 꼭 들러보리라 마음 먹었던 성북동 성당.
신호등이랑 전깃줄이 없다면 주변과 어우러진 멋진 성당을 담을 수 있는데, 어쩔 수 없이 이렇게만....
혹시 기회가 되어 근처에 오게되면 잊지 말고 꼭 한 번 보세요, 참 예쁜 성당입니다.>
<아내가 없으니 성당 안에는 안들어가고 이렇게만 한 컷!>
<길상사
지난 겨울 방문하고서 사진이랑 가슴찡한 이야기들을 블로그에 이미 올렸기에 그냥 지나치려다가,
문득 성모님 닮은 관음보살상이 다시 보고 싶어 한 번 더 들렀습니다.>
<똑 같은 치마를 입은 처자들이 조금 의아하겠지만,
짧은 치마나 짧은 바지 입은 사람은, 이 치마를 입어야 들어올 수 있습니다.
남자도 너무 짧으면 예외 없음>
<관음보살상
예전보다 깨끗하게 담았더니 내 마음도 깨끗해지는 것 같습니다.>
<이곳은 법정스님의 진영각(眞影閣)>
<아주 자그마하게 '법정스님 유골 모신 곳'이 있고 ~~>
<그 옆에는 학을 닮은 하얀 우리 꽃이 있습니다.
누군가는 난이라 하는데 난은 아닌 것 같고...>
<그리고 법정스님이 손수 만들었다는 의자도 있는 데...
누군가 뒤에 걸린 사진과 비교해보더니, 사진과는 조금 다르다고 날카롭게 지적합니다.
그래요, 조금 다릅니다.
비슷하게 만든 것인지 아니면 낡아서 수리한 것인 지 모르겠지만,
이런 것까지 따져보는 우리가 좀 우습기도 합니다.>
<자그만 마당엔 여러 야생화들이 꽃을 피우고 있는데 ~~>
<요건 산삼이 맞지요?? 난 오늘 심봤다~~!!!>
<진영각 내부는 촬영금지라 밖에서만 한 컷 담았습니다.
안에는 스님이 생전에 쓰시던 것 들과 책들이 있더군요>
<겨울엔 외로워보였던 부처님이었는데, 폭포로 한 획 내리 그으니 지금은 내 마음이 꽉 찼습니다.>
<그냥 아무 부담없이 와서 한나절 쯤 가만히 앉아있어도 좋고,
마음을 채우고 머리를 비워서 행복을 담기도 좋은 곳 길상사,
다음에 기회되면 또 들르고 싶습니다.>
만해 한용운(萬海 韓龍雲)
"한용운(1879.8.29~1944.6.29)은 20세기 한국의 불교개혁가이자 시인으로
법명은 만해이며 필명으로도 사용하였고, 아명은 용운으로 충남 홍성에서 출생하였다.
불교 수행자이기에 앞서 일제강점기(1905~1945)에 저항운동에 가담하였다.
일본의 식민지배가 시작되던 1905년 백담사에서 출가하였다.
저술가, 불교개혁가로서의 만해의 시는 민족주의와 사랑을 다루고 있으며
보다 정치적인 내용 중 하나는 1926년에 발간된 님의 침묵이다.
이 작품의 주제는 평등과 자유로서 한국독립운동에 있어 평화적이고 비폭력으로 전개되도록 역할을 하였다.
한용운 선생은 1919년 일본의 식민지배로부터 한국독립을 선언한 33인의 대표 중 한 분이다.
만해 시의 주된 관심은 인간의 본성과 경험의 신비에 관련된 철학적 명상이다."
<길상사를 나와, 호사스런 집들 사이를 걸어 내려오다가 한 노스님을 만났습니다.
만해 한용운님!
지금도 친일파 민족반역자들이 판을 치는 세상이어서 그런지 님의 표정이 밝지 않습니다.>
<님이 사셨던 심우장 오르는 길은 무척 가파릅니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 올라가면 철대문이 나옵니다.
골목길이 너무 좁아 대문을 이렇게 밖에 담을 수 없습니다.>
<마당에 들어서면 오른편에 님이 손수 심으셨다는 향나무가 있습니다.
사경을 헤매다가, 수술도 하고 영양주사도 주어서 겨우 되살아났다는 관리인의 말씀.>
<그 옆에는 우리 꽃 무궁화가 있습니다.>
심우장(尋牛莊)
"위치 : 서울시 성북구 성북동 222-1번지
일제강점기인 1933년 만해 한용운이 지은 집
심우장은 한옥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북향집인데,
남향으로 터를 잡으면 조선총독부와 마주보게 되므로 이를 거부하고 집을 북향으로 지었다.
이처럼 일제에 저항하는 삶으로 일관했던 한용운은
끝내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하고 이 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심우장에서 만해는, ~~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는 청년들에게,
"조금도 실망하지 말게. 우주 만유에는 무상의 법칙이 있네.
절대 진리는 순환함이네. 다만 시간의 차이가 있을 뿐일세.
몸과 마음을 바르게 가지고 사람의 본분을 잘 지키면 자연히 다른 세상이 올 것일세">
<생전에 북쪽인 저곳을 바라보며 마음을 다스리셨겠지요>
壽硯山房(수연산방)
<상허 이태준 선생이 1933년부터 1946년까지 14년간 머물렀던 고택.
지금은 님이 지은 당호인 '수연산방'을 내걸고, 외종손녀 조상명이 찻집으로 운영하고 있음>
상허 이태준(尙虛 李泰俊)
1904년 11월 4일 강원도 철원에서 출생하여 아버지를 따라 블라디보스토크에 갔다가 아버지 사망 후 고향에 돌아옴
휘문고보 재학중 동맹휴교 주모자로 퇴학당한 후 도쿄 조치대학(上智大學) 예과에 입학했다가 중퇴
1933년 구인회 동인으로 활동했으며, 1939년에는 『문장』을 주관하기도 했음.
1946년 7~8월경 월북한 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종군작가로 낙동강 전선까지 내려옴.
1952년부터 사상검토를 당하고 과거를 추궁받았으며, 1956년 숙청 당한 후 행적이 불확실하고 사망 연도도 불확실함
“상허의 산문, 지용(芝溶)의 운문”이란 소리를 들을 정도로 미문가였으며, 1930년대 소설계를 대표하는 작가.
특히 단편 소설의 완성도가 높다하여 한국의 모파상이라고도 불림
<우리 학교 다닐 때는 감히 이름조차 거론할 수 없었는데,
지금은 그가 살았던 집에 찻집을 열고 매스컴에도 오르내리니 상전벽해라고나 할까...
손님도 무척 많습니다.>
<아내와 같이 왔다면 차 한 잔 하며 이곳저곳 차분히 사진을 찍었을텐데,
혼자 있기도 뻘쭘하여 그냥 건성건성 찍어보았습니다.>
<옛날 우물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습니다.>
聞香樓(문향루)
<님이 글을 쓰던 방입니다.
난 향을 맡는 것을 문향이라 하던가, 님은 난과 파초를 무척 좋아하셨답니다.>
<이곳은 길상사, 성북성당과 함께 종교간의 참 교류를 실천하고 있는 덕수교회>
간송미술관(澗松美術館)
<간송 전형필 선생이 평생을 두고 수집한 우리의 문화재를 보관하고 연구하고 또 전시하는 곳.
일년에 두 차례, 대개 5월과 10월중에 보름정도 전시회기간에만 개방함.
지금은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에서 전시중으로 외부인 출입금지>
이렇게 최순우 옛집부터 간송미술관까지,
사람의 향기 그윽한 성북동 골목길을 걸어보았습니다.
'행복한 걷기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13-1. 사직단에서 창의문까지 (0) | 2014.09.28 |
---|---|
12. 헤이리와 오두산 통일전망대 (0) | 2014.09.21 |
10. 과천 서울대공원 - 산림욕장 (0) | 2014.08.18 |
9-2. 백제의 흔적(몽촌토성-풍납토성) (0) | 2014.04.08 |
9-1. 백제의 흔적(석촌동 적석총-석촌호수 벚꽃) (0) | 2014.04.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