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차림으로 걷기여행을 할 때엔, 날이 화창하다고 꼭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오늘처럼 햇볓이 강하면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는 것도 귀찮은 일이고,
지금처럼 눈뜨기도 힘들게 햇살이 쏟아지면, 어쩔 수 없이 모자를 써야 하고,
거칠것 없이 내리쬐는 햇빛이 너무 강하면, 사진을 찍어도 눈에 보이는 것만큼 나오지 않아 싫습니다.
블로그에 올리려 추리다 보니 제대로 된 사진이 없어 날씨탓을 하고 싶은데,
무슨 단어을 쓰는 게 맞는 것인지 몰라 그냥 되는대로 적어보았습니다.
햇볕, 햇빛, 햇살.... 사전적인 의미는 이렇더군요.
* 햇볕 : 해가 내리쬐는 뜨거운 기운
* 햇빛 : 해가 비추는 빛
* 햇살 : 해가 쏟아내는 광선
<창의문을 나와 백사실 계곡으로 가는 길목엔 작은 골목길이 있는 데,
이곳에 사는 사람은 불편할 지 몰라도 나처럼 지나치는 객에게는 정답고 푸근합니다.>
<가는 길에 수준 좀 높여보려고 잠시 환기 미술관에 들러보았는데,
공짜인 줄 알았더니 입장권을 끊으라고 해서 겉모습만 보고 그냥 돌아섰습니다.>
<걷기여행 안내책자의 문구를 잘못 해석하여 이골목 저골목을 한참 헤매다가,
겨우 찾은 중간 이정표, 한국대학생선교회(Korea Campus Crusade for Christ),
잘못 읽으면 '대학 생선 교회(Campus Fish Church)?'
웃자고 하는 소리요, 실수하지 맙시다!>
<어쨌든 어렵사리 찾아 올라온 '백석동길'이 보여주는 한가로움은
꼭꼭 숨겨 놓았다가 내게만 보여주는 그런 비밀의 길인듯 싶습니다.>
<이런 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도 얼핏 들었지만 그것도 잠시뿐,
세속에 찌든 내겐, 눈오면 어쩌나 얼음얼면 어쩌나 걱정이 앞섭니다.
아니, 그보다 더 현실적인 문제, 돈이 많이 있어야 이곳에 올 수 있겠구나......>
<우리가 눈으로 보는 것은 그냥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귀에 들리고 코로 냄새맡고 피부로 느끼는 그런 것들이 우리 머릿속에서 조합이 되고,
그것들이 눈에 보이는 것들의 배경이 되어, 우리가 보는 것이라고 느껴지기에,
있는 그대로의 빛만을 담는 사진으로는, 눈앞에 펼쳐지는 이 멋들을 다 표현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사진으로 보기는 밋밋해보이지만, 직접 와서 한 번 걸어보세요,
걷다가 잠시 멈추고 뒤도 한 번 돌아보고 심호흡을 해보세요.
서울이 이렇게 좋은 줄 몰랐을 겁니다.>
<그리고 고개를 들면 북악산 성곽이 보입니다.>
<요즘엔 드라마에 한 번만 나오면 단박에 유명세를 타는데,
이곳은 'MBC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 촬영지라 소개된 '산모퉁이' 카페입니다.
옆에 아내가 없어서 들어가 마시는 것은 생략!>
<조금 떨어진 곳에 간판마저 바꾼 곳이 또 하나 있습니다.
이곳의 원래 이름은 '산유화 카페'인데, KBS 월화미니시리즈 '연애의 발견' 촬영을 위해
간판을 임시로 '여름 & 소나무'로 바꾸었답니다.>
"여태 걸은 길도 서울에서는 보기 드문 예쁜 길이었지만,
지금부터는 남에게는 알려 주지 않고 혼자만 즐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보석같은 길이다.
찻길에서 불과 몇걸음 들어왔을 뿐인데 완전 딴 세상이다."
<그래요, 이 길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햇빛을 원망했습니다.
눈에는 다 보이는 데, 카메라로는 보여주지 못하기에 안타까울 뿐입니다.>
백석동천(白石洞天)
"'백석'은 '백악(북악산)'을 뜻하고, '동천'은 '산천으로 둘러싸인 경치 좋은 곳'을 말한다.
따라서 '백석동천'은 '백악의 아름다운 산천으로 둘러싸인 경치 좋은 곳'이라는 뜻이다."
<'백석동천' 각자(刻字)바위를 뒤로하고 백사실로 내려가는 데, 걸음이 자꾸 느려집니다.
한 나절쯤 걸려 내려가더라도 결코 잃을 것이 없는 길!
오늘의 걷기여행 코스도 참 잘 골랐습니다.>
서울 부암동 백석동천(白石洞天)
"백석동천은 조선시대의 별서가 있던 곳이다.
자연경관이 수려한 곳에 건물터와 연못 등이 남아있으며, 인근에 '백석동천', '월암' 등의 각자바위가 있다.
~~한편 백석동천은 인근 주민들에게 '백사실 계곡'이라 불리면서 이항복의 별장지였다고도 전해지는데,
이는 이항복의 호가 백사(白沙)인 것에서 유래하여 구전 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이곳에는 연못과 육각정의 초석이 그대로 남아있고, 그 뒤의 높은 곳에는 사랑채의 돌계단과 초석이 잘 남아있다."
<그 옛날, 이 산속에 이런 집을 짓고 연못을 파고 육각정을 만들었다니....>
<사랑채에서 내려다 보면 연못과 육각정이 보이고 ~~>
<육각정에서 올려다 보면 연못 건너 사랑채가 보입니다.>
<백사실에서 슬금슬금 내려오니 너럭바위와 현통사(玄通寺)가 보이는 데,
햇빛이 너무 강해 사진이 별로입니다.>
<어렸을 적 아버지께 들은 이야기,
옛날에 어느 농부가 산골 논에서 일하다 쉬면서 자기 논을 헤아려보는 데,
분명히 아흔아홉 배미가 맞는 데, 세어보고 또 세어봐도 한 배미가 없더랍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밀짚모자를 집어든 순간, 그 밑에 논 한 배미가 숨겨져 있었다하니,
그 논이 아마 이 상추밭만 했던 것 같습니다.
바위에 벽돌을 쌓고 흙을 채워 텃밭으로 만든 농부의 후예!
나도 꿈이 시골가서 텃밭 가꾸는 것입니다.
언제? 9년 후에....>
* 배미 : 구획진 논을 세는 단위
<좁디 좁은 골목길, 가파른 계단,
그래도 도시가스가 공급되는 첨단의 도시!>
<빌라 아니면 연립주택?
틀렸습니다, 세검정 성당입니다.
비록 사탄띠이기는 하지만 세례명까지 있으니, 성당을 보면 반갑습니다.
이렇게 아부하면 아내에게 점수 한 점 딸 수 있겠지... ㅎㅎㅎ>
<성당 건물은 각도가 안나와 찍을 수 없으니 이 사진으로 가름합니다.>
세검정(洗劍亭)
1. 영조 때 총융청(摠戎廳)을 이곳으로 옮겨 도성 방위와 북한산성의 수비를 담당케 하면서 군사들의 휴식처로 세웠다는 말,
2. 인조반정 주도세력의 일원이었던 이귀(李貴), 김류(金瑬) 등이 이곳에서 광해군의 폐위를 논의하고 칼[劍]을 씻었다[洗]는 말,
3. 연산군 때 유흥을 위해서 이 정자를 지었다는 말
<'동국여지비고'에는 '역대 왕들의 실록이 완성된 뒤에 반드시 세검정에서 세초(洗草)하였다'하고,
겸재 정선의 '세검정'이라는 부채그림에 이 정자가 있고,
정조임금이 세검정을 두고 읊은 시도 남아있으니 역사가 오래된 정자임은 틀림이 없는데,
1941년에 화재로 주춧돌 하나만 남긴 채 소실되었다가,
1977년에 복원한 것이 지금의 모습인데, 겸재의 그림에서 보는 옛모습과는 완전히 다르답니다.>
"주변 풍광은 더욱 달라졌다.
바위와 나무뿐이던 산에는 온갖 집이 다닥다닥 들어섰고,
장마가 지면 물구경을 할 만큼 깊고 세차서 온 산이 울린다던 계곡물은
부연 생활하수가 지친 듯 흘러드는 가는 물줄기로 변했으며,
흐르는 물이 갈고 닦아 먹물 마를 날이 없었다던 너럭바위들은
더러는 시멘트덩이에 묻힌 채 지저분한 모습을 미처 가리지도 못하고 있다.
아무리 산천조차 못 믿을 세월이라지만 한숨 섞인 푸념이 아니 나올 수 없는 곳이 지금의 세검정이다."
<할 말이 별로 없어 『답사여행의 길잡이 15 - 서울』에서 그냥 옮겨 보았습니다,
조금은 서글픈 현실이고 사실입니다.>
석파정 별당(石坡亭 別堂)
"이 집은 19세기 중엽에 건축된 것으로 창의문 밖에 있는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별장인 석파정의 별당이다.
1958년에 서예가 소전 손재형(素筌 孫在馨)이 이곳에 자기 집을 지으면서 이 별당을 뒤뜰에 옮겨 지었다.
~~ 흥선대원군이 앞쪽으로 돌출된 큰 방을 사용하였고, 난초를 그릴 때에만 대청을 사용하였다고 한다."
<눈여겨 보지 않으면 찾기도 힘들고, 사진도 이렇게 밖에 찍을 수 없습니다.
앞쪽은 한식집 석파랑의 지붕 일부입니다.>
<신발이 있고, 상보가 있고, 청소도구도 있는 것으로 보아
한식집 석파랑에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대원군이 난초 그릴 때에만 사용했다던 대청에서 술잔을 기울이는 기분은 어떨까??>
<한식집 석파랑 쪽에서 석파정으로 올라가는 길>
홍지문 및 탕춘대성(弘智門 및 蕩春臺城)
"이 성은 1719년(숙종 45)에 쌓은 것으로, 한양의 도성과 북한산성을 연결하여 세운 성이다.
도성과 북한산성 사이 사각지대인 지형에 맞게 두 성 사이를 이어 성벽을 만든 일종의 관문성(關門城) 성격을 지녔다.
~~ 홍지문은 홍예 위에 정면 3칸 측면 2칸짜리 문루를 지었는 데, 대개의 성문처럼 우진각지붕이다.
~~ 그 옆으로 이어진 수문(水門)인 오간수대문은 홍예 5칸을 틀어 수구(水口)로 썼다."
* 홍예(虹霓, Arch 아치) : 문의
<그러니까 탕춘대성은 길이 약 4km의 산성이고, 홍지문은 탕춘대성의 출입문이랍니다.>
<탕춘대성 안쪽에서 보는 홍지문인데,
홍지문 바로 왼편의 넓디넓은 세검정로 위로 어찌나 차들이 많이 다니는지,
뭘 느끼고 자시고 할 그럴 분위기가 전혀 아닙니다.>
<성 밖에서 보는 홍지문
햇볕에 눈도 따갑고, 차소리에 귀도 따갑고, 매연에 목구멍도 따갑고....>
<홍지문에서 홍제천을 따라 500m쯤 내려가면 옥천암이 있는데 ~~>
<이곳은 옥천암이라는 이름보다 보도각 백불로 더 알려졌습니다.
백불이라기에 백분의 부처님이 계신 줄 알았는 데, 흰 부처님상이랍니다.>
옥천암 마애좌상(玉泉庵 磨崖坐像)
"이 불상은 옥천암 보도각 안 바위에 새겨진 마애좌상이다.
불암(佛巖) 또는 '보도각 백불(普渡閣 白佛)'로 일컫지만, 조선말기부터 통칭하여 '백의관음상'으로 부르고 있다.
~~ 독립된 거대한 불암바위 앞면에 5미터의 장대한 마애상을 새겼다.
~~ 고려 12~13세기 마애불상 양식을 대표사는 걸작으로 평가된다."
* 마애불(磨崖佛) : 자연 암벽에 부조(浮彫) 또는 음각으로 조각한 불상
<앞에 흐르는 물은 세검정앞을 거쳐온 홍제천인데, 물색깔도 안좋고 냄새도 조금 나는 것이 흠입니다.>
<불상(백불)이 집(보도각)에 가려서 잘 안보입니다.
부처님은 원래부터 흰색이 아니고, 바위에 부처님을 새기고 그 위에 흰색 칠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기도할 장소도 좁아서, 부처님 뒷편에 와서 절을 하고 기도하는 분도 계십니다.
저 안쪽 기둥 뒤로 사람의 형태가 약간 보이지요?
초상권을 보호하기 위해 일부러(?) 이렇게 찍었습니다.>
<법당은 보도각 오른편에 있는 데 자그마합니다.
스님이 열심히 절을 하고 계시기에 가까이 가지 못하고 이렇게 멀리서만 한 컷!>
법당을 둘러보고 나올 무렵 보도각에 다시 들러보니 아무도 없기에,
그냥 나오려다가 큰 초 한 자루에 불을 붙여 부처님께 올렸습니다.
근데 절을 몇 자리 해야하지???
고민고민하다가 세 자리 올렸습니다.
왜냐고요?
조상들께 제사지낼 때는 두 자리하니, 부처님께는 한 자리 더...
무엇을 빌었냐고요?
잘 몰라서 그런 것이니, 세 자리하는 것이 틀렸더라도 이해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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