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걷기여행

9-1. 백제의 흔적(석촌동 적석총-석촌호수 벚꽃)

상원통사 2014. 4. 3. 21:53

오늘은 어딜 갈까 뒤적이다가, 퇴근길이면 지나치던 곳을 찾았습니다.

지하철 8호선 석촌역 6번 출구로 나와 조금만 걸으면 마주치는 곳,

오늘의 여정은 여기서부터 시작합니다.

 

서울 석촌동 고분군

"백제 한성시대에 살던 왕과 왕족·귀족들의 무덤이다.

 지금의 국립묘지 같은 것으로 1917년경 지도에는 큰 무덤 290여 기가 표시되어 있었으나,

 1970~80년대 도시 개발로 인해 대부분이 훼손되고 지금은 8기가 남아 있다.

 ~~ 백제 한성 사람들은 북쪽 풍납동 일대에서 살다가, 죽으면 남쪽 한강변 공동묘지에 묻혔음을 알 수 있다."

 

<돌을 쌓아올려 만든 무덤은 처음 봅니다. 크기도 엄청나게 크네요.

  렌즈에 다 잡히지 않아 머리를 좀 썼습니다.

  조금 멀리서 찍어서 위 아래를 잘랐더니 파노라마 사진 비슷합니다.

  질 대신 양으로 승부, 여러 컷을 올립니다.>

 

석촌동 제3호분

"이 무덤은 동서 방향의 길이가 50.8m, 남북 방향의 길이가 48.4m로 추정되는 사각형의 계단식 돌무지무덤이다.

 산에서 가져온 큰 돌을 깨서 3단 이상 쌓았는 데, 1980년대 중반까지 여러 채의 민가가 무덤위에 있었기 때문에

 무덤의 높이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최소 4.5m 이상이 것으로 보인다

 ~~ 제3호분은 4~5세기의 백제 왕릉으로 보이며, 학계에서는 근초고왕(346~375)의 무덤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가로이 걷다가~~>

 

 

<아이들이 놀고 있는 곳에 가보니, 이곳도 무덤입니다.>

 

 

제2호 움무덤

"이 움무덤은 원래 이곳에서 북쪽으로 10여m 떨어진 곳에서 조사된 것을 이곳으로 옮겨 재현한 곳이다.

 땅을 파서 움을 만들고 그 안에 널을 넣어 묻은 움무덤은 인류역사상 가장 보편적인 무덤이다.

 이 곳 고분군에도 돌무지무덤보다 먼저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다양한 집단 움무덤과 대형 움무덤 등이 있다."

 

 

내원외방형(內圓外方形) 돌무지무덤

"A호 적석총 또는 외방내원형 적석총이라고도 한다.

 안쪽에 지름 11.4m의 흙무지 봉분이 있고, 겉모습은 한 변의 길이가 16m인 직사각형의 계단식 돌무지무덤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신라 무덤에서 볼 수 있는 둘레돌인 호석처럼, 안쪽에 둥근 원모양을 열을 지은 깬돌이 봉분 자락에 놓여 있었다."

 

 

석촌동 제5호분

"제5호분은 지름 17m, 높이 3m의 원형 봉토분이다.

 이 고분군에서 형태가 가장 잘 보존된 봉토분이라서,

 정비·복원할 때 내부조사는 하지 않고 봉분의 흙을 쌓은 방식만 확인하였다.

 봉분은 흙을 다져 봉긋하게 쌓았으며 그 위에 강돌과 막돌로 한 겹 덮은 다음에

 다시 흙을 얇게 덮은 특이한 형식의 무덤으로, 이를 즙석봉토분이라고 부른다."

 

 

<250여년 된 회화나무.

  지금은 겨우 목숨만 부지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무덤만 있으면 밋밋하여 꽃들도 한 컷씩!>

 

 

 

 

<박정희 때 개발바람 덕에 이리 헐리고 저리 잘려서,

  지금은 아파트 숲에 갇혀 겨우 시늉만 내고 있는 죽은 이들의 안식처가,

  오늘은 작은 공원으로 변신해 살아있는 사람들의 휴식처가 됩니다.>

 

 

<1983년 2월 쯤으로 기억합니다.

 잠실 누나 집에 얹혀 살던 때, 큰 조카를 데리고 와서 사진찍었던 곳입니다.

 그 땐 손 댄 곳 별로 없는 자연스러운 곳이었던 석촌호수,

 그냥 호수 한 바퀴 돌고 삼전도비 쪽으로 가려고 내려왔는 데,

 뜻하지 않게 벚꽃 잔치에 초대되었습니다, 횡재 만났습니다.

 금년 봄 벚꽃 구경은 이걸로도 충분!!>

 

 

<롯데월드 놀이기구에서 지르는 비명소리가 여기서도 크게 들립니다.>


 

 

<'석촌호수 벚꽃축제'는 다음 주말에야 열리는 데, 금년엔 성급히도 피었습니다.>

 

 

 

 

<진달래도 피고~~>

 

 

<개나리도 어우러졌습니다.>

 

 

 

 

 

 

삼전도비(三田渡碑) 사적 제101호/1639년(인조17)

"이 비는 병자호란 때 승리한 청나라 태종의 요구로 세운 비석이다.

 정식 이름은 '대청황제공덕비(大淸皇帝功德碑)'이지만 문화재 지정 당시 지명을 따서 삼전도비라 지었다.

 도성에서 송파에 이르는 한강나루였던 삼전도는 1950년대까지 나룻배가 다녔으나 70년대 이후 한강 개발로 사라졌다.

 ~~ 비석 앞면은 만주글자와 몽골글자로, 뒷면은 한자로 새겨 17세기 세 나라의 언어 연구에 중요한 자료다.

 내용은 청나라에 항복하게 된 경위와 청 태종의 침략행위를 공덕으로 찬미한 것이다.

 청일전쟁 이후 청의 세력이 약해지자 1895년(고종 32)에 강물 속으로 쓰러뜨렸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인 1913년에 다시 세웠다가 1956년에 묻어 버렸다.

 1963년 홍수로 모습이 드러나면서 다시 세웠다."

 

 

<오랑캐는 자랑하려고 세웠었고, 우린 수치스러워 쓰러뜨렸고,

  왜놈들은 우리 기죽이려고 다시 세웠고, 우린 가슴 아파서 다시 묻어버렸고,

  부끄러운 역사도 우리 역사이기에 우리 손으로 또 다시 세운 삼전도비!

  치부마저도 드러낼 수 있는 것은 자신감의 발로라 믿습니다.>

 

 

 

<삼전도비를 지나, 큰 길을 건너 석촌 동호로 향합니다.

  거기서 거긴 데, 서쪽 호수보다는 덜 화려합니다.>

 

 

 

걸었더니 배가 살살 고픕니다.

몽촌토성도 식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