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걷기여행

15. 아차산에서 망우산으로

상원통사 2014. 11. 3. 21:49

서울을 크게 감싸고 있는 외사산(外四山) 중 동쪽에 위치하고 있는 아차산,

300미터도 안되는 산이지만 홀로 우뚝하여 한강 건너 풍납토성과 몽촌토성 쪽도 한 눈에 들어오고,

멀리 덕소와 팔당까지도 거침없이 보이는 군사적 요충지였기에 삼국시대엔 싸움도 치열해서,

백제의 개로왕이 고구려군에게 처형당하고, 고구려의 온달장군이 신라군의 화살에 맞아 전사했던 곳,

그러나 지금은 건강을 챙기려 가벼운 마음으로 등산길에 오르는 사람들만 가득합니다.

 

<지하철 5호선 광나루역에서부터 시작하여 생태공원을 지나 아차산 입구에 왔는데 ~~>

 

 

<산에 오르는 사람들이 어느 곳보다 많습니다.>

 

 

<그렇게 조금 오르다가 우린 사람이 별로 없는 아차산성 쪽 길을 택했습니다.>

 

 

<그런데 아차산성이 보이지 않아 한참을 찾았는데, 철제 담장 윗쪽에 있군요.>

 

 

아차산성(峨嵯山城)

"아차산성은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는 아단성(阿旦城) 또는 아차성(峨嵯城)이다.

 ~~396년에는 고구려 광개토왕이 이 성을 빼앗았으며 475년에는 백제 개로왕이 이 성 아래에서 죽었다는 기록이 있다.

 ~~아차산성은 부정 육각형의 포곡식 산성으로 둘레는 1km가 조금 넘는다.

 ~~아차산성은 백제 수도 한성을 방어하기 위해 쌓았으나 나중에 고구려와 신라가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 산성은 한강유역을 둘러싼 삼국의 각축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겨우 산성의 흔적을 볼 수 있는 곳에 와서 사진 한 컷!

  훼손하지 않는 것도 좋겠으나, 나무를 일부 베어내고 산성의 모습을 좀더 보여주는 것이 좋지 않겠나....>

 

 

낙타고개(Camel Head)

"산이나 언덕을 넘어다니는 길의 형상이 낙타의 목과 등부분의 굽은 모양처럼 생겼다해서 명명되어짐."

 

 

<낙타 등에 올라타서 자전거 페달을 밟는 사람들>

 

 

고구려정(高句麗亭)

"~~남한 최대의 고구려 유적·유물이 산재한 이 터에 고대사 연구 역사학자들의 철저한 고증과 자문을 거쳐

 2009년 2월에 착공 같은 해 7월에 준공하였으며 명칭을 팔각정에서 고구려정으로 변경하였다.

 이 고구려정의 기둥은 고대 그리스 도리아식과 비슷한 기둥 가운데 부분이 불룩한 고구려전통양식의 배흘림식으로,

 자재는 3백년 이상 뒤틀리거나 변하지 않는 금강송이며,

 기와는 고구려 궁궐인 평양 안학궁터와 아차산 홍련봉 보루에서 출토된 기와의 붉은 색상과 문양을,

 단청문양은 쌍영총과 강서중묘 등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표현된 문양을 참고하여

 남한에서 최초로 고구려 당시의 건축양식을 재현하였다."

 

<통일 분위기가 무르익어, 북한학자들이 와서 고증도 했다면 더 좋으련만....>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린 분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예쁜 사람! ㅎㅎㅎㅎ>

 

 

<고구려정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광, 시야가 조금 흐린 것이 흠입니다.>

 

 

<언뜻 보기에 개가 턱받치고 앉아있는 모습같아 찍어보았는데....>

 

 

<오르는 산길 곳곳에 "2014 서울 둘레길(아차산구간) 조성사업"이 한창입니다.

  다 완성되면 서울 둘레길도 한 번 걸어봐야겠습니다.>

 

 

아차산 보루군(峨嵯山堡壘群)

"아차산보루군은 고구려가 475년 한성백제를 멸망시킨 후 한강유역 방면으로의 진출로 확보와

 남한 지역을 공략하기 위한 전진기지로서 활용하기 위해 아차산, 용마산, 망우산 일대에 쌓은 군사시설이다.

 보루는 둘레 100~300m 내외의 작은 규모의 성곽을 이르는 말로, 10~100여명의 소규모 부대를 주둔시킬 수 있다.

1990년대부터 아차산 일원에서 20여기의 고구려 보루가 확인되었고,  이 중 17개소가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아차산 1보루>

 

 

<1보루에서 내려다 본 한강 풍경>

 

 

<아차산 5보루>

 

 

<아차산 명품소나무 1호>

 

 

<아차산 명품소나무 2호>

 

 

<아차산 3보루>

 

 

<아차산 4보루

  이곳 4보루는 다른 곳과 달리 성벽과 건물터도 있고 ~~>

 

 

 

<2개의 저수시설도 있는데, 언뜻 보기에는 잔디밭처럼 보이지만,

  암반 풍화토를 파내고 바닥과 벽에 뻘을 발라 방수처리를 하였답니다.>

 

 

<그렇게 걷다보니 어느새 아차산 정상을 지나쳐 버리고 ~~>

 

 

 

<헬기장을 지나 ~~>

 

 

<누군가 쌓아놓은 돌탑 앞에서 쉬고 있었는데 ~~>

 

 

<어르신 한 분이 도착하여 옷을 갈아입으시려 하기에 여쭤봤더니,

  본인이 19년째 이 돌탑을 쌓고 있는 데,

  "예수천국 불신지옥" 사람들이 와서 자꾸 허물어버리는 바람에,

  살아 생전에 완성할 수 있을까 의심스럽답니다.

  오늘도 허물어진 탑을 다시 쌓기 위해 올라오신 78세 어르신과 한 컷!>

 

 

<이곳은 깔딱고개 570계단

  내리막길이어서 다행이지 반대로 왔으면 땀깨나 흘릴뻔했습니다.

  그러나 이 계단을 오르면 90Kcal를 소비하고, 수명이 35분 늘어난답니다.>

 

 

 

 

<이제 우리는 망우산에 접어들었습니다.

  여기는 망우산 1보루>

 

 

<망우산을 걷다보니 묘지가 많이 나옵니다.

  이상하다, 산속에 웬 무덤이 이렇게??

  그러고 생각해 보니 이곳이 망우리 공동묘지이더군요.

  그런데 깜짝 놀랐습니다.

  이곳에는 세상 잘못사신 분들의 무덤이 많이 있습니다.

  누가 세상을 잘못살았냐구요? 세상물정 모르고 속없이 독립운동하신 분들...

  그러지 말고 만주에 가서 독립군 때려 잡았으면 해방 후에도 떵떵거리고 잘살 수 있었을 텐데,

  왜놈들과 무슨 원수를 그렇게 졌다고 목숨 내놓고 그 고생하고 후손들도 전부 거지 만들고....

  혼자만 잘 살면 되었지 애국은 무슨 얼어죽을 놈의 애국이고 충성은 무슨 말아먹을 충성입니까??

  다까끼 마사오는 친일파도 했다가 빨갱이도 했다가 쿠데타 일으켜 나랏님도 했었고,

  그 후광을 입은 후손도 또 나랏님을 하는 지구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나라인데....>

 

 

<그래도 역사는 더 흘러봐야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 판가름 나겠지요.

  정의가 사라지고 도덕이 땅바닥에 처박힌 나라치고 오래 가는 나라 못봤습니다.

  우리가 3%만 변하면 이 나라도 오래 갈 수 있는데.....> 

 

 

雪山 장덕수 선생 (1894 ~1947, 독립운동가, 정치가, 언론인)

"조선민중의 표현기관으로 자임하노라.

 민주주의를 지지하노라.

 문화주의를 제창하노라."                - '주지(主旨)를 선명하노라'에서 -

 

 

竹山 조봉암 선생 (1899 ~ 1959, 정치가)

"우리가 독립운동을 할 때 돈이 준비되어서 한 것도 아니고

 가능성이 있어서 한 것도 아니다.

 옳은 일이기에 또 아니하고서는 안 될 일이기에 목숨을 걸고 싸웠지 아니하냐."   - '어록'에서 -

 

 

萬海 한용운 선생 (1879 ~ 1944, 독립운동가, 시인)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의 간섭을 받지 않으려는 것은 인류가 공통으로 가진 본성으로써,

 이같은 본성은 남이 꺽을 수 없는 것이며

 또한 스스로 자기 민족의 자존성을 억제하려 하여도 되지 않는 것이다."     - '조선독립에 대한 감상' 중에서 -

 

 

松巖(송암) 서병호 선생 (1885 ~1972, 독립운동가)

" 내가 있기 위해서는 나라가 있어야 하고

  나라가 있기 위해서는 내가 있어야 하니

  나라와 나와의 관계를 절실히 깨닫는 국민이 되자"        - '좌우명' 중에서 -

 

 

韋滄(위창) 오세창 선생 (1864 ~ 1953, 독립운동가, 언론인, 서예가)

"글과 그림이 대대로 일어나 끝내 사람에게서 없어지지 않은 것은

 사람이 본디 가지고 있는 성품이 서로 비슷하고 사물의 근원이 있었던 까닭이다.

 이에 솔거 이하 근래 사람에 이르기까지 서화(書畵)를 밝혀 놓고 높고 낮음을 품평하였다."  - '근역서화징' 에서 -

 

 

 

湖巖(호암) 문일평 선생 (1888 ~ 1939, 독립운동가, 민족사학자)

"조선 독립은 민족이 요구하는 정의 인도로서

 대세 필연의 공리요 철칙이다"                  - '애원서(哀願書)' 중에서 -

 

 

小波 방정환 선생 (1899 ~ 1931, 아동문학가, 문화운동가)

"어린이의 생활은 항상 즐겁게 해주십시오.

 어린이는 항상 칭찬해가며 기르십시오.

 어린이의 몸을 자주 주의해 살펴 주십시오.

 어린이에게 책을 늘 읽히십시오.

 희망을 위하여,

 내일을 위하여 다 같이 어린이를 잘 키웁시다."   - '어린이날의 악속' 중에서 -

 

 

知期 문명훤 선생 (1892 ~ 1958, 독립운동가)

"말에는 본이 있고, 글에는 법이 있다.

 말과 글이 같은 민족의 사회에는

 말의 본이 글의 법이오, 글의 법이 곳 말의 본이다."   - '고등 한국말의 본' 중에서 - 

 

 

유상규 선생 (1897 ~ 1936, 독립운동가)

"도산의 우정을 그대로 배운 사람이 있었으니 그것은 유상규였다.

 유상규는 상해에서 도산을 위하여 도산의 아들 모양으로 헌신적으로 힘을 썼다.

 그는 귀국하여 경성의학전문학교 강사로 의과에 있는 동안

 사퇴(仕退) 후의 모든 시간을 남을 돕기에 바쳤다."           - 도산 안창호 '흥사단 발행' 중에서 -

 

 

<그렇게 가을빛이 젖어드는 망우산을 지나며 역사공부 했습니다.>

 

 

<요즘엔 플라톤의 철인정치가 자꾸 떠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