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의 법문/5. 금강경

[법륜스님의 '금강경'] 제26 법신비상분

상원통사 2018. 8. 30. 20:54

제26 법신비상분(法身非想分)                      : 법은 상이 아니니

진리 그 자체인 법신은 상이 아니다, 상을 떠나야 된다.

 

수보리 어의운하(須菩堤 於意云何)                 : 수보리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가이삼십이상 관여래부(可以三十二相 觀如來不)    : 32상으로써 여래를 볼 수 있겠느냐?

수보리언 여시여시(須菩堤言 如是如是)           : 수보리가 대답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삼십이상 관여래(以三十二相 觀如來)           : 32상으로써 여래를 볼 수 있습니다.

부처님은 몸에 32가지 특징이 있는데 이 특징으로 부처님을 볼 수가 있느냐?

여러분들에게 ‘모습으로 스님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느냐’라고 물으면 그렇다고 대답하겠지요,

스님은 머리를 깎아야 되고, 가사장삼을 입어야 되고, 결혼을 안해야 되고, 술이나 고기는 안 먹어야 된다,

이것으로 스님이 어떤 지 다 안다고 생각하는데, 이게 바로 상에 집착하는 겁니다.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이고 어떤 사람이 나쁜 사람인지 다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결혼할 때도 좋은 남편감을 고릅니다.

내가 그런 것을 알 수 없다고 생각하면 다른 기준을 적용하겠지요,

돈 많고 학벌 좋고 인물 잘 생기고 가문 좋고, 유산을 많이 받으려면 외동아들이어야 되고

이렇게 자기 기준을 가지고, 척 보면 알 수 있다고 하는데 사실은 거기에 속고 있는 것입니다.

상을 지어서 훌륭한 스님, 훌륭한 남편, 훌륭한 사람이라 정해 놓으면 결국에는 실망합니다.

왜? 상에 집착을 하니까.

상에 집착해서는 부처가 와도 손가락질 하고 보살이 와도 손가락질 합니다.

자장율사가 문수보살을 친견하고자 백일기도를 했지만, 정작 찾아온 문수보살은 쫒아버렸습니다.

왜? 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분이 문수보살이다’ 하는 상을 가지고 있었기에 거기에 맞지 않아 쫒아냈던 것입니다.

여래라고 하는 것은 어떤 상이 아닙니다.

 

수보리 어의운하,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가이 32상 관여래부, 32상으로 여래를 볼 수가 있느냐,

수보리언 여시여시 이32상 관여래, 수보리가 말하되 그렇습니다, 32가지 몸의 특징으로 여래를 볼 수 있습니다.

표현을 이렇게 한 것이지 쉽게 말하면 대화를 진행하다가 부처님이 갑자기 수보리에게

‘네 앞에 있는 이게 부처냐?’ 이렇게 물어본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대화를 하다가 보살님보고 ‘당신 앞에 서있는 이게 법륜스님이요?’라고 물으면

이 것 말고 따로 법륜스님이 없으니 여러분도 ‘예’라고 대답하겠지요.

 

불언 수보리(佛言 須菩堤)                       :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수보리여!

약이삼십이상 관여래자(若以三十二相 觀如來者) : 만일 32상으로써 여래를 본다면

전륜성왕 즉시여래(轉輪 聖王卽是如來)          : 전륜성왕이 곧 여래이리라.

수보리 백불언 (須菩堤 白佛言 )                  :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세존 여아해 불소설의(世尊 如我解 佛所說義)    : 세존이시여! 제가 부처님이 말씀하신바 뜻을 알기로는,

불응이삼십이상 관여래(不應以三十二相 觀如來) : 32상으로써 여래를 보지 못합니다.

만일 32상으로 부처를 볼 수 있다면 전륜성왕이 곧 여래가 아니겠는가,

왜? 전륜성왕은 부처님과 똑같이 생겼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전륜성왕은 부처가 아닙니다.

수보리는 이제야 형상에 집착한 줄 깨닫고 ‘32상으로는 여래를 보지 못합니다’ 라고 대답합니다.

어떤 모양과 형상으로는 부처를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시 세존 이설게언(爾時 世尊 而說偈言) : 그때 세존께서 게송(노래)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약이색견아(若以色見我)                 : 만일 색으로써 나를 보려 하거나,

이음성구아(以音聲求我)                 : 음성으로써 나를 구한다면,

시인행사도(是人行邪道)                 : 이 사람은 사도를 행함이라,

불능견여래(不能見如來)                 : 능히 여래를 보지 못하리라.

상에 집착하는 한 절대 반야바라밀다를 성취할 수가 없다, 부처를 볼 수가 없다!

이렇게까지 분명하게 얘기했는데도 ‘불교교리는 복잡해서 뭔지 모르겠다’고 한다면,

부처님 말씀이 복잡한 게 아니라 자기 머리통이 헷갈리는 겁니다.

자기가 꿈에서 덜 깨어 비몽사몽간에 헤매고 있는 것이지 불경이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것은 장님이 대낮에도 세상이 어둡다고 고함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약이색견아 이음성구아, 어떤 모양과 빛깔로 나를 보려고 하거나 어떤 소리로 나를 구하면

시인행사도 불능견여래, 이 사람은 사도를 행하는 자라 결코 부처를 볼 수가 없다.

 

부처님이 모양과 형상에 집착하고 세인들의 소리를 들으셨다면 살인자 앙굴리말라를 출가시킬 수 없었을 겁니다.

사람을 99명이나 죽인 살인자가 ‘제가 잘못했습니다. 저는 출가하면 안되겠습니까?’ 하니까,

부처님은 그 자리에서 출가를 허락했습니다.

왜 그럴까, 살인자라 하지만 본래 살인자라고 할 것이 없습니다.

그 마음이 어리석어서 한 생각 뒤집어지니까 살인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부처님이 그렇게 하셨지만 세상 사람들은, 여러분들도 그걸 인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부처님이 하시는 일일지라도 자기 맘에 들 때는 동조하지만 자기 맘에 안 들면 반대합니다.

앙굴리말라를 출가시킬 때에도 일부 제자들은 반대했습니다.

살인자와 아무런 방비도 없이 옆에서 같이 산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겠지요,

또 대중들은 승복 입은 사람들을 다 앙굴리말라와 같이 취급하여 멀리했습니다.

탁발하러 가도 전부 문 닫고 도망 가버리니 밥도 얻어먹을 수가 없어 불만이 쌓이겠지요,

그런데도 부처님은 그것을 끌고 가셨습니다.

부처님은 늘 대중의 뜻을 따랐지 자기 의견을 내세워서 고집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때만은 제자들과 전 신도들이 다 들고 일어나서 반대를 해도 그냥 행하셨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제자들은 오해가 풀려 부처님을 믿고 따랐지만,

상에 사로잡혀 있던 대중들은 앙굴리말라만은 용서할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사람들은 앙굴리말라를 돌로 때려 죽였습니다.

 

부처님은 부처님을 유혹하러 온 연화색녀와 다른 기생 500명을 교화시켜 비구니로 만들었습니다.

당시엔 여자가 출가해서 비구니가 되려 해도 엄청나게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런데 기생을 출가를 시켰으니, 사람들은 비구니들을 다 창녀로 보았겠지요.

그들의 마음이 이미 순수해졌기 때문에 더 이상 창녀가 아니다,

마음의 헛됨을 쫒는 게 창녀이지 몸뚱이에 무슨 창녀가 있는 게 아니다,

몸뚱이는 그대로지만 마음은 번뇌를 여의었기 때문에 그들은 청정한 비구니들이다,

그러나 이때에도 대중이 반대를 해서 1주일이나 공양을 얻어먹지 못 했습니다.

 

당시의 관습, 당시 사람들로서는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부처님은 천하 바보인 주리반특도 교화해서 받아들이고 똥치는 니다이도 받아들였습니다.

상을 여읜 자만이 여실히 보고 일체중생을 다 근기 따라 구제할 수 있습니다.

근데 오늘 우리는 늘 상을 짓고 모양을 지어서 세상을 바라봅니다.

우리는 부처님마저도 우리의 눈으로 바라보고 부처님의 가르침도 우리의 눈으로 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상을 버려야 되는데, 우리의 상으로 부처의 가르침을 보고 분별합니다.

이러니까 종파가 생깁니다.

부처님 가르침 중에 이게 더 높고 저게 더 낮고, 이건 옳고 저건 그르고, 이건 유치원 과정이고 저건 대학원 과정이다 라고 하는데,

부처님의 가르침은 오직 중생을 깨우치게 하는 한 가지 목적밖에 없습니다.

동 서 남 북으로 가라는 것은 오직 서울 가는 길을 일러줌이지 거기에 높고 낮음이 없습니다.

방향이 서로 다른 것은 그들이 처해있는 위치가 다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것이 어떤 언어로 어떤 표현으로 쓰여졌든 거기에는 높고 낮음이 없는 것입니다.

 

‘이 법은 평등하여 높고 낮음이 없다’, 우리가 이런 글을 읽기는 쉽습니다.

약이색견아 이음성구아, 어떻게 생김새로 여래를 볼 수 있으며 소리로 여래를 들을 수 있느냐

시인행사도 불능견여래, 그런 것으로 불교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깨닫겠다고 한다면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건 사도를 행하는 것이고, 그것은 엇길로 가서 결코 목적지에 도달할 수가 없는 것이다.

 

오늘날 수많은 불자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수많은 스님들이 출가해서 수행을 하는데,

왜 깨달은 자가 없고 보살행을 하는 자가 적을까요?

경전에 허물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 자기 상을 버리지 못하고 공부를 해서 그런 것입니다.

 

제26분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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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 법신비상분(法身非想分)                : 법은 상이 아니니

 

수보리 어의운하(須菩堤 於意云何)                : 수보리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가이삼십이상 관여래부(可以三十二相 觀如來不) : 32상으로써 여래를 볼 수 있겠느냐?

수보리언 여시여시(須菩堤言 如是如是)          : 수보리가 대답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삼십이상 관여래(以三十二相 觀如來)          : 32상으로써 여래를 볼 수 있습니다.

불언 수보리(佛言 須菩堤)                         :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수보리여!

약이삼십이상 관여래자(若以三十二相 觀如來者) : 만일 32상으로써 여래를 본다면

전륜성왕 즉시여래(轉輪 聖王卽是如來)          : 전륜성왕이 곧 여래이리라.

수보리 백불언 (須菩堤 白佛言 )                   :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세존 여아해 불소설의(世尊 如我解 佛所說義)    : 세존이시여! 제가 부처님이 말씀하신바 뜻을 알기로는,

불응이삼십이상 관여래(不應以三十二相 觀如來) : 32상으로써 여래를 보지 못합니다.

이시 세존 이설게언(爾時 世尊 而說偈言)         : 그때 세존께서 게송(노래)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약이색견아(若以色見我)                           : 만일 색으로써 나를 보려 하거나,

이음성구아(以音聲求我)                           : 음성으로써 나를 구한다면,

시인행사도(是人行邪道)                           : 이 사람은 사도를 행함이라,

불능견여래(不能見如來)                           : 능히 여래를 보지 못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