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생각 바꾸면 ~~

42. 컬링의 여운

상원통사 2018. 3. 8. 22:26

동계올림픽이 끝난지 한참이 지났지만 지금도 컬링이라는 단어만 보면 나도 모르게 클릭하게 되고,

비록 사소하거나 부정적인 기사라 할지라도 끝까지 꼼꼼히 읽고, 나름대로 좋은 쪽으로 상상을 펼친다.

그래 다 잘 될거야 ~~

그러니까 내게 있어서 컬링(Curling)이라는 단어는 힐링(Healing)으로 바뀌어 버렸다.

나만 그럴까, 아니지, 장담컨데 많은 우리 국민들이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을 것이다. 



여자 컬링 순위



TV 채널을 돌리다 보니 둥그런 돌맹이가 하얀 빙판 위를 미끌어진다.

저게 뭐였더라, 아아 맞아, 컬링이라는 종목이지,

돌맹이를 슬쩍 밀어 놓고 미끄럼 타면서 열심히 걸레질하는 그런 경기,

틀림없이 우리와 상관없는 춥고 눈 많이 오는 동네에서 겨울에 할 일 없으니 저런 것 했겠지,

아그들 장난같이 걸레질 하는 것도 올림픽 종목이 되는 걸 보면 역시 힘이 있어야 돼,

그나저나 기왕에 나왔으면 잘해야 될텐데 우리나라 실력은 얼마나 될까?

보나마나 아이스하키 수준 정도겠지, 잘하면 1승, 아니 홈구장의 잇점이 있으니 2승!

어라, 근데 이것 봐라, 상대가 세계 1위인데 밀리지 않고 잘 버티네, 신통방통하구나,

그래 그래, 잘한다, 잘한다, 그래야지, 우와, 이겼다!!!

감격에 겨운 해설가가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더한다.

'우리 팀이 캐나다 팀과 결승전에서 한 번 더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그 날부터 빠져들기 시작한 컬링의 매력, 과연 무엇이 그렇게 나를 헤어나지 못하고 푹 빠지게 끌어당겼을까?


첫째, 규칙이 간단하고 반칙이 없다.

둥그런 원 가운데에 가깝게 돌맹이를 넣는 팀이 이기는 것이고, 상대편 돌맹이보다 안쪽에 있는 돌맹이는 다 점수가 된다.

처음보는 사람도, 잘 돌아가지 않는 내 머리로도 쉽사리 이해가 될 정도이니 많은 생각이 필요없음은 물론,

선수끼리 서로 부딪히며 얼굴 붉히는 일도 없고, 딱히 반칙이라 할 것도 거의 없으니 보기에 너무 편하다.


둘째, 느림의 경기라 다시 돌려볼 필요가 없다.

무릇 스포츠 경기란 빠르면 빠를수록 잘하는 것인데, 빠를수록 내 눈에는 잘 들어오지 않으니 꼭 느린 화면을 봐야 이해가 된다.

근데 요건 느린게 매력, 45미터 가는데 15초 정도 걸리니 초속 3미터, 시속 10킬로미터,

손에서 떨어져서 멈출 때까지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다 따라가며 볼 수 있다.

조금 빠른 것도 보이고 조금 늦은 것도 보이고 오른쪽으로 꺾이는 것도 보이고 왼쪽을 꺾이는 것도 보이고,

마지막에 꽝 부딛히고 제자리에 서는 순간까지 작은 움직임을 느린 화면으로 안봐도 아무 문제 없다.


셋째, 내가 감독이 될 수도 있다.

빠르지 않으니 생각할 시간이 있고, 규칙이 단순하니 작전을 짤 수 있다.

저놈을 맞혀서 저리 보내고 우리 건 이쪽으로 와서 요놈도 맞혀 날려버리고 제자리에 딱 서면 되겠구나,

한 수 앞 두 수 앞을 내다보는 재미도 있고, 예상대로 들어오면 기분이 좋아지고 짜릿함을 느낀다.


넷째, 돌맹이가 손을 떠나도 조절할 수 있다.

손에서 떠난 야구공, 발에서 떠난 축구공, 과녁을 향한 화살들은 그냥 쳐다보며 잘되기만 바랄뿐이지만,

요놈의 돌맹이는 빠르게도 만들고 느리게도 만들고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살금살금 휘게도 할 수 있으니,

나도 모르게 허리가 돌아가고 주먹을 쥐게 되고, 멈출 때까지 내내 긴장감이 떠나지 않는다. 


다섯째, 내가 선수와 함께 할 수 있다.

돌맹이를 놓을 때의 신중한 표정, 부지런히 걸레질 할 때의 땀나는 표정을 보면 내가 바로 옆에 서있는 듯 하고,

악쓰듯 내지르는 소리, 플랜 A 플랜 B 작전짜는 소리, 서로 다독이며 격려하는 소리는 내게 말하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니,

보는 재미만 최고가 아니라 TV 중계용으로도 최고의 경기라 하고 싶다.


여섯째, 깨부실 때의 짜릿함이 있다

봐라, 정말로 감탄하고 또 감탄하고 목청이 올라가고 박수가 절로 나왔다,

어떻게 그 멀리서 던진 돌맹이가 슬금슬금 다가와 탁 치니 억 하고 날아가 빙판을 비워버릴 수 있단 말인가,

그것도 안에 있는 우리 돌맹이는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고, 즈그 돌맹이 세 개가 전부 다 사라져 버릴 수 있단 말인가,

그 장면을 떠올리기만 하면 그 때만큼 똑같이 짜릿짜릿하고 보고 또 보고 싶다.


일곱째, 이야기가 있고 따뜻함이 있다

마늘만 있는 줄 알았던 시골 동네 의성에 컬링장도 있다는 사실,

'그냥 한 번 해볼까'로 시작했는데 국가대표가 되어 우리를 감동의 도가니에 빠트린  마늘 소녀들,

영미와 영미 친구와 영미 동생과 영미 동생 친구라는,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가깝고 끈끈한 관계,

실수해도 탓하지 않고 서로 다독이고 격려해주는 모습을 지켜보며  내 마음도 따뜻해지고

자기들이 이렇게 인기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경기에만 열중했다는 말에는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이쁘다, 너무너무 이쁘다.

미투(#MeToo)에 걸릴지라도 가서 껴안아주고 뽀뽀해주고 싶은 우리 선수들!!!



19일 강원 강릉컬링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컬링 예선 대한민국과 스웨덴의 경기에서 한국 대표팀(김은정(스킵), 김영미(리드), 김선영(세컨드), 김경애(서드)) 선수들이 경기를 치르고 있다. / 이준헌 기자 ifwedont@



그들은 내게 감동을 주었고, 우리들에게 감동을 주었고 세계인에게 감동을 주었다.

평화올림픽이어서 좋고 메달 따서 좋고 우리 팀이 잘해서 좋다고 덩실덩실 춤추는 사람뿐만 아니라,

평양올림픽이라고 악담하며 게거품 무는 사람들도 집에서 몰래 보면서 똑 같은 생각을 했으리라,

우리 낭자들, 너무 잘했다!!!



여자 컬링 팀/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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