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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사이 가족여행] 2-4. 쿄토 서부 - 천룡사, 죽림, 도월교

상원통사 2017. 2. 16. 22:12

텐류지(天龍寺, 천룡사)

-. 임제종 텐류지파 대본산

-. 1339년 고다이고 천황의 명복을 빌기 위해 아시카가 쇼군이 몽창국사를 개산조로 하여 창건한 절

-. 1358년부터 8차례나 화마에 휩쓸리다가, 1467년 오닌의 난 때에는 전소됨. 

-. 1815년에 또다시 화재로 소실, 1864년 막부 토벌작전시에는 포격으로 완전히 불타버림

-. 20세기 들어 주요 건물인 대방장(1899), 소방장(1924), 다보전(1934)등이 차례차례 복원됨

-. 1994년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됨


케이후쿠 아라시야마 역에서 나오면 길은 양 갈래, 천룡사는 오른쪽에 있을까 왼쪽에 있을까?

고민할 것도 없이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오른쪽으로 가다 보면 입구가 보입니다.

우리 키로 세 길쯤 되는 엄청나게 큰 돌로 만든 표지석 "大本山 天龍寺(대본산 천룡사)" 



안으로 길을 오르다가 활짝 핀 동백꽃을 만나니 송창식님의 노래 <선운사>가 생각납니다.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
 바람불어 설운 날에 말이에요
 동백꽃을 보신 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꽃 말이에요~~"



주차장을 지나 한참을 오르니 경내로 들어가는 입구에 매표소가 보이는데,

정원 관람료 500엔, 본당 관람료 300엔, 두 군데 다 보면 600엔,

100엔 더 내고 두 군데 다 보는 게 좋으련만, 큰 딸아이는 본당은 보지 않고 정원만 보겠다고 우깁니다.

하여, 우리는 같이 움직이기 위해 정원을 먼저 보기로 했습니다.


여기서 팁 하나,

유홍준님은 "곧장 정원으로 나아가야 조원지가 드라마틱하게 나타나고 감동적이다"라고 하는데,

본당(구리)을 먼저 보고, 다음에 정원으로 들어가 석정을 보고 조원지를 보고 북문으로 나가서,

죽림(치쿠린)을 따라 걷다가 노노미야 신사를 보고 내려오는 게 순조롭습니다.


입구에 들어서면 흰 모래와 잘 가꾼 나무들과 커다란 대문이 한데 어우러진 석정이 보입니다.





소나무는 좀 더 구불구불해야 멋있는데~~




석정은 용안사와 인화사에서 이미 보았던지라 건성으로 보고, 뒤 뜰로 돌아가니 소겐치(曹源池, 조원지)가 나오는데,

유홍준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천룡사가 청수사보다 크게 내세울 만한 점은 전설적인 고승이자 뛰어난 작정가(作庭家)

 몽창소석(夢窓疎石, 무소 소세키) 국사가 조성한 조원지라는 정원이 있다는 사실이다."



"교토에는 무수히 많은 명원(名園)이 있다.

 ~~ 이 정원들은 대개 무로마치시대 이후에 조성된 것으로 그 모두가 천룡사의 방장 정원에서 출발하고 있으니,

 천룡사를 보지 않고는 일본 정원미의 특질은 물론이고 그 역사적 전개 과정을 이해할 수 없다." 


순 진짜 완전 오리지날 원조 일본 정원, 조원지,

차분히 앉아서 찬찬히 보며 조금씩 조금씩 그 멋을 음미해야 하는데...

언뜻 봐도 멋있기는 멋있지요?





멋있는 것은 멋있는 것이고, 사진은 사진이다,

역시 인물 사진은 얼굴이 크게 나와야 합니다.



하늘엔 조각구름 떠있고, 연못엔 잉어들이 노닐고~~

정수라의 노래는 분명 "대한민국"인데...



"자연과 인공이 나란히 마주한 그 공간에서 연못은 마치 평온의 절충지대인 양 조용히 자리하고 있다.

 그것이 어느 정원에서도 볼 수 없는 조원지의 멋이고 자랑이다."


나즈막한 산과 어울린 방장 지붕이 전혀 어색하지 않습니다.



조원지를 지나서 북문을 향하여 가다가 보니~~



무슨 나무인지는 모르겠지만 줄기에 이끼(버섯?)가 범벅인 나무가 있습니다.

아내가 멋있다 했으니 내게도 멋있는 것이고, 찍으라 했으니 열심히 찍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그치면 안되지요, 알아서 기어야합니다.

사진 올리라는 분부 없어도 두 컷이나 올립니다.

아부는 평상시에 잘해야 밥 얻어 먹고 사는데 지장없습니다.




연두빛 이끼옷을 입은 정원에는 큰 나무 작은 나무들로 가득한데~~



찬찬히 보니 나무 이름을 우리말로까지 적어주었습니다,

아리가또 고자이마쓰!



일본의 절집 다실 앞에는 물확이 있어 다실로 들어가기 전에 가볍게 손을 씻거나 입을 축인다고 했으니,

이 근처에 다실이 있는 것은 틀림없는데 어디에 있나??

이 글을 보고  천룡사에 들르시는 분은 한 번 찾아보세요!



이곳의 대나무가 유명하다고 했지, 일본 죽도의 90%를 이곳 대나무를 이용해 만든다고 했는데,

가만있자, 담양도 대나무로 유명하고, 거제도에 있는 순교자 윤봉문 요셉 성지에서도 이런 맹종죽을 봤었는데~~

잠시 이런 생각을 하다 돌아보니 큰 딸아이가 보이지 않습니다.

분명히 내 앞에 간 것 같은데, 아니 뒤처져 따라오고 있나?

불안한 마음에 가던 길을 멈추고 뒤돌아서 입구까지 나왔는데도 보이지 않습니다.

여럿이 움직일 때는 홀로 떨어지지 않게 항상 긴장을 해야 하는데, 어디서 놓쳐버렸지?

어떻하나, 다시 들어가 또 헤매면서 찾아볼 수도 없고, 안내방송을 해달랄 수도 없고....

옳지, 전화를 해보자!

돈이 곱배기로 들어서 그렇지 현대 문명의 이기가 그 진가를 발휘합니다.

뚜우뚜우~~       여보세요?         쨔샤, 거기 어디냐?       북문 밖으로 나와 기다리고 있어요.

꼼짝말고 거기 기다리고 있어라, 우리가 그쪽으로 가마.       네, 알았어요.         휴우~~, 다행이다!

어두운 대밭에서 빠져나온 기분입니다.



그래도 표까지 끊었으니 본당(방장) 구경은 하고 가야하는데,

마음은 벌써 문밖으로 나가 종종걸음 치고 있으니, 대충대충, 건성건성, 드문드문, 보는 듯 마는 듯 지나칩니다.

엄청나게 큰 다다미방을 지나서 ~~.




커다란 술독을 앞에 두고 짐짓 모르는 척 먼 곳만 바라보고 있는 달마대사(?)상을 흘낏보고 스치는 데~~



어라, 분신술을 썼나, 달마대사가 여기 또 계시네??

아까는 이곳에서 모시는 주신(酒神)일 것이고, 이분은 이 절을 창건한 몽창소석 국사가 아닐까?

나름대로 소설을 써봅니다, 아니면 말고~~



안쪽 타호덴(多寶殿, 다보전)까지는 이런 회랑으로 연결되어 있어 따라가보니~~



문을 들어올려 걸쇠에 걸어놓은 것이 담양 소쇄원에서 본 것과 비슷합니다.

질문 : 같은 문화를 공유하고 있으니 대동아 공영권이 맞는 이야기인가?

답    : 그 주최를 우리가 한다면 당연히 맞는 말이겠지!



드디어 절의 흔적을 찾았습니다.

조그만 종이 매달려 있는 것을 보니 절이 맞기는 맞습니다.



물이 콸콸 흐르는 것이 참 멋있어서 한 컷 찍었는데 사진으로 보니 별로네요



마음이 바쁘다 보니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사진도 제대로 못찍고 밖으로 나와 북문 쪽으로 향하는데,

상가들을 지나 골목길로 접어들어 조금 올라가다보니 대나무 숲이 나옵니다,

아하, 이곳이 영화 <게이샤의 추억>에 나온다는 치쿠린(竹林, 죽림)이로구나,

근데 이렇게만 보면 담양 죽녹원과 별로 다를 바가 없네~~



그렇지, 기모노가 있어야지, 

여기는 일본하고도 아라시야마하고도, 텐류지 옆 치쿠린입니다.



뽀오나쓰 하나,

일본의 묘지는 이렇게 생겼습니다.



날은 점점 어두워지는 데,

어디까지 올라가야 딸아이를 만날 수 있을 지 불안 초조 긴장,

그러나 야물고 똑똑한(?) 딸아이가 저기 내려오고 있습니다.

헤어졌을 땐 그 자리를 고수하는 게 제일인데, 앗차 잘못되어 서로 엇갈렸으면 어떡할 뻔 했나?

어쨌거나 다시 만났으니 다행입니다.

딸아이 왈, 위로 더 올라가면 사람도 별로 없고 대숲이 정말 좋다고 말하지만,

어둠이 쫒아오고 있으니 치쿠린 구경은 여기까지 끝,

아쉬움은 다음에 담양 죽녹원에서 채우자! 


큰 길로 나오니 인력거가 보입니다.

현진건님의 소설 <운수좋은 날>에서 주인공 김첨지도 인력거꾼이었지요, 아마~~



큰길에서 남쪽으로 500미터쯤 내려가면 백제의 향기가 묻어있다는 토게츠교가 나옵니다.

그 옛날 다리는 어떻게 생겼고 어떻게 보존하고 있을까 궁금증에 발걸음을 재촉했는데,

백제는 문명이 엄청 발달해서 그 옛날에도 철근 콘크리트 공법을 썼던 것 같습니다.

왕복 2차선의 차도 양 옆에 인도까지 곁들인 현대식 다리가 필요하기에 여기에 놓았겠지만,

옛날 다리는 그냥 그대로 두고 조금 떨어진 곳에 새로 만들었다면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차가 쌩쌩 달리는 다리를 보러 비행기 타고 여기까지 온 것은 아니잖아요?



토게츠교(渡月橋, 도월교, 달이 건너는 다리)

-. 호즈강을 가로지르는 길이 150m의 다리

-. 9세기경 승려 토쇼가 만들었음

-. 카메야마 일왕이 다리 위에 뜬 보름달이 마치 다리를 건너는 것처럼 보인다며 감탄해 붙인 이름




"강 하류에 제방을 쌓은 사람들이 바로 백제 도래인들이다.

 가만히 강을 들여다보면 우리나라 풍경과 매우 닮았는데,

 백제의 도래인들은 떠나온 고향을 그리며 그곳에 제방을 쌓고 낯선 땅에서 척박한 삶을 가꾸어 갔다.

 이런 삶의 의지는 5세기 무렵부터 그들을 교토 일대의 실질적 지배세력으로 자리잡게 했다.

 그 후 교토의 역사는 사실상 한반도에서 건너온 도래인들을 빼고는 이야기할 수 없게 되었다."


그 때 쌓은 제방이 여기 보이는 이 제방이 아닐까...

제방만으로는 부족하니 여기도 4대강 사업을 하여 이곳 명물인 녹차 대신 녹조라떼를 관광상품으로 팔면 어떨까,

그 양반이 오사카 출신이니까 고향 땅에 와서 좋은 일 하는 것에 대해 찬성 한 표 꾸욱!!



상류쪽으로 올라가 봅니다.

야트막한 산들과 어울린 마을 풍경이 낯설지 않은 것은 우리나라와 비슷해서일까요 ~~



해질녁, 파란 눈의 연인들이 강가에 앉아 머리를 맞대고 열심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까?

저녁은 짜장면이 좋을까 짬뽕이 좋을까, 내일은 버스를 타고 갈까 기차를 타고 갈까~~



강 위를 돌아다니던 배들도 흩어져 집으로 돌아가고~~



사람들은 하루를 마감하고 하나씩 둘씩 집에 돌아와 저녁준비를 하는 동안 ~~



도월교에 밤이 내립니다.

오늘 밤 말고 다음에 아내 손잡고 다시 와서,

다리를 건너는 보름달을 보며 카메야마 왕처럼 느껴볼 수 있을까~~



발걸음을 재촉하여 역으로 향하다가~~



벚나무들을 만났습니다.

여기가 벚꽃으로 유명하다는 아라시야마공원인 것 같구나.

지금이 봄이고 뒤에는 벚꽃이 활짝 피었다고 머릿속에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찰칵!



한큐 아라시야마 역에서 열차를 타고, 카츠라역에서 바꿔타고, 우메다 역에 도착하여~~



무엇을 먹었는지는 기억이 안나지만 아무튼 저녁을 먹고,

숙소로 가는 지하철을 타려다 보니 눈에 거슬리는 것 하나~~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일본도 외국어 표기가 좀 심하네요.

그냥 "앞으로 가세요"하면 될텐데, "전에 나아가주세요"라니???



하루 종일 걸었더니 다리가 아파오는데, 알뜰한 아내는 어제 들렀던 수퍼마켓에 또 가자고 합니다.

그래요, 갑시다, 가서 5일동안 먹을 아침거리랑 간식들을 몽땅 사옵시다!

엄청 많아서 낑낑대며 들고 왔는데, 이렇게 많은 데, 이틀 지나니 다 떨어졌습니다.

우리 식구가 아프지 않고 건강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밥이 보약이다, 있을 때 많이 먹고 부지런히 소화시키자!



내일은 와카야마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