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생각 바꾸면 ~~

58. 나무초리

상원통사 2019. 6. 5. 23:49
책을 한참 읽어내려가는데 단어 하나가 눈에 쏙 들어온다, '나무초리',
받침이 없어 발음하기 쉽고 어감도 참 좋구나, 무슨 뜻일까? 
* 나무초리 : 나뭇가지의 가느다란 끝부분
연관된 단어들이 몇 개 나오는데 그 중 처음 보는 단어가 있다, '우듬지', 이건 또 무슨 뜻일까?
* 우듬지 : 나무의 맨 꼭대기 줄기. 나무초리를 포함한 부분을 한 덩어리로 나타내는 말

순 우리 말 중에 이런 단어들이 있다니, 내 무식함에 한탄하고 그 예쁨에 감탄하다보니 뭔가 하나로 엮어진다.
이파리 - 나무초리 - 우듬지 - 가지 - 줄기 - 뿌리
맨 끄트머리, 하늘과 맞닿은 곳에서 햇빛을 받고 숨을 쉬며 일용할 양식을 만드는 이파리,
그 이파리들을 붙드는 나무초리가 있고, 나무초리들이 모여 우듬지가 되고,
우듬지들이 어우러져 가지가 되고, 가지들이 하나 되어 줄기를 이루고,
그 줄기는 내려와 뿌리로 바뀌고, 뿌리는 땅속을 헤집어 물을 찾고 양분을 빨아들인다.
한 그루 한 그루 나무들이 모여 숲을 이루고, 숲들이 이어져 이 땅은 푸르름으로 뒤덮인다.
하늘에서 땅까지, 이파리에서 뿌리까지, 하나에서 모두까지, 각각 제 위치에서 제 할 일을 다하고 있다.
누구는 우듬지고, 누구는 가지이고, 누구는 줄기이고, 누구는 뿌리로 산다, 난 어디쯤에 서 있을까?
그래, 나무초리다, 내가 바로 나무초리다.
 
반백 년을 넘어설 즈음이 되니 사람들은 살 날이 산 날보다 적게 남았다고 했다.
나도 그런 줄 알고 술만 들이켰는데, 한 생각 바꾸고 뒤를 돌아보니 그게 아니었다.
대학 졸업할 때까지는 수동적인 삶이었으니 그건 빼고 계산하는 게 맞지 않겠나,
그렇담 살아버린 날들은 기껏해야 사반 세기, 앞에 남아있는 날들은 반백 년,
산 날은 살 날의 절반이고 살 날이 산 날의 곱배기라, "어? (그러고 보니) 아직도 (살 날이) 많이 남았네!!!",
절로 튀어나오는 감탄사가 곧 '블로그 이름'이 되었다.

나름대로 심오한 뜻(?)을 담아 지었지만 아무리 봐도 좋은 이름은 아니다.
우선 예쁘지 않고, 한 문장에 네 단어씩이나 되니 너무 길고, 두 번 세 번 반복해야 알아먹으니 그 또한 민폐,
바꿔보려 애를 썼지만 이름짓는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고민에 고민만 더하던 중 나와 딱 맞는 단어를 찾았으니 얼마나 기쁜가, 얼씨구 ~~

말 사면 종 사고 싶다고 했지, 또 욕심이 생긴다.
한 단어만으로는 조금 밋밋해 보여 수식어를 하나 더하고 싶은데 요건 이름짓기보다 더 어렵다.
행복한 나무초리, 좌파 나무초리, 나무초리의 하루, 나무초리 일상, 나무초리 거듭나다....
아무리 꾸며봐도 죄다 맘에 안 들어 시간만 흘리고 있다가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
이러다 나무초리마저도 남에게 뺏길라, 우선 내가 먼저 챙기고 나머진 다음에 생각하자,
그래서 블로그 이름을 "나무초리"로 바꾼다, 예쁜 꾸밈씨를 찾을 때까지 한시적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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