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성지순례

18-2. 해미성지

상원통사 2014. 2. 6. 00:04

해미? 그렇구나, 10여년 쯤 전에 와본 기억이 난다!

그땐 춘삼월 호시절이라 한참 공치러 다닐 때였지.

공군기지에 있는 골프장이었는 데, 사병들이 캐디를 했었지. ㅎㅎㅎ

근데 오늘은 전혀 다른 목적으로 이곳 해미를 방문했습니다. 

 

해미순교성지(海美殉敎聖地)

"해미순교성지는 1797년 정사박해 때부터 1866년 병인대박해기까지 박해가 있었던 곳으로서

충청 서북부 내포 지역의 교우들 일천여 명이 넘는 많은 분들이 순교한 곳이다.

그러나 이곳 순교자들은 대부분 이름을 모르는 무명 순교자로 남아있다.

당시 해미현은 군사를 거느린 무관영장이 지역 통치를 겸한 막강한 권력을 남용하여

사사로이 박해를 하면서도 중앙에 보고하지 않았고 기록도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 특히 이곳은 생매장 순교지로 교수형, 참수, 몰매질, 석형, 백지사형, 동사형 등의 형벌과 더불어

돌다리 위에서 팔다리를 잡고 들어서 돌에 매어치는 자리개질이 고안되기도 했고,

여러 명을 눕혀놓고 돌기둥을 떨어뜨려 한꺼분에 죽이기도 했다."                  - [한국 천주교 성지순례]에서 -

 

 

<생각만 해도 끔찍한 형이 집행되었던 곳에,

  쳐다보기에도 부담스러울 만큼 큰 건물이, 보는 이들을 압도합니다.>

 

 

 

이름없는 집

"2007년도에 건축된 약7.5평의 초가집으로

 순례자들이 자유롭게 기도할 수 있는 순례공간이자 쉼터입니다."

 

 

<오른쪽 벽에 메주가 걸려있는 것이 이색적입니다.>

 

 

<그 뒷뜰에는 이렇게 조그만 상이 있는 데, 찍어놓으니 참 예쁘군요>

 

 

<대성당의 십자가 뒤에 태양으로 후광을 연출해봤는 데, 보이시는지?

  신심이 깊은 사람만 보일겁니다. ㅎㅎㅎ>

 

 

<안으로 들어서면 1층에 대성당이 있고...>

 

 

<2층에는 소성당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미사가 열렸는 데 신부님이 바쁘신 지 일사천리로 진행하시더군요.

  짧아서 좋기는 했지만, 이곳의 연혁 등을 설명해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은 남습니다.>

 

 

순교 자리개돌

"해미읍성 서문밖 수구위에 놓여있던 돌다리로

 병인대박해 때 신자들을 자리개질로 처형했던 사형도구

 (자리개질 : 돌다리 위에서 서너명의 군졸들이 팔다리를 잡고 들어서,

                 돌에 매어쳐 머리와 가슴을 으스러지게 하는 방법)"

 

 

여숫골(=해미 순교성지)

"특히 1866년 병인년으로부터 1868년 무진년에 이르는 대박해 때에는,

 많은 숫자의 죄수들을 한꺼번에 죽이면서 시체 처리의 간편함을 위하여 생매장형이 시행되었다.
 ~~ 죄인(순교자)들이 죽음의 길을 걸으며 기도하였는데 그 내용이 '예수 마리아'였다.

 이 소리가 신앙이 없는 동리 사람들에게는 '여수머리'로 들렸고,

 이제는 '여숫골'이라는 이름의 땅이 되어 오늘의 순례자들을 맞이하고 있다."

 

 

진둠벙(죄인둠벙)

"생매장 터로 가는 길에 큰 개울을 만나게 되는데

 개울을 건너는 곳에 외나무다리가 있고 그 밑에는 물길에 패인 둠벙이 있었다.

 두 팔을 뒤로 묶여 끌려오는 죄인(신자)들을 외나무 다리 위에서 둠벙에 밀어 넣어 버리기도 하였는데,

 묶인 몸으로 곤두박질 당한 신자들은 둠벙 속에 쳐 박혀 죽었다.

 이 둠벙에 죄인(신자)들을 빠뜨려 죽었다 하여 동리 사람들 입에 '죄인 둠벙'이라 일컬어지다가

 오늘날에는 말이 줄어서 '진둠벙'이라 불리어진다." 

 

<이곳은 '진둠벙'을 형상화하여 만든 곳>

 

 

십자가의 길

"각처의 조형물은 죄수의 목에 채우던 족쇄형 큰칼의 모형을 본딴 것이다.

 재료는 화강석이다. 큰칼 구멍에 원형의 돌을 깎아서 끼워넣고 그 표면에 그림을 조각하였다.

 그림의 한면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이고, 다른 한면은 순교자들의 죽음의 행진을 묘사하였다.

 한국식 판화로 제작하였다."

 

 

 

무명 생매장 순교자들의 묘

"조선조 천주교 박해시 목숨을 바쳐 신앙을 증거한 순교 선열들의 유해 일부를

 이곳 해미 생매장터에서 발굴하여 1935년 4월 2일 서산 상흥리 공소 뒷산 백씨 문중 묘역에 모셨다가

 이제 순교자 유해를 교회적 차원에서 관리하며 성지 순례자들의 기도를 돕기 위해 다시 원위치에 모시다."

 

 

해미 순교탑

"해미천 좌우 주변에서 1866년부터 1872년 사이에 1천명 이상의 신자들이 생매장 당하였다.

 이 순교자들의 유해는 대부분 홍수로 유실되고, 1935년에 그 일부를 발굴하였다.

 이 일대에서 생매장 당한 이름모를 순교자들을 기리기 위하여 1975년에 높이 16미터의 탑을 세웠다."

 

 

<야외 제대>

 

 

<순교 현양 분수탑>

 

 

<노천성당>

 

 

 

농사를 짓던 농부에 의해 순교자 유해가 발견된 곳

"교회가 이곳을 순교지로 인식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농부의 연장 끝에 걸려들어 버려지던 뼈들이 많았다 하는데

 이 때 캐어내던 뼈들은 수직으로 서있는 채 발견되었다고 한다.

 바로 그것은 죽은 몸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이 묻혔다는 증거이다."

 

 

해미순교성지 기념관

 

 

 

 

<기념관 내 유해 참배실>

 

 

해미읍성 안의 감옥

"그 지속적인 박해 동안에 해미 진영(지금의 해미 읍성)의 두 채의 큰 감옥에는

 한티고개를 넘어 내포 지방에 끌려온 천주학 죄인들이 항상 가득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해미읍성 감옥터 앞 호야나무(도지정 기념물 172호)
"수령 : 300년 이상으로 추정

 1790년~1880년대에 옥에 갇혀있던 천주교 신자들을 끌어내어

 동쪽으로 뻗은 가지에 매달고 고문하던 형구(박해 당시 고문 흔적이 남아 있음)"

 

 

해미읍성 안에 있는 순교기념비

"1950년대에 해미 공소 신자들이 식량을 절약하여 1800여 평을 확보하고 공소 강당을 세웠는데,

 1982년에 정부가 문화재 관리 정책의 명목으로 공소 강당을 철거하고

 그 터를 일부 보상, 일부 징발하고 순교 기념비만 새로 세워주었다."

 

 

해미읍성 안에 있는 십자가의 길. 제1처 죽을 죄인 되신 주님

"순교자들이 걸으신 죽음의 길(해미읍성~여숫골)을 따라

 시장, 농경지, 동네와 해미천 등 해미 곳곳을 지나는 십자가의 길이 조성되었다.

 이 십자가의 길은 성지와 성지 인근을 아우르는 국내 유일의 십자가의 길로써,

 이로 인해 해미 시내 전역이 기도의 땅이 되었으며,

 현재 전국의 본당과 신심단체들이 순교자 유해를 모시고 기도에 임하고 있다."

 

 

<이름 석자 남은 이들은 곱게라도 죽였겠지만,

  이름없는 민초들은 지렁이보다도 못하게 죽였을 것인 데,

  그래도 주님 찾으며 달게 받았을 그들의 죽음을 어찌 생각해야 할까...

  생각할 수록 가슴이 아파, 기도하는 마음으로 인용해 봅니다.

  고이 잠드소서!!>

 

"병인 대박해 때에만도 조정에 보고된 해미 진영의 천주교 신자 처결의 숫자가 1천여 명으로 기록되고 있는데,

 그 이전 80여 년 간에 걸친 해미 진영의 지속적인 천주교 신자 처결의 숫자는 수천명일 것으로 추정하지 않을 수 없다.

 ~~ 순교자들 중 홍주(홍성) 및 공주 등 상급 고을로 이송된 순교자들은 이송 사실과 이름들이 기록으로 남겨진 것으로 보아

 그 이송된 순교자들은 해미 진영장의 독자적 처결에 있어서 사후에 문책거리가 됨직한 신분의 사람들이었으며,

 해미 진영은 처형 후 문책의 배후 세력을 갖지 못한 서민층 신자들만을 심리나 기록 절차 없이 마구잡이로 죽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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