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했다.
외계인의 언어로 쓰인 사이트에 접속하여, 수차의 시행착오 끝에 드디어 목적을 달성했다.
지금부터 새로운 세계를 발견한 그 모험담(?)을 하나씩 하나씩 풀어본다.
우선 인터넷에서 ‘KIVA’를 치면 '빈민국가 사업자 소액금융 대출 비영리단체'라 소개된 사이트가 나온다(http://www.kiva.org/)
접속하여 메인 화면이 뜨면 맨 아래쪽 왼편에 적힌 ‘Ready? Find a loan'를 클릭하고,
화면이 바뀌면 좌측 중간쯤에 보이는 세계 지도에서 'Click to Pick'을 클릭하자.
그러면 대륙별로 정리된 세계의 85개국 이름이 나온다.
그 중 '아프리카'에 들어가서 ‘부르키나 파소(Burkina Faso)’라는 처음 들어본 나라 이름을 골랐다.
찾아보니 서아프리카에 위치한(나이지리아 왼편) 내륙국가로 국민소득은 1,284$으로 비교적 높은 편(?)이고,
키바에서는 지금까지 1,615,750$를 이 나라 사람들에게 빌려주었다.
내가 접속했을 때엔 전체 9팀의 사연이 올라와 있었다.
그중 4명이 함께 찍은 사진이 올라와 있는 ‘Songtaaba Hamado Group’의 사연을 읽어보았다.
이들은 농사에 필요한 자금 875$를 공동명의로 빌리려 하는데 현재까지 150$이 모아졌다.
KIVA 사이트에는 ‘Hamado’라는 사람의 사연이 소개되었는데, 단어 찾아가며 어렵사리 해석해본 바는 이렇다.
그는 채소를 가꿔 시장에 팔아서 생계를 꾸려가고 있는데, 돈이 없어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못하고 있다.
이번에 빌린 돈으로는 우선 비료를 1 Sack을 살 것이라 한다.
그리고 돈이 모이면 우선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월사금을 꼬박꼬박 내는 것이 그의 바램이다.
이들은 이번에 빌린 돈을 8개월 후인 2016년 1월에 상환할 예정이다.
돈 빌릴 사람의 사연을 확인한 후 우측에 있는 ‘Lend 25$'를 클릭하여 그 다음 과정들을 진행했다.
25$은 이들에게 빌려주고, 고생하는 KIVA 사람들을 위해 2.5$(10%)를 기부하니, 우리 돈으로 32,000원쯤 된다.
빌려주는 과정은 무척 간단하다.
페이스북에 가입해 있고, 해외에서 쓸 수 있는 카드가 있으면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PayPal' 어쩌고 저쩌고 하는 곳이 뜨는데 몇 번 실수하다보면 문제없이 결재가 된다.
이렇게 나는 외계인 언어로 된 사이트에서 거금 32,000원을 빌려주는 사채업자가 되었다.
아내가 살아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나도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가진 재주가 없어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으니 기부라도 하기로 작정하고,
‘정토회’를 통해 북한주민 돕기에 모기 눈물만큼, 제3세계 가난한 사람들에게 파리 눈꼽만큼씩 정기후원을 하고 있는데,
그래도 미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아 어딘가 마음에 드는 또다른 기부처를 찾고 있던 중이었다.
두드리니 열리는 것인가, TV 채널을 돌리다가 EBS에서 소개하는 키바의 이야기에 시선이 꽂혔다.
작은 돈으로 가난한 사람에게 마중물을 마련해줄 수 있다는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이 너무 멋지고 마음에 들어,
무엇하는 곳인지 인터넷을 찾아보았으나 아직은 우리에게 많이 알려지지도 소개되지도 않은 사이트였다.
'KIVA'란 스와힐리어(아프리카 북동부에서 쓰는 언어)로 ‘거래’ 혹은 ‘합의’라는 뜻으로,
2005년 미국의 제시카 재클리에 의해 시작된 ‘기부 사이트’, 정확히 이야기하면 ‘무이자 소액대출 사이트’이다.
이 세상에는 작은 종자돈마저도 없어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부지기수이지만,
제도권 은행에서 돈을 빌리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하니 가난을 벗어나기란 하늘의 별따기인데,
이들에게 사람을 믿고 돈을 빌려주는 곳이 MFI(MicroFinance Institution, 소액대출기관)이다.
방글라데시 유누스 박사가 설립한 그라민 뱅크, 페루의 핑카(FINCA, 국제 공동체 협력 재단)등이 대표적이고,
우리나라의 ‘미소금융’도 이와 비슷한 기능을 하는 곳이다.
KIVA는 바로 이런 세계의 가난한 나라들에서 활동하고 있는 ‘미소금융’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곳이다.
물론 '미소금융'에서는 돈을 빌리고자 하는 사람들의 사연을 상환계획서와 함께 KIVA에 올리고,
돈을 빌려주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KIVA에 올라온 사연을 보고 마음에 드는 사람을 선택한다.
그들은 작게는 2~300달러부터 많게는 2~3,000달러까지 빌리기를 원한다.
돈 빌리기를 원하는 한 사람에게, 여러 사람이 25달러씩 모아서 빌려주는 것이 KIVA의 특징이다.
물론 많게는 500달러까지 빌려줄 수도 있고, 형편이 되는만큼 KIVA에 기부할 수도 있다.
이렇게 2005년부터 지금까지 KIVA에서는 130만 명이 모은 돈 7억3천여만 달러를, 세계 86개국 사람들에게 빌려주었다.
모두다 가난하고 못사는 사람들에게 아무런 담보도 없이 빌려주었지만 그들의 상환율은 놀랍게도 98.70%나 된다.
난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한 달에 만 원씩만 모으면 1분기에 한 사람씩, 1년이면 네 사람에게 25$씩 빌려줄 수 있다.
그래서 계산해 보았다.
빌려준 돈이 되돌아오면(9개월 예상) 다시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는 것으로 계산하고,
난 계속해서 한 달에 만원씩 모아서 1년에 4명씩 신규로 빌려준다.
이렇게 40년 간 계속하면 내가 낸 돈은 480만원이지만 총 4,347명에게 빌려줄 수 있다.
내가 죽고 나면 아이들에게 유산으로 물려줄 수도 있으니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가!
이제부터 난 4,347명에게 빚을 받을 권리가 있는 ‘초대형 사채업자’가 되는 것이다.
밥 해리스는 <25달러로 희망파트너가 되다>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자선을 호소하는 사람이나 자선 요청 광고물이 노리는 정서 상태는
깊은 연민과 동정, 근거 없는 죄의식과 수치심이라고 생각된다.
따라서 자선을 받는 사람들은 동등한 존재로 인정되지 않는다.
그들은 창조적이거나 똑똑하거나 강인하거나 재간 많은 사람들이 결코 아니며
그 반대로 어려움에 빠져 있고, 의존적이며, 무기력하고, 아이 같은 사람들이라고 보는 것이다.”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기부하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어려움을 딛고 일어서려는 사람에게 마중물을 마련해주는 일도 그에 못지 않다고 생각한다.
현재까지 전 세계 130만여 명이 KIVA의 사업에 동참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참여하고자 하는 사람이 많이 있겠지만, 문제는 언어, 나처럼 '영어는 곧 공포'인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니 누군가 나서서 한글로 번역하는 수고를 하여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면 좋겠고,
우리나라 안에도 마중물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또 다른 MFI가 생겼으면 하는 것이 바램이다.
추측컨대 이 사업을 할 가능성이 있는 곳은 전국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천주교 산하 단체’나 ‘정토회’가 아닐까 싶다.
아니면 두 곳이 힘을 합한다면 종교간의 화합도 덤으로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도 품어본다.
* 덧붙이는 말
-. 빌려준 돈이 계좌로 돌아올 때엔 환차손이 발생하여 금액은 줄어들 수도 있다.
-. 이렇게 돌아온 돈은 본인이 찾아도 상관없고 다시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어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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