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육조단경 다섯 번째 시간이 되겠습니다.
공(公)이 또 물었다.
“제자가 보옵건데 승속간에 항상 아미타불을 생각하여 서방극락에 태어나기를 원하고 있사온데
저곳에 가서 태어날 수 있사온지 화상께 알고자 하오니 말씀하여 주시어 저희들의 의심을 풀어 주십시오”
재가불자이니 질문의 내용이 일반 신도들의 관심사에 대한 것들입니다.
하나는 양무제가 불사를 했는데 공덕이 없다 한 게 무슨 뜻이냐 하는 질문이었고,
다음은 당시 중국에는 정토종이 있어, 지극정성으로 아미타불을 염송하면 서방정토 극락세계에 태어난다 했는데,
정말로 그런 것인지 질문한 것입니다.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사군(使君)아, 잘 듣거라 내가 말하리라.
세존께서 사위성(舍衛城) 중에 계실 때에 서방국토로 인도하여 교화하심을 말씀하셨는데
경문에 분명히 <여기서 멀지 않다> 하셨고 또한 상(相)으로 논하여 말한다면 <거리가 십만팔천리라>하였으니
즉 이 몸 가운데의 십악(十惡) 팔사(八邪)를 말함이라. 이것을 멀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멀다고 말씀하신 것은 하근(下根)을 위함이요 가깝다고 말씀하신 것은 상근(上根) 대지(大智)를 위함이니
사람에게는 양종이 있어도 법에는 두 가지가 없느니라.
부처님께서 사위성 기원정사에서 정토삼부경을 설하셨는데, 극락세계는 여기서 멀다고도 하고 또 멀지 않다고도 하셨습니다.
십악팔사를 일으키면 정토와는 십만 팔천 리 떨어져 도저히 갈 수가 없다.
십악(十惡)은, 살생(殺生), 도둑질(偸盜 투도), 사음(邪淫), 거짓말(妄語 망어), 이간질(兩舌 양설),
꾸미는 말(綺語 기어), 악담(惡狗 악구), 탐심(貪 탐), 분노(瞋 진), 어리석은 마음(癡 치) 내는 것을 말하고,
팔사(八邪)는, 생과 사가 있다는 생멸(生滅), 영원하다는 것과 끊어지고 없다는 상단(常斷),
같다 다르다고 하는 일이(一異), 오고 간다는 거래(去來)를 말합니다.
우리가 십악팔사를 행하게 되면 정토하고는 십만팔천 리나 떨어지지만,
십악을 돌이켜 십선을 행하게 되고, 둘이 아닌 중도의 이치를 깨닫게 되면 정토는 멀지 않다 그런 뜻입니다.
우리가 어리석으면 정토는 멀고, 깨달으면 바로 여기가 정토다
미(迷)와 오(悟)의 다름이 있으므로 견해에 늦고 빠름이 있는 것이니
미혹한 사람은 염불하여 저 땅에 나기를 구하거니와 깨달은 사람은 스스로 그 마음을 깨끗이 하느니라.
이 까닭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 마음이 청정함을 따라서 곧 불토가 청정하다> 하셨느니라.
‘일심이 청정하면 제국토가 청정하다’, 유마경에 있는 얘기입니다.
사군아, 동방 사람이라도 다만 마음만 청정하면 죄가 없는 것이며,
서방 사람이라도 마음이 부정하면 또한 허물이 되는 것이니
만약 동방 사람이 죄를 지으면 염불하여 서방국토에 나고자 한다 하거니와
서방 사람은 죄를 짓고 어느 나라에 나고자 염불할 것인가?
어리석은 범부들은 자성을 밝히지 못하여 자기 몸 가운데서 정토(淨土)가 있는 것을 알지 못하고
혹은 동쪽 나라를 원하고 혹은 서쪽 나라를 원하나 깨달은 사람은 있는 곳 마다 다 한 가지니라.
여기서 동방사람은 사바세계에 사는 사람을, 서방사람은 정토에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정토란 서쪽이니 동쪽이니 여기니 저기니 하는 그런 게 아니라 다 일심이 있다,
일심이 청정하면 정토에 있는 것이고 일심이 청정하지 못하면 예토에 있는 것이다.
마음을 깨닫게 되면 그것이 동쪽나라든 서쪽나라든 여기든 저기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 까닭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머무는 곳마다 항상 안락하다> 하셨느니라.
사군아, 다만 마음 바탕에 착한 마음이 가득하면 서방정토가 여기서 멀지 않은 것이요,
만약 착하지 않은 마음을 품고 있다면 설사 염불하여도 서방극락에 가서 나기는 어렵느니라.
선의 입장에서는 정토가 여기다 저기다 겉을 보고 논하지 않고, 어떻게 꾸며졌느냐로 논하지 않습니다.
일체는 만법이 마음을 일으켜서 분별 짓는 것이기 때문에
일체분별이 끊어지면 어디든 다 정토가 되고, 마음에 분별을 일으키면 어디를 가나 예토가 됩니다.
우리가 예토니 정토니 하지만 다 마음 가운데 있습니다.
내 이제 선지식에게 권하노니 먼저 십악심(十惡心)을 제하라.
그러면 곧 10만리를 감이요 다음에 팔사심(八邪心)을 제하면 곧 8천리를 지난 것이니
생각 생각 성품을 보아 항상 평등하고 곧게 행동하면
일탄지(一彈指) 사이에 서방 정토에 이르고 즉시에 아미타불을 뵙게 될 것이니라.
사군아, 다만 십선(十善)만 행한다면 어찌 반드시 서방에 왕생(往生)하기를 원할 것이며
만약 10악심을 끊지 않는다면 비록 염불한들 어느 부처님이 와서 맞아 주실 것인가!
만약 무생(無生)인 돈법(頓法)을 깨치면 서방을 찰나 사이에 볼 것이나
깨치지 못하고 염불만 하며 가서 나기를 원한다면 길이 멀거니 어떻게 도달할 수 있으랴."
“내가 이제 그대들을 위하여 서방 국토를 찰나 사이에 옮기어 눈앞에 보게 하리니 다들 보기를 원하는가?”
이때 대중이 모두 다 이마를 조아려 예를 드리고 말하기를
“만약 이곳에서 볼 수 있을진대 어찌 다시 서방 국토에 왕생하기를 바라오리까?
화상이시여, 바라옵건데 자비를 베푸시어 곧 서방 국토가 나타나 저희들로 하여금 모두가 보게 하여 주십시오” 한다.
대사는 말씀하셨다
“대중들아, 세간 사람의 색신(色身)이 성(城)이요, 눈·귀·코·혀가 문이니
밖으로 다섯 문이 있고 안으로 의문(意門)이 있으니 마음은 이것이 국토요 성품은 이것이 왕이라.
왕이 마음 국토 위에 군림하니 성품이 있으면 왕이 있는 것이며 성품이 가면 왕이 없는 것이며
성품이 있으면 몸과 마음이 있고 성품이 가면 몸과 마음이 허물어 지느니라.
(~~ 여기까지는 강의 생략)
그러므로 부처를 이루고자 할진댄 자기 성품을 향하여 지을 것이요 몸 밖을 향하여 구하지 말라.
자성이 미혹하면 곧 이것이 중생이요 자성을 깨치면 곧 이것이 불이니라.
자비는 즉시 관음이요 희사(喜事)는 세지(勢至)가 되고
능히 청정하면 즉 석가요 평직(平直)하면 미타며 인아(人我)는 이것이 수미산이요
니르바나를 추구하고 해탈을 구하고 인생의 참 행복과 자유를 구한다면,
자기 성품을 향하여 지을 것이지 몸 밖을 향하여 구하지 마라,
부처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내 마음 깨달으면 부처고 내 마음 어리석으면 중생이다
관세음보살도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자비로운 마음을 내면 곧 관세음보살이 되고,
기뻐해주고 평등하고 아무 차별 없이 대하면 곧 대세지보살이 된다.
자기 마음을 깨달으면 부처고 깨닫지 못하면 중생이다,
중생의 종자가 따로 있고 부처의 종자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제가 옛날에 어쩌다가 감옥에 가게 되었어요,
내 생각에는 잘못한 것이 없다 싶은데 자꾸 잘못했다는 거요
그것은 조계사 앞마당에서 대학생들에게 설법을 한 게 집회시위법 위반이다,
나는 일주문 안에서 법문을 하니 불법으로는 이상이 없다 이러고.
그 당시 법으로 사전에 허락 안 받고 옥외에서 한 것은 집시법 위반이다, 그래 잘못했다,
‘내가 법을 위반했는데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 용서해주십시오’ 이렇게 쓰면 내보내주겠다,
그러나 ‘내가 잘못이 없는데 왜 잘못했다고 쓸 필요가 있느냐’, 그러고 안 썼어,
안 써서 결국은 경찰에 있다가 검찰로 해서 구치소로 넘어갔단 말이요.
검사가 또 불러서 ‘잘못했다고 쓰고 나가십시오.’
‘내가 잘못 안했는데 어떻게 잘못했다고 쓰느냐’
그러니 그분이 ‘당신이 법전문가냐?’ 이래요, ‘당신 뭘 그리 많이 아느냐?’
(이후 11분 23초 분량은 녹화 안됨)
사심(邪心)은 바닷물이요 번뇌는 이것이 물결이요 해독은 악한 용이며, 허망은 귀신이요 진로(塵勞)는 고기나 자라며
탐하고 성냄은 이것이 지옥이요 우치(愚痴)는 이것이 축생이니라.
선지식아 항상 10선을 행하면 곧 천당에 이르고 인아(人我)를 제하면 수미산이 쓰러지며,
사심(邪心)이 없으면 바닷물이 마르고, 번뇌가 없으면 물결이 없어지고, 해독심을 제하면 어룡(魚龍)이 없으니
이에 자심 왕국에 각성여래(覺性如來)가 대광명을 놓아 밖으로 육문을 비추면 육문이 청정하여 능히 육욕제천(六欲諸天)을 파하고,
(제14강에 계속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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