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생각 바꾸면 ~~

17. 가을걷이

상원통사 2015. 12. 22. 22:45

아내는 요즘 신났다.

밭에서 수확한 페퍼민트 잎을 말려 주었더니 비누를 만든다고 날마다 아닌 고생(?)을 사서 하고 있다.

우선 각설탕처럼 생긴 비누 베이스를 물중탕 용기에 넣어 가스렌지에 얹으면 우윳빛깔의 묽은 액체로 변한다.

거기에 몽글게 간 페퍼민트 분말, 그냥 먹기에도 아까운 꿀, 건강을 위해 먹고 있는 비타민C 분말, 그리고 또 잘 모르는 무엇 무엇들도 넣어,

잘 섞이도록 저은 후 성형틀에 붓고 한참을 기다렸다가, 꺼내어 하루쯤 말리면 예쁜 수제 기능성 비누가 탄생한다.

거기까지가 끝이 아니다.

다이소에서 사온 포장용 비닐봉투, 종이 깔판(Doyley Paper), 포장용 끈, 예쁜 상자들을 꺼내 놓는다.

제품도 제품이지만 포장이 예뻐야 받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법이라 주장하며,

비누 하나하나를 크린랩으로 싼 후 그 밑에 종이 깔판을 놓고서 예쁘게 리본을 두른 다음,

투명한 비닐 봉투에 넣고 나서 다시 리본으로 묶어 종이상자에 담으면 선물 세트 만들기 끝.

작은 것일지라도 여러 사람들과 나누기 좋아하는 아내에게 페퍼민트 비누 만들기는 좋은 소꿉놀이가 되었고,

직접 재배하고 수확한 것들을 자랑하기 좋아하는 초보농군도 덩달아 여기저기 열심히 나눠주고 있다.

 

금년 봄, 한 마디 했더니 선뜻 땅을 빌려준 마음씨 좋은 친구 덕에 밭을 한 이랑 마련하여 와송을 심었다.

그러나 사람의 욕심이란 끝이 없는 법, 그 옆에 이것저것 심다 보니 어느새 세 이랑이나 되었고 나는 감히 농장이라고 명명하였다.

농사짓는 것은 생각보다 재미있는 놀이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밭에 가는 것 자체가 즐거운 일이다.

와송이란 오래된 한옥 기왓장 사이에서 자라는 식물이라 가물어도 괜찮고 퇴비 주지 않아도 알아서 크는 쉬운 작물이라 하기에,

큰 힘 들일 필요도 없고 자주 갈 필요도 없이 한 달에 한 번 풀만 뽑아주러 가면 되겠다 싶어 시작한 농사였다.

그런데 막상 시작하고 보니 한 달이 아니라 거의 매주 가게 되었다.

친구 부부가 그곳에 있으니 일하기보다는 소주 한 잔 걸치며 노닥거리는데 더 정신이 팔린 것이다.

거기다가 어머니는 밭에 가는 것을 우리보다 더 좋아하신다.

집에선 머리가 아프다가도 밭에 가서 20분쯤 지나면 개운해진다면서 주말만 되면 먼저 챙기신다.

흙을 밟고 일하는 것을 좋아하실 뿐만 아니라, 직접 담그신 술에 안주거리 챙겨 우리들에게 권하시고

본인도 한 잔씩 하시는 것이 어머니의 또 다른 즐거움이 된 것이다.

 

그렇게 올 한 해를 생각지도 않은 즐거움으로 보냈는데 과연 무엇을 심고 무엇을 거두었을까?

따져보니 그 종류가 생각보다 많아 나도 깜짝 놀랐다.

우선 주 생산품목인 와송,

봄에 새끼손톱만큼 작은 종자를 10만원어치(500) 사다 심었는데 가만 놔두어도 무럭무럭 자라서 20Kg이나 수확했다.

그것을 돈으로 따지면 20만원어치쯤 되고, 내년에 쓸 종자가 다시 3~4천개 정도 나왔으니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셈이다.

그 중 삼분지 일은 생것으로 나눠주고 우리도 먹고, 나머지는 설탕에 버무려 효소를 담궈 놓았다.

와송 효소는 담근 지 1년 이상 지나서 먹는 것이라 하니 내년 가을부터는 암 예방약을 확실히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와송 수확도 괜찮았지만 토마토, 고추, 들깨는 효자 작물이었다.

방울토마토 5그루, 큰 토마토 5그루를 심은 후 거름도 변변히 주지 않았고 물도 한 번 주지 않았는데도,

주렁주렁 잘도 열려서 초가을까지 갈 때마다 잘 익은 놈들만 골라 반 바가지씩 가져 올 수 있었다.

우리 식구 실컷 먹고 주위 사람들에게도 인심을 썼으니 금년 농사 중 가장 성공한 작물이다.

고추는 일반 고추 15그루, 청양고추 5그루를 심었는데 갈 때마다 몇 개씩이라도 따와서 찬거리로 쓰고,

가을부터는 빨간 고추도 한웅큼 딸 수 있었고 끝마무리엔 잎을 따서 고추지도 담궜으니 그럭저럭 괜찮은 편이었다.

친구에게 씨앗을 얻어 50 그루 정도 심은 들깨는 늦게 심은데다가 잎이 누리끼리하여 별로 기대를 안했는데,

거두어 타작을 하고 보니 족히 세 홉은 넘게 나왔다.

내년에 종자로 쓸 만큼 충분히 남겨놓고, 나머지는 볶아서 TV 볼 때 간식거리로 먹었는데 그 고소함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가지, 호박, 당근, 고구마는 실패한 사례!

모종 파는 주인이 두 그루만 심으면 실컷 먹을 수 있다 했는데 손가락만한 것 몇 개밖에 건지지 못한 가지와,

어머니께서 밑거름도 충분히 주고 정성들여 심은 호박 두 그루는 고작 주먹만한 것 몇 개밖에 건질 수 없었는데,

이것들은 재배기술이 부족한 것 아니었나 싶다.

한편 당근과 고구마는 동물 생태계에 공헌하고 말았다.

20여 개쯤 심은 고구마 줄기는 제법 무성하게 잎이 자랐고,

천 원어치 씨앗을 뿌린 당근도 생각보다 잘 자라 금년 겨울에 당근 주스 좀 먹어보나 했는데,

어느 날 산에서 내려온 고라니인지 토끼인지 몰라도 이파리를 몰강스럽게도 따먹어버려 수확은 틀렸다 싶었다.

그러나 생명은 질긴 법, 손가락 두 개 정도 굵기의 고구마를 예닐곱 개나 거두었고,

새끼손가락보다 가늘지만 그래도 당근이랍시고 주황색을 머금고 있는 당근 뿌리는 내년 봄에 수확하려 남겨두었다.

반은 먹더라도 반만이라도 남겨두는 예의를 보였다면 내년에도 심어 나눠먹을텐데 이젠 국물도 없다, 짜샤들아!

 

우리가 가꾼 것 말고 공으로 얻은 것도 있다.

누가 심었는지 모르지만 네 그루나 되는 감나무에는 아무도 돌보지 않아도 주렁주렁 연시가 매달려 있었는데,

가을이 되니 불그스레 변하다가 제 무게에 못 이겨 뚝뚝 떨어진다.

그렇게 떨어진 것들 중 뭉그러지지 않은 것을 주워 맛을 보았더니 가게에서 돈 주고 사먹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농약을 안했으니 안심해도 되고 나무에 달린 채 익을 대로 익었으니 그 단맛을 어디에 비하랴,

밭에 갈 때마다 실컷 먹었을 뿐 아니라, 큰 바가지로 두 개만큼은 집에 가져와 어머니께서 감식초를 담궈놓았다.

 

또 하나는 둘레가 두 아름쯤 되는 커다란 나무에서 떨어져 지천으로 널려있어 보기만 해도 마음이 풍성한 은행 열매들,

지난 봄에는 껍질 벗기는 요령이 없어 한참 고생을 한데다가 은행 독까지 올라 혼이 났지만,

이젠 나름대로 비법을 터득하여 시간도 많이 걸리지 않고 수월하게 거두어들였다.

우선 열심히 주운 은행 알갱이들을 커다란 플라스틱 통에 절반쯤 부은 후

장화를 신고 들어가 150번쯤 밟으면 껍질과 알갱이가 완전히 분리된다.

그것들을 큰 대야에 넣고 물을 부은 후 슬슬 휘저어주면 알갱이는 가라앉고 껍데기랑 찌꺼기는 위로 뜨게 되는데,

계속 저어주면서 기울여 물을 버리는 작업을 대여섯 번 반복해주면 하얀 알갱이들만 남게 된다.

그렇게 하여 거두어들인 은행이 20Kg은 족히 넘으니 퍼주기 좋아하는 아내 입을 어찌 벌어지지 않을 수 있으랴.

 

돈으로 따진다면 다 해봐야 밭에 다니며 길바닥에 뿌린 기름 값도 안 되지만,

일하면서 기쁨을 얻고 맑은 공기 마시며 건강을 얻고 거두어드리면서 행복을 얻었으니 그만하면 더 바랄게 없고,

이제 정식으로 땅도 빌리기로 했으니 내년에 또 다른 즐거움을 거둘 생각만 해도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요건 페퍼민트 비누이고 ~~>

 

 

<요것들은 강황비누와 백년초비누>

 

 

 <그리고 병에 담은 와송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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