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생각 바꾸면 ~~

27. 부끄럽다는 것

상원통사 2017. 7. 16. 22:25

즐겁게 걷고 기분좋게 마시고 조금은 취해서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의 일이다.

아내 : 아침에 갈 때, 지하철 안에서 너무 부끄럽더라고요.

나    : 뭐가요?

아내 : 난 천 원밖에 안 드렸는데, 옆 아주머니는 이천 원, 앞에 앉은 아주머니는 오천 원을 드리더라고요.

         나도 더 드렸어야 했는데 또 꺼내기도 뭐하고, 저만큼 가버려서 그만....


그 말을 듣는 순간 술이 번쩍 깨며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아내가 부끄럽다고 하면 난 도대체 뭐가 되는 것인가, 난 사람도 아니구나.....


그랬다, 지하철에 앉아 눈을 감고 팟캐스트 방송을 듣고 있다가,

뭔가 기척이 있어 눈을 떠보니 도와주십사 글귀가 적힌 종이가 한 장 무릎에 놓여있었다.

으레 그렇고 그런 동냥이구나 생각하며 옆을 보니 아내가 지갑을 꺼내고 있기에 슬쩍 종이를 넘겨주고 다시 눈을 감았다.

조금 후 어디쯤 왔나 눈을 뜨고 좌우를 살펴보는 데, 저만치에서 몹시 낯선 동작을 몹시도 불안하게 하고 있는 사람이 보였다.

그는 제자리에서 다리를 구부려 자세를 낮추었다가 용수철처럼 솟구치며 몸을 앞으로 내밀어 무게중심을 이동하면서,

왼발을 먼저 내딛고 그 옆에 오른 발을 붙이는 순간 잠시 흔들리다가 겨우 중심을 잡았다.

개구리 뜀뛰는 것을 흉내라도 내듯 한 걸음 한 걸음 옮기는 그사람은 바로 아내가 미안해하던 사람이었다.

참 안 됐구나, 나는 그 때 거기까지만 생각이 미쳤다.


둘레길을 네댓 시간 걷고 나서 출출하였는데, 삼겹살에 낮술까지 몇 잔 곁들이니 취기가 올라 머릿속은 알딸딸,

오늘 행사를 같이한 회원들과 이런 얘기 저런 얘기 나누다 보니 분위기는 하늘까지 올라가며 웃음꽃이 만발,

때마침 밥을 볶아주러 온 아주머니의 날렵하고 재빠른 솜씨가 마치 우리만을 위해 정성을 다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기에,

그냥 고마와서 집에 갈 때 택시비나 하라고 만 원짜리 한 장 꺼내어 호주머니에 슬쩍 찔러 넣어주었다.

기분 좋은데 이 정도 쯤이야, 나는 그 때 그렇게 생각했었다.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그냥 지극히 평범한 일이, 오전의 일과 겹쳐지자 뭐라고 할까, 지독한 부끄러움으로 바뀌어버렸다.

걸음도 제대로 뗄 수 없을만큼 힘든 사람이 도와달라는데 눈을 감고 있던 나(비록 의도하지는 않았을 지라도...),

달라고 하지도 않았는 데 내 기분 좋다고 내 맘대로 팁을 챙겨준 나(받는 사람의 기분은 생각하지도 않고...),

지하철에서 나도 천 원을 꺼내어 주었다면 이렇게 부끄럽지는 않을텐데,

덜 필요한 사람보다 더 필요한 사람에게 만 원을 주었다면 내 마음이 조금 더 푸근해졌을텐데....


자리이타(自利利他)라 했다.

천 원 한 장이면 내 마음이 평화로와 좋고(自利) 그의 손에 쌀 한 홉 있어서 좋은 것인데(利他),

난 그 천 원 한 장을 주지 못하고 부끄러움만 가득하고 말았다.

적선(積善)이라 했다.

쌓을 적 착할 선, 나를 위해 착한 업을 쌓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주어졌는데도,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 것으로, 마음내키는 대로 해도 되는 것인 줄 알고 아무렇지도 않게 보내버렸다.

"하루 중 처음 쓰는 천 원은 남을 위해 보시하기!", 정토회에서 천일결사하는 사람들이 지키고자 하는 것 중 한 가지이다.

딱 그만큼 실천하고 있으면서, 난 이만큼이라도 하고 있으니 괜찮은 것 아닌가 착각하고 있었다.

이런 나에게, 지하철에서의 그는 몸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내는 마음으로, 부끄럽다는 것이 무엇인지 깨우쳐 주었다.

이젠 그러지 말자,

가끔은 밥티 갖고 잉어 낚는 기쁨을 누려보기도 하자!


* 정토회 : 법륜스님이 지도법사로 있는 불교수행공동체

천일결사(千日結社) : 자기를 바꾸기 위해 3년(1,000일)동안 정진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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