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광주에 살 땐 마실가듯 가벼이 갈 수 있는 곳이었지만,
이제는 큰 맘먹고 시간을 내야 갈 수 있는 전라도의 곳곳들,
이번엔 닷새나 계속되는 연휴가 있어 느긋한 마음으로 내려와, 청산도 가는 길에 잠깐 돌아 들른 곳,
전라남도 장흥에 있는 보림사입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절에 들어가는데 다른 곳과 달리 담장이 있습니다.
경북 청도의 운문사도 그랬는데, 도심이 아닌 곳에 있는 절의 담장은 조금 어색해보입니다.
일주문을 지나면 ~~
곧바로 천왕문(四天門)이 나오는 데 ~~
안으로 들어서면 양쪽에 사천왕상이 있습니다.
이 사천왕상은 중종10년(1515)에 처음 만들어졌고 1666년과 1772년에 고친 바가 있는데,
임진왜란 이전의 것으로 현재 남아있는 목조 사천왕상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라 합니다.
* 사천왕 : 수미산의 동서남북 사천국을 다스리는 왕들로 불법의 수호하는 신
사천문을 지나 안마당에 들어서서 휘이 둘러보는데 요란하지가 않습니다.
요즈음 절들은 나날이 발전만 하여 엉덩이 돌릴 틈도 없이 집을 지어대는데 여긴 전혀 다릅니다.
최완수님의 '명찰순례'가 1994년에 씌여졌으니 20년도 더 지났는데,
거기에 나온 가람 배치도와 비교해봐도 크게 달라진 것이 없어 마음에 들고,
사람도 많지 않아 조용한 것이 진짜 절간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 또 한 번 맘에 듭니다.
이틀 후면 부처님 오신 날인데 연등도 별로 없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고,
초파일 시주로 한 해 살림살이를 한다는 말도 있는데 조금 걱정되기도 하고....
남북삼층석탑 및 석등(국보 제44호)
-. 이 석탑에는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봉안되어 있었음
-. 1932년에 도굴꾼들이 사리장치를 훔치려다 넘어뜨렸던 것을 그 다음해에 복원하였는데,
-. 1층 탑신부 사리구멍에서 사리와 함께 탑지가 나와 신라 경문왕 10년(870)에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었음
남탑은 높이가 5.4m이고 ~~
북탑은 높이가 5.9m ~~
가운데 있는 석등은 높이가 3.12m로, 각 부의 비례가 알맞아 조화가 빼어나다 합니다.
이 탑과 석등은 통일신라시대 전형적인 양식을 갖추고 있고,
탑의 상륜부까지 모두 완전하게 남아 있어 석탑 석등의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합니다.
석탑 뒤로는 대적광전이 자리하고 있고, 안에는 철제 비로자나불이 모셔져 있습니다.
철조 비로자나불좌상(국보 제117호)
-. 부처가 설법한 진리가 태양의 빛처럼 우주에 가득 비추는 것을 형상화한 불상
-. 9세기 후반의 불상양식의 특징을 보이고 있음
-. 불상의 총 길이 : 2.51m
-. 통일신라 말부터 고려시대에 걸쳐 철조불상이 유행이었는데, 이 불상은 신라 하대의 철조불상의 대표작으로 꼽힘
부처님 왼쪽 팔 뒷면에 양각으로 명문이 새겨져 있다 해서 일부러 찾아봤는데 진짜입니다.
대중 2년(大中 二年)이라 적혀있는데 신라 헌안왕 2년(858)에 주성한 것이라 합니다.
대적광전 오른쪽에는 삼성각이 있는데 ~~
가운데 계신 부처님보다도 무섭지 않게 생긴 오른편의 호랑이가 더 눈에 들어옵니다.
여기는 대웅전,
6·25 때 불탔으나 80년대 중반, 전라남도의 도움으로 복원하였습니다.
최완수님은 '명찰순례'에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당시 전남 도지사이던 김종호지사가 보림사 복원 불사를 후원할 뜻을 보였기에 철안선사가 그 일을 감당해 낼 인재로 발탁되어 온 듯하다.
김종호 지사는 공비토벌 당시 중위로 토벌전에 참전했다가 송대골에서 공비의 매복에 걸려 중상을 입고 사경에 빠졌었는데
어느 수도승의 도움으로 살아난 인연이 있는 이였다 한다.'
대적광전과 대웅보전 사이에는 미타전과 ~~
조사전이 있는데 문이 닫혀 들어가 볼 수는 없고 ~~
그 앞에 있는 명부전은 문이 열려있어 안을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보조선사 창성탑비(普照禪師 彰聖塔碑)
-. 보조선사 체징(體澄, 804~880) : 헌강왕 6년(880)에 77세로 입적
-. 이 비는 통일신라 헌강왕 10년(884)에 만들어졌으며 높이는 3.46m
-. 비문에는 선의 경지와 보조국사의 행적, 창건 연기설화 등이 적혀져 있음
-. 거북받침대좌는 용의 머리처럼 표현하였고, 목은 꼿꼿하게 세웠으며, 등에는 6각의 거북등 모양으로 장식함
-. 원형대로 남아있을 뿐 아니라 규모 또한 커 당시 석비(石碑)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음
* 비(碑) : 어떤 일의 자취를 후세에 오래도록 남기기 위해 나무, 돌, 쇠붙이 따위에 글을 새겨 놓은것
최완수님이 책에 '남쪽 비좌(碑座) 부분이 파손되어 시멘트로 메워 놓은 곳이 있다' 했는데 아직도 그대로입니다.
보조선사 창성탑
-. 보조선사의 사리를 모신 승탑
-. 기단, 몸체돌, 지붕돌이 모두 8각인 팔각원당형으로 높이 3.7m
-. 창성비와 같은 시기(884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됨
창성탑에서 내려다 본 보림사 전경
창성탑에서 내려와 범종각을 바라본 후 고개를 돌려보니 ~~
보림약수(寶林藥水)가 있는데 그 앞에는 이렇게 적혀있습니다.
"가지산 비자나무 숲과 야생 차밭 기운을 머금은 보림약수는 물맛이 아주 맑고 담박한 천년약수입니다.
물속을 한 번 가만히 들여다 보세요!
청정수에서만 산다는 희귀한 송사리와 다슬기들이 유유히 노닐고 있습니다.
~~ 1980년에는 한국자연보호협의회에서 한국 명수로 지정 '보림약수' 비석을 세웠습니다.
보림약수를 드신 분들께 건강이 함께 하시기를 발원합니다!"
오래된 절, 조용한 절, 여유있는 절, 크지 않은 절을 한 바퀴 둘러보고 ~~
우린 장흥 삼합을 먹으러 '정남진 장흥 토요시장'으로 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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