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둘레길

[북한산 둘레길] 2구간 - 순례길

상원통사 2013. 4. 18. 00:21

 

북한산 둘레길 1구간이 끝나는 곳에서 아스팔트 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2구간의 시작지점이 나옵니다.

아스팔트 길이라고하니 매연이 자욱한 그런 곳을 상상하지는 마십시요.

지나가는 차는 한 대도 보지 못했습니다.

 

2구간의 이름은 '순례길'입니다.

자유, 민주, 정의가 살아 숨쉬는 곳!

독립유공자 묘역이 조성되어 있는 구간으로, 우리 조상의 불굴의 독립정신을 느낄 수 있는 구간입니다.

2구간은 '솔밭 근린공원 상단에서부터 이준열사 묘역입구'까지의 길로,

거리는 2.3Km, 걷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1시간 10분 정도입니다.

 

솔밭 근린공원 상단은 수유역 3번 출구에서 120번, 153번을 타고 덕성여대 입구에서 하차하여 길건너서 5분 정도 걸어오시면 되고,

이준열사 묘역 입구는 수유역 1번 출구에서 강북01번(마을버스)를 타고 통일교육원에서 내리면 됩니다.

 

<여기서부터는  순례길 구간(2구간) 입니다.

  즐거운 하루 되십시오.>

 

 

<들어가기 전에 봄꽃에 흠뻑 취해보고...>

 

 

<신발끈을 단단히 죄고 순례길을 시작합니다.>

 

 

<국립 4.19 민주 묘지

  죄송한 이야기인데, 전 이곳이 처음입니다.>

 

 

<오늘은 4월 13일. 다음 주가 4.19 혁명 기념일이어서인지 참배객들이 많이 왔습니다.

  이 나라의 민주를 위해 몸 바치신 분들이여, 고이 잠드소서...>

 

 

<'4.19 정신!!'

  요즘 아이들은 '3.1절'을 '삼점일절'이라 부른다지요??

  '사점일구정신?' 조금 씁쓸합니다.>

 

 

<멀리 보광사가 보입니다.

  부처님 오신 날이 멀지 않았기에, 올라오는 길도 법당 주변도 온통 연등으로 장식했습니다.

  대웅전은 앞에 보이는 법당이 아니라 안쪽에 있답니다.

  우린 먼발치에서 바라만 보고 지나쳤습니다.>

 

 

<진달래가 피었습니다. 참꽃이 피었습니다.

  참꽃도 봄꽃, 개나리도 봄꽃.

  재미있네요.

  봄과 함께 지나는 날들은 참꽃과 개꽃이 손잡고 수를 놓습니다.>

 

 

이곳에는 순국선열들의 묘소가 많이 있습니다.

일일이 참배는 못했기에, 그분들의 간단한 이력이나마 옮겨 놓겠습니다.

 

강재 신 숙(剛齋 申 肅)선생 묘소(1885.12.29~1967.11.22)

경기도 가평 출신 독립운동가였으며 3.1운동 당시 독립선언서를 교정 및 인쇄.배포를 하였다.

3.1운동 직후 독립운동 단체인 대동단에 가입하여 활동하면서 임시정부를 만드는 데 관여했고 활동을 지원했다.

1930년에 한국독립당을 결성하고 한국독립군의 참모장으로 활약하였다.

 

 

상산 김도연(常山 金度演)선생 묘소 입구

(1894.6.16~1967.7.19)

경기도 김포 출신 독립운동가 정치가였으며 일본에서 1919년 1월 1일 비밀리에 조선독립청년당을 조직하고,

2월 8일 선생을 포함한 11명의 대표는 독립선언을 주도하여 옥살이 하였다.

1942년에는 일본이 조선어학회를 해체시키려는 사건으로 인해 또 다시 2년간 옥살이를 하였다.

광복 후에는 입법의원과 제헌 국회의원을 거쳐 초대 재무부 장관을 역임하였다.>

"일본이 우리들의 요구를 들어주면 문제는 해결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피를 흘릴 수 밖에 없지 않느냐"   

                                                                                                     - 2.8 독립선언으로 신문을 받을 당시 검사가 혈전(血戰)이라는 문구를 추궁하자 -

 

 

<가는 길에 주말농장이 많이 있습니다.

  남매를 데리고 온 아낙은 면장갑 끼고 열심히 삽질하고 있고,

  동생는 뭘 보았는 지 땅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고,

  누나는 동생을 태우고 온 유모차에 뭔가를 실어놓으려 합니다.

  따뜻한 봄날에 한가로운 가족의 풍경입니다.

  그런데 아빠는 없네요. 나 닮아서 일안하고 막걸리 마시고 있나??? ㅋㅋ>

 

 

동암 서상일(東菴 徐相日)선생 묘역 입구

(1887.7.9~1962.4.18)

경북 대구 출신 독립운동가 정치가였으며 1909년 나라의 권리를 다시 찾기 위하여 대동청년단을 만들어 활동하였고,

1910년 일본에게 우리나라 통치권을 빼았기자 이를 되찾기 위해 광복단을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이후, 1925년 명절을 기리는 글짓기를 한다며 일본 경찰들을 속이고 조선국권회복단 중앙총부에서 활동하였다.

광복 후에는 제헌국회 헌법 기초위원으로 헌정의 초석을 놓았다.

 

현곡 양일동(玄谷 梁一東)선생 묘역 입구

(1912.12.30~1980.4.1)

전북 옥구 출신 독립운동가. 정치가였으며 중동학교를 다니던 중 광주학생운동을 주도하다 학교를 그만 두게 되었고,

무정부주의 단체인 흑우연맹(1931)과 조선동흥노동연맹(1932)에 가입하여 각종 출판물을 통해 항일의식을 높이는 데 노력하였다.

광복 후 제3. 4. 5대 민의원 및 제8.10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심산 김창숙(心山 金昌淑)선생 묘역 입구

(1879.7.10~1962.5.10)

경북 성주 출신 독립운동가 교육자로서 195년에 을사조약 체결반대와 매국 5적을 처형하라는 상소를 올려 옥살이를 하였으며,

1919년에는 파리강화회의에 독립을 호소하는 내용(파리장서)을 알리는 활동을 주도하였고,

1946년에는 성균관 대학을 설립하였다.

 

 

<멀리엔 목련꽃들이 그 자태를 뽐내며 하얗게 수를 놓았고,

  한 뼘 땅들에선 도시농부들이 땀을 흘리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나뭇가지 뒤에 숨어서 참을 먹는 여인들을 보다가...>

 

 

<우리도 참을 꺼냈습니다. 웰빙식단입니다.>

 

 

<동네 분들은 탁구치느라 정신이 없고....>

 

 

<사람들이야 뭐를 하든 말든,

  봄을 업은 북한산수는 

  졸졸졸 흐릅니다.>

 

 

<섶다리

  나룻배를 띄울 수 없는 낮은 강에 통나무와 솔가지, 흙을 이용해 만든 임시다리.

  강을 사이에 둔 마을 주민들의 왕래를 위해 매년 물이 줄어든 겨울 초입에 놓았다가 여름철 불어난 물에 의해 떠내려갈 때까지 사용됩니다.>

 

 

단주 유 림(旦洲 柳 林)선생 묘소 (1894.5.23~1961.4.1)

경북 안동 출신 아나키스트 독립운동가. 정치가였으며 강제적 권력을 거부하는 아나키스트가 되어,

1929년 평양에서 최초의 아나키즘 전국 조직인 조선공산무정부주의자 연맹을 결성하여 활동하였다.

1942년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의원(현 국회의원)과 국무위원을 맡았으며 광복 후에는 아나키즘 이념정당인 독립노동당을 창당하였다.

 

 

<이곳에서 까메오님의 서언과 더불어 역사 토론을 펼쳤습니다.

  애국을 하면 3대가 망하고, 매국을 하면 3대가 흥한다.

  아직까지도 청산하지 못했기에 구부러져버린 우리의 슬픈 역사.

  그래도 우리가 북한보다 잘산다는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런 이야기 자꾸 하면 시쳇말로 빨갱이, 종북론자인 데....

  슬픕니다.>

 

성재 이시영(省齋 李始榮)선생 묘역

(1869.12.3~1953.4.17)

서울 출신 독립운동가. 정치가였으며 부유한 가문에서 태어나 독립운동을 위하여 모든 재산을 정리하고 만주로 이주,

동포사회의 일을 다루는 기관인 경학사와 독립군 양성기관인 신흥강습소(현 경희대의 시초)를 설립하였다.

임시정부 시절에는 법무. 재무분야에서 임원으로 활동하였으며, 광복 후 초대 부통령에 당선되었으나 이승만 대통령 통치에 반대하여 사직하였다.

 

광복군(光復軍) 합동묘소

-. 사망지 : 중국 각 지역 1940~1945

-. 광복군 합동묘소 17위 애국선열들

   김성율, 김순근, 김문백, 김유신, 김찬원, 동방석, 문학준, 백정현, 안일용, 이도순, 이한기, 이해순, 전일목, 정상섭, 조대균, 한 휘, 한이평

-.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광복군으로 1943년 7월~1945년 8월 사이의 중국 각 지역(산서성 능천과 고평, 태행산지구, 태원 임현)에서,

   일본군과 치열하게 싸우다 전사하거나 순국한 17위의 합동묘소이다.

 

가인 김병로(街人 金炳魯)선생 묘역

(1887.12.15~1964.1.13)

전북 순창 출신 법조인. 정치가였으며 일본이 우리나라를 강제로 지배하던 시기에 고통 받는 동포들에게 법률적으로 도움을 주기 위해 일본에서 법률 공부를 하고,

1927년에는 민족운동 단체인 신간회의 중앙집행위원장을 지냈다.

1919~1945년까지는 변호사로서 독립운동사건이나 독립을 위해 앞장섰던 민족지도자들의 무료 변론을 맡았으며,

광복후에는 초대와 제2대 대법원장을 역임하였다.

 

 

일성 이 준 열사(一醒 李 儁 烈士) 묘역

위훈비를 찍어왔는 데 사진상태가 좋지 못해 옮기지 못합니다.

교과서에도 나오니 다들 잘 아시리라 믿고 넘어갑니다.

 

 

<이렇게 하여 북한산 둘레길 제2구간을 모두 돌아보았습니다.>

 

 

<3구간으로 가는 길에 통일 교육원이 있습니다.

 이곳을 찾는 이정표이니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이제 우리는 제3구간 흰구름길로 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