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생각 바꾸면 ~~

41. 믿고 사는 세상

상원통사 2018. 2. 6. 22:31

매매상 : 수지에서 순천까지 운반비도 생각해야 되요. 590까지는 드릴 수 있는데...

나       : 그러지 말고 600에 맞춥시다.

매매상 : (생각하다가) 그래요, 그렇게 하시지요. 계좌번호 알려주세요 송금해 드릴테니...

나       : 아니, 차를 보지도 않고 송금부터 해요?

매매상 : 말씀하신 것을 믿어야죠. 설마 거짓말이야 하시겠어요?


새로 부임한 현장까지는 편도 49Km, 차를 가지고 가면 출근 때는 1시간 반이지만 퇴근 때는 최소한 2시간 반,

그렇지 않아도 짜증나는데 덤으로 열까지 팍팍 오르게 하는 건 시도 때도 없이 새치기 하는 녀석들이다.

차가 작다고(모닝) 어찌나 끼어드는지, 따발총으로 쏴버리고 싶지만 그렇지 못하니 못된 성질 더 나빠지기만 한다.

대중교통을 이용해보니 출퇴근 모두 2시간 정도로 차 가지고 다니는 것과 비슷하기는 하지만,

지하철 세 번에 버스 한 번 타는 불편함에다 적어도 한 번쯤은 서서 가야하니 조금 힘들기는 하다.

그래도 짜증나지 않고 그 시간을 알뜰하게 쓰는 재미가 있어 BMW(Bus, Metro, Walking)로 결정했다.

그럼 이 차는 어떡하지, 팔자니 아깝고 세워두자니 헛 돈만 나가고...

미적미적하다 보니 벌써 반 년, 더이상 미룰 수 없어 과감히 결론을 내렸다.

그래, 팔자, 그리고 필요하면 그 때 가서 다시 사자!


팔기는 팔되 한 푼이라도 더 받아야 할 것 아닌가,

중고차 매매상들에 전화를 해보니 온라인으로 확인한 가격과 너무 차이가 많기에 직접 팔아보기로 했다.

차 사진 찍고, 차종류 연식 모델명 색깔 주행거리 옵션 등등 적어 무료 중개 사이트에 올리며,

지금까지 무사고이고 고속도로만 뛰어서 상태가 아주 좋다는 말도 강조하여 덧붙였다.

올리자마자 여기저기서 연락은 많이 오는데 제시하는 가격이 내 예상과 다르다.

중고차는 판매가는 높아도 구입가는 낮다는 냉엄한 시장의 현실을 인지하는 데 10여일,

욕심을 파격적(?)으로 버리고 그 중 제일 좋은 가격을 제시한 사람과 다시 통화를 했다.

근데 이 사람, 내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상식과 너무 다른 반응을 보이니 순간 당황할 수 밖에 ~~

어떻게 차는 보지도 않고, 전화로만 통화한 낯선 사람에게 덜렁 돈부터 보낸다고 할까,

그것도 닳고 닳은 사람이 아니면 아무나 할 수 없다는 중고차 매매상이 말이다.


실제로 내 자신도 본의 아니게 거짓말 했던 적이 있었다.

예전에 타던 차를 팔때 무사고라고 자신있게 말했는데, 차를 살펴본 매매상은 뒷문짝을 바꾼 흔적이 있다고 알려왔다.

그럴리가 있나, 한 번도 사고난 적이 없는데 무슨 소리지??

아 그렇구나, 겨울에 빙판길 내리막에서 뒷차가 미끌어져 내려오며 박았었지, 그 때 문짝을 바꿨었구나...

악의로 거짓말 하는 사람도 있을 터이고, 미처 파악하지 못한 보이지 않는 결함이 있을 수도 있는데

차를 보지도 않고 돈부터 보내겠다니 도대체 정신이 있는 사람인가 없는 사람인가~~

계좌번호를 알려주고 나서 기억을 다시 한 번 더듬어 보고 차계부도 다시 한 번 살펴 보았다,

그래, 이번엔 틀림없어, 어디 한 군데 긁힌 곳도 없고 받힌 적도 없고, 분명히 깨끗해!


거래가 다 끝나고 나서 마지막으로 문자를 보냈다.

"감사합니다.  특히 사람을 믿고 진행해주셔서 더욱 더 기분이 좋습니다.

 혹시 회사 상호 있나요? 기회가 되면 여기저기 소개해 드리고 싶어요.

 하시는 일마다 대박 나시길!"

잠시 후 명함을 찍은 사진과 함께 답장이 왔다.

"좋은 하루 되세요.

 비록 매매상 일을 하고 있지만, 소비자와 신뢰 믿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P.S : 작년 봄의 일인데, 다시 생각해보아도 너무 기분이 좋아서 자랑삼아 그리고 소개삼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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