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생각 바꾸면 ~~

13. 학이시습지

상원통사 2015. 11. 25. 22:07

여시아상(如是我想) : 이와 같이 나는 생각한다

*  *  *  *  *  *  *  *  *  *  *  *  *  *  *  *  *  *  *

 

몇 학년 때였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나온 것만은 확실하다.

學而時習之 不亦說乎(학이시습지면 불역열호아)   :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공자님 말씀이라 그냥 외우기는 했지만, 배우고 익히는 것이 정말로 기쁜 것인지는 의문이었다.

주기율표 외워서 화학식 풀고 아프리카 종단 기후대 외워서 지리 문제 푸는 것은 조금 낫지만,

수학 공식 외워서 미적분 풀고 영어 단어 외워서 문장 해석하는 것이 과연 얼마나 기쁜 일일까?

그래, 공자님 정도 되어야 배우고 익히는 것이 즐겁고 기쁜 일이지 나 같은 사람에겐 전혀 해당사항이 없는 것이니,

공부 잘하고 똑똑한 사람들이나 열심히 기뻐하라고 나름대로 결론 짓고나서부터는 쭈욱 잊고 지냈었다.

 

어려운 고전일지라도 동서양을 넘나들며 쉽게 설명해주는 '양심 전도사 윤홍식'님의 논어 강의를 듣는데,

학이시습지를 설명하면서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글자를 한 자 더한다.

바로 ()!’

그래, 맞다, 그렇구나! 바로 그것이었구나!

그 한 글자를 넣어서 해석해보니 공자님 말씀이 이해가 간다.

공자님은 영어나 수학과학이나 사회 교과서를 이야기했던 것이 아니고,

사람이 살아가는 길, 道에 대해 말씀하셨던 것이다.

근데 왜 공부 잘하는 교수님들, 심지어 교과서에서 마저도 무엇을 배워야 하는 지 쉽게 설명하지 않았을까?

아니 설명했는데 나만 이해하지 못하고 나만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

-. 마땅히 지켜야 할 이치

-. 만물을 만드는 원리 또는 법칙

-. 도는 삶의 이며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하여 필요한 생활방식(Way of Life)

-. 우주의 근본원리인 천도(天道), 인간의 올바른 길인 인도(人道), 모든 만물의 이치가 정연하게 이루어지는 지도(地道)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음

 

이만큼 알았으니 이제 내 나름대로 한 번 해석해보자.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하늘의 뜻은 무엇이고 사람이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 성현들의 말씀을 듣고 배우고 공부를 하다 보면,

우선 그 뜻을 이해하게 되고, 그 뜻을 이해했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 지도 자연히 알게 된다.

아는 것이 머릿속에 있을 땐 한낱 지식일 뿐이지만, 실천하며 몸에 익히게 되면 그것은 지혜가 되는 데,

몸에 익히는 과정에는 글로만 공부할 때 맛보지 못한 행복감과 짜릿한 기쁨을 느끼게 된다.

그렇게 삶의 기쁨을 주는 '도'를 배우고 실천하는 것은 크고 거창하고 어려운 일이 아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슬그머니 왔다가 말없이 멀어져 가는 것이 우주의 원리임을 이해하고,

작은 것일 지라도 나누고, 기뻐할 때 같이 기뻐하고 슬퍼할 때 같이 슬퍼하는 것이 바로 '도'를 실천하는 것이다.

신문에 기사라도 몇 줄 실리고 싶어 봉사현장에 나타나 사진만 찍고 뒤도 안돌아보고 자리를 떠나거나,

욕심을 양심인척 포장하여 입으로만 국민 위하는 척하고 속으로는 얼마나 챙길 수 있을 지 손익계산하거나,

지금 좋은 일하면 나중에 확실히 한 몫 잡겠구나 싶어 투자하는 마음으로 기부하고 우쭐대거나,

정의니 진리니 양심이니 달달 외워 입으로만 떠들고 실천에 옮기지 않는 사람들은 그 기쁨을 결코 맛볼 수 없는 것이다.

양심에 비추어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할 줄 알고, 내가 당해 싫은 일은 남에게 하지 않으며,

그른 일은 그르다고 말할 줄 알아야 하며,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할 줄도 알아야 하고,

약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며 그들을 위해 일할 줄 알고 그들을 도와줄 줄 아는 것,

···지를 몸에 익혀 실천하는 과정에 저절로 기쁨을 느끼게 되고 행복해 질 것이다.

 

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  벗이 있어 멀리서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하겠는가

가까이 있는 술친구, 골프친구, 고스톱친구와 만나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즐겁고 재미있는 일이며,

이렇게 사는 것이 바로 사람사는 것이라 생각하며 지내는 것도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멀리 떨어져 있어 자주 만나지는 못하고 항상 마음속으로만 만나고 있던 친구,

어느 날 귀한 시간 쪼개어 나를 찾아와 그동안 지내면서 실천하고 느꼈던 인의예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요즘은 무엇이 문제인지 그리고 그것들은 어떻게 해야 풀 수 있을까 그 해결책을 이야기하고,

구체적인 실천 방안들 하나하나까지 제시하며 밤을 지샌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 즐거운 일이 아니겠는가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아니하여도 노여워하지 아니하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 권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학벌이 좋은 것도 아니어 드러나지 않기에,

남이 나를 알아주기는커녕 나라는 존재가 있는 지조차 모르고,

내가 하는 일들도 하찮게 생각하여 함부로 대하거나 무시할지라도,

그들의 좁은 시야를 탓하거나 부족함을 비웃거나 욕심냄을 비난하거나 천박함에 노여워 하지 않고,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양심에 거리끼지 않는 일들을 묵묵히 실천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곧 군자가 아니겠는가

 

학이시습지라는 글자 한 자를 더하여 해석하니 공자님 말씀이 훨씬 더 가까이 느껴진다.

을 하면 을 해야 기쁨이 온다는 것까지는 이해했는데,

배우는 것보다 익히는 것이 훨씬 더 어려운 것이니 어느 때나 내가 를 알았다고 말할 수 있을지 아득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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