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후는 씨엠립에서 37Km떨어진 반띠아이 스레이 사원으로 향합니다.
그런데, 이를 어쩐다, 귀농가족에게 문제가 생겼습니다. 유적지 입장권을 가져오지 않은 것입니다.
할 수 없이 귀농가족은 호텔로 돌아가고 나머지 사람들만 이동합니다.
그들과는 다음 목적지인 프놈 바케잉에서 만나기로 합니다.
여러분도 혹시 이곳을 방문하게 되면 입장권을 잘 챙기세요.
반띠아이 스레이(Banteay Srey)
"반띠아이 스레이는 아담하지만 대단히 아름다운 사원이다.
붉은 색 사암과 홍토로 되어 있어 저녁 노을의 빛을 받으면 사원 전체가 불 붙는 듯 붉게 빛난다.
'반띠아이 스레이'는 '여인의 성채' 또은 '미의 성채'의 의미를 가진다. 사원은 정교한 아름다움과 빈틈없는 조각들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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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띠아이 스레이의 조각기법은 매우 독특하고 정교하여 '크메르 예술의 극치다' 또는 '크메르 예술의 보석이다'라고 표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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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심미안을 가진 전위작가 '앙드레 말로'와 그의 젊은 아내 '클라라 말로'는
반띠아이 스레이의 조각상을 훔치기 위해 마르세이유 항에서 앙코르로 향했다.
그들에 의해 4개의 여신상을 도둑 맞았지만 곧 체포되어 여신상을 되찾을 수 있었다.
세인의 주목을 끌었던 말로는 6개월간의 재판 끝에 실형선고를 받았지만
그의 아내 클라라가 프랑스로 돌아가 말로의 문인 친구들과 구명운동을 벌여 집행유예로 풀여났다.
1930년 '앙드레 말로'는 본인의 조각품 밀반출 사건을 소재로 '왕도의 길'을 발표하고 후에는 프랑스 문화성 장관이 된다."
- 최장길의 <앙코르 왓, 신들의 도시>에서 -
후진국에 가서 문화재 도둑질하고, 그것을 소재로 책을 써서 팔아먹고,
나중에는 문화와 예술의 나라 프랑스에서 문화성 장관이 되었다? 재미있습니다.
반띠아이 스레이는 다른 앙코르 사원들과 달리 왕이 건설한 사원이 아니라
라젠드라바르만 왕의 자문역이었던 바라문 승려 '야즈나바라하'가 건설하여 967년 4월 22일 봉헌한 곳이라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지금까지 보아온, 크고 웅대한 다른 앙코르의 석조 사원들과는 달리, 작고 아기자기합니다.
우선 규모도 그리 크지 않아서 중압감이 없기에 내게는 훨씬 더 친근감이 있습니다.
참 섬세하게 조각을 잘했구나! 하는 생각 외에 별로 아는 것이 없습니다.
그냥 사진이나 감상하시죠.
<입구인 동 고푸라입니다.>
<안에서 바깥쪽을 바라본 모습입니다>
<긴 둑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갑니다>
<오른쪽의 외곽벽(95m * 110m)과 왼쪽에 보이는 중간벽(38m * 42m) 사이에는 역시나 해자가 있습니다>
<이제 중간벽의 고푸라를 지나 내부벽으로 향합니다.>
<내부벽의 고푸라 상부>
<중앙사원>
<새인지 원숭이인지??>
<중앙사원은 남북으로 3개의 탑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기념촬영도 하고>
<사원의 벽에는 아름다운 여신상과 남신상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습니다.
바로 이 조각상이 앙코르 예술의 보석으로 일컬어지는 반띠아이 스레이 조각의 핵심이며,
특히 여신상은 '앙드레 말로'가 도굴하려던 4점의 여신상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접근을 통제하는 줄이 처져 있기에 가까이 가서 볼 수는 없습니다.
당시에 이렇게 귀한 것들인 줄 알았다면 망원렌즈로 당겨서 찍었을 것인데, 아쉽습니다.
하여튼, 문 좌우에 여신상들이 보이죠?>
<안쪽에는 남신상도 있고요>
<예쁜 우리 둘째 딸과...>
<오랫만에 자연스런 포즈의 막내...>
이렇게 하여 30분 동안의 감상을 마치고, 일몰을 구경하러 프놈 바케잉으로 향합니다.
프놈 바케잉은 전편에서 감상하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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