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차, 이걸 어쩌나, 가지가 분질러져 버렸다.
겨울눈이 두 개나 붙어있는 가장 크고 튼실한 가지가 분지러져버린 것이다.
그래도 한쪽 끝은 아직 붙어있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외과 수술(?)을 단행했다.
부러진 가지를 세워서 원래대로 잘 맞춘 후, 나무 젓가락을 잘라 만든 부목을 반대편에 대고 부드러운 비닐끈으로 묶었다.
아직은 12월, 나무에 물이 오르려면 당당 멀었기에 부러진 부위가 다시 붙기보다는 말라 비틀어질 가능성이 더 높기는 하지만
아파트 베란다는 바깥보다 따스하다는 한 가닥 희망을 안고 기다려보기로 했다.
그런 내 마음을 읽기나 한듯 신기하게도 부러진 가지의 겨울눈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입춘이 되려면 아직 한참 더 남았는데, 수국은 봄을 당겨와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 것이다.
고맙고 감사하고 기특하고 갸륵하고....
거름기 하나 없는 흙 속에서도 이태동안이나 꽃을 피워온 수국에게 미안해서 조금 이르기는 하지만 분갈이를 해주고 싶었다.
항상처럼 쉬울줄 알고 시작했는데 이번에는 만만치가 않았다.
화분을 거꾸로 뒤집어 한 손으로 받치고 다른 손으로 화분 옆구리와 꽁무니를 열심히 두들겼는데도 빠지지 않았다.
고민 끝에 화분과 흙사이를 빙 둘러 젓가락으로 한 번 긁고나서 거꾸로 세워 흙을 털어내고,
또 한 번 긁고 털어내고 또 긁고 털어내기를 십여 번이나 반복하고서야 겨우 빠졌다.
황토기 머금은 맨 흙뿐만 아니라 잔뿌리들까지 화분벽에 꼭 붙어있어서 그렇게 어려웠던 것이다.
이제 새 화분에 옮겨심을 차례, 집에 있는 빈 화분들 중 가장 큰 놈을 골라다 놓고,
두어 번 시행착오 끝에 한쪽으로 치우쳐 있는 줄기를 화분 한 가운데 오도록 한 다음,
그 주위에 퇴비를 섞은 흙을 채우고 다지고 나서 보니 가장 큰 가지가 부러져 있었던 것이다.
베란다에 온통 이파리만 달린 화분들이라, 꽃을 좀 보고 싶어 화원에 들렀는데
이제 막 꽃송이가 올라오기 시작한 수국이 눈에 띄어 다른 일년초 화분과 같이 사가지고 왔다.
그 해, 함박만한 꽃이 피어있을 때까지는 좋았는데, 꽃이 시들어가자 물주는 것도 소홀해졌는지,
어느날 보니 이파리들이 말라 비틀어져 있어 열심히 물을 주었지만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죽었구나 생각하고 포기했는데 마침 집에 들르신 어머니께서 재활 프로그램을 가동하셨다.
뿌리에 붙은 흙을 모두 다 털어내고, 거름기가 전혀 없는 흙으로 새 화분을 만든 후 거기에 옮겨 심으셨다.
약하디 약한 녀석을 베란다에 놔두기가 불안하고 안쓰러워 거실에 들여놓고 날마다 분무기로 물을 뿌려줘도 꼼짝도 안하더니,
비닐을 씌워서 습한 환경을 만들어 준 것이 주효했는지 삐죽하니 새순 하나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살아나더니 거름기 없는 그 흙에서 꽃을 피우고 또 그 다음 해에도 꽃을 피우며 오늘에까지 온 것이다.
뽑혀져 쓰레기통에 가려다가 어머니의 경험과 정성으로 살아난 수국, 다른 나무들보다 더 애착이 간다.
정성을 다하니 죽었다가도 살아나고, 부러졌다가도 다시 잎을 피우는 데,
우리 정성이 부족하여 어머니는 회복하지 못하셨나 하는 생각은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그래서 수국의 꽃말을 내가 지어본다.
'아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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