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의 법문/5. 금강경

[법륜스님의 '금강경'] 제25 화무소화분

상원통사 2018. 8. 29. 17:05

제25 화무소화분(化無所化分)                  : 교화하여도 교화함이 없으니

 

수보리 어의운하(須菩堤 於意云何)           : 수보리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등 물위여래작시념(汝等 勿爲如來作是念)    : 그대들은 여래가 이렇게 생각한다고 하지 마라

아당도중생(我當度衆生)                        : ‘내가 마땅히 중생을 제도한다’

부처님께서 스스로 ‘내가 일체중생을 제도한다’ 이런 생각을 하고 계신다고 너는 생각하지 마라 이런 뜻입니다.

부처님은 일체중생을 구제하되 중생을 구제한다는 그런 번뇌를 일으키지 않습니다.

거울이 많은 물건을 비추되 이 물건 비추고 저 물건 비추려 애쓰는 법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다만 물건이 오면 그냥 비추듯, 부처님은 중생을 그렇게 교화하시는 겁니다.

 

수보리 막작시념(須菩堤 莫作是念)           : 수보리여! 그렇게 생각하지 말지니,

하이고(何以故)                                : 왜냐하면

실무유중생 여래도자(實無有衆生 如來度者)   : 실로 여래가 제도한 중생이 없기 때문이다.

실로는 중생이랄 것이 없습니다.

중생이랄 것이 없는 것을 ‘여래가 중생을 제도한다’ 이렇게 말합니다.

 

혜가대사가 달마대사에게 와서 간곡히 청합니다, ‘스승님, 제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십시오’,

‘그래 불안한 마음을 내놓아라, 내가 마땅히 불안한 마음을 편안히 해주겠노라’,

혜가가 자기의 불안한 마음을 내놓으려고 살펴봤지만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없습니다’ 했더니 달마대사가 ‘내 이미 너의 마음을 편안하게 했도다’ 이랬습니다.

그러면 달마대사가 혜가를 구제했다 할 수도 있겠지요,

어떻게 구제했을까요, 달마대사가 한 일이 있어요? 아무 것도 없습니다.

혜가대사는 어떤 꿈속에서 불안해 하다가 그것이 꿈인 줄 알고 나니 편안해 졌습니다.

뭐가 있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보니까 아무 것도 없었던 것입니다.

 

실로는 중생이 없어서, 중생이 있음이 없어서 여래가 중생을 제도했다 이렇게 말합니다.

달마가 한 일이 없는 게 아니라 하기는 했지요, 그러나 사실은 아무 것도 한 일이 없습니다.

혜가는 분명히 괴로움이 있었지요, 그런데 괴로움이 없어졌습니다.

어떻게 해서 괴로움이 없어졌느냐, 달마대사로부터 가르침을 받아서 없어졌다,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지만 무슨 가르침을 받았어요? 아무 것도 받은 게 없습니다.

준 것도 없고 받은 것도 없다, 근데 편안해 졌다, 있는 줄 알았는데 알고 봤더니 없더라!

 

여인이 자기 몸이 더러워졌다고 사람을 만나기 싫어하고 방 안에만 앉아 있습니다.

네 몸이 더러워졌느냐? 예, 더러워졌습니다.

어떻게 더러워졌는데? 온갖 남자가 내 몸을 짓밟고 가서 더러워 졌습니다.

그것은 더러워 진 것이 아니라 더러워졌다는 한 생각이 일어난 것이다,

그건 더러워졌다는 상을 움켜쥐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한낱 꿈에 불과하다,

그걸 깨쳤더니 이제까지 지고 있던 무거운 짐이 다 없어집니다.

내가 무엇을 해주었어요? 아무 것도 한 게 없어요, 자기 스스로 꿈속에서 깨어난 것입니다.

그 보살의 몸은 스님이 깨끗하게 해준 게 아니라 본래부터 더러운 몸이 아니었습니다.

더럽다고 생각할 때에도 더러운 몸이 아니었고, 부정하다고 생각할 때도 부정한 몸이 아니었습니다.

부정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으니 중생이라고 이름하는 것이지 그는 본래부터 중생이 아니다 이 말입니다.

 

약유중생 여래도자(若有衆生 如來度者)         : 만일 중생이 있어 여래가 제도한 것이라 한다면

여래즉유 아인중생수자(如來卽有 我人衆生壽者) : 여래가 곧 아·인·중생·수자가 있음이니라.

중생이 있어서 여래가 중생을 제도한다고 하면 이미 여래가 아·인·중생·수자에 집착하는 게 됩니다,

중생이라 할 것이 없는 줄을 확연히 아는 것이 바로 중생을 제도하는 것입니다.

 

원효대사는 불쌍한 방울스님을 보고 갖가지 사랑과 자비를 베풀었습니다.

그런데 알고 봤더니 그는 불쌍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원효는 방울스님을 보고 불쌍하다는 망상을 일으키고 망상에 따라 갖가지 행동을 했습니다.

그 행동이 문제라는 것이 아니라, 그 행동이 망상에 사로잡힌 꿈속의 행동이라는 것입니다.

방울스님이 본래 불쌍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방울스님이 불쌍한 존재가 아님을 확연히 깨달을 때 바로 일체중생이 그와 같아집니다.

방울스님이 중생이 아님을 깨쳐도 그가 밥을 얻으러 오면 밥을 주어야 됩니다,

불쌍하다는 생각을 뛰어넘어서 보시를 해야 됩니다, 상을 짓지 말고 보시를 해야 됩니다.

 

수보리 여래설 유아자(須菩堤 如來說 有我者)          : 수보리여! 여래가 ‘아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즉비유아(卽非有我)                                    : 곧 ‘아가 있는 것’이 아니거늘,

이범부지인 이위유아(而凡夫之人 以爲有我)            : 범부는 ‘아가 있다’고 하느니라.

수보리 범부자(須菩堤 凡夫者)                         : 수보리여! 범부라는 것은

여래설 즉비범부 시명범부(如來說 卽非凡夫 是名凡夫) : 여래가 범부를 말함이 아니라 그 이름이 범부니라.

중생이라 하지만 중생이라 할 것도 없다, 다만 그 이름이 중생이다,

범부라 하지만 범부라 할 것도 없다, 다만 그 이름이 범부이다,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라 하지만 그럴 것도 없다, 다만 그 이름이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다,

한 마디로 ‘일체 상이 지어진 것은 다 허망한 것이다’, ‘제법은 공하다’ 이런 말입니다.

중생이라는 것도 부처라는 것도 범부라는 것도 깨달았다는 것도 복이라는 것도,

장엄이라는 것도 정토라는 것도 크다는 것도 작다는 것도, 그 무엇도 상을 지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상을 깨트리면 저 상을 취하고, 저 상을 깨트리면 또 이 상을 취하기 쉽습니다.

깨끗하다 하는 상에 취하고 더럽다 하는 상을 만들어 분별하고, 분별하지 마라 하면 분별하지 마라는 상까지 만듭니다.

 

얘기를 진행해가는 과정에서 수보리가 ‘아라 할 것이 있다’는 상을 취하니까

부처님이 ‘아라 할 것이 없느니라, 다만 범부들이 아가 있다고 할 뿐이니라’ 라고 합니다.

수보리가 ‘어리석은 놈들은 그런 생각을 하구나’ 이렇게 범부라는 말에 또 상을 지으니,

‘범부라 할 것도 없다’고 또 깨트립니다.

계속 말이 반복되는 것 같고 말이 말을 물고 가는 것 같지만,

수보리가 여기 붙고 저기 붙어 한없이 상을 지으니 따라가면서 바로바로 그 상을 깨트리고 있는 것입니다.

 

화무소화분, 되어지는 바 없이 되어진다, 함이 없이 한다, 교화함이 없이 교화한다,

중생을 이롭게 함이 없는 것 같이 하면서 중생을 이롭게 한다,

내가 교화한다 이런 생각 없이 교화를 하고, 교화 받는 사람도 교화 받았다는 의식 없이 교화가 된다, 이런 얘기입니다.

 

제25분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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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 화무소화분(化無所化分)                    : 교화하여도 교화함이 없으니

 

수보리 어의운하(須菩堤 於意云何)                    : 수보리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등 물위여래작시념(汝等 勿爲如來作是念)          : 그대들은 여래가 이렇게 생각한다고 하지 마라

아당도중생(我當度衆生)                               : ‘내가 마땅히 중생을 제도한다’

수보리 막작시념(須菩堤 莫作是念)                    : 수보리여! 그렇게 생각하지 말지니,

하이고(何以故)                                         : 왜냐하면

실무유중생 여래도자(實無有衆生 如來度者)          : 실로 여래가 제도한 중생이 없기 때문이다.

약유중생 여래도자(若有衆生 如來度者)               : 만일 중생이 있어 여래가 제도한 것이라 한다면

여래즉유 아인중생수자(如來卽有 我人衆生壽者)     : 여래가 곧 아·인·중생·수자가 있음이니라.

수보리 여래설 유아자(須菩堤 如來說 有我者)         : 수보리여! 여래가 ‘아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즉비유아(卽非有我)                                     : 곧 ‘아가 있는 것’이 아니거늘,

이범부지인 이위유아(而凡夫之人 以爲有我)           : 범부는 ‘아가 있다’고 하느니라.

수보리 범부자(須菩堤 凡夫者)                          : 수보리여! 범부라는 것은

여래설 즉비범부 시명범부(如來說 卽非凡夫 是名凡夫) : 여래가 범부를 말함이 아니라 그 이름이 범부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