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여행을 하러 가면서 차 가지고 가는 것도 좀 그렇고, 그렇다고 지하철을 타고 가자니 너무 오래 걸릴 것 같고,
하여 미루고 미루고 있었는데 마침 인천에 갈 일이 생겼습니다,
옳지 이 기회에 들러 보자 마음먹었는 데, 때마침 수원 사는 친구가 동행해 주겠다고 합니다, 이렇게 고마울데가 ~~
그래서 차를 가지고 같이 가기로 했습니다, 근데 주차는 어디에 하지?
맞다, 수지구청도 휴일엔 무료개방하니 그곳도 그러지 않을까, 네에, 추측이 들어맞았습니다.
인천 중구청 주차장을 찾으니 빈자리가 아직도 두 개나 남아있네요, 마치 우릴 위해 남겨둔 것 같습니다.
차를 세워두고 밖으로 나와 휘 둘러본 첫 느낌은 낯섦, 마치 타국에 온 것 같은 착각,
쌍팔년도보다 훨씬 더 먼 시간으로 돌아간 인천 차이나타운의 모습에 가슴마저 살짝 설렘니다.
길을 걷습니다, 옳지, 이 대목에선 왼쪽으로 내려가야지,
인터넷에서 내려받아 확대복사하고, <행복한 걷기여행> 책을 보며 꼼꼼히 줄을 그어 만든 탐사지도,
도심 한복판을 갈 之자로 누벼야 하니 헷갈리지 않으려면 이만큼의 준비는 기본입니다.
개항장 지게꾼
"1883년 제물포항이 개항되면서 인천개항장은 서구 문물 유입의 길목인 동시에 활발한 상업 활동이 이루어지던 국제무역항이 되었다.
본 조형물은 근대 사진자료를 기초로 하여 개항장 일대에서 화물 선적 작업을 하던 지게꾼의 모습을 재현하였다."
어쩜 이리도 좁은 곳에 어떻게 이런 건물을 지었을까,
성가정을 이루어 날마다 기도하고 감사하며 지내는 친구와, 그래도 곧 죽어도 세례까지 받았던 나,
가는 길 바빠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지요.
제물진두(濟物津头) 순교기념경당
-. 1868(무진)년에 4명, 1871(신미)년에 6명의 천주교인이 처형된 곳
-. 한국인 첫 성직자인 김대건(안드레아) 부제가 1845년 사제 서품을 받기 위해 이곳 근처 포구에서 중국 상해로 떠났던 곳
-. 1888년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소속 수녀 4명(프랑스 국적 2명, 중국 국적 2명)이 조선선교를 위해 입국한 곳
작고 비좁아도 있을 건 다 있습니다, 사진 왼편 아래에 조그맣고 하얀 건물은 고해소.
형광펜으로 줄까지 그어가며 만든 지도를 보며 열심히 따라갔는데 아차차, 그만 길을 잃었습니다.
분명히 잘 간다고 갔지만, 일부는 놓치고 일부는 건너뛰고 고개들어 쳐다보니 인천역,
그러나 우리 말 들리고 우리 글 써있는 우리나라 땅, 헤매기는 하지만 걱정이 없습니다.
길건너 보이는 저곳은 '중화가(中華街)' 입구 ~~
붉은색이 많은 걸보니 차이나타운이 맞긴 맞습니다.
공화춘,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짜장면을 만든 곳,
그렇지, 옛날에 한 번 왔었지, 언제였더라, 아마 20여 년쯤 된 것 같은데,
그 때 여기 와서 짜장면을 먹었었지, 맛은 별로였던 것 같은데 ~~
공화춘 앞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내려가다가 이 집에서 뭘 사먹었는데,
분명히 공갈빵은 아니었고 뭐 다른 것이었는데 기억이 안 나네, 큰일이다, 치매 초기!
경극 공연하는 곳도 있습니다.
경극(京劇 Peking Opera)
-. 베이징(北京)에서 발전하였다 하여 경극이라 함
-. 서피(西皮) 이황(二黃) 2가지의 곡조를 기초로 하므로 피황희(皮黃戱)라고도 함
-. 14세기부터 널리 성행했던 중국 전통가극인 곤곡(崑曲)의 요소가 가미되어 만들어짐
해안천주교 성당
-. 1960년 이곳에는 4천여 명의 중국 화교가 거주하고 있었고, 소수의 화교 가톨릭 신자들은 답동 성당을 다니며 신앙생활을 하였음
-. 신자들의 언어 소통 문제와 민족적인 이질감으로 중국 화교들을 위한 성당을 절실히 요구됨
-. 미국 메리놀회에서 1960년 화교를 위한 선린성당을 설립하기로 하고 고요섭 신부를 초대 신부로 임명, 1966년 성당 완공
-. 화교 신도수가 감소하자 1972년 해안성당으로 이름을 바꾸고 현재는 한/중 합동 본당으로 운영하고 있음
한중원(韓中園)
-. 한중 문화교류 활성화 및 관광객 휴식을 위해 중국 4대 정원 중 졸정원(拙政園)과 유원(留園)의 시설양식을 주제로 조성한 쉼터
-. 중국의 전통수목인 대나무, 장미, 모란 등을 식재하여 중국의 정취를 느낄 수 있도록 조성함
이곳의 옛집들은 인천시의 노력으로 보존되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곳 보존에 힘쓰고 있는 당국과 담당자께 감사하며, 한편으로 드는 또다른 생각,
위대한 박정희는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길도 넓히는 것만이 옳은 일이라 생각했을까??
청·일 조계지(組界地) 경계계단
-. 1883년 일본 조계를 시작으로 1884년 청국 조계가 설정되는 경계지역
-. 이 계단을 중심으로 청국과 일본의 건물들이 확연하게 서로 다른 양식들로 들어서 있었음
계단을 오르면 산신령 닮은 공자님이 나오고 ~~
그 위에는 삼국지를 그림으로 표현한 "삼국지 벽화거리"가 나오는 데 ~~
이 대목에서 관운장과 함께 한 컷!
맞다, 우리가 먹었던 것이 화덕만두였지, 아직 치매는 아닌가보다.
의선당(義善堂)
-. 1883년 청나라 영사관이 설립되고, 화교들이 끊임없이 증가하면서 점차 차이나타운 거리가 됨
-. 그 해, 인천에 체류하던 화교들은 작은 묘당을 건립하였고, '의선당'이라고 이름 붙임
-. 호산할아버지(산신령), 용왕신, 관세음보살, 관공, 삼신할머니 외에도 다양한 민간 신앙의 신을 모시고 있음
내부는 촬영금지여서 여기까지만!
자축인묘로 시작하여 개 술, 돼지 해, 12지신상을 지나 위로 올라가면 ~~
선린문(善鄰門)이 있고 ~~
이어서 또다른 벽화거리, '초한지 벽화 거리'가 나오지만 우린 곁눈으로 슬쩍 보고 ~~
계단을 올라 자유공원 안으로 들어갑니다.
맨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효도권장비,
근데 효도받을 분들이 안 계십니다, 친구도 나도 그만 고아 신세가 되었으니 ~~
여긴 맥아더 동상,
언제나 눈치 안 보고 당당하게 이것들을 허물어 낼 수가 있을 지 ~~
이제 내려가는 길, 인천시 역사자료관을 관통하는 지름길을 택해 ~~
홍예문쪽으로 가다보니 모자이크 타일을 붙인 예쁜 맥주집이 있고 ~~
100여 년전 모습이 슬쩍 드러나는 미용실도 있고 ~~
오사카에서 받았던 느낌이 슬쩍 배어나는 카페도 있습니다.
홍예문(虹霓門)
-. 1906년 철도 건설을 담당하고 있던 일본 공병대가 만들었음
-. 무지개처럼 생겨 홍예문이라 하지만 처음에는 혈문(穴門)이라고 불렀음
-. 당시 일본인들이 일본지계에서 거주지까지 다니기 불편하다고 산마루턱을 깎아 길을 만들고 화강석 홍예문을 만든 것임
홍예문을 나와 남쪽으로 내려가면 신포시장이 나오는 데 ~~
안으로 들어가니 사방에 먹을 것 천지입니다,
다른 때 같으면 그냥 지나치지 않았겠지만 지금은 꾹 참고 못본 체 합니다.
왜냐, 이따가 맛있는 것 엄청 먹을 예정이니 조금 참아야지요.
신포시장을 나와 좌우를 두리번거리며 쭉 올라가니 ~~
처음 출발했던 인천 중구청이 나오며 오늘 여행의 막을 내립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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