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 전주 시내를 가로질러 흐르는 전주천,
그 개천을 건너는 여러 다리들 중에 조선시대부터 있었던 서천교,
이번엔 그 서천교를 찾아 '전주시 완산구 다가동'에 왔습니다.
서천교
"이곳은 성 조윤호 요셉이 1866년 12월 23일 치명한 곳이다.
18세의 어린 나이에 순교한 조윤호는 충청도 신창에서 태중 교우로 태어나 돈독한 신앙생활을 어려서부터 익혔다.
부친인 조화서는 일찌기 최양업 신부의 복사로 최 신부의 전교와 성무 활동을 보필했고
그후 전주의 교우촌인 성지동으로 이주했다.
1866년 12월 5일 부친 조화서, 정원지, 이명서 등과 함께 성지동을 습격한 포졸들에게 체포된 이들 부자는
혹독한 고문과 배교의 강요 속에서도 서로 격려하며 오직 진리만을 말하기로 다짐했다.
옥에서 아버지는 아들 윤호에게 "네 마음이 변할까 열려된다. 관장 앞에서 진리대로 말하여라." 하고 격려했고,
이에 아들은 "염려하지 마십시오. 아버님께서도 조심하십시오."라며
죽음의 두려움보다는 배교의 유혹에 넘어가지 말 것을 서로 독려했다.
마침내 조화서 베드로는 모든 유혹과 형벌을 이겨 내고 12월 13일,
숲정이에서 성지동과 대성동에서 체포된 5명의 교우들과 함께 참수형을 받고 순교했다.
그리고 아들 조윤호 역시 부친이 참수된 지 열흘이 지난 12월 23일 인근의 서천교 밑에서 순교했다.
<이 다리가 서천교입니다. 옛날엔 이렇게 생기지 않았겠지요.>
<아버지(조화서 베드로)가 숲정이에서 참수형을 당한 딱 열흘 후,
아들(조윤호)은 서천교 형장에서 모진 매를 맞았지만, 죽지 않아 끝내는 노끈으로 목을 졸라 사형시켰답니다.
물은 그 때도 흐르고 지금도 흐르고, 앞으로도 흐르겠지만....>
<서천교를 뒤로 하고 700m 쯤 떨어진 초록바위를 향해 걸어갑니다.>
초록바위
"초록바위는 성 남종삼의 14세 된 아들 명희와 순교자 홍봉주 토마스의 아들이 수장된 곳이다.
이 두 가정은 온 가족을 처형하거나 노비로 삼고 가산을 몰수하는 혹형을 받았는데,
이 두 아들은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당시의 관례대로 전주 감옥에 수감했다가 나이를 채워 전주천에 밀어넣어 죽였다.
병인박해 때 서울 인근에서 체포되어 의금부로 연행된 남종삼 성인은 홍봉주, 이선이, 최형, 정의백, 전장운 및
베르뇌 주교, 다블뤼 주교 등과 함께 문초를 당하고 홍봉주와 함께 서소문 밖 네거리에서 참수된다.
남종삼의 부친 남상교와 장자인 남규희, 처 이소사는 바로 순교했으나
당시 14세의 어린 나이에 붙잡혀 갔던 명희는 전주 감옥에 수감된 뒤 나이가 차기를 기다려
1867년 가을 이곳 초록바위에서 전주천에 밀어 넣어 수장시킨 것이다.
홍봉주는 충남 예산 출신으로 신유박해 때의 순교자 홍낙민의 손자이며 부친 홍재영 역시 기해박해로 순교한 바 있다.
그의 어머니는 정약종의 맏형인 약현의 딸로 기해박해 때 남편과 함께 순교했다."
<앞에 보이는 다리가 싸전다리이고, 멀리 보이는 산이 치명자산인데 ~~>
<싸전다리 못미쳐 전주천변에 '천주교 순교처 초록바위' 기념물이 있습니다.
"~~ 14세 된 남명희(명숙)와 홍봉주의 아들은 처형할 수 있는 법적 나이인 15세가 될 때까지 전주옥에 갇혔다.
~~ 전라감사는 남명희와 홍봉주의 아들이 나이가 차자 1867년 가을 쯤
차마 목을 베어 죽일 수 없어 초록바위에서 전주천 물속으로 떠밀어 죽였다.">
"곤지산은 슬픈 역사를 갖고 있다.
이 산에는 전주천에 깊숙하게 내리 뻗은 지형으로 깎아지른 절벽과 울창한 숲이 조성되어 있었고,
빛깔이 푸르스름하여 이름 붙여진 초록바위가 있다.
이곳은 조선시대 죄인을 효수하던 곳으로 조선 후기 천주교 신자들이 처형됐던 순교지였으며
동학 농민군의 지도자 김개남 장군이 참형당한 곳이기도 하다."
<싸전다리 건너편에서 본 곤지산의 모습입니다.
지금은 콘크리트 벽으로 사방공사를 한 곳이 초록바위인 것 같습니다.
근데 다른 자료에는 그들의(남명희와 홍봉주의 아들) 죽음에 대한 기록이 조금 다릅니다.
'전주천 옆의 초록바위에서 교수형으로 죽인 다음 그 시신을 전주천에 수장시켰다'고 되어있으니 어느 것이 맞는 지....>
풍남문(豊南門)
"풍남문은 한국 최초의 순교자 윤지충과 권상연 그리고 호남의 사도 유항검과 초대 전주 지방 교회의 지도급 인물들이 순교한 곳이다.
윤지충은 25세에 진사에 급제하고, 이듬해 명례방 김범우의 집에서 서학을 접한다.
얼마 후 정약용 형제들의 지도로 열렬한 신자가 되고 다시 그의 외사촌인 권상연에게 전교한다.
1791년(신해년) 여름, 진산에서 윤지충 바오로가 모친상을 당했다.
그는 외종형 권상연 야고보와 상의, 모친의 유언과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전통 의식인 유교식 장례와 제사를 폐하고 신주를 불태웠는데 이를 '진산 사건'이라 한다.
그 후 전통 사상을 거스르는 이 행위는 천주교 박해의 구실이 되었고,
12월 8일 윤지충과 권상연이 참수, 한국 교회 최초의 순교자로 기록되었다."
<초록바위에서 싸전다리를 건너 500m 쯤 북쪽으로 가면 풍남문이 있습니다>
<그러나 찻길로 가로 막힌 로타리 한 가운데 있어 가까이 가지 못하고, 길건너에서만 한 바퀴 돌며 찍었습니다.>
<이곳은 원래의 풍남문이 있던 곳이 아닌 것 같습니다.
다른 자료를 보니 지금의 전동성당 자리가 진짜 풍남문이 있던 자리라고 되어있습니다.>
<'초남이 성지'의 교리당에 걸려있는 사진입니다.
옛날 풍남문의 모습인데, 이 풍남문이 진짜 풍남문이 아니었을까???>
서천교 성지, 초록바위 성지, 풍남문 성지,
모두 다 슬픈 사연이 절절이 맺혀있는 곳이기는 하지만,
한 군데 한 군데를 모두 다 개별의 성지로 지정한 것은 '111'이라는 숫자에 너무 매달린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오히려 전동성당을 중심으로 하고, 이 곳들은 함께 돌아보아야 할 곳으로 지정하는 것이 더 나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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