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생각 바꾸면 ~~

38. 진정한 우정

상원통사 2017. 12. 10. 23:25

** 여시아상(如是我想) : 이와 같이 나는 생각한다 **

                - - - - - - - - - - - - -

옛날 어느 부자가 외아들을 두었는데, 아들이 늘 먹을 것을 주고 다니니 친구들이 잘 따랐다.

그래서 아버지는 틈만 나면, “얘야, 친구는 먹을 것이 아니라 진실한 우정으로 사귀어야 한다.”고 말했지만

아들은 늘 아이들을 데리고 집에 와서 먹을 것을 주고 놀았다.

어느 날 아버지가 아들에게 친구가 몇 명이나 되느냐고 물었더니, 아들은 “한 삼십 명쯤 됩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래서 다시 “그중에 제일 친한 친구가 몇 명이나 되느냐?” 하고 물었더니,

“열 명 정도 되는데, 모두 죽자사자 친한 친구들입니다.” 하였다.

며칠 뒤 한밤중의 일이었다.

갑자기 아버지가 사색이 되어 아들 방에 나타나서는,

“얘야, 내가 실수로 사람을 죽이고 말았구나.

 이제 조금 있으면 날이 밝을 텐데, 관가에서 찾기 전에 어디 숨길 만한 데가 없겠느냐?” 하고 물었다.

아들이 뜻밖의 사건에 정신이 멍하여 아무 소리도 못하는데 다시 아버지가,

“옳지! 너한테는 죽자사자 친한 친구가 많다고 하였으니, 그 친구들한테 부탁해 보자꾸나.” 하였다.

그리하여 아들은 아버지가 멍석에 말아놓은 시체를 지게에 지고 제일 친한 친구집을 찾아갔다.

그러나 제일 친하다는 친구는, 아들이 시체를 숨기려고 한다는 말을 듣자마자 문부터 닫아걸기에 바빴다.

아들이 통사정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평소에는 간이라도 내줄 듯이 잘하던 친구들이었지만, 아들이 시체를 숨겨 달라는 말에는 모두 문부터 닫아걸었다.

마지막 친구집에서까지 거절을 당한 아들이 힘없이 돌아서자 아버지는,

“이거 큰일이구나. 그렇다고 이렇게 있다가는 꼼짝없이 잡힐 텐데.

 아참, 이 근처에 내 친구가 살고 있는데 한 번 가봐야겠다.” 하고는 앞장서서 걸었다.

아버지는 어느 집 대문 앞에 서서 “여보게, 친구 있나?” 하고 불렀다.

잠시 후 친구가 나오자 아버지는 사정 이야기를 하였다.

그러자 아버지의 친구는, “어쩌다 그런 일을 저질렀는가? 하여튼 어서 들어오게. 일단 방에 들어가서 생각해 보세.” 하였다.

아버지와 아들이 집 안으로 들어가자 아버지 친구는 지게에 올려져 있던 시체를 숨겨 놓고 방으로 들어왔다.

그러고는 “여보게, 자수를 하게. 시체야 얼마든지 감추어 줄 수 있지만 죄 짓고 사는 삶이 편하겠는가.” 하고 설득하였다.

아버지는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맞는 말일세.” 하고는 아들에게, “너는 가서 지게를 지고 오너라.” 하였다.

그러자 다시 아버지 친구가, “아닐세. 내가 지고 감세. 밤새도록 지고 다니느라 고단할 거야.” 하고 앞장서서 나가려고 하였다.

그때 아버지가 친구의 손을 잡으며,

“그만두게. 사실 그건 시체가 아니라 돼지라네. 내 자식놈에게 진정한 친구란 어떤 건지 보여주려고 부러 꾸민 걸세.” 하였다.

그러고는 아들에게, “진정한 친구란 네가 가진 것이 없을 때도 너를 진정 생각해 주는 사람”이라고 말하고는,

돼지를 잡아 친구와 기분좋게 술을 마셨다.


*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보천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진정한 친구 이야기

* 그 동네에 사는 반재풍님이 구연한 것을 김영진님이 채록하여, 1983년에 출간한『민담 민요집』에 수록


----------------



20년 쯤 되었을까, 기억도 가물가물할 만큼 오래 전에 친구랑 술을 마시다가 엉뚱한 곳으로 이야기가 번졌는데,

아마 우정 그런 이야기 했었던 것 같다.

꽤 늦기는 했지만 이 시간에 전화하면 나오는 친구가 몇 명이나 될까? 한 번 시도해보자.

내 생각에 그래도 자주 만나고 친하다고 느끼는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결과는?

다들 전화는 받았지만 나온다는 친구는 아무도 없었다.

그 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쨔샤들, 참 너무들 하는구나~~



옆에서 보기에 A와 B는 엄청 친했다.

서로 멀리 떨어져 살았으나 틈만 나면 전화하여 안부를 묻고 시시콜콜한 얘기를 나누고,

만나면 궁짝이 잘 맞아 이야기는 끝이 없고 이차는 단란주점으로 시간이 허락하면 골프장으로,

작은 것까지 챙겨주고 가족끼리도 허물없이 지내는 그런 가까운 사이였다.

부러웠다.

사업을 하는 A가 갑자기 필요해서 B에게 돈을 빌렸다 한다. 물론 선뜻 빌려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업이라는 게 그렇고 그렇지 않는가, A는 갚기로 한 약속을 몇 번쯤 어겼으리라,

참지 못한 B는 A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 가압류를 걸어버렸다 했다.

내가 공부해 봐서 아는 데, 가압류 신청하는 게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돈 빌려준 증빙서류 챙겨서 법무사 통해 법원에 서류 제출하고, 두세 번 법원에 출두하여 승소판결 받고,

그걸 근거로 등기소에 가압류 신청해야만 하는 번거로운 것이다.

목적은?

물론 위협이겠지만, 만약 안 갚으면 당신 아파트를 경매신청하여 내 돈만큼은 챙기겠다는 것이지.

상황이 힘들었지만 어쩔 수 없이 A는 다른 곳에서 돈을 융통하여 B에게 갚고 가압류를 해제했다한다.

도대체 얼마만큼 큰 돈이었기에 친한 친구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 가압류까지 걸었을까?

애걔걔 ~~

그 정도면 B의 재력으로 볼 때 별 것도 아닌데 가압류씩이나....


내가 부탁하면 선뜻 돈 빌려줄 친구가 내겐 몇이나 있을까? 

피식 웃음이 나왔다, 밤 시간에 얼굴 보게 나오라 해도 마다하는데 하물며....

그러다가 갑자기 법륜스님의 강의가 떠올랐다.

'인연과보(因緣果報),

 심은 게 있어야 거둘게 있고, 준 게 있어야 받을게 있다,

 사랑을 받으려면 사랑을 먼저 해야 되고, 도움을 받으려면 남이 어려울 때 도와줘야 된다',

그렇지, 베푼 것이 없어 받지 못하는 그 쉬운 이치도 모르고 지금까지 살아왔구나,

아상에 사로잡혀 받으려고만 했으니 시체를 지고 찾아갈 친구가 없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그럼 이제부터는?

시체를 지고 찾아갈 수 있는 친구를 바라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시체를 지고 찾아오더라도 선뜻 받아들일 수 있는 친구 둘만이라도 만들어보자.

아직도 늦지 않았다, 40년이나 남았지 않나!


'한 생각 바꾸면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술년을 맞으며  (0) 2018.01.11
39. 도서관에는 책이 있다  (0) 2018.01.08
37. 신경림님의 <가난한 사랑노래>  (0) 2017.12.06
36. 전쟁의 기억 - 주검  (0) 2017.09.29
35. 전쟁의 기억 - 미사일  (0) 2017.0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