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생각 바꾸면 ~~

26. 지켜본다는 것

상원통사 2017. 7. 11. 21:07

나    : 일정표 다 짰으면 가져와 봐라, 어떻게 계획하고 있냐?

아들 : 우선 인천으로 가서 거기서부터 자전거길로 한강을 따라 올라와서 낙동강을 따라 내려갈 거에요.

         하루에 60Km 정도 간다고 하면 부산까지 12일 정도 걸릴 것 같아요.

나    : 잠은?

아들 : 찜질방에서 자려고요, 숙소 이름까지 찾아 놨어요.

나    : 밥은?

아들 : 세 끼 다 사먹으려고요.

나    : 올라오는 일정은?

아들 : 아직 안 짰어요.

나    : (속으로만) 흐이그, 제대로 좀 하면 안되냐~~~


지 누나들에 비하면 어느 구석 하나 나은 곳이 없지만 할머니 할아버지께는 금두꺼비였던 아들 녀석,

말하는 것도 어설프고 잘하는 것도 없고 꿈이 뭔지도 모르겠고 거기다가 게으르기까지,

오죽하면 띨띠리우스라 별명지어 놨을까만은 착한 것 하나는 알아주어야 한다.

공부만이 최고가 아니다, 네 나이 때는 뭔가 하나쯤에 빠져들 줄도 알아야 한다,

노래하는 것도 좋고, 춤추는 것도 좋고, 공차는 것도 좋고, 그림 그리는 것도 좋고, 뭐든지 다 괜찮다,

그냥 시간만 죽이며 지내는 그런 날들이면 안된다, 일촌광음 불가경이다,

네, 네, 네, 대답은 참 잘하지만  오로지 열심히 하는 건 내가 제일 싫어하는 Killing Time,

고3이 되어서도 시간만 나면 휴대폰으로, 컴퓨터로, 때론 PC방에 가서 뿅뿅만 하기에,

대학 가기 틀렸구나 생각하고 재수를 시키는 것이 좋은가, 그냥 사회로 내보내는 것이 좋은가 고민하고 있었는데,

비록 지방대학이지만 저보다 더 공부 안하는 녀석들이 많았는지 덜렁 합격해 한시름 덜어주었다.


3월 어느 날, 주말에 올라온 아들녀석을 앉혀놓고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아빠가 볼 때 넌 너무 여리고 약하다, 그래서 고생을 좀 해봐야 한다,

금년 여름방학 때 집 나가서 한 달만 생활해봐라, 여름이라 얼어죽지는 않을 것이다,

친척집에 가서 지내는 것은 안된다, 잠 잘 돈은 줄터이니 먹는 것은 네가 해결해보도록 해라...


여름방학이 가까워질 무렵, 아들녀석은 한 달 동안 전국 일주를 하고 싶으니 자전거를 한 대 사달라고 한다.

집 떠나서 돈 없이 힘든 생활 하며 이것저것 느껴보고 경험해보라고 했더니 겨우 여행이라니...

그래, 그거라도 하는 것이 집에서 빈둥거리며 뒹구는 것보다는 낫겠지, 그렇게 해봐라.

막상 방학이 시작되자 집에 와서 하는 일이라곤 친구들과 PC방에 가서 뿅뿅하는 것,

나 같으면 초행길 객지에 혼자 가는 것이 무서워서라도 일정표를 짜 볼 것인데 천하태평, 아무 생각이 없다.

잔소리 안하려고 참고 참다가 일정표라도 짜야 할 것 아니냐고 했더니 

끌적끌적 만들어서 보여주는데 어디를 거치는 지 어디서 쉬는 지 도저히 알아먹을 방법이 없다.

그러지 말고 한 눈에 볼 수 있게 지도에다 그려봐라 해서 만든 게 아래 여정 지도이다.




어설프다, 꼼꼼히 계획을 세우고 출발하더라도 실수하기 마련인데 어떻게 그렇게 막연하게 집을 나서려 하는 지....

불안하다, 제대로 마치고 올라올 지, 가다가 이틀만에 되돌아올 지, 무슨 사고나 당하지 않을 지....

믿어야지, 내 눈에는 부족해도 나름대로는 한다고 하지 않나, 집 떠나서 고생하다 보면 뭔가 하나는 얻어서 돌아오겠지....


법륜스님이 그러셨다.

아이가 세 살 때까지는 온 힘을 다해 키우고, 초등학교 때 까지는 모범을 보이고,

중학교 들어가면 옆에서 지켜보고, 스무 살이 넘으면 간섭하지 말라고...


스무 살이 다 되어 간다.

지켜보다가 놔주는 것도 수행의 한 가지일 것인데,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부터 잘해야 되는데....



'한 생각 바꾸면 ~~' 카테고리의 다른 글

28. 동무 이야기  (0) 2017.07.20
27. 부끄럽다는 것  (0) 2017.07.16
25. '차칵' 카메라  (0) 2017.07.06
24. 바라옵건데, 경호에 신경써 주십시오!  (0) 2017.05.19
23. 꿀벌이 무서워 ~~  (0) 2017.0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