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0-1강에서 계속)
시고 수보리(是故 須菩堤) : 그러므로 수보리여!
제보살마하살(諸菩薩摩訶薩) : 모든 보살 마하살은
응여시생청정심(應如是 生淸淨心) : 응당 이와 같이 청정한 마음을 내되,
여기서 더러운 마음이 있고 깨끗한 마음이 있다 이런 의미의 청정한 마음이 아니라,
아무런 분별없이 일으키는 그 마음을 이름하여 청정심이라 한다,
보살은 응당히 이와 같은 청정한 마음을 내어,
불응주색생심(不應 住色生心) : 색에 머무르는 마음을 내지 말며,
불응주성향미촉법생심(不應 住聲香味觸法生心) : 소리·향기·맛·감촉·법에 머무르는 마음도 내지 말고,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 :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낼지니라.
눈으로 보고 그 빛깔과 모양에 집착을 해서 마음을 내지 아니하고,
육근경계에 끄달려서 거기에 집착해서 마음을 내는 게 아니다,
머무는 바 없이, 색성향미촉법에 집착함이 없이 그 마음을 내느니라
수보리 비여유인(須菩堤 譬如有人) : 수보리여! 비유컨대 어떤 사람이 있어
신여수미산왕(身如須彌山王) : 그 몸이 수미산왕만 하다면
어의운하(於意云何) :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시신 위대부(是身 爲大不) : 그 몸이 크다고 하겠느냐?
수보리언 심대세존(須菩堤言 甚大世尊) : 수보리가 대답하였습니다. 매우 큽니다, 세존이시여!
하이고(何以故) : 왜냐하면
불설비신시명대신(佛說 非身 是名大身) : 부처님께서 몸 아닌 것을 이름하여 큰 몸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큰 몸(大身)이라고 하는 것은 비신(非身), 몸이라 할 것이 없을 새,
시명대신, 그 이름이 큰 몸이다, 즉 큰 몸이라 불린다 이런 얘기입니다.
수미산은 세계에서 가장 큰 산을 말합니다.
인도의 세계관에서는 이 세상의 한 가운데에 엄청나게 큰 산이 하나 있는데 그 산을 수미산이라 합니다.
수미산왕이란 산들 중에 가장 크니 왕(王)자를 붙인 것일뿐 왕을 따로 해석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 수미산 주위로 바다가 있고 그 바다에는 네 개의 섬이 있어 이를 사주라 하는 데,
북쪽의 섬은 구로주, 남쪽은 섬부주, 동쪽은 승신주, 서쪽은 우화주라 합니다.
우리가 사는 곳은 남쪽의 섬부주입니다.
그 바다 뒤로 또 산(섬)이 있고 바다가 있는 데, 이것들이 아홉 번 계속되어 구산팔해라 합니다.
맨 바깥에 있는 산이 철위산이며, 철위산을 이 세계의 끝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이 세계의 지하 맨 아래에 지옥이 있고 그 위에 아귀가 있고,
지표에 축생이 있고 인간이 있고, 주위 옆 허공에 아수라가 있다,
그리고 수미산 중턱부터 신들의 세계가 있는데 사왕천이 있고 맨 꼭대기에 도리천이 있다,
사왕천과 도리천은 수미산 꼭대기 땅을 의지해서 있기 때문에 지거천이라 하고,
그 이상부터 다 모든 천상은 공거천이다, 다 허공에 있다,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수미산이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이 세계 안에 있으니 이 세계와 비교하면 작은 것인데,
이 세계가 수도 없이 모여 있는 삼천대천세계에 비하면 수미산은 먼지털보다도 작은 존재다,
그러니 수미산은 크다 할 것도 없고 작다 할 것도 없는 그냥 한 물건일 뿐이다,
크다니 작다니 하는 것은 비교가 되어서, 서로 연기 되어서 생기는 말이지,
본래는 큰 실체도 작은 실체도 없는 것이다, 이게 존재의 실상이다,
수보리야 비유하건데 어떤 사람이 그 몸이 수미산만 하다면 그 몸이 크냐 크지 않느냐,
수보리언 심대 세존, 수보리 말하되 매우 큽니다 세존이시여,
어찌한 까닭이냐 하오면,
불설비신 시명대신, 이것은 줄인 것이고 원래대로 하면 ‘불설대신 비대신 시명대신’입니다,
부처님께서 큰 몸이다 라고 말씀하셨지만 사실 몸이 크다 할 것이 없고 이름하여 큰 몸이다 이런 뜻입니다.
너 잘했다 잘못했다 말할 수는 있지만, 사실은 너 잘했다 잘못했다 할 것이 없다,
잘했다 잘못했다 할 것이 없다고 아무것도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인연을 따라서 잘했다 잘못했다 라는 말이 생겨났다,
많은 파도가 일어나는데 그것들은 다 바다로부터 일어난다,
파도 하나만 보면 생기고 사라지는 것이지만 바다 전체를 보면 생기고 사라짐이 없다,
생이 있는 것 같고 멸이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생멸이 없다,
여러분들의 육신도 생각도 정신도 다 그렇다,
작게 보면 생기고 사라지는 것 같지만 크게 보면 생기고 사라질 것도 없다,
생기고 사라짐이 없다하니 그냥 고요히 아무 것도 없다 라고 생각하면 안된다,
원래 고요한데 일진광풍이 불면 그 인연을 따라서 파도가 일어나고 풍랑이 일어난다,
마음이 어리석으면 이 세계가 다 사바세계고 마음이 청정하면 이 세계가 다 불국토다
그러면 마음만 깨끗하면 되겠네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렇지 않다,
마음을 깨끗이 한다는 것은 안팎 없는 세계를 다 깨끗이 한다는 얘기이다,
예를 들어 여성해방에 대해 이야기 할 때도, 제도를 바꾸는 것만으로는 여성해방이라 할 수 없다,
바깥 제도는 많이 바뀌었지만, 아직도 의지심을 갖고 살아온 그 업은 안에 많이 남아 있다,
그러기에 그것은 진정한 해방이라고 할 수가 없다, 그 의지심을 버려야 진정한 해방이 된다,
그 의지심이 바로 중생심입니다, 그것을 버려야만 참다운 해방이라 말할 수가 있습니다.
안팎을 나누지 않는다면 안팎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안과 밖을 나눠가지고 안이 먼저냐 밖이 먼저냐, 이렇게 생각합니다.
일체가 유심조다, 이런 것은 바로 안팎을 둘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고,
제법이 다 한 몸이다 할 때는 일체를 다 하나로 본다는 겁니다.
아무런 분별심이 없이 내는 마음을 다른 사람에게까지 적용해야 합니다.
내 남편이 나하고 둘이만 살 때는 늘 행복하지 못하고 우울했는데,
어디 가서 다른 여자를 하나 만나더니 얼굴에 생기가 돌고 아주 열심히 삽니다,
내 남자다 하기 때문에 그것은 나쁜 일이라는 생각이 들지 그 자체만 보면 좋은 일입니다.
사람이 우울하다가 즐겁게 사는 것은 좋은 일이기에, 그 여자는 좋은 약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니 그냥 놔두든지, 그렇게 살기 싫으면 그냥 사라고 두고 자기는 자기 길 가면 됩니다.
당신이 저 여자 좋아하니까 나는 당신이 미워서 같이 못 살겠다 이런 게 아니라,
당신이 잘되는 것은 나에게도 큰 행복이다 이렇게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여기서는 법문을 들어도 분별망상이 되어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공부의 효과도 없었는데,
다른 절에 갔더니 깨쳐서 좋다 이러면 그걸 기분나빠할 것이 아니라 같이 기뻐할 일이다,
절에 와서는 마음의 평화를 누리지 못하다가 교회에 가서 기쁨을 얻었다면 좋은 일이다,
여기서는 자기 이익만 챙기더니 거기 가서는 남을 돕고 보시도 한다, 이것은 좋은 일이다,
내 절 신도가 왜 거기 갔냐, 왜 불교 다니다가 기독교 갔나, 이렇게 되지만 그 자체만 보면 좋은 일입니다.
일체 중생이 다 한 몸이고 일체 중생이 다 내가 구제해야 할 대상이라면 그가 좋아지는 것은 나에게도 좋은 일입니다.
기독교 신자한테 그렇게 말하면 그것은 절대 불가능하다고 할 것입니다.
너 좋다면 그렇게 해라 이것은 교회에서는 용납이 안 되는 일이지만 여러분들이 볼 때 별 문제가 없는 일 아닙니까?
남편이 다른 여자를 만나는 것은 절대 용납 못할 일일 수도 있고 괜찮은 일이 될 수도 있다,
왜 그러냐, 지금은 용납이 안 되지만 조선 시대에는 다 용납이 되었던 일이다,
그럼 지금 법은 옳고 그 때 법은 틀렸느냐, 그게 아니다, 법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
이걸 깨닫고 한 발 물러나게 되면 여러분들은 어떤 사람을 만나도 원수질 일이 없어진다,
그가 오해를 해서 나에게 원결을 품을 수는 있지만, 나는 이 세상 누구와도 원수질 일이 없고 미워할 일이 없다,
미워하는 것은 다만 내가 어떤 상에 사로잡히기 때문에 생겨나는 일이다,
돈을 빌려주었는데 안 갚는다, 재산도 많이 있는데 안 갚으면 화가 엄청나게 나지요,
근데 아무 것도 없으면 차라리 포기를 합니다.
그러나 정말 돈을 소중히 한다면 놔두고 안 갚는 것에 대해 더 기뻐해야 합니다.
놔두고 안 갚는 것은 받을 가능성이라도 있지만, 아무 것도 없는 것은 받을 가능성이 없잖아요.
그러니 놔두고 안 갚는 것은 없어서 못 갚는 것보다 더 기분 나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또 없어서 못 갚는 것을 보면 받을 길이 없으니까 펄쩍펄쩍 뛰는데,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본래 누구의 것도 아니니 없어서 못 갚는 것은 죄가 안 됩니다.
세상의 윤리 도덕적으로는 죄가 될지 몰라도 진리의 차원에서는 죄가 될 수가 없는 겁니다.
그러니 없어서 못 갚아도 그대로 좋은 길이 있고, 있으며 안 갚아도 그대로 좋은 길이 있습니다.
한 발 물러서서 본다면 미워할 일이 없습니다, 거긴 다 그럴만한 이치가 있습니다.
인생은 절대 자기의 주인자리를 남에게 주고 살아서는 안 됩니다.
자기 자리를 돈한테 주고 옷한테 주고 남편한테 주고 남편 주위의 여자들한테 주고,
이렇게 하고 인생을 방황하다가 끝내는데, 내 인생의 주인자리를 그런데 줄 이유가 뭐가 있습니까,
내가 주인이 되어서 돈을 굴리고 세상을 굴려야지 왜 내가 세상의 군림을 당합니까,
법이 공한 줄을 깨치면 이러한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제10강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장엄정토분(莊嚴淨土分) : 정토를 장엄한다
불고 수보리(佛告 須菩堤) :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어의운하(於意云何) :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석재연등불소(如來 昔 在然燈佛所) : 여래가 옛적에 연등부처님 계시던 처소에서
어법 유소득부(於法 有所得不) : 법을 얻은 바가 있느냐, 없느냐?
불야 세존(不也 世尊) :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 재연등불소(如來 在然燈佛所) : 여래께서 연등불 계시던 처소에서
어법 실무소득(於法 實無所得) : 실로 법을 얻은 바가 없습니다.
수보리 어의운하(須菩堤 於意云何) : 수보리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보살 장엄불토부(菩薩 莊嚴佛土不) : 보살이 불국토를 장엄하느냐?
불야 세존(不也 世尊) :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하이고 장엄불토자(何以故 莊嚴佛土者) : 왜냐하면 불국토를 장엄하는 것은
즉비장엄 시명장엄(卽非莊嚴 是名莊嚴) : 곧 장엄이 아니라 그 이름이 장엄이기 때문입니다.
시고 수보리(是故 須菩堤) : 그러므로 수보리여!
제보살마하살(諸菩薩摩訶薩) : 모든 보살 마하살은
응여시생청정심(應如是 生淸淨心) : 응당 이와 같이 청정한 마음을 내되,
불응주색생심(不應 住色生心) : 색에 머무르는 마음을 내지 말며,
불응주성향미촉법생심(不應 住聲香味觸法生心) : 소리·향기·맛·감촉·법에 머무르는 마음도 내지 말고,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 :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낼지니라.
수보리 비여유인(須菩堤 譬如有人) : 수보리여! 비유컨대 어떤 사람이 있어
신여수미산왕(身如須彌山王) : 그 몸이 수미산왕만 하다면
어의운하(於意云何) :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시신 위대부(是身 爲大不) : 그 몸이 크다고 하겠느냐?
수보리언 심대세존(須菩堤言 甚大世尊) : 수보리가 대답하였습니다. 매우 큽니다, 세존이시여!
하이고(何以故) : 왜냐하면
불설비신시명대신(佛說 非身 是名大身) : 부처님께서 몸 아닌 것을 이름하여 큰 몸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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