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
쪼끔 잘 써보려 마음먹었더니 도무지 떠오르는게 없어 한 줄도 못썼습니다.
해결책은?
그렇지요,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원래 사진 올리려 블로그 만들었으니, 사진이나 올리고 글은 양념으로 써야 하는데,
멋진 단어, 좋은 문장을 꿈꾸었으니, 담긴 것 없는 무식한 창고에서 나올 것이 없는 것입니다.
사람은 주제를 알고, 생긴대로 사는 게 최고입니다.
<광화문을 바라보고 왼편으로 800m쯤 가면 사직단이 있습니다.
아래 사진은 사직단 대문
사직단과 관련된 여러 시설을 모두 포함하는 영역의 출입문으로,
원래는 25m 앞쪽에 있었는 데, 길을 내면서 뒤로 물러났답니다.>
<대문이 뒤로 물러났으니 당연히 동신문(東神門)과 사이 너른 터가 골목길이 되어버렸습니다.
아래는 꽃봉오리가 엄청 큰 연꽃인데, 비교할 것이 없어서 그 크기를 보여드리지 못하는 아쉬움...>
사직단(社稷壇)
"사직단은 조선 시대 토지의 신(神)인 사(社)와 곡식의 신인 직(稷)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전통사회에서 사직은 종묘와 함께 국가의 근본을 상징했으며,
태조는 도읍을 한양으로 옮기면서 1395년 경복궁 동쪽에 종묘를, 서쪽에는 사직단을 설치하였다.
사직단에는 동쪽에 사단, 서쪽에 직단을 배치했는데,
두 단의 모양과 크기는 한 변이 7.65m인 정사각형이고 높이는 약 1m이다.
~~1910년 전후 일제에 의해 제사가 폐지된 이후 부속 건물들이 철거되었고
두 단만 남긴 채 공원으로 조성되었다."
<이곳은 북신문
동서남북 신문 중 가장 큰 것으로보아, 제사지낼 때 출입했던 것 같습니다.>
<왼쪽이 사단(社壇)이고, 오른쪽이 직단(稷壇).
그래도 왜놈들께 감사드립니다.
다 없애지 않고 이 단이라도 놔두었으니 얼마나 마음이 넓으신 분들인지...>
<사직단 뒷편 공원에는 모자의 동상이 나란히 있습니다.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
황학정(黃鶴亭)
"이 정자는 1898년(광무 2) 경희궁 회상전(會祥殿) 북쪽에 궁술 연습을 위해 지은 사정(射亭)이다.
황학정은 1913년 경희궁이 헐리고 1922년 총독부 전매국 관사가 황학정 자리에 지어지면서 현재의 사직동으로 옮겨졌다.
~~ 1894년 갑오경장 이후 군대의 무기에서 활이 제외되면서 전국의 사정(射亭)이 거의 사라졌다.
그런데 고종이 국민들의 심신단련을 이해 궁술을 장려해야 한다는 어명을 내려 궁궐 안에 황학정을 지었고,
이를 일반 국민들에게 개방하였다.
고종은 그곳을 자주 방문하여 직접 활쏘기를 즐겼다고 전해지며 ~~"
<모자의 동상에서 200m쯤 오르면 황학정이 나옵니다.>
<혹시나 날아오는 화살에 맞을까봐, 사람 다니는 통로엔 천정까지 있습니다.>
<황학정 안에는 국궁전시관이 있는데, 삼국시대의 화살촉도 전시해놓았습니다.
위에서 두 번째는 고구려, 그 밑에는 백제, 맨 아래는 신라의 화살촉입니다.
고구려 화살을 보세요, 한 대 맞으면 완죤히 ~~~!!
그러니까 당태종 이세민이 안시성에서 저 화살을 눈에 맞고 시름시름하다가 ....>
신기전(神機箭)
"조선시대에 사용된 로켓 추진 화살.
신기전은 세종 30년(1448년)에 만든 것으로, 화살 뒷부분에 화약통을 만들어 화약을 넣고 불을 붙여 쏘았다.
화약이 폭발하는 힘으로 날아가므로, 일반 화살보다 더 멀리 날아갔다.
사정거리는 1999년 행주산성 남쪽 한강변에서 시험발사 했을 당시 200~250m였다."
<지금은 점심시간이라 아무도 없지만,
일전에 왔을 때는 이곳에서 활을 쏘는 궁사들이 있었는데 ~~>
<쏜 화살은 저 건너편 과녁까지 날아갑니다.
지도에서 재보니 거리가 무려 150m!>
등과정터(登科亭址)
"등과정은 조선시대 무사들의 궁술연습장으로 유명한 사정(射亭)이다.
사정이란 활터에 세운 정자를 말하는데, 등과정은 서울 서쪽 지역에 있는 다섯 군데 이름난 사정 가운데 하나였다.
갑오개혁이래 궁술(弓術)이 폐지되면서 헐렸다."
<그러니까 경희궁에 있던 황학정이 이곳 등과정터로 옮긴 것이군요>
<황학정을 나와 본격적으로 인왕산로를 걷는데,
아스팔트로 덮은 포도에는 달리는 차도 별로 없고,
흙으로 만든 인도에도 걷는 사람이 별로 없어,
마음은 한가로워지고 기분도 여유로워지니, 걸음이 점점 느려집니다.>
<슬쩍 올려보니 멀리 인왕산 꼭대기가 보이고 ~~>
<고개를 돌리니 석굴암 가는 길이 보입니다.
지키고 있는 군인에게 석굴암까지 얼마나 걸리냐고 물어봤더니 오분이면 족하답니다.
그러나 조금 올라가다가 그냥 돌아섰습니다.
아무래도 즈그들 걸음으로 5분인 것 같아....>
<초파일이 벌써 두 계절이나 지났건만 아직도 연등이 있습니다.
내년 초파일을 미리 준비하는 것인지??>
<창의문으로 가는 이정표의 화살표 방향이 이상하여 한참 들여다보고 있었더니,
방향표시가 잘못되어 여러사람들이 헷갈리더라고 친절하게 가르쳐주십니다.
그리곤 고맙다고 인사할 겨를도 없이 또 달려 나갑니다. 하나 둘, 하나 둘!>
<나무 사이로 뻥 뚫려 하늘이 보이는 저곳은 어디일까?
서울 시내가 다 보이는 전망대 입니다.>
<오늘은 비교적 하늘이 깨끗해 전망이 아주 좋군요.>
<왼편 파란 지붕 건물이 청와대,
보는 각도때문에 그런지 몰라도 지붕일부가 하얗게 보이는데, 가서 확인할 수도 없고...
청와대는 사진찍으면 안된답니다.
이곳을 지키는 군인 아저씨들이 사진찍는 걸 보면 삭제하라고 합니다.
국가 기밀사항인데 북한 괴뢰도당에게 행여 넘어가기라도 하면 나라의 운명이 위태로울(?) 것이라 그러겠지요.
이 사진을 조중동이 본다면, 종북좌빨의 짓이 틀림없다고 떠들어댈 것도 같은데....
소꼽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다 큰 어른들 하는 짓이 참 한심합니다.>
<이쪽으로도 청운공원을 간다고 쓰여있어서 방향을 틀었습니다.>
<그렇게 길을 따라갔더니 '윤동주 시인의 언덕'이 나오는 데,
사자 닮은 호랑이 한 마리가 버티고 있습니다.
"문화강국 호랑이"
"인왕산에 호랑이가 돌아왔다."
웃음 안나옵니까? 안나오면 말고....>
Social Brain - 공공의 기억 살리기 프로젝트 : 인왕산에서 굴러온 바위
2600(높이) * 4860(긴지름) * 3860mm(적은지름), 스틸, 2007
"옛 인왕산의 신령스러운 기운을 담은 바위 모양처럼 디자인되어
마치 예전 성황당에 돌을 쌓듯이 시민들의 소망과 염원을 담아내도록 한 작품이다."
작품에는 이렇게 적혀있습니다.
"돌을 쌓아 주세요, 바위가 소원을 빌어줍니다.
돌을 쌓아 주세요, 바위가 기뻐합니다.
돌을 쌓아 주세요, 바위가 자랍니다."
<나도 돌 하나 얹으려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주위엔 자갈은 커녕 모래알도 보이질 않아,
한참 떨어진 곳에 가서 땅에 박힌 손가락 마디만한 바위를 하나 캐어 올려놓았습니다.
소원? 항상 똑같습니다.
로또복권 1등 나 혼자만 딱 한 번 당첨되게 해주세요...>
윤동주 문학관
<안에 들어가니 제1전시실에 님의 친필원고도 있는데, 사진을 못찍게 하니 올릴만한 게 없습니다.>
<제2, 제3 전시실은 사진촬영이 가능하다고 적혀있는데,
이곳이 제2전시실이고, 저쪽 문으로 들어가면 제3전시실입니다.>
아마 이곳은 일제라는 감옥을 형상화하지 않았나....>
<그래도 아쉬워 입구에 적힌 시를 찍어보았습니다.>
<윤동주 문학관에서 나와 큰길을 건너 조금만 올라가면 서울 성곽길의 한 축, 창의문이 나옵니다.>
창의문(彰義門)
"북문(北門) 또는 자하문(紫霞門)으로도 불린다.
1396년(태조 5) 서울 성곽을 쌓을 때 세운 사소문(四小門)의 하나로 창건되어 창의문이란 문명(門名)을 얻었다.
북한(北漢) ·양주(楊州) 방면으로 통하는 교통로였으나
1416년(태종 16) 폐문(閉門)한 채 일반의 통행이 금지되었다가 1506년(중종 1)에 다시 열어놓았다.
1623년 인조반정(仁祖反正) 때는 능양군(陵陽君:인조)을 비롯한 의군(義軍)들이
이 문을 부수고 궁 안에 들어가 반정에 성공한 유서 깊은 곳이기도 하다."
<성문 안에서 본 창의문입니다.
사진 좀 찍으려하는데 어찌나 사람이 많은지, 도무지 짬을 내주지 않고 ~~>
<성문 바깥에서 찍으려고 5분을 기다려도 도무지 비켜주질 않습니다.>
<옆으로 올라가면 문루로 들어갈 수 있는데, 절대 가지 마십시오.
가까이 다가가면 삐이~~삐이~~ 울어대고,
빨간 불이 번쩍번쩍, 가슴은 콩닥콩닥...
숭례문 불타고 나서 취한 조치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계단이 끝나는 곳에는 최창살과 철조망,
그래도 코스모스는 피어납니다.
창의문 오른쪽편으로 북악산을 넘는 성곽길이 있는데, 이곳이 들어가는 입구입니다.
주간에만 개방되며, 방명록에 적고 신분증을 보여준 후에야 걸을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 왔으니 뽀오나쓰 정보로 마무리!
창의문 밖에는 계열사(鷄熱社)가 있습니다.
닭다리 집인데 손님이 엄청 많아 지난 번에 갔을 때 1시간이나 기다렸습니다.
맛이 다른 곳보다 좋다는 것은 인정하는데, 1시간 기다릴 정도는 아닙니다.>
이제 나는 백사실계곡으로 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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