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생각 바꾸면 ~~

54. 얼굴 기억하기

상원통사 2018. 12. 6. 21:39

친구 딸 결혼식장에서의 일이다.

서로 눈이 마주치자 '어이, 반갑네'하고 악수는 했지만 누구인지 떠오르지 않는다, 누구일까?

여기서 만났으니 고등학교 동창이 분명한데 전혀 기억이 안난다, 누구일까?

할 수 없지, 평상시 하던 방법대로 해야지, 적당히 말끝을 얼버무리며 눈치를 살핀다, 누굴일까?

귀를 쫑긋 세우고 다른 친구들과 나누는 이야기를 들으며 슬금슬금 한 마디씩 덧붙이다 보니 갑자기 생각난다,

그랬었지, 달포 전 광주에서 가진 모임에서 만났구나, 내 앞에 앉아있어 누구보다 또렷이 보았는데 잊어먹다니,

지금 조명업체를 운영하며 대학에 나가 강의도 한다고 그랬는데, 또 실수했구나 ~~


언제 어디서 만난 누구인지 난 전혀 기억을 못 하는데, 내 이름까지 똑바로 불러주는 사람을 만나면 정말로 고맙다.

이게 사회생활 잘하는 사람이 갖춰야 할 기본 중의 기본인지라 나도 따라 해보려고 한동안 많이 노력했었다.

보자마자 얼굴의 특징을 찾아 그것을 기억하자, 뭔가와 연관시켜 기억하는 연상법을 사용하자,

날마다 명함을 다시 보며 그 사람 얼굴을 떠올려보자, 기타 등등 기를 쓰고 나름대로 노력도 해보았지만 말짱 도로묵 ~~

결국엔 포기하고 말았다, 사업을 했다면 분명 반 년 안에 쫄딱 망해먹었으리라.


예전 회사에서는 본사근무를 했었기에 찾아오는 사람 대하는 것도 업무 중의 하나였다.

기술적인 일이야 늘상 해오던 것이니 별 문제 없었지만 사람 알아보는 것이 최대의 난제,

오는 손님은 나를 보고 반갑게 인사하는데 내겐 생면부지의 사람이니 얼마나 미안한가,

여러 가지 시도 끝에 나름의 한 가지 위기 극복 방법을 터득했다.

누군가 가까이 와서 아는 체 하면 나도 반갑게 인사하며 우선 자리에 앉기를 권한다,

다음엔 차를 한 잔 드리고, 날씨 이야기 교통체증 이야기 등등 시덥잖은 이야기를 꺼내며 슬슬 말을 유도한다,

저번에 누구랑 오셨더라, 오전에 오셨던가, 말 끝을 흐리며 요리조리 찔러보면 뭔가 하나는 걸리는 게 있다,

아하 그렇구나, 그 일 때문에 왔었지, 기억이 살아난 이후엔 거침없이 업무 이야기로 말꼬리를 돌린다.

끝까지 생각이 안 나는 경우엔 할 수 없다. 끝까지 시시콜콜한 이야기 하며 즐겁게 웃다가 안녕히 가시라고 말한 후,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면 뒤에 앉은 후배 직원에게 물어본다, "저 분 누구지?"

대답은 언제나 비슷하다. "아니, 어제 오셨잖아요, OO회사의 XXX 사장님, 여차저차한 일때문에 ~~"

옆에서 흘려들었어도 어찌 저리 기억을 잘 하는지, 넌 나중에 틀림없이 한 자리 할거야!

내가 '갑'이었기에 망정이지 '을'이었다면 어쨌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아내는 가끔씩 이렇게 말한다, "나 잊어먹고 다른 여자한테 안 간게 오히려 신기하지 ~~"

얼굴 기억은 못 하지만 그런대로 굶지 않고 육십여 년을 버텨왔다.

일전에 본 인터넷 기사에서는 술을 많이 먹으면 얼굴 기억하는 능력이 떨어진다고 했다, 그래 이게 모두 자업자득이다,

그러나 어떡하나, 이제 와서 술 끊는다고 기억력이 되살아날 리는 만무하니 말이다.

대신 좋은 핑계거리가 하나 더 생겨 조금 더 뻔뻔해졌다, "미안합니다, 나이 먹으니 기억이 떨어져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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