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생각 바꾸면 ~~

14. 날마다 행복

상원통사 2015. 12. 1. 23:30

아침, 알람소리가 들리면 반사적으로 눈이 떠지며 또 하루가 시작된다.

반세기도 넘게 날마다 맞이하는 아침인데 발딱 일어나는 것이 아직도 몸에 배지 않아 이리저리 뒤척이기만 한다.
그러나 ‘수행하는 사람이 그래서는 안되지’라고 속으로 되뇌이며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딱 3초만 견디면 되는 데 오늘 아침에도 그것이 참 힘들다.

 

정목스님의 기도문 ‘행복을 찾는 108가지 마음’을 켜고 108배를 시작한다.
스피커에서는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말씀들이 낮은 톤의 목소리로 옅은 배경음악과 함께 흘러나온다.
“~~ 지나간 과거에 집착해 스스로를 괴로움에 빠뜨리지 않는지 돌아보며 절합니다.
 오지도 않는 미래를 걱정하며 스스로를 속박하지 않는지 돌아보며 절합니다.~~”
처음엔 운동으로 시작한 108배였지만, 이제는 나름대로의 기도문도 몇 개 만들어 속으로 외워본다.
“~~ 제3세계의 가난한 사람들이 깨끗한 물이라도 먹을 수 있도록, 우물 만 개만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굶어서 힘들어 하고 있는 북한 어린이들을 위하여 국수공장 10개만 지었으면 좋겠습니다.”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하고 마음속으로 읊조리기만 하지만 기도문을 외우고 나면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그래, 아내 덕에 나도 참 많이 변해가고 있구나, 아멘!!! 나무 관세음보살!!!

 

30분 동안 170배 쯤 절을 마치면 기분좋을 만큼 촉촉이 땀이 밴다.
습관처럼 체중계에 올라 몸무게를 재본 후 욕실로 향한다.
샤워꼭지에서 날아오는 물방울들이 내 몸을 간지럽히고, 땀이 배었던 자리엔 어느새 행복이 자리 잡는다.
항상 느끼지만 런닝머신을 뛰고 난 후나 골프를 마치고 나서 하는 샤워와는 그 느낌이 사뭇 다르다.
더워서 몸을 식히기 위한 샤워나 운동을 마치고 땀을 씻기 위한 샤워는 그냥 개운하다는 느낌 뿐인데
108배를 마치고 하는 샤워는 개운함은 기본이고 기분 좋은 느낌에 뿌듯함까지 더해진다.
왜 그럴까? 나름대로 이론을 펴본다.
머리를 방바닥에 댈 때엔 혈압이 올라가게 되고, 허리 펴고 일어설 때엔 혈압이 내려가게 되는데,
이렇게 단속적으로 혈압을 높여 머리에 피를 공급시키면 행복 호르몬인 세로토닌의 분비를 더 활성화 시키는 것 아닐까...

 

이제 출근하는 시간,
버스타고 지하철 타면 최소 1시간에서 길면 2시간, 하루 2~4시간을 길거리에서 허비하는 것이 너무 아까워,
이어폰을 꽂고 세바시(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도 듣고, 법륜스님의 즉문즉설도 듣고, 읽어주는 책 오디오북도 들었는데,
요즘은 차를 갖고 다니기에 스피커를 통해 들을 수 있어 조금 딱딱한 윤홍식님의 철학 강의로 메뉴를 바꾸었다.
그러나 철학이라는 게 본시 어려운 것이고 정신차려 공부해도 내 수준으로는 알아먹기 힘든 것이기에,
그 뜻을 이해하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고 아까운 시간을 붙잡는 정도로 가볍게 듣는데,
어쩌다 단어 하나라도 귀에 들리고 그 뜻이 내게 가까이 올 때엔 짜릿함을 느낀다.
육바라밀, 지천명, 다이몬, 황금률, 인의예지....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려주고, 그 길을 위해 흔쾌히 자신을 바쳤던 성인들의 말씀이 한 소절이라도 들릴 때엔,
마치 내가 철학자라도 되는 양 마음이 들뜨기도 하고, 그런 길도 있다는 것을 이제라도 알아가는 자신에게 감사한다.

 

사무실에 도착하면 일하는 사람, 일용할 양식을 벌어 가족을 먹여 살리는 회사원으로 돌아간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혀 일하는 대신 머릿속에 있는 것 풀어먹고 있으니 공으로 돈 버는 것 같고,
남들 퇴직할 나이이지만 잘릴 걱정 안하고 회사에 다니고 있으니 덤으로 월급받는 것 같고,
반말 짓에 열 받아 자살하는 사람도 있는데 내가 반말하며 일할 수 있으니 그 또한 감사한 일이다.
그래도 일하다 보면 내 성질에 못 이겨 ‘C~~’ 소리도 나오고 ‘ㅎㄹㅅㄲ’도 튀어나온다.
'화내는 것은 내가 끌려가는 것이니 빨리 내려놓아야 된다', 머릿속에 생각은 있지만 몸에 익히려면 아직도 멀었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에게 던지는 자위의 말 한 마디,
‘부처님도 출가하셨기에 망정이지 속세에 사셨다면 수행하시기 참 어려웠으리라...’

 

이것저것 하다보면 벌써 6시, 이제 양식벌이는 끝나고 나만의 세계로 들어설 시간이다.
술이 최고였을 때엔 ‘ㅅ’자만 봐도 눈이 번쩍 뜨이고, 건수가 없으면 내가 먼저 분위기를 잡았었는데,
지금은 술 마시는 것보다 더 재미있는 일이 기다리고 있으니 어지간하면 다른 약속을 잡지 않고 집으로 곧장 들어온다.
저녁을 먹고 나서 잠시 쉬었다가 거실에 있는 앉은뱅이 책상 앞에 앉는다
지난 여행에서 찍어온 사진들을 정리할 때엔 그곳에서의 느낌들이 다시 한 번 생생해지고,
부족한 자료들을 인터넷에서 찾을 때엔 미처 찍어오지 못한 것들에 대한 아쉬움이 앞서지만,
소감을 덧붙인 여행후기를 블로그에 올리고 나면 또 한 조각의 내 영역을 구축했다는 만족감에 기분이 짜릿하다.

그 다음은 나를 찾기 위해 공부하는 시간,
최근까지 법륜스님의 ‘반야심경’ 강의를 듣고 요약하여 블로그에 올리는 작업을 마치고,
요즘은 내년에 요약문을 올리기 위해 ‘금강경’ 녹취 작업을 하고 있다.
30분 강의를 요약하여 올리는 데 10시간 정도 걸리니 힘이 들기는 하지만,
부처님 말씀을 조금씩이나마 이해하면서 얻는 기쁨이 그보다는 더 크기에 쉽게 그만둘 수가 없다.

 

시계 바늘은 벌써 12시를 넘어선다.
이제 그만 컴퓨터를 끄고 책을 펼친다.
딱딱한 책을 읽을 때엔 10분도 지나지 않아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하는데,
'돈 버는 책'을 읽는 요즈음엔 1시가 넘어도 말똥말똥하지만, 내일을 생각하여 책을 덮고 눈을 감는다.


오늘 하루가 눈앞을 스치는가 싶더니 잠을 가득 실은 희뿌연 안개가 다가와 나를 감싼다.
그 안개속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희미하지만 반짝이는 작은 알갱이들이 점점이 박혀있다.
‘행복은 사금 알갱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주먹만한 금덩이가 눈앞에 아른거리고 그것들을 좆아 해매다 보니 반세기가 지났는데,
생각을 바꾸고 눈을 부비고 보니 온 천지가 반짝이는 사금알갱이들로 뒤덮여있다.
강바닥에도 있고 모래사장에도 있고 진흙구덩이에도 있고 시궁창에도 널려있고,
눈을 떠도 보이고 출근하면서도 보이고 일하면서도 보이고 퇴근하면서도 보인다.
그것들을 한 알 한 알 주워 모으는 것도 행복이고, 그 반짝임들을 손바닥 위에서 느껴보는 것도 행복이다.


일체가 유심소조(一切有心所造)라 했던가,
생각을 바꾸니 행복은 바로 내 옆 가까이에 있었는데, 여지껏 모르고 저 먼 곳만 바라보며 지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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